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엽'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16 이슬라 네그라, 꽃이되고 탄환이되는 시
  2. 2009.02.21 칠레, 두 개의 9.11
2009.03.16 14:03

이슬라 네그라, 꽃이되고 탄환이되는 시

[남미액션투어]칠레 _ 이슬라네그라
                                                                                         김강 _ 남미액션투어 기획자, LAB39 디렉터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11월 4일 제2회 퍼포먼스 비엔날레가 칠레 산티아고 도서관 현대미술갤러리에서 시작되었다. 11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산티아고의 갤러리, 미술관, 거리, 공원과 칠레 남서부에 위치한 발디비아(Valdivia)의 현대미술관 등지에서 개최된다. 또한 12일-15일은 아르헨티나, 21일-23일은 우르과이에서 네트워크 형태의 예술행사가 개최된다. 이렇듯 칠레라는 한 나라에서도 2군데의 도시를 비롯해 남미의 여러 도시와 여러 장소에서 예술행사가 진행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예술가들의 작품발표의 재료이자 표현이 바로 그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발표(전시)를 위한 예술작품의 물질적 속성이 예술가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고, 발표의 형식 역시도 그의 신체에 기인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예술작품의 생산과 소통이 동시에 가능하다. 삶과 경험이 농축되어 있는 자신의 신체와 표현을 위한 여러 소도구들이 구비되면 미술관이든 거리이든 어느 곳에서나 작품은 제작과 발표가 가능하다. 또한 퍼포먼스는 언제나 어떠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관객은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예술가가 촬영 후 다른 곳에서의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비디오 퍼포먼스, 사진 퍼포먼스 등이 등장하고 있어서, 직접 예술가들의 행위가 실연되는 것을 라이브 퍼포먼스로 구분해서 부르는 경향도 나타난다. 남미의 퍼포먼스 행사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중심축을 이루고 몇 개의 비디오 퍼포먼스 상영, 비디오 아트 상영,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다.


씨앗, 물고기, 가루, 깃발, 네트워크

11월 5일 늦은 오후부터 한국 작가들은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국립신문사(Diario de Nacion)의 너른 공간과 그 주변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손민아의 퍼포먼스. 남미의 각 나라명이 한눈에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었다.


남미의 각 나라명은 한눈에 쉽사리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어 관객에게 제시되었다. 눈의 각도 즉 몸을 움직여 텍스트를 보려하지 않으면 그 텍스트는 독해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야만 한다. 손민아가 제작한 석회로 만들어진 이미지텍스트들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자신의 눈을 바닥에 댄 관객을 맞이했다. 텍스트 독해에 빠진 관객들 주위를 돌며 손민아는 서서히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문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이 함께 분 입바람으로 그 국가들은 뿌연 석회가루로 흩어졌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강렬한 연분홍색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복장인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정정엽은 관객들에게 칠레 시장에서 구입한 다종다양한 씨앗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나누어 준다. 그리고 그 씨앗들은 퍼포먼스 말미에 투명 유리병에 색깔대로 부어져 행사장에 전시되었다. 사실상 도시인들은 씨앗을 만질 기회도, 씨앗을 자세히 볼 기회도 많지 않다. 지구반대편에서부터 쓰개치마를 입고 외출한 한국여성이 ‘씨앗’으로 칠레인들과 교통한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팝송 ‘We are the world’ 가 흐르고, 4개의 어항은 각기 다른 색깔의 물로 변화된다. 서식환경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되는 것. 그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존재는 ‘We are the world'라는 아름다운 구호 아래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현대인이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던 작은 어항은 커다란 어항하나로 통합된다. 통합의 어항, 'We are the  world의 어항'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제네바에 위치한 WTO로 부쳐지는 소포상자로 변환되었다.

김윤환의 깃발 퍼포먼스. 전세계 모든 국기를 모은 세계국기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전 세계의 모든 국기를 하나로 모은 세계국기가 신문사를 나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깃발을 흔드는 그의 곁으로 경찰이 다가오고, 행사 주최 측의 몇 명이 경찰에게 귀띔을 한다. 대통령 궁에 꽂힌 칠레 깃발 위로 넓게 휘날리던 ‘세계깃발’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깃발 위로 관객 1명이 올라탄다. 김윤환의 ‘세계국기’는 관객을 그 위에 태우고 여러 번 바닥을 지나는 동안 구멍이 났다. 너덜너덜해진 깃발은 길게 찢어져서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거리 위에서 넘실댄다. 몇몇의 작가가 찢어진 깃발의 일부를 기념으로 가져갔다.   

김강.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가 신문사의 어두운 구석에 세워졌다. 그리고 반자본, 반가부장, 반국가에 동의하는 일단의 관객들이 캠프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들은 제안자와 몇 가지 행위를 한 후 퇴장한다. 저항하는 네트워크의 결성, 그 자체가 퍼포먼스로 등장했다.

밤 11시, 한국 작가를 비롯한 페루,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작가의 퍼포먼스가 모두 끝났다. 밤거리로 나온 일단의 무리들은 술집으로 향했다.

11월 7일 이른 아침. 지난밤의 숙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난 여성 6명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은 이슬라네그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산티아고로부터 약 82KM의 거리에 있는 이슬라네그라는 바닷가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_ 바다, 흙길, 물고기의 눈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집을 네루다는 1939년 출판사의 도움으로 스페인 출신의 늙은 사회주의자 선장에게서 구입했다. 그가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 그는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이슬라 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1)

이슬라 네그라 마을풍경. 네루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간판이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 정치활동은 늘 천둥처럼 느닷없이 다가왔기에 집필을 중단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2) 네루다는 이 집에서 여러 번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1969년에는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를 수락한다. 당시 칠레의 정치적 상황은 우파들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여러 당들이 연합대통령후보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아옌데가 인민연합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자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고, 아옌데 지지 연설을 다닌다. 아옌데는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73년 라모네다 궁에서 쿠테타 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옌데가 사망한 지 12일 만인 9월 23일 네루다도 세상을 떠났다.

이슬라 네그라의 마을 풍경.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네루다 집은 현재 네루다재단에서 관리하는 박물관이다. 살아생전 그가 살았던 집은 칠레 초등학생들의 단체 답사처가 된 듯하다. 우리가 도착한 날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조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의당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과자, 초콜렛 등을 파는 이동상점이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길다란 과자를 입에 문 김하를 데리고, 우리도 가이드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이동했다. 네루다 박물관의 관람은 개별 관람은 불가하고 소집단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해야 한다. 또한 박물관 내부는 철저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는 발파라이소의 또 다른 네루다 박물관도 같은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유명인의 생가는 그의 사후에 박물관으로 변하고는 하는데, 네루다의 집만큼 ‘박물관’ 다운 ‘박물(博物)’의 면모를 가진 곳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수집품은 앙드레 말로가 앙크로와트에서 훔치려 했던 국보급 유물이 아닌 생활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몇 종의 수집품 선반은 밖에서도 잘 볼 수 있게 진열되어 있다.

네루다가 모은 유리병들. 

유리병, 재떨이, 마스크, 뱃머리에 붙어 있던 선수상(船首像)들, 나비 박제, 그가 외교관으로서 머물렀던 미얀마 등 현지에서 수집한 것들과 그의 수집병을 아는 친구들이 보내준 많은 물품들은 말 그대로 다종다양한 물품들의 향연이다. 온 집안을 다 채우고도 넘치는 수집품 중의 일부를 이미 그가 살아있을 때 칠레 대학 등에 기증했다고 하니 그의 수집병은 취미의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차근차근 정리되어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마치 여러 시대의 유물을 한꺼번에 대면하는 듯 진귀한 감정과 심미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루다의 수집품만 본다면 그가 민중시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사취미가 느껴진다. 하여 생전의 네루다도 그의 정적으로부터 이러한 호사취미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은 모양이다. 그가 어떠한 비판을 받았든 간에, 그의 호사취미로 인해 후세대들은 그가 살았던 시기의 여러 생활물품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물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다. 나도 그의 집을 둘러보며 세계 곳곳을 한 눈에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이곳이 현재와도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된 것은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89년 이후이다.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는 자물쇠로 굳게 잠겼던 이곳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칠레인들과 외국인들이 독재자의 눈을 피해 찾아 왔던 순례지이기도 했다.

이슬라 네그라 언덕에서 바라본 동네 풍경

시인의 집을 나와 비포장 흙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고삐도 매지 않은 말이 언덕 위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모녀는 우리에게  ‘올라(ola, 안녕)’하고 인사한다. 야트막한 언덕에선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동네는 조용하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찾아 올 만큼 세계적인 유명세를 지닌 동네답지 않게 소란스러움이 없이 조용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시인 한명으로 인해 이 동네가 풍성하고, 칠레가 풍성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 생각은 다시 수정되어야만 했다. 네루다가 시어를 길어 올릴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칠레 민중들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이 동네는 네루다로 인해 풍성해진 것이 아니니라. 자연과 대적하여 끈질기게 살아왔고, 식민과 독재에 저항하며 현재를 일구어온 칠레인들의 삶 그 자체가 네루다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3)고 고백하는 네루다는 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전장에서는 탄환이 된다.’(4)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재에 떨어진 시는 지금 꽃으로 피어날까 혹은 탄환이 될까? 하는 생각이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맴돌았다.

 

이슬라네그라 동네 풍경.
네루다 박물관. 이 집에서 네루다가 거주했고, 현재는 그의 수집품이 빼곡하다.
돌기둥, 바다, 드로잉을 하고 있는 정정엽.
네루다는 이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집필실에서 시를 지었다.
네루다 박물관에서 바라본 해안풍경.
수집된 선수상. 마치 바닷가의 선술집처럼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흙길 옆에 배를 닮은 집이 지어져 있다.
정원 한 복판에 위치한 네루다와 그의 부인 마틸다의 묘.
이슬라 네그라를 상징하는 물고기가 철조조형작품으로 세워져 있다.


정정엽, 퍼포먼스 드로잉.


------------------------------------------------------------------------------------ 


1>『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박병규 역, 민음사, 2008년.  pp.214-215 참조
2> 같은 책, p. 498
3> 같은 책 p.496
4> 같은 책 pp.434-435


Trackback 0 Comment 0
2009.02.21 13:30

칠레, 두 개의 9.11

[남미액션투어 ①]칠레_산티아고
                                                                                      김강 _ 프로젝트 스페이스<LAB39> 디렉터
역사는 미국의 9.11과 함께 73년 칠레의 9.11을 아프게 기억한다. 폭격받고 있는 라 모네다궁.
▲ 역사는 미국의 9.11과 함께 73년 칠레의 9.11을 아프게 기억한다. 폭격받고 있는 라 모네다궁.

<남미액션투어_A.G.I.S 프로젝트>는 남미와 한국의 동시대성을 액션(Action), 장소성(Geography), 기록*정보(information)의 체험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시스템(System)을 제안하고자 기획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 예술가 7인은 2008년 10월 31일 ~ 12월 6일까지 약 37일 간 칠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브라질 등 남미 4개국을 방문했다. 워크샵, 예술이벤트, 만남, 대화, 기록,  이동 등이 포함된 본 프로젝트는 한국과 남미의 기획자 5인의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남미액션투어의 기억을 다시 잡아내 그 단편을 현재에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이는 본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10월 31일 저녁 7시 30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홍콩,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브라질의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서울을 출발한지 2박 3일 약 27시간 만에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칠레 산티아고 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제2회 국제 퍼포먼스 비엔날레-DEFORMS>이 처음으로 열리는 도시가 산티아고이기 때문이다.

11월 2일 오전 11시 35분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다. 2명의 젊은 예술가가 우리를 맞는다. 마중 나온 그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기에 출국장을 빠져나오기 전에 살짝 긴장했던 것이 무색했다. 그도 그럴것이 7명의 예술가와 한명의 어린이, 한명의 할머니 총 9명의 동양인1>이 부대를 이룬 그룹은 그 공항 어디에도 우리밖에 없었다. 이는 남미를 이동하는 내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모여 있는 우리 그 자체가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표식’이 되는 사회. 그 사회에 우리가 이제 막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공항을 나서자 눈이 부신 날(生)것의 산티아고 태양빛이 ‘남미’의 색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항을 나서자 눈이 부신 날(生)것의 산티아고 태양빛이 ‘남미’의 색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울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었으나, 우리와 정확하게 1분 1초도 안 틀리고 12시간 차이인 이곳은 늦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미의 태양은 남미의 색을 만들어 내었듯이 북반구 한국의 태양은 한국의 색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얼핏 오방색이 떠올랐으나 그 오방색은 현재의 ‘우리’와는 너무 멀어보였다. 그러나 남미의 색은 도시 곳곳에서 현재형으로 현현되고 있었다. 2대의 승용차에 짐을 나누어 싣고, 우리는 구겨지고 포개져서 숙소로 이동했다. 2년 만에 다시 보는 산티아고는 그다지 변화된 풍경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한국산 자동차가 2년 전에 비해 도로를 많이 질주한다는 것 외에는... 2004년 4월 1일 발효된 한칠레 FTA의 구체적인 현장은 한국에서는 칠레 포도주로, 칠레에서는 한국의 자동차로 그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상처럼 좁고 길게 생긴 나라, 칠레. 대서양을 면한 해안선 길이가 6,435Km에 이르는 칠레는 300년 이상 스페인 지배를 받다가 1810년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1812년 칠레 독립을 선포하였다. 300년 이상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서 인지 칠레 인민들은 백인계가 약 95%를 이룬다. 칠레에 대한 한국의 다큐 등에서는 마푸체 족 등 인디오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사실상 칠레는 백인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을 일컫는 메스티조가 66%, 스페인계 25%, 기타 유럽계 4%, 마푸체 족 등 5%의 인디오로 인종이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인디언, 혹은 인디오로 부르는데, 이는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해서 그곳의 원주민들을 인디오(Indio:에스파냐어로 인도인이라는 뜻)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인디오’들이 사실은 ‘인도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도, 그들을 ‘아메리카 인디오’, ‘인디오’ 로 부르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식민화하기 쉬운 대상, 즉 타자화하기 쉬운 대상으로 그들을 지칭하던 관습이 굳어져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의 통칭인 ‘인디오’는 제국의 역사와 함께 현재까지 존속한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이 웅장하게 달리고, 도심에는 마포초(Rio Mapocho)강이 흐른다. 대도시의 강치고는 물살이 빠른 마포초 강은 피노체트의 군사 쿠테타 이후 몇 개월 동안 쿠테타 군인들의 야간 습격에 의해 살해된 소외된 계층 사람들의 처참한 시체가 둥둥 떠내려가던 강이었다. 마포초강은 이제 그 역사를 빠르게 잊고 싶은 듯 유속이 급하기만 하다. 

카사크로마 _ Drawing by 정정엽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 _ 카사크로마


우리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카사크로마(CASACROMA)라는 복합예술공간이다. 일주일동안 우리가 머무르게 될 카사크로마는 산티아고의 다장르 젊은 예술가들 9명이 공동으로 임대하여 작업실로도 사용하고, 전시, 콘서트 등의 예술이벤트등도 하는 일종의 복합 공간이다. 카사크로마는 2008년 <제2회 국제 퍼포먼스 비엔날레DEFORMS>를 준비하는 팀들이 우리에게 제공한 숙소이다. 행사 준비팀이 우리에게 호텔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뿌리치고,
조금은 불편할 듯도 한 이 공간을 선택했다. 우리가 낯선 지역의 삶의 모습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곳을 ‘구경’하기보다는 짧은 시간이나마 그곳에서 ‘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급히 공수해 온 것으로 보이는 매트리스와 침낭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국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집에서 우리는 한시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지낼 것이다. 다음날 태국 작가 바싼 씨티켓(Vasa Shittiket)이 이곳에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아래 포도주와 맥주, 바비큐로 시작된 환영 파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한낮의 남미, 바비큐는 익어가고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이 파티를 위해 카사크로마로 모여든다.

도시와 몸 _ 국제퍼포먼스 비엔날레 2008

<국제퍼포먼스비엔날레 _ DEFORMS>는 2006년 처음으로 칠레에서 개최된 이래, 2008년에는 아르헨티나, 우르과이와 네트워크 행사로 기획되었다. 이 비엔날레는 20개국 200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국제 행사로써, ‘도시와 몸’이라는 주제로 전시회, 라이브 퍼포먼스, 워크샵, 컨퍼런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1월 4일 이 행사의 오프닝이 칠레 산티아고 도서관의 전시장에서 진행되었다. 이쯤에서 밝혀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일행이 <남미액션투어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남미를 37일간이나 누빌 수 있었던 것은 공식적으로는 이 행사의 참여이다. 이 행사의 참여를 위해 국제교류재단,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 먼 나라에, 이 많은 숫자의 한국인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이곳에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즉 남미액션투어는 퍼포먼스비엔날레 행사참여를 위해 국가로부터 기초 경비를 지원받아 그 내용을 자체적으로 구성한 좀 복잡한 성격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제2회 국제 퍼포먼스 비엔날레 포스터


 
탱크와 폭격기를 기억하는 라 모네다 궁(La Moneda)

다음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라 모네다’ 궁으로 향했다. 옆으로 누운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닌 라모네다궁의 1층 정원과 지하 문화센터(Centro Cultural Palacio de la Moneda)는 일반인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다. 문화센터에는 남미의 전통 문화 전시실, 현대미술전시실과 영화관 등이 있다. 커다란 로비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개최된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영정이 설치된 참배단이 눈에 띄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기리는 참배단. 아마도 우리가 방문했을 때가
이들을 기념하는 무슨 날이었던가 싶다. 2006년에 왔을때는 보지 못했다.

대통령 궁 지하의 문화센터 로비에 작품이 설치된 모습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곳은 1973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쿠테타 군에 의해 죽음을 맞은 곳이다. 세계 최초로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 인민연합의 대통령 아옌데. 토지개혁 및 구리광산의 국유화 등 분배위주의 사회주의 개혁정책은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가들과 우파정치인들, 정치군인들의 쿠데타에 의해 좌절되었다. 피노체트(Augusto Pinochet)를 필두로 한 쿠데타 군은 1973년 9월 11일 대통령 궁을 탱크로 둘러싸고 공군 폭격기는 폭격을 시작했다.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 대통령 궁의 폭격을 시작으로 칠레에서의 살육은 시작되었다. 피노체트는 라모네다 궁을 접수한 지 일주일 만에 약 3만 여명을 학살하였으며, 사회주의자들, 동조자들, 진보 진영 인사들과 정치적 반대자들을 체육관에 몰아넣고 집단 처형한다. 지난 73년부터 89년 까지 약 17년간의 군사통치기간 중 사망자 3천여명, 실종 1천여명, 고문 불구자 10만명, 국외 추방자들이 100만 여명에 이르렀다.


두 개의 9.11

우리는 2001년의 미국의 9.11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칠레 군부와 손잡고 민중의 대표자를 살해했던 73년의 9.11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2006년 칠레에 가기 전까지는 그 사실에 대해서 무지했었다. 칠레로 가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칠레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와 김윤환은 28년의 시간차가 있는 두 개의 9.11과 역사인식의 문제를 몸으로 말하고 싶었다. 쓰여진 역사는 승리한 사람들의 역사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시와 노래로 쓰여진다. 2006년 비엔날레 기간 내내 참여 작가나 칠레 친구들에게 면봉으로 귀를 파고, 우리에게 달라고 했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했지만 재밌는 게 벌어지나 보다 하면서 적극적으로 귀를 파고, 그 면봉을 우리에게 모아 주었다. 한 무더기 모아진 면봉은 칠레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두 개의 9.11로 상징화되었다. 50호짜리 캔버스에 굵은 9.11과 얇은 9.11이 부착되는 동안, 민중의 자유를 노래했다는 이유로 손목이 잘려 죽은 칠레 가수 빅토르 하라(Victor Lidio Jara Martinez)의 노래가 작은 소리로 흘러나왔다. 그 노래가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바닥, 땅, 기둥, 벽, 관객들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두 개의 9.11이 다 만들어 지고 나자, 나와 김윤환은 <민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는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술관을 나와 거리로 나갔다. 함께 거리로 나온 관중들은 산티아고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2006년 칠레 국립 미술관에서의 벌인 두 개의 911 퍼포먼스 

두 개의 911. 미술과의 바닥, 관객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댄다. 남미의 소리를 듣기 위해. 

현재 라모네다 궁 앞에는 아옌데의 동상이 서있다. 폭격이 시작되기 전 망명을 받아주겠다던 미국과 피노체트의 제안을 뿌리치고 끝까지 총을 들고 궁에서 싸웠던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쿠테타 군에게 궁이 포위당한 상태에서 칠레인들에게 라디오 생방송으로 전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 중의 일부가 그 동상에 새겨져 있다.

조국의 노동자들, 나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반역자들이 승리하려는 이 암울하고 참담한 순간에서 결국은 또 다른 사람들은 떨치고 일어날 것입니다. 전진하십시오. 머지 않아 넓은 대로들이 다시 뚫리고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을 위해 그 대로 위를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2>

겨우 찾은 자유와 정의가 물거품이 되어가는 순간에 누군가가 이 아픈 기억을 이겨내고 우리가 꿈꿨던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아옌데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라모네다 궁 뒤편에 자리한 아옌데 동상. 동상 뒤편에 그의 마지막 연설이 새겨져 있다.

연설하는 생전의 아옌데.


어른들도 ‘만들기’ 하는 산티아고 도서관

퍼포먼스 행사의 오프닝은 산티아고 시립 도서관에서 열렸다. 산티아고 중앙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MAC)과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현대식 건물의 도서관은 일반적 도서관의 기능 이외에도, 현대 미술전시장 및 어린이 도서관 등이 함께 있다. 카페가 위치한 지하층의 열린 광장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한 반 전체가 도서관으로 견학 및 소풍을 온 것 같았다. 나는 곱단이를 데리고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가 보았다. 마치 책이 있는 놀이터와 같은 인상이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는 ‘만들기’ 어린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지 문의를 했고, 진행요원들이 흔쾌히 재료들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재료를 2벌 주는 것이었다. 나와 곱단이가 각각 자신의 ‘만들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만들기를 하고 있는 어른들은 아이들 곁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어른들은 아이의 작업을 도와주는 보조자가 아니라 자신의 창조성을 발현하는 ‘창작자’가 된다. 즉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자신의 창조성을 끄집어 내어 무언가를 만들면서 그 창조적 작업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곱단이와 할머니를 참여시키고, 비엔날레오프닝 준비를 했다. 산티아고 도서관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참여한 곱단이와 우리 엄마에게도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비엔날레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도 유익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도서관내의 어린이 프로그램. 어른들도 아이들을 돕기 보다 자신의 ‘만들기’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칠레 어린이와 어른들사이에서 만들기를 하고 있는 필자의 딸 곱단이.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약간 어벙해 했지만, ‘만들기’ 수업은 언어 소통 없이도 얼마든지 소통 가능!


붉은 포도주와 쪽!쪽!쪽! 

빅토 휴고 브라보(Victor Hugo Bravo)가 큐레이팅한 남미 작가들의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에서 오프닝 퍼포먼스가 열렸다. 오프닝 파티는 정정엽 작가의 아는 분이 협찬한 포도주로 시작되었다. 붉은 포도주 한잔씩 받아든 작가 관객등 약 500여명은 약간의 들뜬 감정으로 비엔날레의 첫시작을 지켜보았다. 비엔날레 오프닝 이후 매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산티아고의 곳곳에서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한국 작가들은 라모네다 궁 뒤편에 위치한 신문사 <Diario de Nacion> 의 내부 공간과 라모네다 궁 뒤쪽 마당에서 퍼포먼스를 하였다.

초여름의 초목이 신선한 공원의 곳곳에서 칠레의 젊은이들은 쪽!쪽!쪽! 하기에 바쁘다. 남미 사람들이라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태국작가 바싼은 비판적 시각이다. 유교사상이 내면에 깔려있는 동양에서 온 우리에게 이런 풍경은 낯뜨거운 것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바싼은 칠레의 젊은이들이 육체적 행위의 자유를 영위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성취로 착각할수도 있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말한다. 일견 그 비판이 타당해 보였지만, 대로변에서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50세가 훌쩍 넘은 바싼의 질투심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칠레는 한국과의 거리만큼이나 인종도, 문화도 많이 먼 듯이 느껴졌다. 그러나 식민지와 독재의 경험, 폭압과 그에 대한 저항의 시간들은 우리와 닮아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현재 메트로폴리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니폼화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요즘 한국도 거리에서 쪽!쪽!쪽! 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들이 부디 오픈된 공간에서의 사랑의 행위만을 자유로 느끼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정면에서 바라본 대통령 궁. 많지 않은 경찰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고, 잔디와 낮은 분수가 있다.

산티아고의 제일 큰 대로인 오이긴스 거리 한 복판에 위치한 라모네다 대통령궁. 1973년
쿠데타군에 의한 폭격을 목격했을 칠레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옌데는 이 궁안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고 죽음을 맞는다.

면봉으로 귀를 파고 있는 관객(싱가폴 예술가 LEE WEN)

두 개의 911 조형 작업을 마치고, 비엔날레 기획자에게 전달했다. 남은 면봉을 다시 입에 물고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 <민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제2회 퍼포먼스 비엔날레 오프닝 장면 이날 이후 이 행사는 18일 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산티아고 지하철역의 대부분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의 내용은 주로 남미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들이다. 벽화의 형식도 페인팅에서 설치까지, 고전적인 방식에서 현대적인
방식까지 다양하다. 

지하철 역내 벽화들 상당한 수준의 벽화들을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쪽 쪽 쪽 정정엽의 드로잉

남미의 햇살이 그대로 느껴지는 산티아고의 주택가 풍경

까사크로라마 젊은 작가들과 함께
산티아고 시내의 빅토르 하라 공연장. 그의 노래와 죽음을 기억하는 칠레인들은 피노체트가
물러나고 난 후 그를 기리는 공연장을 만들었다.


 -------------------------------------------------------------------------------------

* 각주

1> 본 프로젝트는 김강, 김윤환, 정정엽, 이호석, 손민아, 박지원, 백미라가 예술가로 참여했다. 김강, 김윤환의 자녀 김하(곱단이)와 김하의 할머니가 손녀를 돌보기 위해 함께 남미길에 올랐다.

2> 동상에 새겨진 원문은 < 전진하십시오. 머지 않아 넓은 대로들이 다시 뚫리고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을 위해 그 대로 위를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Mucho Mas temprano que tarde, de nuevo se abriran las grandes alamedas por donde pase el hombre libre para construir una sociedad mejor.>만 새겨져 있다. 스페인어 번역을 위해 마드리드에 사는 장경애씨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장경애씨는 아옌데의 연설문의 한 문단을 번역해서 보내주었다. 앞의 문장을 모른 상태에서 뒷 문장 하나만을 가지고는 아옌데의 마음을 알기 어려울 것이기에 문단 전체를 실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희의 귀환, 추억은 방울방울  (0) 2009.03.13
유인촌 장관, 정체를 밝히시지요  (0) 2009.03.02
칠레, 두 개의 9.11  (0) 2009.02.21
뻥튀기 장수 ‘꺼먹손’  (0) 2009.02.19
빅뱅을 지켜라!  (26) 2009.02.17
누가, 얼마나 바보인가  (0) 2009.02.12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