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협 10주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09 비약은 없다, 조금씩 꾸준히 발전하자
  2. 2008.12.12 한독협, 공부하자!
  3. 2008.11.27 “변화 수용하는 젊은집단으로 계속 가자”
2009.01.09 12:24

비약은 없다, 조금씩 꾸준히 발전하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⑩] 임창재 한독협 이사장 
                                                                                                 컬처뉴스 김나라, 필름온 안효원 기자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 특집으로 준비했던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마지막 인터뷰는 한국 독립영화 1세대이자 한독협 이사장으로 재임 중인 임창재 감독과 함께했다. 마지막 인터뷰는 그동안 아홉명의 독립영화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야기 했던 독립영화계의 현안과 독립영화인들의 고민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독협의 이사장으로서 또 동시에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임창재 감독의 의견을 들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 달라.

일단 시간이 빨리 갔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변화가 있었지만 많은 변화는 아닌 것 같다는 양면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건 협회의 일원이 아닌 한국 사회의 창작자 입장에서 말하는 건데, 우리는 창작을 통해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성찰하며 산다. 그 원칙에서 비춰볼 때 작품을 더 치열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양적으로 따지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감독들을 볼 때 더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사라지는 감독들 또한 창작하고 싶은 열망이 없어서 작업을 그만둔 것은 아닐 텐데.

지난 10년의 정권이 독립영화 환경에 영향을 주긴 했다. 그런데 그런 외적인 요인과 무관하게 내적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쌓는 데 있어 더 강화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말이다.

가치와 미학에 영화란 옷을 입히다.

언제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됐나.

1994년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실험영화제에서 <오그>(ORG)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그 영화제는 내가 몸담고 있었던 실험영화연구소에서 주관했었는데, 국내 작품이 전무한 상태라 좀 부족하더라도 내가 만들게 됐다. 생각보다 관객이 많이 왔다. 당시 실험영화가 낯선 개념의 영화였는데도 매체에서도 관심을 보여 힘이 됐던 기억이 난다.

처음부터 실험영화에 뜻이 있었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했다. 군대 제대한 후인 1990년대 초반은 우울하고 패배적인 사회 상황이었다. 제대하고 노동자문화운동연합에 속해 있는, 거의 해체 위기에 있는 영화모임에서 공부를 했다. 시네마테크에서 외국 영화를 빌려와 보고 토론하고 그렇게 1년간 했다. 그러다 서서히 창작, 제작에 대한 논의를 했었다.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나.

권병순 감독님이 영화 미학의 기초가 되는 실험영화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연구소도 만들었고, 노동자문화운동연합의 영화분과가 서울영상집단으로 독립했다. 당시 충무로를 경험한 선배들이 있었는데 충무로에서 수순을 밟는 것이 결코 최선의 코스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또 1980년대에 대학에서 인문사회를 공부하면서 영화 쪽에 관심을 가졌던 선배들이 1990년대에 영화를 만들면서 7,80년대의 관행들에 균열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독립영화를 선택한 이유인가.

그때 충무로 방식이 합리적이진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충무로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으로부터 출발해 만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 연장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개인 창작, 즉 역설, 가치, 미학을 그림이 아닌 영화란 옷을 입혀 만들고 싶었다. 그림이나 영화, 모두 비주얼이 중요한 언어라는 공통점도 있고.

2002년 충무로에서 <하얀방>을 연출했다.

그쪽에서 의뢰가 왔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협회의 운영위원이었고, 한독협 원년 멤버인데 상업영화를 하면서 협회에 누가 되지 않을까 선배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근데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고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와 적대관계는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독립영화건, 상업영화건 영화가 최종적으로 가야할 지점은 관객, 대중이기 때문에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

직접 해보니 어땠나.

돌이켜보면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충무로는 역할이 분화되어 있고 시스템화 되어 있다. 그게 장점이고 단점인데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기엔 시야도 좁고 경험도 부족했다. 스탭 개개인은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온 사람들이라 능력 있는 분들이다. 근데 그분들의 노하우를 작품에 녹여 내는 방향으로 했어야 하는데 시원하게 못한 것 같다. 어떤 순간에는 더 과감하게 결정하고 고집도 부렸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충무로에서 작업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 제작비이다. 제작비를 쓸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감독의 입장을 넘어 프로듀서적인 마인드도 같이 갖고 해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 관객, 대중을 한 축에 놓고 사고를 해야 한다. 과연 이 많은 제작비를 갖고 관객들을 상대할 때 그 정도 가치를 담고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나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고 내가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할 것이다.

독립영화,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이후에도 꾸준히 독립영화를 만들어 왔다. 독립영화의 매력이 뭔가.

독립영화를 통해서 크든 작든 꾸준히 성과를 쌓아가는 게 가치 있는 작업 아닌가. 지금 충무로가 어렵다고 하지만 독립영화는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다. 그 속에서도 창작의지를 잃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창작자의 본분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10년이 넘게 작업을 했는데 작업 환경의 변화가 있나.

물론 있다. 양적인 변화도 있고, 독립영화라는 개념도 생겼다. 그 전에는 작은영화, 상업영화, 단편영화라는 말만 있었다. 지금은 독립영화라는 개념과 지향성을 갖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 과정에는 한독협의 설립이 독립영화 진영에서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충무로 방식이 합리적이진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충무로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으로부터 출발해 만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독협 10년 동안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나 경험이 있다면.

한독협이 생긴 이후에는 그렇게 큰 사건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전부터 있던 인디포럼이 한독협이 출범하는데 가장 큰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인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역할 분담해서 만드는 영화제였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모임이었다. 인디포럼이 협회가 만들어지는 돌다리 역할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독립영화에 대한 개념과 신념이 생기면서 창작자들이 수적으로도 늘어나고, 사적으로도 교류를 하게 됐다.

작년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창작자와 협회의 이사장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협회의 결정은 개인의 결정이라기보다 집단의 결정이기 때문에 내가 이사장이라는 직책이 있어도 협회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좀 힘이 없어 보이는 이사장일 수 있다.(웃음) 실제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 같다. 부담되지는 않는다.

기획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독립영화계가 ‘변화의 시기’에 도달했다고 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독협 10주년을 맞은 2008년 독립영화의 상황은 어떤가.
 
결국은 독립영화인들이 자생력을 키우는 시기였던 것 같다. 자생력은 다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근데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직 미진한 게 많다. 인디스토리가 10년 됐고, 독립영화 전용관도 1년 됐고, 미디액트도 4, 5년 됐다. 또 지금 독립영화 배급사가 더 생기는 판이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작일 뿐이고, 이제 또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총체적인 의미에서 영화를 만들고 배급되고 상영되고 평가 받는 소통 과정의 순환이 커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미약한 부분이 있다.

소통 과정 순환의 최소한의 기틀은 마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한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바뀌면서 기존의 방향과 달라졌다는 인식이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영화를 너무 산업적인 측면에서 사고하는데서 오는 문제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봤을 때, 영화를 산업으로만 볼 때에 독립영화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영진위의 지원금이라는 게 결국은 세금이고 관객들이 낸 입장료에서 모아진 기금, 즉 대중이 만들어준 재원이라는 거다. 그런 재원을, 나쁘게 이야기 하면, 일회성, 소비적인 부분에만 ‘올인’하면 사실 그건 다양성, 공공성을 해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독립영화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독립영화 진영에 지원하는 것이 문화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건가.

독립영화인들이 상대적으로 다양성이나 공공성을 더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지원에만 의지하면 좋은 창작태도는 아니다. 근데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의 논리로만 영화를 풀어가야 한다고 하면 궁극적으로 가장 손해 보는 것은 관객이다. 독립영화인을 위해서라기보다 장기적으로 미래 한국 관객을 위해 그렇게 정책이 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진위, 정신 차려라!
 
서울독립영화제 기간에 한독협에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의외였다.

우리도 좀 껄끄럽기도 했다. 근데 워낙에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고, 좀 더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다. 인식을 공유하고 문제점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영화제를 통해서 알려야 했다기 보다, 그 시점에 알려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명서의 주안점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작년, 올해 논의됐던 복합상영관 건립 문제다. 예산까지 확보 됐었던 사업인데 그걸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아시아무빙이미지센터’(이하 이미지센터)로 확대된 건데, 청사진이 있더라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응 전략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그걸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전략전술이 필요한데 그게 미진했고 결과적으로 추진할 역량이 안됐다고 생각한다. 강한섭 위원장의 리더십과 추진에 대한 신념이 부재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서 그 쪽에 포커스를 맞춰 성명서를 냈다.

이미지센터는 복합상영관과 방향이 전혀 다르지 않나.

이미지센터는 국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아시아를 포괄하는, 어떻게 보면 전시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걸 실현시킬 장기적인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거기에 복합상영관 문제가 묻혀서 이중적인 고통을 받아 찌그러진 것 같다.

그럼 복합상영관 건립은 폐기된 건가. 이미지센터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공간보다는 활동이 더 중요한 거다. 어쨌든 복합상영관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는 매개체인데, 그게 지금 불투명한 상태가 되니 답답한 거다. 또 3기 영진위에서 추진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니까 굉장히 화가 난다.

강한섭 위원장이 4기 영진위를 맡으면서 영화인들과 대화를 안 한 것 같다. 성명서의 내용도 그렇고.

외부적으로는 언제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런 것 없이 많은 일이 진행됐다. 그래서 배신감 같은 걸 느낄 수밖에 없기도 했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강한섭 위원장이 “영진위의 사업은 독립영화가 거의 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그게 아니라는 건 영진위 예산이나 정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독립영화 진영도 영진위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넓게 보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독립영화의 체계, 시스템을 만드는 게 더 큰 문제다. 영진위는 그 중 하나의 촉매제로 바라봐야 하는 거지 거기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물론 같이 힘을 모을 부분이 있지만 그건 부분이지 전체가 될 수는 없다.

한독협, 브레인을 찾습니다!

전체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책 연구가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10주년 기념 사업만 해도 과거를 돌아보는 부분은 좋았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정책에 관한 부분은 미진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새로운 10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정책 개발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어떻게 목표를 도달할 것인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정책이라면 당연히 한독협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회의에서 그런 논의가 나오고 모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근데 우리가 대부분 창작자들의 마인드를 갖고 있어 그걸 전담 해서 하기가 어렵다. 자발적으로 뜻이 모아져야 되는데 조직적으로 너무 강제 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금방 나오지는 않지 않나. 필요성은 있지만 요구만큼 시원하게 나올 정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식으로 풀어갈 예정인가.

글쎄, 그건 내가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웃음) 한독협이라는 조직의 틀을 떠나 전문성을 갖추고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과 결합하는 게 필요하다. 비전과 능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열려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독립영화 했다고 계속 독립영화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립, 비독립을
떠나서 창작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방금 외부 인력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기획 인터뷰에서 한독협 내부 인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었다. 영화를 만드는 스탭은 물론 활동가들 또한 일은 많고, 생활이 보장 안 된다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합리적으로 나오면 일하기가 더 수월할 거다. 근데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이번에 좀 도와주면 다음 작품 할 때에 도와줄게”라는 식으로 노동력을 담보로 노동력을 빌려 온다. 100% 신용사회다.(웃음) 어쨌든 물질적인 부분을 많이 강화할 필요는 있다. 그걸 감수하면서 일하려는 사람이 적은 건 당연한 거고, 한 개인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독립영화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협회가 전체적으로 조금씩 나아진다면 개인도 같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한독협 초기에 비해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력이 좀 약화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협회 초기에 인원이 적었을 때는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했지만, 협회가 커지면서 개인이 생각하는 협회의 가치, 목표가 넓어지기 때문에 협회 내부에서도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서 조절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고 본다. 그걸 더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조직이 되는 게 중요하다. 논의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우리 역할을 방기하는 거다. 이견까지도 대화하고 토론해서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구조와 열린 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창작의 고통을 마주하라! 그게 창작자다.

독립영화, 독립영화인이란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젊은 독립영화인들이 많은 것 같다. 선배 독립영화인으로서 조언을 해 준다면.

예술은 추상적인 통로고, 창작자는 생각이나 의지를 그 통로를 통해 삶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일반적인 현실 속의 사람들과는 삶의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가 체념하는 것도 생기고, 동시에 어떤 부분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데 그런 자각을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 먼 관점에서 볼 때 독립이다 아니다 하는 경계 자체가 무너지길 바란다. 독립, 비독립은 자본의 성격 갖고 결정되는데 그런 경계를 넘어서 사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건가.

독립영화 했다고 계속 독립영화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립, 비독립을 떠나서 창작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 고통은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이외에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가까이 두고 살면 위안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고전음악을 접하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니까 음악, 문학 등 훌륭한 예술가들을 마음속에 두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만날 독립영화 관객들과 한독협 회원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독립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는 관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근데 창작자와 관객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럴수록 만드는 입장에서는 고민이 더 많아 진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괴리가 더 커질수록 창작자의 고민도 더 깊어지는 거다. 그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 사회 창작자들의 위치가 아닌가 싶다.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통해서 삶에 힘과 자극을 받았다면 거기에 대해서 표현을 해주면 좋겠다. 창작자들에게는 큰 힘이다.

한독협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 달라.

이제 첫 길을 건넜다. 뒤돌아보면 많은 일을 했고, 주변을 보면 한독협에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전망을 계속 유지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지금 그런 걱정을 한 단계는 아니지만, 스스로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어쨌든 경계해야 할 것은 경계하고, 힘을 많이 쏟아야 할 데는 힘을 쏟아야 한다.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것은 사실 바람일 뿐이지 비약하는 것은 없다. 이후 10년이 지나서 뒤돌아보더라도 조금씩 변해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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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2 10:22

한독협, 공부하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⑦] 맹수진 영화평론가

맹수진 영화평론가
▲ 맹수진 영화평론가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고 ‘상영’된다고 그것이 그 영화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건강한 피드백이 없다면 감독 개인의 차원에서도 영화산업 전체의 차원에서도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만나본 사람이 독립영화비평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맹수진 영화평론가다. 맹수진 씨는 한독협 운영위원뿐만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 소위원, 영화제 심사위원 등 독립영화의 안팎에서 꾸준하고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어쩌면 독립영화계의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도 비판의 날이 가장 서 있는 인터뷰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정 어린 충고가 담긴 인터뷰 시작해 본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아쉬움이 좀 남는다. 10주년 기념 영화도 만들고 포럼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했는데 행사가 너무 회고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올해의 독립영화’, 독립영화인들을 쭉 살펴보면서 한독협의 출범 의의라든지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에 관해 나름대로 잘 정리하는 시간이긴 했다. 문제는 지금 정세가 많이 변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과거에 한독협이 정부와 대립하는 단체였다면, 지난 10년은 한독협이 제안하는 사업을 정부가 많이 받아 들였던 시기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많은 사업이 이루어졌고, 독립영화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많은 지원을 받다 보니 NGO가 갖고 있는 긴장이 좀 없어진 느낌이다. 옛날에는 허리띠 졸라매는 게 기본이었는데 최근 10년 동안은 어떻게 보면 좀 배부르게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한독협의 역할이 너무 사업에 치우쳤고 정책 연구에는 소홀했다.

그게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가.

정권이 바뀌면서 많은 사업이 축소되고 있다. 다른 방향에 대해서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와 싸워야 하는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이 없는 거 같다.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는 정책 개발이다. 그런 이야기가 10주년 사업에서는 별로 없었다. 굉장히 많은 사업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액기스가 좀 빠진 것 같다.

영화, 사랑하고 끔찍하다

처음부터 숨 가쁘게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웃음)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영화평론가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 위원과 <무비위크> 스탭 평론가로 활동했다. 또 예술영화 전용관 하이퍼텍나다에서 2주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기획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와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에서 활동을 했다. 전주영화제에서 6년 동안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독립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서독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5년부터다.

많은 일을 한다. 영화평론가로서의 삶은 어떤가.

평론가로서의 삶이라, 그건 뭐 다 짐작할 것 같은데 연애하는 느낌이다.(웃음) 연애하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또 너무너무 끔찍할 때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독립영화에 있고 가장 싫어하는 영화도 독립영화에 있다. 충무로 상업영화들에는 안정적인 틀이 있지만 동시에 답답하고 고루한 면이 있다. 독립영화 중 그걸 벗어나는 영화, 예상치 못한 영화를 만나면 진짜 신난다. 남들이 모르는 뭔가를 내가 발견한 느낌, 정말 좋다.

그럼 끔찍할 때는 언제인가.(웃음)

충무로에서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아닌 영화는 냉정하게 시장에서 버려진다. 근데 독립영화의 경우 함량 미달인 영화도 있는데 독립영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어떤 목소리를 내야할지 갈등하게 된다. 특히 ‘힘들게 만들고, 양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으니까 욕하기 보다는 격려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갈등은 심해진다.

그걸 잘 표현하는 타입인가.

난 외교적인 화법을 잘 구사하지 못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맘속에 있는 말을 결국 드러내게 된다. 싫은 영화나 그 감독을 만나면 표정관리도 안된다. 뒤에서는 욕하면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영화 잘 봤다고 할 수도 있는데 난 맘에 안 드는 작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앞에 앉아 있다가 서먹해지는 상황도 많이 있다.(웃음)

민주화를 꿈꾸던 자유주의자

영화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니면서다. 그 때 내가 1주일에 한번씩 들렀던 것이 종로에 있던 코아아트홀이다. 또 라이브러리를 회원제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회사는 다녀야했다. 나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웃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도 빨리 모으려고 했다.

"독립영화 비평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적으로 비평가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년에 한독협에 비평분과가 처음 생긴 거다"

왠지 학창시절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거 같다.

내가 89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정치조직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몇 달 동안 안 들어오고 그러니까 집에서 학교도 못 가게 했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듯 맞은 적도 있었다.(웃음) 근데 그땐 몰랐는데 그 시기에 학생운동을 하다 영화 쪽에 들어온 사람들이 되게 많다.

영화에서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발견한건가.

그때 영화로 방향을 틀면서 남들에게 공식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동안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투쟁했다면 이제는 영화를 통해서 문화운동을 해 보겠다’고 말이다. 그 즈음에 문화담론이 굉장히 활성화 되면서 문화를 통해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시류에 내가 묻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가만히 나를 되돌아보면 뼛속깊이 자유주의자고 개인주의자였던 것 같다.

얘기가 점점 흥미로워진다.

학창시절 끊임없이 사회 운동을 하면서도 조직이 ‘나’라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못 견뎠다. 난 너무나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인간으로 조직이 원하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근데 그때는 조직이 개인을 억누른다는 생각을 차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비조직적이고 쁘띠부르주아적이며 나약한 인간이라는 자기학대를 끊임없이 했다. 조직의 이익이 있고 목표가 있을 때 나의 이익과 관심은 뒤로 빠지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개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겠다.

점점 힘들어졌다. 연애도 깨지고 부모님과도 갈등이 심화됐다. 나는 너무 힘든데 조직의 논리는 개인을 보듬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회의가 들면서 내가 감성적인 인간이고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됐다. 결국 무엇을 택하든지 내가 좋아하는 거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책 읽고, 영화 보고, 글을 쓰는 걸 하게 됐다.

영화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평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딱히 평론을 하려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냥 막연히 영화를 해 보고 싶었다. 사실 논문 마치면 쓰려고 구상해 놓은 시나리오도 있다. 만날 사람들한테 하는 말이 ‘나 논문 끝내고 미디액트 등록할거야’다.(웃음) 내가 상업영화를 만들 건 아니지만 그냥 개인 비디오로 장롱 영화라도 만들고 싶다. 결국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로 세상을 본다는 건 또 하나의 글쓰기인 것 같다.

독립영화?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

언제 본격적으로 평론을 하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전주영화제를 하면서부터다. 처음에 영화 공부를 할 때는 현장 비평보다는 한국영화사를 새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그런 학문적인 관심이 많았다. 근데 전주영화제에서 단편영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책을 한 권씩 쓰는데, 그 때 현장의 영화들, 그때그때 나오는 영화들에 대한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독협과 인연을 맺은 건가.

2005년도에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이 연락을 해 왔다. 전주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쓴 글을 보고 제안해 온 것이다. 영각 씨가 다른 데서 글 쓰는 사람들과 독립영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영각 씨가 바쁜 사람인데도 보면 되게 바쁜데도 독립영화에 대한 글들은 꼬박꼬박 챙겨 읽는다.(웃음) 그때 2005년도 서독제 예심을 봐 달라 해서 인연을 맺게 됐다. 2006년에도 예심, 2007년에는 본심, 올해 다시 예심 심사를 했다. 그러다보니 서독제  집행위원도 하고 한독협 운영위원도 하게 됐다. 옛날에는 영화보고 글 쓰는 거에 만족했는데 한독협과 인연을 맺다 보니 독립영화가 내 울타리가 되었다. 나의 놀이터라고나 할까?

독립영화란 놀이터가 재미있나.

일단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에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전에 주류 영화에 대해 글을 쓰긴 했었는데 그렇게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영화들은 재미있는데, 대학원에서 배운 서구이론들을 영화들에 재밌게 적용시키지 못했다. 미국영화나 스페인영화에 대해서 내가 써봤자 같은 문화적 공감을 갖는 그 나라 사람들만큼 못쓰지 않겠나. 그래서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구라’ 치는 거 같고.(웃음)

독립영화에 대해 글을 쓸 때는 ‘구라’를 안 치나보다.(웃음)

내가 독립영화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관심을 가졌던 이슈들, 사회문제들이 독립영화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넓게 보면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내가 옛날에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겪었던 문제들이 독립영화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더 재밌게 할 수 있다.

한국 독립영화 비평이 활성화됐다고 생각하나.

어느 정도 이뤄졌다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취약하고, 절실한 문제들이다. 사실 그렇다. 독립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게 돈이 안 된다. 주류 평론가 중에 독립영화에 관심이 있으니까 비평하겠다고, 심사하겠다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두 번 단기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하려면 힘든 부분이 있다. 월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일을 해도 돈을 받는 일은 없다. 독립영화계에서 살려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은 리뷰를 써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면 삶에 타격이 있다.(웃음) 어찌 보면 이게 독립영화계가 해결해야할 문제다.
 
독립영화 비평이 활성화 되지 않은 건 평론가의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독립영화는 분명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라는 일반적인 잣대로 봐야할 부분이 있고, 독립영화라는 특수성으로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걸 다 이해하면서 글을 써야만 정말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그러려면 독립영화를 많이 봐야 한다. 영화를 정말 사랑해서 많이 본 사람들의 글에는 깊이가 있고 향기가 있지 않나. 근데 독립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립영화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글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독립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해결책으로 고민한 것은 무엇인가.

독립영화 비평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적으로 비평가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년에 한독협에 비평분과가 처음 생긴 거다. 정책 단위가 필요하고,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비평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에서 가장 깨져야 할 화석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적인 올바름이 있다면 다소 못 만들어도 용인이 되고 상영이 되고,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
가 되는 것이 이제는 깨져야 한다"


독립영화 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

그건 독립영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영화 저널이 없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다. 한독협이 비평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는 없었다.(웃음)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나마 전에는 독립영화 비평은 필요하니까 외부 비평가들한테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는 식이었지 한독협 내부에서 비평가들을 육성하는 건 없었다. 근데 그런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영각 씨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진행하는 독립영화 정기상영회 ‘해피투게더’를 진행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세미나를 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서독제 자원활동가나 데일리 기자로 쓰면서 조금씩 글을 쓸 기회를 준다.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독립영화 비평 자원을 키워가자는 논의가 나온 게 최근 2, 3년 사이다.

한독협 비평분과에는 몇 명의 평론가가 있나.

8명 정도 가입되어 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데 잘 안되고 있다.(웃음) 다 자기 일들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자꾸 일에 치인다. 난 영화 같이 보고 세미나 하고, 비평을 하는 계획이었다. 근데 계획대로 잘 안됐다. 현재 한독협 내에서 비평분과에 요구하는 일들, 예를 들어 인디스페이스 리뷰, 10주년 기념 책자 등 외부에 돈 주고 하기 힘든 일들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서 진행 할 거다.

독립영화 비평의 최전선에 있다. 이번 서독제 출품된 작품들의 경향에 대해 말해 달라.

단편은 지금까지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중심적으로 심사한 건 단편보다는 장편인데, 장편의 경우 올해 굉장히 센 영화들이 많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지금까지 의례적으로 상영되던 성격의 작품들이 많이 빠졌다. 지금까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흔히 얘기되는 영화들은 기본적인 미학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이 상영돼 왔다. 난 그게 가장 불만이었다. 소재 차원에서 독립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만의 미학을 담은 영화들을 선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극영화가 많고, 다큐멘터리 중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을 욕먹을 각오하고 뺐다.

심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

아무래도 6명이서 토론을 하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타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난 반이 절대 찬성하고, 반이 절대 반대하는 논쟁적인 영화가 본선에 올라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반대가 너무 심해서 안 되는 영화들이 있고, 상대적으로 무난한 영화들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근데 ‘그 정도면 괜찮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안틀어도 무방하다는 말 아닌가.

심사 과정이 치열했겠다.

올해 비장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지금까지 서독제가 한 해를 정리하는 독립영화 축제 같은 느낌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포괄했다면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편수를 과감하게 줄이고 고만고만한 영화들은 빼고 우리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들로 가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근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거 같다.

그 과정에서 끝까지 관철시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에서 가장 깨져야 할 화석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올바름이 있다면 다소 못 만들어도 용인이 되고 상영이 되고,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가 되는 것이 이제는 깨져야 한다. 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얼굴의 영화들이 등장 했다. <농민가>를 연출한 윤덕현 감독도 처음 들어보는 감독이고, <워낭 소리>의 이충렬 감독도 방송 쪽에 있던 사람이다. 그런 영화들이 자극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영화도 논란이 예상되는 영화들이 많다. 사람에 따라서는 보기 힘들어할 영화도 있다. 물론 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올해 장편 경쟁 같은 경우 조금 선명하게 가려고 노력했다.

틀을 깨는 새로운 영화, 철학을 찾아서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건가.

마츠모토 토시오가 쓴 <영상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다. 이 사람의 말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어느 시대에나 뛰어난 작품은 있다. 그러나 그 뛰어난 작품을 발굴하는 눈이 없을 뿐이다’이다. 그게 맞는 말 같다. 분명히 새로운 시각을 가진 영화들이 있는데, 그게 어떤 관성에 의해, 지금까지 상영해온 영화의 미학적 틀이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누락될 수 있다. 현재 어디에서 새로운 영화가 등장하고 있는지 눈을 돌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주로 하는 일을 통해서 독립영화를 바라보고 걱정하고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난 평론가이기 때문에 비평의 차원에서 고민이 있다. 주류영화도 마찬가지인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관행이 독립영화에도 있다. 솔직히 감독들과 많이 가까워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창작과 비평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근데 독립영화인이라고 통칭되면 그게 더 어렵다. 사실 사람들이 독립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을 되게 부담스러워 한다. 특히 안 좋게 본 영화는. 근데 이제 써야 할 것 같다.

한독협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달라.

공부하자.(웃음) 한독협이 약간은 비대해졌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몸과 손발이 커진 것에 비해 머리는 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외연이 확대되고 한국영화계에서 한독협이라는 단체의 입지도 과거와 다르게 매우 커졌는데 거기에 걸맞는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창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을 했었는데, 결국 유야무야 됐다. 만약 정책을 갖고 했다면 그게 끊어져서는 안 된다. 또 그 때 예술, 독립영화 의무 상영에 관한 ‘마이너쿼터’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럴 때 한독협이 정책과 철학을 갖고 영화 문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사업보다는 정책 강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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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수용하는 젊은집단으로 계속 가자”
관객은 냉정하다. 재밌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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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7 18:47

“변화 수용하는 젊은집단으로 계속 가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⑤] 김종관 감독

‘독립영화계의 꽃미남'이라는 말에 수줍게 웃던 김종관 감독과의 소탈한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 ‘독립영화계의 꽃미남'이라는 말에 수줍게 웃던 김종관 감독과의 소탈한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한국독립영화협회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다섯 번째 인터뷰는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감성지기’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젊은 감독과 함께 했다. 바로 김종관 감독이다. ‘독립영화계의 꽃미남이라는 별명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수줍게 웃던 김종관 감독과의 소탈한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오는 12월 4일부터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하는 김종관 감독 단편콜렉션 <연인들>을 보기 전에, 인터뷰를 보고 극장을 찾는다면 감독과 좀 더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10년 전에 내가 뭐했더라. 1998년이니까 그때 제대했다.(웃음) 동숭아트센터에서 단편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걸 보던 기억이 난다. 영화제에 가면 앞에서 젊은 영각이 아저씨가 사회 보는 걸 관객으로 보고는 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독립영화 작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인연을 맺어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이 되게 신기하다. 처음에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한독협이 뭘 하는 단체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독립영화를 꾸준히 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단체니까 지금은 도움도 받고, 그 사람들과 친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 산만한가?(웃음)

한독협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특별히 인연이라기보다는 내가 단편영화 작업을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자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화제에 영화를 내도 잘 안 되고, 틀어주지도 않아서 그래서 이 이상한 단체가 좀 싫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 영화 틀어주니까 다시 좋은 단체로 보였다.(웃음) 난 사람들과 섞여서 작업을 하거나 집단의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한테도 한독협이 의지가 될 때가 있었다. 정회원으로 계속 안 들어가다가 최근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활동은 전혀 안하지만. 나 같이 집단의식이 없는 사람도 미워하지 않는 좋은 단체다.

회원 가입은 언제 했나.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 <낙원>으로 상을 받았다. 그때 회비가 생겨서 한 번에 몰아내고 가입했다.(웃음) 내가 단편작업을 주로 하기 시작한 게 2002년도인데 한 4년 정도 더 있다가 가입한 거다.

상 받았을 때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가입 협박을 한 거 아닌가.(웃음)

기억이 안 난다.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한 번 어딘가에 소속되면 집단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니까 그런 게 좀 두려웠는데 알다 보니 괴롭힐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더라. 그래서 가입했다.(웃음) 그래도 한독협이 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 항상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고 내가 독립영화인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그런데 같이 모여서 하는 활동을 잘 못하니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너무 길었던 ‘토요명화’ 광고

독립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딱히 독립영화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다. 막연하게 영화 보는 걸 즐기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는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없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화 만드는 것에 관심 갖기 시작하면서 단편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영화제에 출품하고 만들어가면서 독립영화, 내가 하는 작업들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직접 해보니까 어떻던가.

이게 작은 작업이라 처음에는 큰 작업을 하기 위해 내가 연습하는 과정의 영화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들다 보니 장점을 알게 되었다. 항상 내가 고민하는 걸 바로바로 풀 수 있고 한국영화계가 불황이라고 해도 단편은 내 돈으로 찍으면 되기 때문에 그런 게 없었다. 예산이나 이런 부분에서도 맘만 먹으면 자유롭기도 하고 항상 솔직하게 바로 얘기할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그런 게 독립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영화학교를 다녔나.

1995년도에 필름인이라는 단체에서 한 달 동안 영화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게 너무 재밌어서 기억이 난다. 다른 일들을 하다가 제대를 하고 청춘의 방황기를 지내면서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예대에 들어갔다. 과정이 짧으니까 졸업하고 현장을 들어가든가 보통은 그러는데 나는 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한 번 했던 게 너무 재밌었다.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토요명화’ 기다리다가 시작하기 전 긴
광고 때문에 잠 들어버리면 아침에 분해하고 그랬다."

관객으로는 어떤 영화를 좋아했나.

취향은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보고 즐기던 영화들은 많으니까. 아무리 어려운 영화를 만드시는 분들도 처음에 쉽고 재밌는 영화를 보고 영화에 빠질 수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우뢰매>를 보고 영화를 만드는 꿈을 꾸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나도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토요명화’ 기다리다가 시작하기 전 긴 광고 때문에 잠 들어버리면 아침에 분해하고 그랬다.(웃음)

그렇다. 그 세대엔 그런 기억 하나씩 있다.(웃음)

그렇게 보고 즐기는 영화 중에, 나를 좀 벗어나게 해 주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했다. <천장지구>보면 유덕화가 멋있고, 유덕화의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열혈남아>를 봤는데 또 너무 멋있고, 그전에 보지 못했던 비장한 감정들을 느끼면 그 감독의 다른 영화 <아비정전>을 보고. 그런 이상한 힘들이 너무 좋았고, 영화들을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 보는 취향이 점점 넓어졌다는 말인가.

어느 순간 내 자신의 히스토리와 영화에 대한 것들이 만나면서 영화에 대해 고민하는 것들, 보는 입장도 서서히 바뀐 것 같다. <수퍼맨>이나 <백 투 더 퓨쳐> 등 최초에 내가 좋아했던 취향은 계속 갖고 있으면서 보는 취향이 점점 넓어진 거다. 극을 만드는 성향은 나만의 히스토리가 있으니까 또 달라지는 것 같다.


불안하다, 하지만 즐거워서 끊을 수 없다!

처음에 연출한 작품은 무엇인가.

학교 다니면서는 실습작품은 많이 만들었다. 졸업한 후에 나에게 의미 있었던 작품은 <운디드>란 3분짜리 영화다. 대학로 건널목을 건너려는 남녀의 이야기다. 무엇이든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환경은 안 되고 그러니까 가장 미니멀하고 간단하게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한 공간 안에서 배우 둘과 카메라만 있으면 찍을 수 있게.

그게 언젠가.

2002년 여름에 찍었다. 학교 다니면서 찍었던 작품들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운디드>가 첫 번째 작업이었던 것 같다. 찍는 건 몇 시간 안 걸렸는데 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콘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몇 컷 안 되는 영화인데도 계속 바꿔서 그리고, 영화 찍기 전 한 달을 영화에 대한 것만 생각했다. 그건 열정인 것 같다.

콘티를 수정하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것은 무엇인가.

정적인 무드를 여러 개의 작은 컷으로 나누어 느낌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그들이 어떻게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되나 생각을 계속 했다.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이들의 옆모습, 뒷모습, 앞모습, 배치와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했다. 계속 시뮬레이션 한 것이 초반에 영화 작업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됐다.

꾸준히 작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힘들었던 일들이 있나.

작업을 하는 것은 항상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또 작업을 하기 위해, 꿈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가는 건 또 제일 힘들었던 일인 것 같다. 감정적으로는 큰 등고선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하는 것 같다. 워낙에 불안한 직업이니까. 즐거워서 끊지 못하는 거지만.

독립영화인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초반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화를 했던 게 힘들었다. 그렇게 영화 작업을 하려다 보니 계속 소규모로 했는데 그만큼 자주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소규모라도 예산은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벌면 거기에 돈이 계속 나갔다.

돈이 들어오지는 않던가.(웃음)

계속 하다 보니까 영화 비슷한 일로 돈도 좀 되는 것 같다.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밥 먹고, 술 먹고 그렇게 오늘은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거다. 그런 면에서는 당장에 경제적으로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좀 두려움이 있다. 수중에 돈이 없고 돈이 내일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모르니까.(웃음)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나.

다양한 걸 많이 했다. 웨딩 비디오 찍는 일도 했는데 웨딩 촬영 하려고 산 카메라로 처음 영화를 찍었다. 영화 관련된 것은 홍보 영상, 인터뷰 하러 다니고, 교회 촬영도 많이 했다. 그 밖에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알바도 많이 했다.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하는 즐거움에 작업을 계속 하는 건가.

요즘 같은 시대는 돈을 벌려고 노력해도 기본적으로 못 버는 시대다.(웃음) 신기한 게 이렇게 진짜 돈 안 되는 영화이긴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이 들어오는 때도 있고, 단편도 배급을 잘 하면 풍족하진 않지만 당장에 살 수는 있다. 내 주위에도 현실적으로 뭘 한다고 하더라도 요새 내일이 보장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힘든 거나 안하고서 힘든 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거 같다.(웃음)

놀라운 발상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인데.(웃음)

요즘엔 영화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가 발끝만 보고 사는 것 같다. 멀리 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안 넘어지려면 그것도 중요하긴 하다. 길이 험한데 먼데만 보고 갈 수는 없는 거니까.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감성지기

작품들을 보면 이미지가 강렬하다. 감독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질문이 막연한가?(웃음)

막연하니까 막연하게 답을 하겠다.(웃음) 나한테 이미지가 매력적인 것은 감정,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의 작용이라는 것은 멋지다. 어떻게든 카메라 안에 담기면 의도를 지닌다. 감정적으로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2004)

많은 대사, 다양한 인간관계, 화려한 영화적 장치 등을 통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나는 실험영화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러티브적인 것에 집중하는 편이다. 근데 여태까지 만든 것들이 러닝타임이 워낙 짧으니까 그런 식으로 내러티브를 만든 거다. 나는 이미지 위에 내러티브가 있고 내러티브 위에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선순위에서 감정적인 것이 표현되면 제일 좋은 거다.

구체적으로 <폴라로이드 작동법> 같은 경우 어떤 고민을 많이 했나.

사람이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좋아하면 할 수 있는 어떤 나사 빠진 행동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나중에 보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지 않나.  사람을 좋아하면 간절하게 원하게 되고 너무 간절히 원하면 얻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왜냐면 너무 바보 같아서 감정이나 행동이 제어가 잘 안되고 제대로 마음을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나사 풀린 풋풋함이라.(웃음)

나중에 생각하면 ‘아, 쪽팔려’ 하는 그런 감정들 말이다. 그런데 먼 궤적에서 보면 그것들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그렇게 창피했고 되돌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을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다. 또 그것들이 예쁜 거라는 걸 사람들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했던 게 부끄럽지 않고 순수하고 예뻤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감독으로서 변화하는 지점이 있나.

그렇다. 변하지 않는 관심사도 있는 반면 계속 변하는 것도 있다. 단편 작업 같은 경우 액션을 찍다가 바로 멜로를 찍는 게 아니라 한 작업을 끝내면 거기서 피드백을 받게 된다. 나는 영화 작업 하는 것이 답을 내리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질문을 하면 그 다음 질문이 생긴다.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가기 때문에 같은 주제를 가지면서도 내적으로 뭔가 다른 지점들이 생긴다.

관객들과 교감을 통해 감독이 성장한다는 말인 거 같다. 또 다른 변화는.

난 살고 있다. 때문에 신문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버스,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닌다. 또 친구들과 싸우고, 연애하고 이별한다. 그런 삶 속에서 생기는 고민이나 변화가 영화에 적용되기도 한다. 또 영화보고 소설 보면서 생기는 새로운 문화적인 취향들이 덧대지기도 하고. 다들 그렇지 않은가. 단편 작업이 좋은 게 어떤 부분 사람을 크게 해 주는 것 같다. 그 사람의 솔직한 현재의 이야기들을 계속 담아낼 수 있으니까.


충돌과 변화의 포용은 성장의 밑거름

한독협과 함께 일을 진행한 경험이 있나.

일단 한독협의 많은 도움을 받고 산다.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가지는. 나 같은 사람을 포용해 줄 수 있는 게 한독협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웃음) 제일 중요한 건 내 작업이 한독협의 많은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장비나 이런 부분들도 그렇고 한독협 안의 네트워크에서 생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일단 상영공간도 확보해야 하고 거기에 내가 작가로서 참여하게 되니까-한독협과 작가로서 만나 일을 하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더 이상 긴밀한 관계일 수 없는 것 같다.

같이 작업하면서 한독협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나.

그렇다. 영화 작업하기 전에는 ‘이런 작은 영화를 틀어주는 공간이 있구나’ 하면서 이질적이고 잘은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단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을 때는 두렵고 미운 것도 있었다. 내 작품을 안받아주니까 배타적인 곳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의미심장한 말이다.(웃음)

뭐든 집단화 되면 배타성이 생긴다. 나중에 알고 나서는 좋은 취지를 갖고 일 하는 좋은 사람들이고 배타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생기고 거기서 약간의 배타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또 그것들을 허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해하면서 좀 더 믿게 되었다. 스스로가 내부에서 변화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는 집단이라는 게 의미 있는 거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독협이 변화하는 양상이 있었나.

그런 걸 물으면 내가 미안해진다. 최근에는 만난 적이 별로 없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만나면 근황을 묻고는 하지만 회의에 깊숙이 참가한 적은 없다. 정회원 회의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부적인 변화는 모르겠고, 서독제 가면 항상 새로운 경향, 새로운 영화들이 나오는데 그게 뭔가 내부적으로 바뀌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한독협이 갖고 있는 고민과 같은 고민을 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지점에서 고민을 하고 그것들이 내부적으로 소화가 되면 내부적으로 고민하는 것 이상이 되지 않을까.

기존에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는 것 같다. 그들이 계속 서로 부딪히고 새로운 영화들을 받아줄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지키려는 고집도 있겠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들 중 바꾸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충돌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집단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근데 이런 말을 내가 하는 게 너무 우습다.(웃음)

"지금까지 해 온 것도 굉장히 좋았다. 앞으로도 변화를 수용할 줄 아는 젊은 집단으로 계
속 갔으면 좋겠다."


이번에 인디스페이스에서 특별전을 한다고 알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이 나왔나.

얼마 안 남았는데 마침 잘됐다.(웃음) 12월 4일에 개봉해, 3주정도 상영할 예정이다. 내가 찍었던 작품 중에 11작품이 상영된다. 특별전 제목은 <연인들>이다. 대부분 남녀의 이야기이다. 연인이 아닌 관계도 있지만 내가 작업했던 것들이 그런 영화들이 많다. 그것들을 한데 모아서 보면 그 안에 좀 다양한 감정들이 있을 거다. 한 사람의 단편 영화들을 모아서 개봉하는 것이 이례적인 것이라고 들었다. 많은 욕심을 낼 수는 없지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작품들이 상영되나, 짧은 소개 부탁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운디드>, <낙원> 같이 공개된 것들도 있고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도 있다. 올해 새로 찍은 세 작품이 있고. 또 그전에 만들었는데 한 해에 너무 많이 만들어서 영화제에 내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 새로운 영화들도 같이 넣어서 흥행 전략을 짜고 있다.(웃음)

새로운 영화들은 어떤 것들인가.

<올 가을의 트렌드>는 간단하고 가벼운 내용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에 대한 애착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재밌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메모리즈>, <헤이 톰> 등 세 작품이 신작이다. 

차기작 계획은 있나.

인천시에서 지원받아 하는 단편 작업이 있다. 옴니버스로 3명의 감독과 같이 하는 HD 단편 영화를 올 겨울에 찍을 계획이다. 아직 제목은 없고 인천을 소재로 찍을 예정이다. 또 현재 시나리오 작업하는 장편 영화가 있다.

장편영화 연출에 대한 소식이 있어 기다리는 관객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스케줄이 밀려 관객도 아쉬움이 남고, 본인도 많이 섭섭했겠다.

그렇기도 한데 아직은 젊고, 시작한지 몇 년 안됐기 때문에 괜찮다. 초반에는 준비가 안됐을 때도 있었고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이 있을 때도 있었다. 당시에 빨리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많이 준비해서 좋은 영화를 찍으려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편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바로 할 수 있다면 장편은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많다. 그리고 큰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고 그렇다 보니 원하는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하려면 누구나 힘든 것 같다.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너무 많다. 매일 고민하면서 산다. 당장은 내가 쓴 시나리오에 대한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또 아까 말한 내일에 대한 불안함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말하려면 끝도 없다.(웃음)

솔직한 대답 감사하다. 독립영화계에 대한 고민도 덧붙이자면.(웃음)

일단 다양한 상영공간이 확보되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볼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나라가 지원이 없는 나라는 아니지만 영화작업을 하려는 사람에 비해서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또 기본적인 인건비를 마련할 수 있는 여건도 잘 마련되지 못했다. 그런 지원제도도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한독협에 바라는 점은.

일단 회원으로서 참여를 잘 못해서 미안하고, 앞으로 한독협에 회비를 잘 내고, 잘해볼 용의가 있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웃음) 지금까지 해 온 것도 굉장히 좋았다. 앞으로도 변화를 수용할 줄 아는 젊은 집단으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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