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11 야만에 저항하는 것이 예술이다
  2. 2009.01.09 비약은 없다, 조금씩 꾸준히 발전하자
  3. 2008.12.13 휘몰아치는 상상력의 잔치
2009.02.11 11:07

야만에 저항하는 것이 예술이다

 - 문화예술인들, 용산참사 진실회복 촉구
                                                                                                                                       안태호 기자
문화예술인들이 용산참사의 진실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문화예술인들이 용산참사의 진실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는 세속정치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고고함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인간성의 기반을 훼손하는 불의와 폭력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문학인ㆍ예술가가 아닙니다.”(염무웅_문학평론가, 한국작가회의 고문)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수사결과가 발표되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임한 2월 10일 오후 1시.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의 진실회복을 촉구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한국독립영화협회 임창재 대표, 문화연대 김정명신 공동대표, 영화배우 권병길, 한국작가회의 이재웅 사무처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염신규 정책기획팀장 등 2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은 검찰의 수사발표가 최소한의 객관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와 검찰을 비판했다. 기자회견에는 꽃다지, 문화연대, 민족미술인협회,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영화인회의, 우리만화연대,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작가회의 등 9개 단체가 참여했다.

한국작가회의 고문을 맡고 있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검찰의 수사발표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도대체 국가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드는 사태”라며 “야만의 정치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회복이 시급한 역사적 과제로 떠올랐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배우 권병길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이명박 대통령은 장로직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모든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보장해야 할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느냐”며 삼성이 아무리 최첨단 기술을 가졌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임창재 대표는 한동안 침통함에 입을 열지 못하다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운 적이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치, 경제, 사법권력 그 밖의 모든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난하고 열심히 사려는 이들의 마지막 꿈마저 짓밟고 있다”며 분개했다. 이어 “국민을 이기는 법은 없고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도 없다”며 “부끄럽고 비참하지만 희망을 갖는다”고 이야기했다.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문화연대의 이원재 사무처장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임했지만, 이번 사태는 김석기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각이 총사퇴하던 어떻게 하든 정권 차원의 책임이 필요하고 김석기는 구속수사가 필요할 뿐”이라고 밝혔다. 또, “자꾸 용역 이야기가 나오는데 용역은 꼬리에 불과하다. 삼성을 비롯한 개발자본들이 참사의 근원지”라며 용산참사의 근원적인 원인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현장에는 전국 50여명의 미술인들이 작업한 걸개그림이 놓여졌고, 백무산 시인의 시 ‘민주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행한 학살만행을 보라’를 송경동 시인이 낭송했다.

문화예술인들은 참사현장을 이번 사건을 기억하는 추모공간으로 만드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또, 모금을 통해 일간지에 추모광고를 내고 17일(화)에는 인디스페이스에서 추모영상 상영과 공연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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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2:24

비약은 없다, 조금씩 꾸준히 발전하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⑩] 임창재 한독협 이사장 
                                                                                                 컬처뉴스 김나라, 필름온 안효원 기자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 특집으로 준비했던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마지막 인터뷰는 한국 독립영화 1세대이자 한독협 이사장으로 재임 중인 임창재 감독과 함께했다. 마지막 인터뷰는 그동안 아홉명의 독립영화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야기 했던 독립영화계의 현안과 독립영화인들의 고민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독협의 이사장으로서 또 동시에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임창재 감독의 의견을 들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 달라.

일단 시간이 빨리 갔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변화가 있었지만 많은 변화는 아닌 것 같다는 양면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건 협회의 일원이 아닌 한국 사회의 창작자 입장에서 말하는 건데, 우리는 창작을 통해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성찰하며 산다. 그 원칙에서 비춰볼 때 작품을 더 치열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양적으로 따지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감독들을 볼 때 더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사라지는 감독들 또한 창작하고 싶은 열망이 없어서 작업을 그만둔 것은 아닐 텐데.

지난 10년의 정권이 독립영화 환경에 영향을 주긴 했다. 그런데 그런 외적인 요인과 무관하게 내적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쌓는 데 있어 더 강화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말이다.

가치와 미학에 영화란 옷을 입히다.

언제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됐나.

1994년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실험영화제에서 <오그>(ORG)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그 영화제는 내가 몸담고 있었던 실험영화연구소에서 주관했었는데, 국내 작품이 전무한 상태라 좀 부족하더라도 내가 만들게 됐다. 생각보다 관객이 많이 왔다. 당시 실험영화가 낯선 개념의 영화였는데도 매체에서도 관심을 보여 힘이 됐던 기억이 난다.

처음부터 실험영화에 뜻이 있었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했다. 군대 제대한 후인 1990년대 초반은 우울하고 패배적인 사회 상황이었다. 제대하고 노동자문화운동연합에 속해 있는, 거의 해체 위기에 있는 영화모임에서 공부를 했다. 시네마테크에서 외국 영화를 빌려와 보고 토론하고 그렇게 1년간 했다. 그러다 서서히 창작, 제작에 대한 논의를 했었다.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나.

권병순 감독님이 영화 미학의 기초가 되는 실험영화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연구소도 만들었고, 노동자문화운동연합의 영화분과가 서울영상집단으로 독립했다. 당시 충무로를 경험한 선배들이 있었는데 충무로에서 수순을 밟는 것이 결코 최선의 코스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또 1980년대에 대학에서 인문사회를 공부하면서 영화 쪽에 관심을 가졌던 선배들이 1990년대에 영화를 만들면서 7,80년대의 관행들에 균열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독립영화를 선택한 이유인가.

그때 충무로 방식이 합리적이진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충무로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으로부터 출발해 만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 연장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개인 창작, 즉 역설, 가치, 미학을 그림이 아닌 영화란 옷을 입혀 만들고 싶었다. 그림이나 영화, 모두 비주얼이 중요한 언어라는 공통점도 있고.

2002년 충무로에서 <하얀방>을 연출했다.

그쪽에서 의뢰가 왔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협회의 운영위원이었고, 한독협 원년 멤버인데 상업영화를 하면서 협회에 누가 되지 않을까 선배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근데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고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와 적대관계는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독립영화건, 상업영화건 영화가 최종적으로 가야할 지점은 관객, 대중이기 때문에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

직접 해보니 어땠나.

돌이켜보면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충무로는 역할이 분화되어 있고 시스템화 되어 있다. 그게 장점이고 단점인데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기엔 시야도 좁고 경험도 부족했다. 스탭 개개인은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온 사람들이라 능력 있는 분들이다. 근데 그분들의 노하우를 작품에 녹여 내는 방향으로 했어야 하는데 시원하게 못한 것 같다. 어떤 순간에는 더 과감하게 결정하고 고집도 부렸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충무로에서 작업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 제작비이다. 제작비를 쓸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감독의 입장을 넘어 프로듀서적인 마인드도 같이 갖고 해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 관객, 대중을 한 축에 놓고 사고를 해야 한다. 과연 이 많은 제작비를 갖고 관객들을 상대할 때 그 정도 가치를 담고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나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고 내가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할 것이다.

독립영화,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이후에도 꾸준히 독립영화를 만들어 왔다. 독립영화의 매력이 뭔가.

독립영화를 통해서 크든 작든 꾸준히 성과를 쌓아가는 게 가치 있는 작업 아닌가. 지금 충무로가 어렵다고 하지만 독립영화는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다. 그 속에서도 창작의지를 잃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창작자의 본분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10년이 넘게 작업을 했는데 작업 환경의 변화가 있나.

물론 있다. 양적인 변화도 있고, 독립영화라는 개념도 생겼다. 그 전에는 작은영화, 상업영화, 단편영화라는 말만 있었다. 지금은 독립영화라는 개념과 지향성을 갖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 과정에는 한독협의 설립이 독립영화 진영에서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충무로 방식이 합리적이진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충무로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으로부터 출발해 만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독협 10년 동안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나 경험이 있다면.

한독협이 생긴 이후에는 그렇게 큰 사건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전부터 있던 인디포럼이 한독협이 출범하는데 가장 큰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인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역할 분담해서 만드는 영화제였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모임이었다. 인디포럼이 협회가 만들어지는 돌다리 역할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독립영화에 대한 개념과 신념이 생기면서 창작자들이 수적으로도 늘어나고, 사적으로도 교류를 하게 됐다.

작년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창작자와 협회의 이사장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협회의 결정은 개인의 결정이라기보다 집단의 결정이기 때문에 내가 이사장이라는 직책이 있어도 협회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좀 힘이 없어 보이는 이사장일 수 있다.(웃음) 실제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 같다. 부담되지는 않는다.

기획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독립영화계가 ‘변화의 시기’에 도달했다고 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독협 10주년을 맞은 2008년 독립영화의 상황은 어떤가.
 
결국은 독립영화인들이 자생력을 키우는 시기였던 것 같다. 자생력은 다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근데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직 미진한 게 많다. 인디스토리가 10년 됐고, 독립영화 전용관도 1년 됐고, 미디액트도 4, 5년 됐다. 또 지금 독립영화 배급사가 더 생기는 판이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작일 뿐이고, 이제 또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총체적인 의미에서 영화를 만들고 배급되고 상영되고 평가 받는 소통 과정의 순환이 커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미약한 부분이 있다.

소통 과정 순환의 최소한의 기틀은 마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한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바뀌면서 기존의 방향과 달라졌다는 인식이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영화를 너무 산업적인 측면에서 사고하는데서 오는 문제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봤을 때, 영화를 산업으로만 볼 때에 독립영화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영진위의 지원금이라는 게 결국은 세금이고 관객들이 낸 입장료에서 모아진 기금, 즉 대중이 만들어준 재원이라는 거다. 그런 재원을, 나쁘게 이야기 하면, 일회성, 소비적인 부분에만 ‘올인’하면 사실 그건 다양성, 공공성을 해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독립영화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독립영화 진영에 지원하는 것이 문화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건가.

독립영화인들이 상대적으로 다양성이나 공공성을 더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지원에만 의지하면 좋은 창작태도는 아니다. 근데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의 논리로만 영화를 풀어가야 한다고 하면 궁극적으로 가장 손해 보는 것은 관객이다. 독립영화인을 위해서라기보다 장기적으로 미래 한국 관객을 위해 그렇게 정책이 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진위, 정신 차려라!
 
서울독립영화제 기간에 한독협에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의외였다.

우리도 좀 껄끄럽기도 했다. 근데 워낙에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고, 좀 더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다. 인식을 공유하고 문제점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영화제를 통해서 알려야 했다기 보다, 그 시점에 알려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명서의 주안점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작년, 올해 논의됐던 복합상영관 건립 문제다. 예산까지 확보 됐었던 사업인데 그걸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아시아무빙이미지센터’(이하 이미지센터)로 확대된 건데, 청사진이 있더라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응 전략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그걸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전략전술이 필요한데 그게 미진했고 결과적으로 추진할 역량이 안됐다고 생각한다. 강한섭 위원장의 리더십과 추진에 대한 신념이 부재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서 그 쪽에 포커스를 맞춰 성명서를 냈다.

이미지센터는 복합상영관과 방향이 전혀 다르지 않나.

이미지센터는 국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아시아를 포괄하는, 어떻게 보면 전시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걸 실현시킬 장기적인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거기에 복합상영관 문제가 묻혀서 이중적인 고통을 받아 찌그러진 것 같다.

그럼 복합상영관 건립은 폐기된 건가. 이미지센터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공간보다는 활동이 더 중요한 거다. 어쨌든 복합상영관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는 매개체인데, 그게 지금 불투명한 상태가 되니 답답한 거다. 또 3기 영진위에서 추진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니까 굉장히 화가 난다.

강한섭 위원장이 4기 영진위를 맡으면서 영화인들과 대화를 안 한 것 같다. 성명서의 내용도 그렇고.

외부적으로는 언제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런 것 없이 많은 일이 진행됐다. 그래서 배신감 같은 걸 느낄 수밖에 없기도 했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강한섭 위원장이 “영진위의 사업은 독립영화가 거의 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그게 아니라는 건 영진위 예산이나 정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독립영화 진영도 영진위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넓게 보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독립영화의 체계, 시스템을 만드는 게 더 큰 문제다. 영진위는 그 중 하나의 촉매제로 바라봐야 하는 거지 거기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물론 같이 힘을 모을 부분이 있지만 그건 부분이지 전체가 될 수는 없다.

한독협, 브레인을 찾습니다!

전체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책 연구가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10주년 기념 사업만 해도 과거를 돌아보는 부분은 좋았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정책에 관한 부분은 미진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새로운 10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정책 개발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어떻게 목표를 도달할 것인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정책이라면 당연히 한독협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회의에서 그런 논의가 나오고 모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근데 우리가 대부분 창작자들의 마인드를 갖고 있어 그걸 전담 해서 하기가 어렵다. 자발적으로 뜻이 모아져야 되는데 조직적으로 너무 강제 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금방 나오지는 않지 않나. 필요성은 있지만 요구만큼 시원하게 나올 정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식으로 풀어갈 예정인가.

글쎄, 그건 내가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웃음) 한독협이라는 조직의 틀을 떠나 전문성을 갖추고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과 결합하는 게 필요하다. 비전과 능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열려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독립영화 했다고 계속 독립영화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립, 비독립을
떠나서 창작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방금 외부 인력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기획 인터뷰에서 한독협 내부 인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었다. 영화를 만드는 스탭은 물론 활동가들 또한 일은 많고, 생활이 보장 안 된다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합리적으로 나오면 일하기가 더 수월할 거다. 근데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이번에 좀 도와주면 다음 작품 할 때에 도와줄게”라는 식으로 노동력을 담보로 노동력을 빌려 온다. 100% 신용사회다.(웃음) 어쨌든 물질적인 부분을 많이 강화할 필요는 있다. 그걸 감수하면서 일하려는 사람이 적은 건 당연한 거고, 한 개인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독립영화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협회가 전체적으로 조금씩 나아진다면 개인도 같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한독협 초기에 비해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력이 좀 약화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협회 초기에 인원이 적었을 때는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했지만, 협회가 커지면서 개인이 생각하는 협회의 가치, 목표가 넓어지기 때문에 협회 내부에서도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서 조절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고 본다. 그걸 더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조직이 되는 게 중요하다. 논의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우리 역할을 방기하는 거다. 이견까지도 대화하고 토론해서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구조와 열린 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창작의 고통을 마주하라! 그게 창작자다.

독립영화, 독립영화인이란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젊은 독립영화인들이 많은 것 같다. 선배 독립영화인으로서 조언을 해 준다면.

예술은 추상적인 통로고, 창작자는 생각이나 의지를 그 통로를 통해 삶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일반적인 현실 속의 사람들과는 삶의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가 체념하는 것도 생기고, 동시에 어떤 부분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데 그런 자각을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 먼 관점에서 볼 때 독립이다 아니다 하는 경계 자체가 무너지길 바란다. 독립, 비독립은 자본의 성격 갖고 결정되는데 그런 경계를 넘어서 사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건가.

독립영화 했다고 계속 독립영화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립, 비독립을 떠나서 창작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 고통은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이외에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가까이 두고 살면 위안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고전음악을 접하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니까 음악, 문학 등 훌륭한 예술가들을 마음속에 두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만날 독립영화 관객들과 한독협 회원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독립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는 관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근데 창작자와 관객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럴수록 만드는 입장에서는 고민이 더 많아 진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괴리가 더 커질수록 창작자의 고민도 더 깊어지는 거다. 그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 사회 창작자들의 위치가 아닌가 싶다.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통해서 삶에 힘과 자극을 받았다면 거기에 대해서 표현을 해주면 좋겠다. 창작자들에게는 큰 힘이다.

한독협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 달라.

이제 첫 길을 건넜다. 뒤돌아보면 많은 일을 했고, 주변을 보면 한독협에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전망을 계속 유지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지금 그런 걱정을 한 단계는 아니지만, 스스로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어쨌든 경계해야 할 것은 경계하고, 힘을 많이 쏟아야 할 데는 힘을 쏟아야 한다.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것은 사실 바람일 뿐이지 비약하는 것은 없다. 이후 10년이 지나서 뒤돌아보더라도 조금씩 변해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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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3 13:38

휘몰아치는 상상력의 잔치

 - 2008 서울독립영화제 11일 개막(김나라 기자)

 

2008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2월 11일(목) 오후 7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막식을 갖고, 19일(금)까지 9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 2008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2월 11일(목) 오후 7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막식을 갖고, 19일(금)까지 9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2008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2월 11일(목) 오후 7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막식을 갖고, 19일(금)까지 9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올해 서독제의 슬로건인 ‘상상의 휘모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렬한 상상력의 힘이 독립영화계에 거침없이 휘몰아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다.

“상상력이 문제였단 말인가!”라는 외침과 함께 시작한 오프닝 영상이 개막식의 문을 열고  뒤이어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코러스를 맡은 ‘미미 시스터스’의 화려하고 뜨거운 개막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각각 8회, 5회 연속으로 서독제의 사회를 맡아온 권해효, 류시현의 진행으로 한국독립영화협회 임창재 감독의 개막선언, 영화진흥위원장 강한섭,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개막작인 강미자 감독의 <푸른 강은 흘러라>가 상영되며 개막식의 공식 행사가 끝을 맺었다.

강미자 감독은 “모든 영화는 저마다 세상에 나올 만한 이유가 있다”며 “영화인들이여 도전을 마음껏 즐겨라. 상상력을 마음껏 발산하자. 이것이 결국 우리 한국영화를 더욱 깊고 넓고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로 34회를 맞는 2008 서독제에는 경쟁부문 51편, 국내외 초청작 35편이 상영된다. 본선 경쟁작들은 영화제 기간 중 심사를 거쳐, 19일 폐막식에서 수상작이 발표된다. 국내 초청작 부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재밌거나 혹은 열받거나’를 주제로 한 9편의 ‘촛불 영상’이다.

이밖에 영화 관람 이외의 일정도 다양하다. 독립영화감독들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는 ‘일일 자원활동가’, 감독과 배우의 만남의 장인 ‘감독, 배우를 만나다’ 등의 행사와 ‘Sex is cinema : 영화에서 성적 표현의 문제’, ‘거리의 촛불, 참여 미디어의 가능성’ 등의 세미나가 마련돼 있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 참조. 관람료 5천원. 문의: 02-362-9513 (서독제 사무국) 

 

'장기하와 얼굴들'과 코러스와 댄스를 맡은 '미미 시스터즈'의 개막축하 공연 모습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축하 인사  

스폰지하우스 중앙1관에서 열린 개막식은 1, 2층 480석을 꽉 채운 관객과 독립영화인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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