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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6 MB 1년, 정치경제 도구로 전락한 문화
  2. 2009.02.17 서울 가려 했으면 진작에 갔다 (7)
  3. 2009.01.23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2009. 3. 26. 10:29

MB 1년, 정치경제 도구로 전락한 문화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 토론회’ 참관기
                                                                          지현 _ 문화연대 활동가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토론회'에 참여한 패널 모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문화가 경제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토론회'에 참여한 패널 모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문화가 경제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월 19일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문화정책 진단 토론회 <위기의 문화정책, 길을 묻다>”가 국회의원회관 128호에서 열렸다.(주최/주관 : 문화연대 후원 : 국회의원 최문순) 이번 토론회는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를 통해 현재 문화․예술계가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토론회의 기조발제를 한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의 특징은 권위적이며 시장주의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문화정책과 비교해보면 이번 정부의 문화정책은 ‘선진화, 경제, 산업, 경쟁력’에 대한 가치지향이 뚜렷하며, 이전의 정부가 크게 내세웠던 문화적 자율성, 문화행정의 자율성이 생략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원용진 집행위원장은 작년 문화부에서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기조 및 주요정책발표계획’의 경우,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기조를 알리는 데에만 주력하고 거의 일정조차 지켜내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이 연역적이고 하향식 슬로건을 담고 있어 미리 정해진 목표와 기조에 맞추어 정책을 내놓다보니, 구체적 실행 가능성을 타진하기보다는 정책을 내기에만 급급한 현실이라는 비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사회적 시스템을 넘어 궁극적으로 다양한 삶의 감수성과 이상을 지원하는 영역으로서의 본래의 목표를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정책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한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1년 문화부에 대해 “한마디로 한 일이 없다”고 평가하면서, 검증조차 되지 않은 유인촌 장관을 임명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못박았다. 이원재 처장은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잠재되고 축적되어 있던 문화정책에 대한 역량조차도 권위적으로 억압하고 유실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이전 정부들의 성과를 부정하기에 급급할 뿐 이를 상쇄할만한 비전과 정책은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으며, 문화정책을 경제ㆍ정치적 도구의 수준에서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에 대한 철학의 부재, 문화정책을 둘러싼 전문성 부재, 정치 및 경제적 우월주의, 고민과 성찰 없는 문화 이벤트 등은 문화정책의 파국을 낳고 있으며, 그 결과 문화정책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경제지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발제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의 현주소를 1)정치적 경제적 도구가 되어 버린 문화정책 2)기본도 원칙도 없는 사유화된 문화정책 3)배제와 갈등을 조장하는 문화정책 4)문화민주주의와 문화공공성 없는 문화정책으로 규정하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여건종 숙명여대 영문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극단적인 시장지향적 정부로서 시장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는 ‘창조적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환경부는 가장 반환경적이고, 노동부도 가장 반노동적이며, 문화부 역시 가장 반문화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기를 만들어가면서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공적인 공간에서 이런 것들을 차단시키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는 ‘핵심적인 문화정책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건종 교수는 “문화적 능력을 통해서만 시장이 극복되며, 시장화 된 삶에 대안적인 능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문화적 능력”이라고 규정하며, “대중 속에서 시장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은 <워낭소리>를 통해 독립영화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TV나 기존 영화에서 다루지 않고 산업이 놓쳐왔던 볼만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같은데, 정책 담당자들은 ‘독립영화’를 ‘빨갱이’, ‘좌파’를 지칭하는 말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화진흥정책에는 현재 ‘독립영화’라는 명칭자체가 없으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도 ‘다양성 영화 전용관’으로 바꾸었다는 것. 원승환 소장은 3“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등장한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가 어느 순간 그 말이 담고 있는 ‘문화 다양성’의 의미는 사라지고, ‘빨갱이 영화’를 대신하는 중립적 용어로 사용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현 정부는 “산업 중심의 정책만 남겨두고 영진위 위원들을 거수기로 전락시켜 영진위의 본래 기능을 마비시켜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강한섭 위원장의 ‘3D(디지털 다운로드, DVD, 다큐멘터리) 시장 창출’을 발표에 대해서도 “정책상으로 새로울 바가 없고 오히려 영화인들을 3D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글로벌 영화산업’의 미래가 어디 있는 건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정찬일 전 담양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문화예술교육팀장은 이명박 정부 하의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하여 지역의 미래를 우려했다. 그는 “현재 지역에 25개 정도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센터가 있는데 앞으로 확대가 가능할 것인지가 의문”이라며, 서울에는 많은 인력과 인프라가 있지만 지역에는 전무한 상황을 지적하였다. 또, 다양한 단체들에게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맞는 물적, 인적 컨텐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임을 설명하면서, 관련 제도ㆍ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문화예술교육강사 발대식을 언급하며, “예술 강사의 많은 역할이 필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지역에 있는 문화들이 학교로 결합할 수 있는 지역의 인프라구축, 프로젝트 등이 필요한데, 현재 이명박 정부의 경우 오로지 1인 강사 위주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기능위주로 가고 있다”며 비판했다. 문화예술교육 강사 사업이 사실상 학생들의 문화예술교육에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중심의 정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작년 한해 지역 현장에서도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정책 토론의 자리가 전무했음을 지적하고, 정책 입안자들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정책적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은 “현재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문화정책을 포장, 분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정책에서 ‘가치’의 영역을 배제하고, 노골적인 ‘통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문화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정희섭 소장은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이전 정부가 열심히 한 것을 지우려고 하는 ‘지우기 정책’, 노골적인 ‘정치주의’, 현장에 대한 고려 없는 즉흥적 ‘땜질 정책’이라고 요약하였다. 정희섭 소장은 “더 이상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기대를 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것을 기대할 필요 없이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의 전부로 봐야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참여정부 이래로 문화정책의 대상자들이 점점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며 예술가, 창작가,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스스로 체질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 정희섭 소장은 이제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기대를 버리되 포기하지 말고, 더 주목하고 경고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할 때”라며,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비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 최문순 국회의원은 지난 1년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대대적인 인적청산과 문화의 정치도구화를 비판하였다. 최문순 의원은 작년 각 기관장들의 해임 과정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직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거나 기관장들을 협박한 후 감사, 수사를 하고 소송을 못하도록 추가 감사를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몰염치한 인사행정으로 대대적인 인적청산과 낙하산 보은 인사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현재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빈곤’ 상태인 동시에 행정능력마저 저하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책의 실패를 홍보의 실패로 호도하는 무지를 보이고 있으며, 정부 정책의 일방적 홍보만을 주장하며 문화의 정치화, 정치 홍보화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최문순 의원은 이명박 정권의 ‘일수불퇴’, ‘초지일관’의 태도를 지적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민주주의 토대 하에 기능하는 정부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 토론자 모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문화가 경제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며, 이로 인해 현재의 문화예술계가 문화적 다양성과 자율성 침해 등으로 퇴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참석자들은 정책은 없이 공보적 기능으로 전략한 문화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며, 현재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소통ㆍ일관성ㆍ공공성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음을 비판하였다. 또한 참석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다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비판이 필요한 때라며,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교류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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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7. 07:58

서울 가려 했으면 진작에 갔다

[강종택의 하이웨이 스타]① 정통 하드록 밴드 '아프리카'
                                                                                                                      강종택 _ 기타리스트

뮤지션에 있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특정 장르에 한정시킨다기보다는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만들다보면 나오는 음악,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색깔이다.
▲ 뮤지션에 있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특정 장르에 한정시킨다기보다는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만들다보면 나오는 음악,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색깔이다.

레드제플린을 동경하며 겁도 없이 무작정 기타를 잡게 된 것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모든 음악인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도 손끝에 물집도 안 잡혔던 시절엔 마지막 한국 정통 록을 지키겠다는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밴드들의 공연을 찾아다니며 꿈을 키우던 그때가 가끔 생각이 난다. 두려울 것도, 잃을 것도 없었던 그 시절의 추억은 지금도 나에게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음악생활은 밴드 <A-Frica>와의 만남 이후 큰 전환점을 가지게 된다. 평소에 존경해왔던 밴드 <A-Frica>의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풋내기 기타쟁이에서 탈피하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A-Frica>와 함께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얻은 것은 다른 팀들과의 교류였다. 나에게는 종교와 같았던 <블랙홀>, <블랙신드롬> 등과 같은 훌륭한 밴드들과의 만남은 22살의 어린 나에게 벅찬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컬처뉴스에서 밴드 인터뷰 연재 의뢰를 받고 이러한 나의 소중한 인연들로 작은 음악이야기를 엮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동시대에 함께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요즘 밴드들은 어떠한 정신을 가지고 음악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이야기 나누는 것은 내 음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도 될 것 같았다.

아프리카를 만나기 위해 그들의 공연이 열리는 동대문 두타야외무대를 찾았다. 도착하기도 전, 지하철 계단을 오를 무렵 낯익은 사운드가 들렸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보컬(윤성)의 목소리, 육중한 드럼사운드. 틀림없는 아프리카였다.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무대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연주를 잠시 감상했다. 함께 공연을 다니다가 이제는 객석에서 그들의 무대를 바라보는 기분이 참 묘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나의 고향과 같은 밴드 A-frica를 인터뷰 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무엇을 물어봐야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가 아닌 동료로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인터뷰에 임했다.

같이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고, 관객의 입장에서 연주를 지켜보니 기분이 묘했지만 무대 위에서나 아래서나 아프리카다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가?

(정현규, 드럼 / 리더) : 근황이야 뭐 항상 똑같다. (웃음) 항상 끊이지 않는 공연 일정을 소화하면서 지낸다. 평소에는 멤버들이 레슨을 하기 때문에 다들 나름대로 바쁘게 지낸다.

얼마 전 일본에서 공연을 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반응은 어땠는가?

(정현규, 드럼) : 도쿄에 있는 “라이브 스테이션”이라는 유명한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일본공연을 하면서 많이 놀랐다. 우선 관객들부터가 한국이랑은 달랐다. 한국은 팬들이 객석을 채우는데 반해 일본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관객의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락 밴드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같지 않게 점잖하게 우리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마치 평론가처럼 지켜보는 시선이 많이 낯설었다.

클럽문화도 한국이랑 많이 달랐는가?

(윤성, 보컬) : 솔직히 말하자면 한마디로 부러웠다. 세팅부터가 뮤지션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주었다. 앰프하나부터 드럼 세팅까지 완벽했다. 그만큼 대관료도 비싸지만, 뮤지션이 꿈꾸는 무대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더욱더 높은 질의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좋은 경험을 하고 왔고, 그들의 마인드를 배울만하다고 생각한다.

연간 100회 이상의 많은 공연일정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새 앨범이 나왔다. 요즘 메이저 가수들은 디지털 싱글의 형태로 앨범을 내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냈는데 아프리카에게 있어 앨범발매는 어떠한 의미인가?

(정현규) : 특별한 의미를 둔다기보다 음악인에게 있어서 앨범 발매는 당연한 것이다. 앨범작업은 우리의 음악을 표현하는 것인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앨범발매를 안하는 밴드들에 대해서 반감은 없다. 트렌드에 민감한 밴드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냥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음악을 할 뿐이다.

이번 앨범은 정규 2집이다. 이번 앨범에 대해서 소개를 좀 해 달라. 신곡보다는 기존의 곡들로 이루어 있던데.

(윤성) : 그렇다. 우리는 예전에 “독립문화공동체”에서 3장의 앨범을 발매했었다. 그러나 그 앨범들은 소수에게만 알려졌을 뿐, 정식적인 앨범이 아니었다. 그래서 2006년에 정규1집을 발매했고, 올해는 예전의 곡들을 다시 정리해서 2집 앨범을 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2집 앨범은 기존 곡들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더욱 성숙된 사운드와 곡 전개를 구성했다.

<작은새>라는 곡은 상당히 긴 대곡이다. “블랙홀”의 기타리스트 이원재와 “What”의 기타리스트 김인건이 마지막 기타 솔로를 함께했다고 들었다. 들어보니 마치 “레너드스키너드”의 Free birds와 같은 느낌이었다.

(정현규) : 그렇다. <작은새>는 코드 3개로만 만들어진 노래지만 뜨거운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다. 아프리카의 색깔을 함축시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동료뮤지션들이 기꺼이 연주에 참가해줘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거의 모든 작곡을 정현규가 하였다. 송인재(기타)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의 음악적 색깔이 있을 텐데, 표현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송인재) : 물론 음악적 색깔이 전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밴드이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은가? 밴드라는 게 참 어렵다. 나는 작곡을 한 사람이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팀의 색깔을 내면서도 그 속에서 개인적인 모습을 음악으로 드러내야 한다. 아프리카는 그런 면에서 밴드라고 생각한다. “메가데스”의 前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을 보라. 평소에는 지극히 메가데스적인 날카로운 사운드를 내면서도, 기타솔로에서는 완전히 마티 프리드먼의 개성 있는 플레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것은 모두 존재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프리카 공식 2집 앨범

너무나 많이 들었을 질문이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가겠다. 지방(대구)에서 이렇게 (취미밴드가 아닌) 밴드를 하는 팀이 많지가 않다. 서울로 진출할 생각은 없었는가? 그리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제한적인 요소나 한계는 없었는가?

(정현규) : 너무 식상한 질문이다(웃음). 이 질문은 수백 번 들었다. 물론 우리도 인정받고 싶고, 인기를 얻고 싶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인 수준도 높아지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앨범을 발매하면서 전국을 상대로 공연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공연을 하지 않았는가. 서울이나 지방이나 하는 일이 같은데 굳이 서울로 갈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다. 진출할 거였으면 진작 갔을 거다. (웃음)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락 공연이 아닌 지역의 행사 공연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무대는 주로 어디인가?

(윤성) : 락 공연은 물론이고 행사공연도 많이 한다. 특히 여름이면 행사공연의 비율이 높아진다. 그리고 행사공연이라 해서 대구․경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을 다 다닌다. 대학축제 공연도 우리의 주무대라 할 수 있다.

나도 경험해봤지만 행사공연을 다니다 보면 열악한 음향시설을 비롯해 변변치 않은 대기실 등 여건이 좋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다. 어떻게 극복을 하는가?

(송인재) : 극복이라고 하기보다는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행사공연은 음향팀이 항상 바뀌기 때문에 우리의 입맛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훌륭한 연주를 하는 팀도 많다. 그것이 다 경험이고 실력이다. 열악한 환경도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뮤지션이 아니겠는가. 사실 앰프를 비롯한 다른 장비들이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수준일 때는 장비들을 우리가 직접 가지고 가기도 한다.(웃음) 그러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여행이다. 그래서 큰 불만은 없다.

공연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리고 고정 팬들은 얼마나 있는가?

(윤성) : 공연을 하다보면 낯익은 얼굴들이 보일 때가 많다. 대구에서 공연을 하면 멀리 부산에서 찾아오는 팬들도 있다. 그러한 팬들이 너무나 고맙다. 공연이 끝나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팬과 스타의 관계라기보다는, 좋은 음악을 공유하는 친구 같은 사이다.

매니지먼트에 소속된 것이 아닌데, 공연일정을 잡거나 홍보 같은 것은 어떻게 하는가?

(윤성) : 우리 팀에게는 훌륭한 매니저가 있다. 그 분이 공연일정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활동을 계획하고 추진한다. 단순히 매니저라기보다는 우리 팀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다. 음악적인 감각도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나기 때문에 많이 배운다. 홍보 같은 것은 주로 내가 한다. 카페에 글을 올리거나 하는 세세한 부분은 내가 틈틈이 하는 편이다.

멤버교체로 상당한 고통이 있었는데 지금의 멤버를 보니 정말 안정된 것 같다. 이 문제 말고도 한국에서 밴드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 아닌가?

(정현규) : 아프리카에게도 멤버 교체와 같은 시련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밴드가 성숙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본다. 여기서 우리가 힘들다고 하면 선배 밴드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선배 뮤지션들이 닦아놓은 길을 편하게 가고 있을 뿐이다. 행여나 우리가 막다른 길을 만나더라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면 된다.

밴드들의 나이가 적지 않다. 특히 드럼은 체력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현규) : 20대보다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바꿔서 말하면 그때는 힘으로만 친 것 같다. 그러나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다. 지금은 몸 전체를 이용해서 드럼을 연주한다. 여기서 몸 전체를 사용한다는 것이 바로 느낌으로 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맛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나이가 30살이 훌쩍 넘어야 그때부터 진정한 연주와 음악이 나온다고 말하고 싶다.

하드락을 하는 팀인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추구하는 음악적 색깔이 약해지는 면은 없는가? 감각적이지 못하다거나, 기타리프가 조금은 촌스럽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물론 나는 아프리카의 정통 하드락을 사랑한다.(웃음)

(정현규) : 우리의 음악이 촌스럽다는 말인가? 뮤지션에 있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곡을 쓸 때도 그렇다. 좀 더 꾸며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입에서 흥얼거리는 그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장르에 한정시킨다기보다는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만들다보면 나오는 음악,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색깔이다. 정리하자면 뮤지션들이 그 나이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길이고, 아프리카의 장르라고 생각한다.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말이다. 항상 아프리카가 건승하길 바란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두타 야외무대 앞을 무심코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하나 둘 잡아 두는 그들의 사운드 속에서 아프리카는 어디에서도 최고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아프리카의 음악은 순수하다. 그 순수함을 많은 이들이 알아줄 날이 오리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언젠가는 같이 음악을 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리라는 바람과 함께.

이 인터뷰의 다음 행선지는 홍대 앞이다.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하면서 가장먼저 친해진 펑키밴드 <시베리안허스키>를 만나기 위해서다. 홍대 앞에서 10년 동안이나 활동을 한, 보기 드문 실력파 밴드 <시베리안허스키>. 다음은 그들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A-Frica)

드럼 : 정현규 (리더)
보컬 : 윤성
기타 : 송인재
베이스 : 오창근

A-FRICA 아프리카는 블루스에 기반을 둔 “정통 하드락 밴드”이다. 또한 국내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정통 하드락 보컬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여성 보컬 윤성의 시원시원한 보이스가 팀의 컬러를 보다 확실하게 규정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순수함,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여 장르의 구분 없이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주고 싶다는 그들 음악의 본질은 라이브에서 더욱 여실히 들어난다. 연주가 시작되면 어떤 장소, 어떤 무대라도 그들의 콘서트 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파워풀하면서도 친화력 있는 퍼포먼스는 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지 이미 오래이다.

1999년 3월에 결성되어 락 페스티벌, 대학축제, 클럽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2002년 여성 보컬 윤 성 체제로 라인업 제정비후, 자체 제작한 2장의 앨범 발표했다. 2008년 11월 앨범 발매를 기념한, 일본 도쿄 클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008년 12월부터 2008~2009 앨범발매기념 전국 라이브 클럽 투어 중이다. 2009년 3월에는 한국, 9월에는 일본에서 한일 락 페스티벌이 예정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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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꾸자 2009.02.17 11:33 address edit & del reply

    음악만큼 삶의 재미에서 빼놓을수 없는것도 없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국의 20세기가 유교적정신과 기독교적 질서로 이루어졌다면 21세기에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락의 정신에서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2. Favicon of http://ADbyAD.com BlogIcon 무료 광고 ADbyAD.com 2009.02.17 18:14 address edit & del reply

    연간 100회 이상이면 활발한 할동 같습니다.

  3. 웁홍 2009.02.18 00:47 address edit & del reply

    우와우. 기사 쓰신 분 문장 하나하나마다 감각이 넘쳐나는 것 같아요. 혹시 국문과 나오신 거에요? 앞으로도 좋은 기사 많이 부탁드려요~~

    • 왠지 2009.02.18 17:26 address edit & del

      관계자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4. ㅇㅅ 2009.02.18 15:38 address edit & del reply

    희한한 댓글들이 많군요. ㅎㅎ

    • 그렇지만서두 2009.02.18 17:25 address edit & del

      희한한 댓글에 한몫 하신듯^^

  5. 처음보고반함 2009.02.19 09:21 address edit & del reply

    이름만 들어도 몸에서 소름이 돋네요...ㅎ
    볼기회가 있었는데 사정상 못갓지만..다음에는 진짜 꼭 보고싶은밴드에요 ㅎ

2009. 1. 23. 21:25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용산 참사 항의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
                                                                                                                                        안태호 기자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문화예술인들도 이명박 정부의 용산 참사에 항의하고 나섰다.

23일 오후 1시 용산 참사 현장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연대, 민족미술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독립영화협의회, 우리만화 연대 등 진보적 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이 모여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재개발 현장에서 자행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철거민 및 진압경찰 사망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용산 참사를 불러온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개발 정책과 공권력의 과잉충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반민주적 살인정권의 퇴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행사는 고영재 한독협 사무총장의 발언을 시작으로 이종회 용산철거민살인진압대책위 집행위원장과 염신규 민예총 정책기획팀장의 규탄발언, 송경동 시인의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또한 문화행사로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동만 시인의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의 낭송이 있었고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너희가 누구인지 그때 알았다’가 담긴 민미협 이윤엽 작가의 걸개그림을 사고건물 3층에 걸어 시민들에게 이번 사건의 본질과 정권의 비민주적 폭력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회성 추모행사가 아닌 사고 현장을 지속적인 추모와 저항의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
...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문동만(시인)


죽을만해서 죽었다는 야차의 말도 나돌았다
화염병이 火因이라고 조사하기도 전에 결정되었을 얄팍한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촛불을 붙여도 혹한의 바람은 거세게 그 불을 끄려 진격할 것이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진실을 얼버무리고 어서 빨리 관을 닫자고 한다
진실은 그럴듯한 언론을 통해 그럴듯하게 조작될 것이다
그러나 오그라든 당신들 입술은 아직도 뜨겁다

양심이란 무겁고 외로운 것
그 위에 덮개를 씌우지 못하는 내가 당신이 우리가 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관위에 박힐 못을 가슴으로 받아 견뎌야 할 시간이 역사다
당신의 정의가 맞다
용산은 팔레스타인 가자다 침략당한 옥탑방이다
그러나 축복하자
대화도 타협도 없이 배척되고 타살되어야 할 주적이 된 우리들을 위하여
더욱 강건하고 담대해지길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옮겨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
진실이란 불꽃에 대하여
그 불꽃이 더욱 선연해지기를

하늘에서 내려줄 어떤 구명줄도 없었다
땅 위엔 매트리스도 홑이불도 깔려있지 않았다
비상구에는 깡패들이 탈출을 막았고
그리고 언제 발화될지 모를 신나가 불길과 물대포를 유혹하고 있었다
오직 진압의 목적과 훈령에 충실했던
일사분란 한 행동만이 그러다 터진 불길만이 그날의 진실이라는 것

그랬을 뿐 이었다
살기위해서 스스로 고립된 옥탑 망루에 갇혔을 뿐 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한번은 결단해야 할 그저 그런 선택일 뿐
그래서 죽었다 공격해서가 아니라 방어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불러주는 대로 도장을 찍지 않아서 깡패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밀려서 하늘과 가까운 옥상에 올라갔기에
죽음을 가까스로 방어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그들은 먼저 공격되었다
자본증식의 욕망만, 바벨탑처럼 세워질 빌딩들의 욕망만 권장되고 보호되고
생존의 권리, 이견의 존중 이 따위,
상식 따윈 당연히 진압당하는 세상의 복판에서
불에 그슬려 죽었다
식도에 숨차게 몰려오는 화염을 내 뱉으며
온 몸을 비틀며
아 그러나 저것은 불새가 아니라 분명 사람이다
석유나 신나가 아니다 새총이 아니다
폭도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하지 마! 하지 마!
우리를 내몰지 마! 입김이 나오던 뜨거운 입들이다 사람이어서
그들은 생명이어서 죽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지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서

당신들처럼 나이론옷이 녹아 마른 살갗위에 눌러 붙는다
지옥에도 없을 그 뜨거운 고통이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도 뜨겁구나
아프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온도를 기억하리라
정확히 말하자 당신들은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은 게 아니라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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