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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1. 16:38

몰락의 시작인가, 부진의 고착화인가

[2008 장르결산 - ③]영화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어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포함하여 고작 8편에 불과하다.

▲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어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포함하여 고작 8편에 불과하다.


                         강성률 _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2008년 한국영화를 한마디로 평가하라면 ‘부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08년 한국영화계의 어떤 수치를 보더라도 부진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 없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개봉한 영화는 105편 내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올해 초 50편 내외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제작편수만 놓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작품이 개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개봉된 영화 가운데 2005년이나 2006년, 2007년에 제작된 영화, 일명 창고영화가 적지 않는 수를 차지하고 있다. 활황기에 제작했지만 개봉 시기를 놓친 작품을 뒤늦게 개봉한 것이다(물론 창고영화 대부분이 매서운 시장의 버림을 받았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영화 점유율이 올라갈 수 없다. 역시 영진위의 통계에 의하면, 올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영화 점유율은 41.6%인데, 지난 해 같은 기간의 52.3%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화관객 수도 줄었다.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관객 수는 1억 3,490만 명인데, 이는 한창 관객이 늘던 2006년보다 1,500만 명이나 줄어든 수치이다. 개봉편수는 비슷한데, 한국영화 점유율이 줄고, 전체 관객이 줄어들었으니 영화의 수익률이 떨어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손익분기점을 넘어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영화가 고작 8편이라고 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추격자>, <강철중:공공의 적 1-1>, <고死>, <영화는 영화다>, <아내가 결혼했다>, <미인도>, <과속스캔들> 등이 자랑스런(!) 목록이다. 이와 반대로 전국 관객 10만 명도 모으지 못한 영화도 12편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105편 가운데 단 8편이 수익을 냈으니 과연 누가 영화에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정말로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외형적인 수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 한국영화는 2006년을 정점으로 해서 서서히 내려오는 중이다.

외연적인 상황을 떠나 내부를 들여다봐도 실속이 없다. 올해 한국영화는 세계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수상도 못했고 경쟁작으로 출품하지도 못했다. 수출은 거의 막히다시피해서 충무로에는 돈줄이 말랐다. 더 큰 문제는 쉽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부가 시장의 소멸을 들 수 있다. 지금 한국영화가 살아나려면, 이미 숱하게 주장한 것처럼, 부가 시장이 살아나야 한다. 한국의 영화 시장은 부가 시장이 소멸하면서 수익의 90% 이상을 극장에서 뽑아야 하는, 매우 불안정한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가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 세계 영화최강국 미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은 국내 극장 시장보다 두 배 이상 큰 국내 부가 시장, 그리고 국내 전체 시장보다 더 큰 해외 시장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영화 시장은 국내 극장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니 홍보비가 과도하게 투입되면서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현 위기를 타파할 근본적인 방법은 단 하나다.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서 합법적인 제작 자본을 확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윈도우를 개발해야 한다. 이것 없이 한국영화가 살아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이와 더불어 해외 시장을 다시 개발해야 하고, 지나치게 상승한 제작비를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100억 원짜리 영화를 소화하기에는 한국영화 시장은 아직 좁다. 부가 시장과 해외 시장을 모두 살린 다음 파이를 키워야 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기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의 영화가 꽤나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도 수익을 내기는커녕 손해를 본 것은 지나치게 고비용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암울한 산업 이야기만 나열한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논하지 않을 수 없어 그렇게 되었다. 이제 간단하게라도 2008년 한국영화의 경향과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논할 것은 팩션영화의 강세이다. <님은 먼곳에>, <신기전>, <고고70>, <모던 보이>, <라듸오데이즈> <미인도> 등 많은 영화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었다. 흥미롭게도 남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만주에까지 상상력을 넓혀갔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팩션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특정 시기와 특정 지역을 불러오는가의 문제, 즉 역사 해석의 문제이다. 그런데 <님은 먼곳에>를 뺀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그것이 부족했다. 2008년에 개봉된 많은 팩션영화에서 왜 역사를 영화의 소재로 다루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단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해석을 통해 관객과 대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논할 경향은 다양한 에로티시즘의 등장이다. 신윤복을 여성으로 해석해 그의 사랑을 그린 <미인도>, 가부장적 구조가 강한 한국사회에 반기를 든 <아내가 결혼했다>,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의 섹슈얼리트를 뒤엎어버린 <미쓰 홍당무>,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과감한 동성애를 다룬 <쌍화점> 등 다양한 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을 다루고 있다. 얼핏 보더라도 매우 다양한 경향의 에로티시즘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비단 볼거리로서의 에로티시즘에 그친 것이 아니라 성적 정체성과 가부장제의 문제점까지 파고드는 것이라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물론 모든 영화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독립영화의 경향을 살펴보면, 2008년의 독립영화 역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독협이 10주년을 맞았지만, 왕성하던 창작의 에너지는 서서히 식어가고 있고, 뜨거운 열기를 지닌, 새로운 감독들은 쉽게 등장하지 않고 있다. 영화제에 출품된 수많은 단편들도 제한된 상상력 속에서만 진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그나마 진지한 울림이 있는 <농민가>,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워낭소리>,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짚어본 <똥파리> 등의 영화는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혹자는 한국영화가 위기 아닌 적이 있었느냐고 이야기 하지만, 지금 한국영화계는 상시적으로 반복되었던 위기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돈이 없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볼 것이 뻔히 보여 투자를 하지 않는 지금의 구조는 심각한 악순환을 몰고 온다. 때문에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내년의 영화계는 올해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영화인들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앞장서서 해야 할 영진위를 보면,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의 타는 갈증처럼 한없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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