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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5 "한국영화 10년 흥망성쇠 담았다"
  2. 2008.11.25 노년은 아름다워라 - 황혼의 의미와 아름다운 음악의 조화, <로큰롤 인생>
2009. 1. 15. 11:24

"한국영화 10년 흥망성쇠 담았다"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낸 강성률 영화평론가 
                                                                                                                                         김나라 기자
강성률 영화평론가를 만나기 위해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광운대를 찾았다.
▲ 강성률 영화평론가를 만나기 위해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광운대를 찾았다.

한국영화는 위기다. 그 중에서도 영화비평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낮아져 있다.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는 영화에 대한 나름의 비평과 평론이 넘쳐나고 그 중에는 심도 있는 시각을 갖고 영화를 해석한 글도 꽤 찾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주간지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의 평론가의 짧은 글도 읽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비평 책을 낸 강성률 영화평론가를 만나보았다.

영화 관련 서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기에《한국영화, 중독과 해독》이라는 책을 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책에도 썼지만 비평가로 활동을 시작한 게 1999년부터니까 2008년까지 10년 됐다. 지난 10년 동안을 뒤돌아보면 99년 <쉬리>가 크게 흥행한 것을 시작으로 조폭코미디 붐이 일고 제작 편수도 늘고 시장 점유율도 올라가고 더 나아가 해외수출도 하게 됐다. 또 국제 유수 영화제 수상 소식도 많았다. 이러면서 한국영화가 유래 없던 엄청난 활황을 누리다 위기를 겪고 2008년에는 거의 몰락에 다가가고 있다. 이런 하나의 큰 10년의 순환이 보여서 그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비평가의 역할과 한국영화 경향, 영화 산업 이런 것들을 정리하는 글이 필요할 듯해서, 그간 발표했던 글 중 주제에 맞는 것들만 골라서 책을 엮게 됐다.

책에 언급된 영화들을 보면 가족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마초’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가장 보수적이라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장남으로서 주입되어 온 게 있어 그런 요소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은 장남의 특권도 있지만 막대한 책임감도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장남이라는 콤플렉스나 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한국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가진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 그것을 깨는 대안적인 가족을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 출판을 목표로 그런 내용의 책을 준비 중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코드가 맞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초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내가 마초적인 성향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 그 영화 안에 있는 여러 요소가 맞물려서이다. 조폭코미디의 경우 마초적인 면이 강한데, 그 안에서 왜 가부장적인 면을 다루나, 가부장적인 것들을 희화화하나 하는 것들을 주목하다 보니 옹호하게 되었다. 한국의 가족이나 학교, 종교 등은 가부장적인 구도가 핵심이고 그 틀을 깬다는 면에서 조폭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이다. <실미도>나 강우석 영화 같은 마초 영화는 노골적으로 비판도 했다. 아내한테 물어보면 정확히 얘기하는데 ‘노력하는 마초’라고 말한다.(웃음)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양육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하니까. 우리 윗세대의 마초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한다.

대안적 가족주의에 관한 새 책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짧게 소개해 달라.

올 해 안으로 나올 거다. 가칭이긴 한데 <가족으로 영화 읽기, 영화로 사회 읽기>라고 지었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반란은 어떻게 일어났나, 로드무비의 동성애 구조, 가부장제의 폭력, 자본주의 병폐, 유교적 시각, 한국적 남녀의 문제 이런 것들이 맞물려 있는데 그것이 왜 깨지고, 어떻게 깨지는가, 영화가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에 관한 책이다. 영화를 통해서 가족주의의 문제점을 밝히고 대안을 찾으려 했다. 

책을 보면 김기덕 감독에 대한 애정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외에 좋아하는 감독이나 작품에 대해 더 이야기 해 달라.

좋아하는 감독은 많다. 허진호나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아주 좋아하는 임순례, 이준익, 젊은 감독 중에서는 김태용, 나홍진을 좋아한다. 이창동 감독은 반반. 작품적으로 그 영화 세계관에 동조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일단 강우석 감독, 여성을 다루는 시각에서의 김기덕 감독, 강제규 감독의 영화도 옹호하기에는 문제가 있고. 지금 활동하는 감독 중에서는 그렇다. 홍상수 감독은 너무 반복해서 신선함을 잃은 듯한 느낌이 있다. 류승완 감독도 너무 과대평가된 면이 있는 것 같고.

김기덕 감독은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감독인 건가.

좋아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100% 좋아할 수는 없다. 장점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여성에 관한 시각에는 좀 문제가 있다. <시간>, <빈집> 등에서는 바뀐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전의 초기 작품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사회 저층민 시각에서 한국사회의 착취와 폭력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것, 상징적 코드로 풍부한 해석거리를 주는 것, 저예산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 여러 면에서 김기덕 영화는 높이 평가한다. 지금 같은 시기에서도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고, 해외에서도 꾸준히 반향이 있고.

<집으로>, <나쁜 남자>를 비교해서 페미니즘 비평의 불공정성에 대해 썼다. <집으로>의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 <나쁜 남자>에서의 남녀 관계를 비교하는 것은 비약인 것도 같다.

약간의 비약은 있다. 그건 인정한다. 초기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남성이 강제로 여성의 공간에 들어와서 결국 여성을 자기 뜻대로 만들어서 비주체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주로 페미니즘 비평가들이 했던 이야기다. 즉 여성을 비주체적으로 그렸다고 해서 영화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기존 페미니즘의 시각인 것이다. 그러나 이정향 감독의 이야기도 같은 구조인데도 이정향 감독의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모두 크게 보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같은 틀이다.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도 단지 김기덕 감독이 만들어서 다르다고 말하는 비평은 문제가 있다.
물론 다른 요소도 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는 폭력이 등장하고 이정향 감독의 작품에는 폭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정향 감독의 작품에는 폭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성률, 리토피아, 2008

<집으로>에 대해서 유교적 외할머니 상이라 비판한 면은 없었나.
거의 없었다. 비평도 좋았고 평점도 높았다. 찾아 봐도 한두 줄 정도의 조건이 있었지 그 외에 전면적인 비판은 거의 없었다. 영화를 만들 당시 감독의 진심을 호도하는 것은 아니나 감독의 손을 떠났을 때 잘못 읽힐 위험이 많은데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영화 비평의 위기는 세계적 추세인 것 같다. 영화가 산업이기 때문에 경기침체와 맞물려 더욱 큰 위기에 맞닥뜨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비평은 좀 더 학문적 영역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나?

영화뿐 아니라 비평 전반의 위기다. 지금은 누구나 비평가이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비평가의 글을 잘 안 읽게 되고. 가장 큰 이유는 비평가 내부에 있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영화 전공자가 많아지기도 하면서, 단기간에 너무 많은 영화 비평가가 양산 됐다. 영화평론가, 영화 칼럼니스트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실제로 영화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분야다.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급하게 글을 많이 쓰면서 기본적으로 비평에 풍부한 지식과 시각이 얕아졌다.

반대 측면은 영화학과 출신들이 영화 자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써먹으려는 글을 쓰려다 보니 대중과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한편으로는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종이 매체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 클래식, 미술의 경우 보고 말하기가 힘들지만 영화라는 매체 특성 자체가 보기 쉽고 말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자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글을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상태에서 이 영화가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반적인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은 명확하고. 특히 학생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관심이 학점, 취업에만 있다. 상당히 불쌍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의 전문성을 위해서 오히려 학문을 강조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긴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이 없다. 일간지 같은 경우 7-8매 정도의 청탁이 온다. 계간지만 어느 정도의 지면을 주는데, 영화 계간지는 없다. 문학 계간지에 끼어 들어가야 한다. 문학은 출판사의 홍보 효과가 있어서 그나마 계간지가 활발한데, 영화는 영화사가 계간지를 내지 않을뿐더러 낸다고 해도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판매 수익을 생각했을 때도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다. 짧은 글로 흐름을 잡고 그 후 긴 글을 통해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야 하는데, 누가 읽을 수 있을까. 긴 글을 읽을 독자가 과연 있을까. 그러다 보니 지면이 줄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으로선 가장 확실한 방법론이 페미니즘 비평인데, 영화 전공이 전문화되어 있자 않은 것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 비평이 진영도 폭넓고 확실한 이론 틀과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비평가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 하고 있다. 여성평론가 중 페미니즘을 기반에 두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평론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게 깊이 있게 한 방면으로 들어가서 전문적인 시각을 확보해야 한다는 면에서 공감한다.

영화 전공은 왜 전문화되지 않았나.

이전에는 영화학과가 중앙대, 동국대, 한양대 정도에 밖에 없었다. 그것도 제작 중심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유학한 사람들이 와서 영화 담론을 이끄는 역할을 했는데, 그들 역시 전문화된 분야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전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관여하게 되다 보니 지식이 얕아졌다. 또 얕아진 것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안주하게 된 측면이 있다. 그 밑의 세대가 흩어져서 전문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여전히 얕은 것 같다.

전문화 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나.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문화 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잘 하는 면을 보여줘서 살아남는 것인데, 현재는 한국 영화사에 치중되어 있다. 한국 영화사에서 장르나 근대화나 식민주의 등을 연구하는 사람은 많다. 오히려 비평을 덜 하게 되는 것 같다. 밑에 세대를 보면 비평을 하면 돈도 안 되고 힘만 들기 때문에 비평 하려는 사람이 적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비평분과에 대한 지원은 어떤가?

책 출판, 신진연구인력지원 정도가 전부인데, 막대한 돈을 제작이나 배급에만 지원하고 있다. 문학의 경우에는 막대한 지원이 비평분과에 이루어지고 있다. 영진위가 있기 때문에 문예진흥기금 신청은 아예 할 수가 없고. 영진위는 다 제작에 치우쳐 있고, 학술, 비평에 관해서는 지원이 없다. 비평, 학술 부분이 시장에서 얼마나 외면당하는지 뻔히 아는 사람이 영진위 위원장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엔 문제가 있지 않나. 우수논문지원 같은 경우도 어리석은 짓이다. 이미 학위를 따기 위해 낸 석사논문을 지원하는 일보다 새로이 논문을 내려는 사람을 위해 지원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다시 언급할 것도 없이 한국영화계는 위기에 처해있다. 극복 방안이 있다면.

제일 큰 위기는 부가 시장이 함몰되면서 왔다. 전에는 비디오, 케이블, 공중파 시장이 극장시장보다 배로 컸지만 이제 그 시장이 다 죽었다. 케이블 시장도 거의 끝났고 비디오 빌릴 곳도 없다. 대여점에 가도 수량도 그렇고 종류도 그렇고 빌릴 게 없다. 그 돈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 죄의식 없이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다운로드를 빨리 합법화시켜 거기서 나온 돈이 영화 제작비로 돌게 해야 한다.

최근 희망적인 게 IPTV 시장이다. 깜짝 놀란 게, 2년 전인가 모 IPTV회사의 기획위원이었는데 <미녀는 괴로워>의 경우 2천원, 3천원이었는데도 몇 만 단위로 봤다. 사실 나 역시 별로 안 볼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집에 홈씨어터를 갖춰 놓은 사람들도 많아 졌고, 특히 바쁜 직장인들이 퇴근 후 편하게 보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운로드 시장도 합법화 시켜서 대형 배급사가 판권을 사서 5:5로 수익을 나눠 그 돈을 다시 영화 제작으로 돌아오게 하는 구조를 만들면 위기에서 좀 벗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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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25. 09:34

노년은 아름다워라 - 황혼의 의미와 아름다운 음악의 조화, <로큰롤 인생>

언제 마지막 공연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은 깊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 언제 마지막 공연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은 깊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는 삶을 다룬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그러나 영화는 산업이다. 이것은 영화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에 자본에 맞는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영화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된다. 대중들에게 생소한 이야기를 영화화하면 외면당하게 되고, 결국 이는 차기작을 만들 수 없는 여건에 처하게 한다. 코미디, 멜로드라마, 공포 영화 등등 장르가 등장한 것도 이런 장르를 대중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장르라는 것은 대중들과 제작자들 사이의 일종의 약속이다. 대중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제작자들이 선사하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작자의 입장에서 장르란, 수익이 보장되는, 속칭 ‘안전빵’인 것이다.

영화가 대중문화의 총아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의 대중은 실상 10대 후반과 20대, 더 나가봐야 30대 초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대중은 모든 세대를 대표하지 못한다. 대중에 포함되지 못하는 가장 불운한 세대가 있으니, 이들이 바로 6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어린이만을 겨냥한 영화가 방학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고, 중년층을 위한 영화도 가끔 등장하지만, 노년층을 위한 영화는 거의 없다. 노년층을 위한 영화가 없으니 노년층을 다룬 영화가 흔치 않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영화 가운데서도 노년층의 삶에 카메라를 깊숙이 댄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당장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손자의 시선으로 외할머니를 다룬 <집으로…>,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를 다룬 <마요네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화를 홍보하기 위해 노인을 출연시킨 <팔도강산> 시리즈 정도만 기억날 뿐이다. 이 영화들도 노년층의 문제를 노년층의 시각으로 예리하게 분석하거나 통찰한 것이 아니라 젊은 층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에 그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는 엄청나게 팽창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한국영화는 우리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는, 판타지에만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큰롤 인생>은 너무도 큰 흥분을 안겨 주었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노년층의 삶을 진지하게 다루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극영화가 아니라 실제 노인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점이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영앳하트라는 코러스밴드가 새로운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7주 동안의 풍경을 영화 속에 담아내고 있다. 7주 동안 코러스밴드가 공연을 위해 연습하고 마침내 공연을 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그렇다고 피나는 노력과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줄거리를 다루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이 영화의 감동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영앳하트의 멤버들은 모두 노년층이다. 노인도 보통의 노인이 아니다. 놀라지 마시라. 제일 젊은 사람이 73세이고, 나이가 제일 많은 멤버는 93세이다. 평균 연령이 무려 81세다.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랍다. 그들이 주로 연주하는 곡도 라디오헤드, 롤링스톤즈, 소닉유스 등의 노래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런 곡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켜 공연을 한다. 영화의 재미는 이들이 준비하면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온다.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심지어 가사도 까먹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너무도 유쾌한 웃음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영화에 웃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두 명의 멤버가 갑작스럽게 저 세상으로 떠난다. 나이가 많은 멤버들의 밴드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없을 수 없지만, 멤버들은 그 슬픔을 곧바로 이겨내고 연습에 몰입한다. 마지막 장면, 공연을 하고 있는 사이에 죽은 멤버의 유서가 낭독될 때는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다. 삶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 고인(故人)이 밴드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좋은 추억을 되새길 때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건강에 이상이 있는 멤버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수술을 몇 번 받은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이 공연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언제 마지막 공연이 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은 깊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어쩌면 이 다큐는 소재를 잘 잡았을 뿐, 다큐의 형식은 지나치게 편한 방식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매우 반동적인 방식으로 노년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공연을 준비하는 멤버들의 모습, 각 멤버들의 인터뷰, 단장의 인터뷰가 번갈아 이어지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내레이터는 신의 목소리의 위치에서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면서 편안하게 관객들에게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안내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내내 노년층의 삶에 대해 깊게 반추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단지 화면과 내레이터를 따라가면 된다. 숱한 비판을 받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황혼의 인생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감동을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분명 이 영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게다가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이것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그들을 홀대한다. 언제나 청춘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임에도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노인들에게도 삶이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발견’했다. 너무도 열정적으로 음악에 몰입하는 그들의 삶은 정말로 로큰롤 인생이었다.

영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스타가 등장하는 극영화가 있는가 하면, 저예산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패기 있는 영화도 있고, 영화로 예술의 형식을 실험하는 극단적인 영화도 있다. 영화가 인생의 실상을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영화도 있다. 언젠가 만난 다큐 감독은 자신은 극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아니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극영화를 보면 너무 시시해서 동일시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큐는 모든 것이 현실에서 직접 일어난 사건이다. <로큰롤 인생>에서 공연을 준비하다가 돌아가신 두 분의 노인은 연기로 죽은 것이 아니라 진짜로 돌아가신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없는 무대가 더욱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추운 연말에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강성률 _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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