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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6. 14:03

이슬라 네그라, 꽃이되고 탄환이되는 시

[남미액션투어]칠레 _ 이슬라네그라
                                                                                         김강 _ 남미액션투어 기획자, LAB39 디렉터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11월 4일 제2회 퍼포먼스 비엔날레가 칠레 산티아고 도서관 현대미술갤러리에서 시작되었다. 11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산티아고의 갤러리, 미술관, 거리, 공원과 칠레 남서부에 위치한 발디비아(Valdivia)의 현대미술관 등지에서 개최된다. 또한 12일-15일은 아르헨티나, 21일-23일은 우르과이에서 네트워크 형태의 예술행사가 개최된다. 이렇듯 칠레라는 한 나라에서도 2군데의 도시를 비롯해 남미의 여러 도시와 여러 장소에서 예술행사가 진행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예술가들의 작품발표의 재료이자 표현이 바로 그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발표(전시)를 위한 예술작품의 물질적 속성이 예술가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고, 발표의 형식 역시도 그의 신체에 기인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예술작품의 생산과 소통이 동시에 가능하다. 삶과 경험이 농축되어 있는 자신의 신체와 표현을 위한 여러 소도구들이 구비되면 미술관이든 거리이든 어느 곳에서나 작품은 제작과 발표가 가능하다. 또한 퍼포먼스는 언제나 어떠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관객은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예술가가 촬영 후 다른 곳에서의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비디오 퍼포먼스, 사진 퍼포먼스 등이 등장하고 있어서, 직접 예술가들의 행위가 실연되는 것을 라이브 퍼포먼스로 구분해서 부르는 경향도 나타난다. 남미의 퍼포먼스 행사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중심축을 이루고 몇 개의 비디오 퍼포먼스 상영, 비디오 아트 상영,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다.


씨앗, 물고기, 가루, 깃발, 네트워크

11월 5일 늦은 오후부터 한국 작가들은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국립신문사(Diario de Nacion)의 너른 공간과 그 주변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손민아의 퍼포먼스. 남미의 각 나라명이 한눈에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었다.


남미의 각 나라명은 한눈에 쉽사리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어 관객에게 제시되었다. 눈의 각도 즉 몸을 움직여 텍스트를 보려하지 않으면 그 텍스트는 독해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야만 한다. 손민아가 제작한 석회로 만들어진 이미지텍스트들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자신의 눈을 바닥에 댄 관객을 맞이했다. 텍스트 독해에 빠진 관객들 주위를 돌며 손민아는 서서히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문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이 함께 분 입바람으로 그 국가들은 뿌연 석회가루로 흩어졌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강렬한 연분홍색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복장인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정정엽은 관객들에게 칠레 시장에서 구입한 다종다양한 씨앗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나누어 준다. 그리고 그 씨앗들은 퍼포먼스 말미에 투명 유리병에 색깔대로 부어져 행사장에 전시되었다. 사실상 도시인들은 씨앗을 만질 기회도, 씨앗을 자세히 볼 기회도 많지 않다. 지구반대편에서부터 쓰개치마를 입고 외출한 한국여성이 ‘씨앗’으로 칠레인들과 교통한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팝송 ‘We are the world’ 가 흐르고, 4개의 어항은 각기 다른 색깔의 물로 변화된다. 서식환경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되는 것. 그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존재는 ‘We are the world'라는 아름다운 구호 아래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현대인이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던 작은 어항은 커다란 어항하나로 통합된다. 통합의 어항, 'We are the  world의 어항'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제네바에 위치한 WTO로 부쳐지는 소포상자로 변환되었다.

김윤환의 깃발 퍼포먼스. 전세계 모든 국기를 모은 세계국기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전 세계의 모든 국기를 하나로 모은 세계국기가 신문사를 나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깃발을 흔드는 그의 곁으로 경찰이 다가오고, 행사 주최 측의 몇 명이 경찰에게 귀띔을 한다. 대통령 궁에 꽂힌 칠레 깃발 위로 넓게 휘날리던 ‘세계깃발’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깃발 위로 관객 1명이 올라탄다. 김윤환의 ‘세계국기’는 관객을 그 위에 태우고 여러 번 바닥을 지나는 동안 구멍이 났다. 너덜너덜해진 깃발은 길게 찢어져서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거리 위에서 넘실댄다. 몇몇의 작가가 찢어진 깃발의 일부를 기념으로 가져갔다.   

김강.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가 신문사의 어두운 구석에 세워졌다. 그리고 반자본, 반가부장, 반국가에 동의하는 일단의 관객들이 캠프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들은 제안자와 몇 가지 행위를 한 후 퇴장한다. 저항하는 네트워크의 결성, 그 자체가 퍼포먼스로 등장했다.

밤 11시, 한국 작가를 비롯한 페루,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작가의 퍼포먼스가 모두 끝났다. 밤거리로 나온 일단의 무리들은 술집으로 향했다.

11월 7일 이른 아침. 지난밤의 숙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난 여성 6명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은 이슬라네그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산티아고로부터 약 82KM의 거리에 있는 이슬라네그라는 바닷가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_ 바다, 흙길, 물고기의 눈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집을 네루다는 1939년 출판사의 도움으로 스페인 출신의 늙은 사회주의자 선장에게서 구입했다. 그가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 그는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이슬라 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1)

이슬라 네그라 마을풍경. 네루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간판이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 정치활동은 늘 천둥처럼 느닷없이 다가왔기에 집필을 중단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2) 네루다는 이 집에서 여러 번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1969년에는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를 수락한다. 당시 칠레의 정치적 상황은 우파들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여러 당들이 연합대통령후보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아옌데가 인민연합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자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고, 아옌데 지지 연설을 다닌다. 아옌데는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73년 라모네다 궁에서 쿠테타 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옌데가 사망한 지 12일 만인 9월 23일 네루다도 세상을 떠났다.

이슬라 네그라의 마을 풍경.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네루다 집은 현재 네루다재단에서 관리하는 박물관이다. 살아생전 그가 살았던 집은 칠레 초등학생들의 단체 답사처가 된 듯하다. 우리가 도착한 날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조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의당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과자, 초콜렛 등을 파는 이동상점이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길다란 과자를 입에 문 김하를 데리고, 우리도 가이드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이동했다. 네루다 박물관의 관람은 개별 관람은 불가하고 소집단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해야 한다. 또한 박물관 내부는 철저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는 발파라이소의 또 다른 네루다 박물관도 같은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유명인의 생가는 그의 사후에 박물관으로 변하고는 하는데, 네루다의 집만큼 ‘박물관’ 다운 ‘박물(博物)’의 면모를 가진 곳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수집품은 앙드레 말로가 앙크로와트에서 훔치려 했던 국보급 유물이 아닌 생활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몇 종의 수집품 선반은 밖에서도 잘 볼 수 있게 진열되어 있다.

네루다가 모은 유리병들. 

유리병, 재떨이, 마스크, 뱃머리에 붙어 있던 선수상(船首像)들, 나비 박제, 그가 외교관으로서 머물렀던 미얀마 등 현지에서 수집한 것들과 그의 수집병을 아는 친구들이 보내준 많은 물품들은 말 그대로 다종다양한 물품들의 향연이다. 온 집안을 다 채우고도 넘치는 수집품 중의 일부를 이미 그가 살아있을 때 칠레 대학 등에 기증했다고 하니 그의 수집병은 취미의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차근차근 정리되어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마치 여러 시대의 유물을 한꺼번에 대면하는 듯 진귀한 감정과 심미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루다의 수집품만 본다면 그가 민중시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사취미가 느껴진다. 하여 생전의 네루다도 그의 정적으로부터 이러한 호사취미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은 모양이다. 그가 어떠한 비판을 받았든 간에, 그의 호사취미로 인해 후세대들은 그가 살았던 시기의 여러 생활물품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물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다. 나도 그의 집을 둘러보며 세계 곳곳을 한 눈에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이곳이 현재와도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된 것은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89년 이후이다.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는 자물쇠로 굳게 잠겼던 이곳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칠레인들과 외국인들이 독재자의 눈을 피해 찾아 왔던 순례지이기도 했다.

이슬라 네그라 언덕에서 바라본 동네 풍경

시인의 집을 나와 비포장 흙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고삐도 매지 않은 말이 언덕 위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모녀는 우리에게  ‘올라(ola, 안녕)’하고 인사한다. 야트막한 언덕에선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동네는 조용하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찾아 올 만큼 세계적인 유명세를 지닌 동네답지 않게 소란스러움이 없이 조용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시인 한명으로 인해 이 동네가 풍성하고, 칠레가 풍성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 생각은 다시 수정되어야만 했다. 네루다가 시어를 길어 올릴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칠레 민중들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이 동네는 네루다로 인해 풍성해진 것이 아니니라. 자연과 대적하여 끈질기게 살아왔고, 식민과 독재에 저항하며 현재를 일구어온 칠레인들의 삶 그 자체가 네루다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3)고 고백하는 네루다는 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전장에서는 탄환이 된다.’(4)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재에 떨어진 시는 지금 꽃으로 피어날까 혹은 탄환이 될까? 하는 생각이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맴돌았다.

 

이슬라네그라 동네 풍경.
네루다 박물관. 이 집에서 네루다가 거주했고, 현재는 그의 수집품이 빼곡하다.
돌기둥, 바다, 드로잉을 하고 있는 정정엽.
네루다는 이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집필실에서 시를 지었다.
네루다 박물관에서 바라본 해안풍경.
수집된 선수상. 마치 바닷가의 선술집처럼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흙길 옆에 배를 닮은 집이 지어져 있다.
정원 한 복판에 위치한 네루다와 그의 부인 마틸다의 묘.
이슬라 네그라를 상징하는 물고기가 철조조형작품으로 세워져 있다.


정정엽, 퍼포먼스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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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박병규 역, 민음사, 2008년.  pp.214-215 참조
2> 같은 책, p. 498
3> 같은 책 p.496
4> 같은 책 pp.43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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