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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31 불온한 삶을 꿈꾸다
  2. 2008.12.17 5년간 꺼지지 않을 촛불들의 이야기
2008.12.31 12:21

불온한 삶을 꿈꾸다

[컬처뉴스가 뽑은 2008년 10대 뉴스] ⑨ 국방부 불온서적 선정
                                                                                                                                       이주호 기자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
▲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


7월 19일 이상희 국방장관의 지시로 국방부 보안정책과는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등 세 분야 23개 불온서적 목록을 지정하여 각 군에 “불온서적 차단 대책 강구(지시)”를 내려 보냈다. “불온서적 무단 반입 시 장병 정신 전력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공군은 24일 각급 부대에 공군참모 총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 7월 28일부터 8월 8일까지 불온서적 반입 여부를 일제 점검하여 8월 11일 상급부대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국방부가 불온이라는 말을 들고 나오자 매도, 척결의 시린 계절이 다시 오려는가 염려도 잠시, 인터넷은 오히려 국방부에 대한 조소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포문은 진중권 교수가 열었다. 그는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자신의 책들이 국방부 선정 리스트에서 제외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 소개를 보면 노골적으로 적화를 선동하고 있는데도 왜 그 책이 배제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 ‘빨간’이라는 색깔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거기에 ‘바이러스’까지 붙여 강력한 전염성을 경고”한 『빨간 바이러스』 역시 불온서적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3권 선정 과정에서 출판사측과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도서 선정의 기준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조소도 잊지 않았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우석훈 교수도 자신의 블로그에 “사회과학이 금서가 되는 시기가 돌아왔으니, 사회과학이 찬란하게 꽃피던 사회과학 르네상스가 정말로 오기는 올 것 같다. … 국방부의 금서 목록에 내 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고 정말 깊이 반성하였다. 이 시대착오의 세상에 너무 말랑말랑하게 쓴 것이 아닌가, 정말 마음 속 깊이 반성한다.”고 하는 반성 아닌 반성의 글을 올렸다.

물론 한총련과 같이 국방부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는 구태의연한 대응 방식도 여전했다. 하지만 불온서적에 관한 생각지도 못했던 반향의 진원지는 따로 있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불온서적 중 자신이 읽은 책에 200자 평을 달면 적립금을 쌓아주겠다는 이벤트와 함께 대대적인 불온서적 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이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10월 22일에는 현역 군법무관 7명이 “국방부가 23권의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것은 장병들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 사회지식을 얻고자 책을 사 읽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국방부의 엄포가 그들이 의도한 분위기 조성은커녕 희화화되고만 있었으니 내부적인 자성의 제스처 하나쯤은 여론 환기용으로 너그럽게 눈감아 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씨가 불온한 시에 관해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문화의 불온함, 질서 순응적이고 안이한 방식의 예술에서 불온함이란 무엇일까 역설하는 김수영 시인의 글에 시종일관 정치적 불온성만을 물고 늘어지던 이어령 씨의 천진난만함이 더해져 문학에서의 불온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던 계기였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언급했을 때의 불온함은 단지 정치적인 의미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불온함은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대놓고 권위를 비웃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말았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새벽까지 깨어 있는 눈더러 보란 듯이 기침을 해대는 젊은 시인의 불온성, 규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시대의 문고리를 휘어잡는 문화의 본질로서의 불온성의 얼굴이 언뜻 내비친 것도 같았다.

박정희 귀에 불온하기 그지없었던 김민기와 한대수의 음악, 전두환에게 있어 불온하기 그지  없었던 김남주의 시, 어느 샌가 불온성은 7080 추억담 속에 잠자고 있었다. 꽉 짜여 숨 크게 내뱉기도 힘든 완고한 순환의 한 끄트머리를 잘라내고 싶은 소심한 일탈의 꿈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만난 정치적 불온성은 낭만적이기마저 했다. 일률적인 눈요깃거리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차가운 대형 상가 뒤편, 피맛골과 황학동에서 삶의 불온성이 보였다.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과 주식을 파는 세상에서, 뉴타운과 재개발 열풍에 머리털 하나 날리지 않으며, 뉴라이트들이 주 7일 근무를 하든 야간근무를 하든 상관없이 적게 벌고 많이 생각하며 사는 불온성을 무척이나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 동족을 위해 /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 대포도 안 만들고 / 탱크도 안 만들 테고 /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 … /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 더 많은 것을 아끼고 / 사랑하며 살 것이고 // 세상은 아름답고 /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일부,『우리들의 하나님』(녹색평론, 2008) .

오렌지를 오렌지라 부르는 불온한 사람들이 애타게 찾던 불온성의 씨앗이여, 너 거기 철책 안에서 자라고 있었구나!



 

[관련기사]
개발과 보존의 아이러니
그 해 온라인은 흉흉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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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7 15:09

5년간 꺼지지 않을 촛불들의 이야기

[컬처뉴스가 뽑은 2008년 10대 뉴스] ① 촛불시위(이주호 기자)

▲ "나는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라던 여중생의 외침이야말로 촛불시위의 배후세력이 아니었을까? (사진 김수현)

2008년도 여느 해 못지 않게 다채로웠습니다. 그 다채로움의 무늬 속에는 격렬한 성토와 다툼이 있는가하면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과 회한이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올해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거나 가장 즐겁고 기쁜 나날들이었을 테지만, 사회적으로는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에게 휴식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무늬들을 찾아보기 힘든 해였습니다. 어찌됐든 2008년도 이렇게 지나갑니다. 한 해 동안 문화예술계에 가장 파고가 컸던 사건들을 모아봤습니다. 다루는 방식도 제각각이고 10대뉴스라고 꼽은 일들도 어쩌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컬처뉴스는 올해를 이렇게 봤습니다.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편집자.

컬처뉴스에서 올 한 해 주로 내가 담당했던 것은 문학과 책에 관한 소식이었다. 10개의 기획 기사를 꾸리며 그 중 첫 번째인 촛불집회 부분을 내가 담당하고자 한 건 2008 최고 베스트셀러인 이명박의 <네버엔딩스토리>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도무지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 바다 너머 이웃 나라에서 소들이 미쳐 날뛰며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제 1장 ‘배후세력’
이웃나라 왕은 미친소들을 진압할 방도가 없자 남반도국으로 특사를 파견해 싼 값에 질 좋은 고기를 주겠다고 왕을 회유한다. 마침 왜국으로 우동을 먹으러 갔던 왕은 우동집 주인에게 드디어 우리나라도 싼 값에 질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돌아와 쇠고기협상에 돌입한다. 이에 의심을 품은 한 방송 단체의 PD들이 저건 사람이 먹는 소가 아니라 사람을 먹는 소일지도 모른다는 방송을 내보내게 되고, 이에 성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고 항의를 하게 된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 군중의 주축은 여중고생이었다. 그들의 짧게 줄인 치마와 앳된 목소리에 정신 줄을 놓았던 모양인지 왕은 그들의 요구에 답할 생각은 안 하고 누가 너희들더러 밤늦게 불장난하라고 했느냐며 그들의 배후를 추궁한다.

제 2장 ‘촛불은 북안산을 태우고’
배후 세력 발언이 기폭제가 되었던 것일까, 유모차를 끈 아기 엄마들, 군역을 마쳤던 장정들, 일과를 마친 장년들이 한데 모여 가두시위를 벌이게 된다. 이에 왕은 물대포를 동원하여 시위대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지만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 않고 지금은 야심한 시각이라 추우니 온수를 뿌려달라며 왕의 화를 돋운다. 조류독감에 시름 겪는 농민을 위해서였을까, 닭장 여행에서 돌아온 시위대는 곧바로 ‘3일간 계속되는 국민 야유회’, ‘100만 촛불 대행진’을 밀고나간다. 왕도 이에 질세라 명박산성을 쌓고 고성능 귀마개로 무장한다. 긴 여정만큼이나 장군 멍군이 낭자했던 촛불 문화제는 장마와 한 여름 더위 속에서 점차 시들어간다.

제 3장 ‘청기와파의 반격’
왕의 직속 기관인 국토해양부가 4대강 정비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숨죽이고 있던 남반도대운하가 다시 논란거리가 된다. 이에 앞서 나라 교육을 담당하는 부패의 기라성 공노인이 학교자율화와 이에 따른 0교시 부활, 국제중 설립과 일제고사의 부활, 이에 반대하는 교사 해임 및 파면, 세탁소 집 아들 만수의 환율 놀이, 문화마을 양촌리 유이장의 통장 물갈이 자행 등, 청기와의 무사들은 그 많던 촛불들이 꺼지기를 기다려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공안정국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피습당하기 시작한다.

출판사 평 ‘내 책상 위에 촛불 하나 있어’
촛불을 들고 모였던 일반 백성들은 끝내 하나의 의제를 끌어내지 못했고 따라서 정책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진다. 시위대 내에서도 청기와로 가자는 부류와 거길 가서 뭘 하느냐는 부류가 대립했고, 진압부대의 조직적 진압에 산발적으로 행진하던 대오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공안 정국 속에서 더 큰 절망감을 느낀 사람들이 소주 한 잔으로 맘을 달래려 하지만 오늘 좋은 고기 왔다면서 푸줏간 주인들이 식탁 위에 미친소를 올려놓자 더욱 큰 절망감에 빠져든다. 출판사 평은 이와 같이 작품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그래도 촛불집회야말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찬양을 적당히 버무리고 있다.

책 소개를 마치며 ‘내가 읽은 <네버엔딩스토리>’
이 이야기가 여타 사회적 갈등을 다룬 이야기와 변별되는 지점은 주인공들이 여중고생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시위에 나오게 된 이유도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대의를 위해서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서가 아니다. 여중생은 급식이라는 그들의 선택권을 벗어난 밥상이, 아기 엄마들은 내 아이에게 먹일 음식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더욱이 여학생들의 경우는 참정권이라는 게 없다. 자신의 신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에서 애초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목소리는 단순명쾌하다. “내 밥상에 놓일 음식 왜 니가 주문하는가.”

반면 기존 이야기에서 주도적으로 사회와 갈등을 일으켰던 노동 조직이나 대학생 단체의 활약은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무척 미미하다. 시위가 한창일 때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한때 대학 운동 조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나 현재 참가 중인 사람들, 노동 조직의 간부들로 등장하는 이 세력들은 그들이 이전에 해 온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작품의 주동 인물들과 번번이 갈등을 일으킨다. 노동조직의 경우 그들이 시위대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시종 주장한다거나, 조직 내 의결을 통해야만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둥, 이들은 급변하는 시위 상황에 전혀 대처하지 못한다. 대학조직 역시 오늘 수업을 듣느냐 마느냐를 총학생투표에 회부해 가결된 학교에서만 시위에 참여한다. 물대포 장면에 가면 이들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여성 시위대를 후미로 몰아 시위의 선두에 서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이 이야기속의 시위 모습 또한 다른 이야기 속 시위 모습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결집-지도가 있어야 시위가 된다는 구시대적인 시위 문화를 완강히 거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청기와파를 견제하는 정치세력마저 너희들이 감히 대표성을 운운하느냐, 미친소를 불러들인 책임에서 너희도 벗어날 수 없다며 그들을 철저하게 고립시킨다. 그리고 그 고립은 훗날 그들의 정치적 기반마저 흔들게 된다.

이러한 시위의 다핵적, 산발적 양상은 공중파TV 방송을 위시한 기존 미디어와의 단절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지 반발에만 그치지 않고 개인 미디어방송이라는 미래적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위트 있는 피켓과 깃발, 춤, 노래, 그림 퍼포먼스 등,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니 만큼 기존 시위문화가 주는 집단성을 배격하고 개인의 독특한 개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시위 문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촛불이 시들해지고 시위자들 대부분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때, 일국의 학자라는 사람들이 모여 시위란 무엇이었는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장면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이다. 이들은 시위대와의 정서상 거리를 좁혀보려 토론, 포럼, 대담 등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지만 좀처럼 의견 접근을 이뤄내지 못한다. 미친소의 공격이라는 큰 문제가 촉발시킨 사건이긴 하지만 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점차 자기만의 생각을 하게 되고 사회에 대한 생각, 정치적 입장도 순식간에 진화한다. 따라서 그들이 토론하고 있는 시위의 모습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위대가 떠난 자리에서 그들이 누구였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히려 이야기 첫 장면에서 배후 세력이 누구냐고 외치던 왕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논쟁과 한계 짓기, 열광적 찬양 등의 관찰자적 시선으로는 절대 시위 참가자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것이다.

나라-나 사이의 동일시가 사실은 허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왕과 왕의 나라에 냉소하며 돌아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객관적이고 관찰자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한 절대 파악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 촛불로 타던 거리의 뜨거움과 촛불이 꺼진 후의 냉소가 사실 다른 게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이 이야기가 주는 여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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