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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11:03

뻥튀기 장수 ‘꺼먹손’

[기고]추억의 뻥튀기, 자본의 뻥튀기, 민중의 뻥튀기
                                                                                                        이민환 _ 부산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동네어귀에서 쌀이며 옥수수를 뻥뻥 튀겨주던 뻥튀기 아저씨는 아이들의 영웅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돈도 사람도 뻥튀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동네어귀에서 쌀이며 옥수수를 뻥뻥 튀겨주던 뻥튀기 아저씨는 아이들의 영웅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돈도 사람도 뻥튀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밑에 뻥튀기 장수가 우리 아파트 입구, 고가도로 아래에 있는 공터에서 곡물팽창사업(?)을 벌린다. 옛날 같으면 이때가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대목이라, 뻥튀기 장수들의 얼굴엔  화색이 가득했는데 요즘은 대형 사업장에 고객을 다 뺏기고 가난한 설을 맞이하려하니 떠돌이 뻥 장수의 얼굴엔 수심만 가득하다. 주문받아놓은 곡물들도 별반 보이지 않고 주위엔 구경꾼 하나 없다.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다가 한숨 같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마침내 부글부글 불가마를 터트린다. 그런데 웬일일까, ‘펑’ 하는 갑작스런 대포소리에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지 않는다. 강아지 한 마리만 뿌연 연기 속을 왔다 갔다 한다. 아! 뻥튀기 장수의 꿈은 이제 접어야겠구나. 늙기도 서러운데 객석이 텅 빈 차거운 무대에서 저토록 외로운 공연을 하다니! 

부곡동 시장언저리에 좀 특별한 뻥튀기 장수가 있었다. 손님들이 원하는 온갖 곡물들을 한꺼번에 섞어서 단박에 튀겨낸다. 특정한 곡물을 많이 넣어달라고 했다간 혼이 난다. 곡물들을 섞을 땐 그 비율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방면에는 자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달인이라고 항상 큰소리를 쳤다. 튀겨진 곡물들을 곧장 기계로 빻아서 아주 고운 미숫가루로 만들어 준다. 율무, 검정콩, 조, 수수, 쌀, 보리 등으로 만들어진 뻥튀기 미숫가루는 양도 많고 칼로리도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론 그저 그만이다. 연신 자기자랑을 늘어놓으며 손님들에겐 고자세인 뻥튀기 노인을 바라보며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도 이 분 문하에 들어가서 창업수업이나 받아볼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토록 자기직업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했던 뻥튀기 달인도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내 기억의 창고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뻥튀기 장수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꺼먹손’이라 불렀다. 초등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이니까 벌써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나보다. 우리 동네 골목어귀에는 뻥튀기 튀밥장수가 한분 계셨다. 씻을 물도 없는데다 조개탄으로 불을 때다 보니 손만 쳐다보면 달아나고 싶었다. 튀밥장수 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손의 거칠기로 보아  험한 일을 하다가 튀밥장수로 눌러앉은 모양이다. 시커먼 손, 특히 손톱 밑에는 석탄가루가 끼어있어 더욱 흉측스러웠고 땀이 나면 그 손으로 이마나 볼을 문질러 얼굴전체가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그의 아들이 내 친구였으니 어림잡아 마흔 전이었을 것인데 예순 먹은 영감처럼 늙어보였다. 우리들은 그를 ‘꺼먹손’이라 불렀고 꺼먹손은 튀밥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다 만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은 선생님보다 더 잘 가르쳐주고 배가 고프다고 떼를 쓰면 그 시커먼 손으로 튀밥을 한 웅큼씩 집어준다. 그곳은 꺼먹손에겐 고단한 일터였지만 우리들에겐 즐거운 놀이터였다. 그가 튀밥을 튀기려고 하면 우리들은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코를 씰룩거리면서 눈을 질끈 눌러 감는다. 멀리 비키라고 소리를 질러도 가까이서 꿈쩍도 안한다. 터지는 즉시 철망 밖으로 튀어나온 튀밥을 주워 먹기 위해서다. 튀밥 이삭줍기는 정말 재미있는 놀이였다. 서로 많이 주웠다고 우긴다. 철망에 걸려있는 튀밥을 빼먹는 재미도 제법 솔솔하다. 아이들은 악어새처럼 철망에 달라붙어, 철망사이에 끼인 튀밥까지 먹어치운다,  

어느 한적한 날, 여느 때처럼 꺼먹손이 불가마를 돌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내가 말했다. “준기 아부지, 나도 한번 돌리보입시더.” “그래, 한번 돌리바라.” 나는 꺼먹손 자리에 앉아 불가마의 손잡이를 잡고 정성스럽게 돌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뜨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신기하게 쳐다본다.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부러워할까, 어깨에도 바람이 들어가 우쭐대고 싶어진다. “준기 아부지, 백환짜리 넣으면 천환짜리 됩니꺼?” “넣어 바라, 타 뿌리지.” “동전은 예?“ “동전은 녹아뿌린다.” 하도 많이 받아본 질문이라 별 생각도 없이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얼라도 집어넣으면 어른 됩니꺼?“ ”에라이 이놈아“ 머리위로 꿀밤이 떨어진다. 나는 ‘꺼먹손’이 점점 존경스러워졌다. 보리쌀 한 됫박을 한 말처럼 부풀릴 수 있는 재주를 가졌으니 가난한 시절에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이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가! ”준기 아부지, 나도 얼른 커서 튀밥장사 하고 싶습니더.“ ”머라카노 야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돈도 사람도 뻥튀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본가는 돈을 뻥 뻥 튀길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노동자는 죽도록 일하고 한 됫박도 못 얻어먹는다. 악덕 자본가는 노동자 알기를 ‘이삭 줍는 여인’이나 ‘악어새’처럼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는 금융시장에서 파생상품을 파는 돈튀기 장사꾼들이 기승을 부리더니, 자기들 배만 불리고는 끝내 쓰나미 앞에 무너지면서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바다에 빠트리고 있다. 준기 아버지한테 걸리기만 한다면 이따위 자본팽창업자(?)들의 재물쯤이야 휴지처럼 태워버릴 텐데!

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뻥튀기 계급장을 달고 나온다. 작년 2월, ㄴ유업의 회장 손자인 ㅇ군은 8개월 된 나이로 지분가치가 9억1천 만 원이나 되는 주식을 증여받아 한 살 미만 나이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미성년자로서 제일가는 주식부자는 ㅅ사장의 17세 된 딸, 민ㅇ 양으로 작년 말 현재 536억 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몇 억대의 부동산을 증여받고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아이들도 있다. 지난해 대기업 신규 임원 승진자의 평균 연령은 45세인데 총수들의 자녀들은 평균 31세에 임원이 되었다. 박정희는 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후 3개월 마다 중장, 대장으로 진급했고 전두환 소장은 정권탈취 후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중장, 대장,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유권자들이 잘 속을 수 있는 뻥튀기 정책도 뻔뻔스럽게 내놓아야 한다. 747 점보기에 태워주겠다고 뻥을 치더니, 한강 낙동강에서도 유람선을 태워주겠다고 꼬드긴다.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면 일자리가 30만개 창출되고 경제효과는 수 십 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가, 올 초에는 4대 강 정비 사업을 통해 2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했다. 토목공사를 삽질로만 하던 그 옛날이 그렇게도 그리운가! 최근에는 정부 여당이 방송관계법을 밀어붙이면서 2만 1천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겨댄다. 취업에 목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선 일자리 부풀기가 최고의 약인가 보다.  

부풀면 터지게 마련인데 요사이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하다가 다섯 명이 불에 타 죽었다. 소위 명박악법이란 치졸한 법들을 만들어, 가진 자에겐 더 많이 얹어주고 저항하면 손발을 묶으려한다. 그래서 그런지 성난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뚜껑이 들썩들썩 한다. 반성하지 않는다면 온갖 잔머리를 굴리면서 찬물을 끼얹어도 때가 되면 펑 펑 터질 것이다. 그땐 물대포를 쏠 필요가 없다. 화염병을 던질 필요도 없다. 분연히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에 결국은 무릎을 꿇고 뒤늦게 후회할 것이다.

눈을 감고 손을 모으니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가 보인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소달구지가 지나간다. 꺼먹손이 환하게 웃으며 앉아있던 자리를 비켜준다.

“준기 아부지, 촛불로 횃불 만들 수 있습니꺼?” “물론이지, 마이만 모으면 된다.”

“사람하고 돈하고 어느 게 먼점니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법하고 정의는 예?” “알면서 와 자꾸 묻노, 근데 니는 요새도 튀밥장사 하고 있나?”

“안합니더. 외로와서 못하겠어예. 나도 여기서 그냥 눌러앉으면 안됩니꺼?”

                   

용산 참사 희생자 넋을 위로하며. 2009년 2월  이 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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