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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8 프랜차이즈에 저항하라 (1)
  2. 2008.11.10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가 문제다 - 학단협 창립 20주년 기념 연합 심포지엄
2009.04.08 09:58

프랜차이즈에 저항하라

[편집자가 독자에게]삶을 왜곡하는 획일화에 반대하는 것이 진보다
안태호 편집장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어린이대공원에 종종 산책을 갑니다. 집이 근처인 탓도 있지만 서울시내에서 그만한 녹지를 누릴만한 곳이 넉넉치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자주 가려고 부러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어린이대공원은 전면 보수공사로 뒤숭숭합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과 각종 이름모를 장비들이 빈번하게 드나들며 누런 먼지를 풀풀 날리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 매우 아쉽게 생각하던 차에 지난 주 큰 맘 먹고 공원 산책을 갔습니다. 그런데 공원 복판 새로 지은 건물에 패밀리마트가 들어섰더군요.

제게 공원 매점에 관한 각별한 추억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공원 내 상권이 뻔한 상황에서 구멍가게들과 패밀리마트가 경쟁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지요. 제겐 그 장면이 공공기관이 자본에게 자기의 자존심마저 내어 준 것처럼 굴욕적으로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겐 물을 사먹는다는 행위가 편의점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외국에선 물을 돈주고 먹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에 ‘설마 그럴리가’하던 반응을 보이던 이들이 스스럼없이 생수병을 들고 계산대로 가는 이미지는 24시간 환하게 불을 밝힌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느낌입니다. 이제 어린이대공원을 찾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비좁고 어둡고 어딘가 신뢰가 덜 가는 구질구질한 구멍가게 대신 쾌적하고 친절한데다가 없는 게 없을 그곳으로 몰리겠지요.

사실, 편의점 하나가 공원에 들어선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기에는 우리 삶은 너무 프랜차이즈에 익숙해 있습니다. 프랜차이즈는 사람들의 삶을 평균화된 그 무엇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지요. 우리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가서 와이드릴리즈로 개봉된 영화를 보고, 주말이면 이마트와 홈플러스에서 카트를 밀며 쇼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삶의 패턴에 진입해 있습니다. 동네 빵집들은 하나같이 파리바게뜨나 크라운 베이커리 등으로 간판을 바꿔달기 시작했고 작은 슈퍼들도 점점 편의점의 화사한 ‘편의’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술집도, 커피숍도, 전자제품 가게도 서점도 모두 마찬가집니다. 작은 것들의 고군분투는 ‘규모의 경제’에 눈깜짝할 사이에 휩쓸리고 마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인터넷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작지만 참신한 기술력으로 자신을 어필했던 회사들이 어느 새 거대기업에 팔려 이름마저 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의 영업방식을 보면 왜 이리 재개발 방식과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산참사 이후로 각종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뉴타운 개발방식이 결국 원주민들이 다시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여러 매체와 통계를 통해 확인되고 있지요. 원주민들을 내쫓고, 다시 재개발 지역을 넓혀 그 지역의 주민들을 또 내쫓고 하는 이 악순환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순 없습니다. 프랜차이즈 영업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기업형 프랜차이즈는 소형점포 업주들에게 수많은 희생을 강요합니다. 결국 그 희생 위에서 프랜차이즈 업체는 더욱 몸집을 불리고 가입자를 늘려나가게 되지만, 이게 지속가능한 형태일 리 없지요.

지속가능하지 않은 프랜차이즈의 범람 속에서 우리 생활이 어느 새 뉴타운 재개발과 한 치도 다름없는 방식으로 몰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원주민들이 점점 외곽으로 몰리고 다시 쫓겨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프랜차이즈의 대세화는 주민들의 경제와 생활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프랜차이즈의 물결은 삶의 방식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에서는 고객과 아르바이트생의 관계만 있습니다. 주인과 단골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이전처럼 서로 삶의 결을 파악하고 나눌 수 있는 종류의 관계는 아니겠지요. 삶은 더욱 건조해지고 관계는 더욱 팍팍해집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더 비슷비슷해지겠지요.

백무산 시인은 언젠가 명절날 한 자리에 둘러앉은 친척들이 밥상머리에서 정치를 주제로 쌈박질을 해대는 소란스러움을 견디는 것이 이 시대의 진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사장님도, 비정규직도, 농민도, 가정부도, 우파도, 친미파도, 붉은 머리띠를 매어본 이도 등장해 저마다 소란함을 보탭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치적 입장에서는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소란을 증폭시키지만, 똑같은 물건들과 똑같은 서비스들을 소비하는 획일화된 삶의 방식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요.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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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0 18:10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가 문제다 - 학단협 창립 20주년 기념 연합 심포지엄

11월 7일 건국대학교에서 학문단체협의회 창립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 11월 7일 건국대학교에서 학문단체협의회 창립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우리 시대의 진보란 무엇인가’

너무나 자주 들어왔지만 단 한 번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려 보지도, 남들에게서 답을 들어보지도 못한 듯하다. ‘진보가 무엇이냐’고만 물어도 충분히 어려울 텐데 ‘우리 시대’라는 한정어가 붙어 더더욱 어렵다.

이 물음은 11월 7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 연합 심포지엄 ‘21세기의 진보와 진보학술운동의 과제’의 공동주제 중 하나였다. 토론의 발표자로 최종덕 교수(한국철학사상연구회, 상지대)와 고정갑희 교수(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한신대)가, 토론자로는 배성인 교수(한신대 외래교수), 김현미 교수(연세대)가 참여했다.

고정갑희 교수는 21세기의 진보에 대해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지난 20여 년 간 한국이 이뤄낸 많은 진보개혁운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진보 안에는 여전히 보수성이 존재하고 있다’며 그 특징으로 가부장성, 인간중심성, ‘한 연구 한운동 중심성’, 자민족 중심성, 제도정치 중심성을 들었다. 또한 그녀는 “오늘날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반신자유주의자들인데 그들이 계속해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만을 주요 의제로 삼는 것 자체가 진보의 보수성이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진보진영의 활동이 가부장제를 도외시하면서 이를 분과 형식으로 여성주의자들에게 맡겨 버린다면 진보진영과 여성주의 운동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가 중요하다. ‘어떻게 함께’ 할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의 의제를 중심으로 삼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 않는 것, 본인들의 의제만이 중요하고, 최종적이며, 근본적인 것이라 여기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측면들을 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의 문제의식만 끊임없이 재생산할 뿐이다.

최종덕 교수는 고정갑희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목적성’이라는 측면을 덧붙여 설명하면서 ‘목적성을 제거해야만 진보가 일방향으로 흐르거나, 정치의 수단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플라톤의 이데아, 기독교의 세계관, 유토피아와 같은 많은 이상향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며, 지향해야 할 무엇 즉 목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은 것을 좇는 과정에서 많은 모순을 경험했다. 특히 우리 사회가 겪은 ‘새마을 운동’이 그 모순을 잘 보여준다. 새마을 운동은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라는 이상향을 설정하고 그것만을 열심히 좇게 했다. 그래서 그 이상향을 좇는 과정이 야기한 잘 먹지 못하고 잘 살지 못한 현실들-노동력 착취, 빈부격차, 환경오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어버렸다. 누군가 새마을 운동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정말 ‘모두가’ 잘 살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다.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자들, 여전히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학대받는 아이들도 ‘모두’이다. 그들 역시 잘 살아야 할 사람들 중 하나지 목적을 위해 희생될 존재가 아니다. 최종덕 교수는 목적론적인 진보가 이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진화론적 진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진화론적 진보는 목적 없는 진보이며, 노자의 사상을 담은 진보이다. 그는 ‘본질과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현실을 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통로로서 진보를 이야기하자’고 했다.

한편 토론자로 참여한 배성인 교수는 “방향이 없는 진보가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목적을 없애기보다 목적을 차별화하고 더 명료하게 밝혀내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진보가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최종덕 교수는 “많은 진보론자들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꿈을 가졌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와 같은 프로젝트가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도구로 이용된 경험은 아주 많았다”고 답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경제가 휘청거렸고, 성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청소년들도 서열화된 사회로 편입됐으며, 연일 밝혀지는 먹지 못할 먹을거리들까지 등 많은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채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 실타래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는 아무도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문제들을 풀어갈 방법은 사회가 보여주는 양상만큼이나 다양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 시대의 진보는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를 논의해야 함이 분명해 보인다. ‘어떻게 해야 이 다양한 문제들을 동시에 잘 풀어낼 수 있을까’가 우리 시대의 진보가 내야할 답변일 것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학단협 창립 20주년 기념 연합 심포지엄으로 열렸으며 21세기의 진보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문제의식 아래 2개의 공동주제와 8개의 분과토론으로 구성되었다 이 행사에는 문화사회연구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역사문제 연구소 등 학단협 회원학회에서 75명의 발제자와 토론자가 참여했다. 심포지엄은 오는 8일까지 이틀간 건국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열린다.

 

                                                         * 2008-11-07 오후 6:19:49 컬처뉴스 박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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