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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8 09:15

오늘, ‘대안만화(alternative comics)'를 말한다 - [대안만화를 말한다 - ⓛ]왜 대안만화인가

대안만화는 언더그라운드만화, 독립만화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로버트 크럼의 자화상.
▲ 대안만화는 언더그라운드만화, 독립만화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로버트 크럼의 자화상.

'대안만화'는 만화에 꽤나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만화문화의 발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원소스멀티유즈’가 대세로 이야기되는 시대, 상품에 포섭되지 않는 만화문화를 만들기 위한 논의의 첫머리에 대안만화가 있다. 컬처뉴스는 우리만화연대의 도움으로 대안만화의 개념과 국내외 현황, 향후 방향과 과제에 대해 총 6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왜 대안만화인가
② 대안만화란 무엇인가
③ 외국의 대안만화
④ 한국의 대안만화
⑤ 한국 대안만화의 방향과 과제
⑥ 마무리 대담


‘대안만화’라고 하면 반응은 대부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왠지 칙칙하다는 느낌 때문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더 가까이 들이대는 반짝이는 눈빛이다. 두 가지 반응 모두 나쁘지 않으며 그 어느 쪽의 반응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서 생각한 결과이건, 또는 막연한 선입관과 느낌의 결과이건 간에 이러한 반응은 약 세 가지 종류의 자문에 대한 답변이다.

첫 번째로, 왜 지금인가? 즉, 지금 이러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럴만한가 아닌가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대안만화란 것이 이러한 상황판단에 비추어보건대 필요한 어떤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제기된 문제의식의 밑바탕에 흐르는 것으로, 여타의 다른 논의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를 선택할만한 필요성과 중요성이 무엇일까라는 의심이다. 이 선택 속에 어떤 다른 정치적인, 또는 개인적인 목적은 없는가라는 것이 그런 류의 의심이 될 수 있겠다.


왜 대안만화인가

의심만으로 팽배한 의심을 적극 환영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의심의 기조가 냉소와 비웃음일 경우이다. 저자의 이름만 가리면 결코 누가 썼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 구분점이 없는, 읽을 땐 그럭저럭 넘어가지만 덮으면 그대로 잊혀지는 모래성 같은 만화들의 홍수 속에서 글이나 작품이 지녀야 할 진지성, 그 힘에 대한 자성은 사라지고 있다. 논평과 비평이 문학처럼 다루어졌던 시기는 희미한 자취만 남기고 있으며, 거창한 환경주의는 아니더라도 있으나마나 하다면 차라리 펜을 들지 않겠다는 결심마저도 조롱되는 시대가 아닌가. 무얼 끄적거리건 ‘산업’이라는 논리 앞에 탈색되어 버린다는, 작품과 비평이 사라진 자리에 장사꾼의 깃발만이 날린다는, 아니 오히려 그 깃발이 문예를 광장에서 쫓아냈다는 이런 비아냥과 냉소, 패배주의는 그닥 생소한 것이 아니다.

읽을 만한 국산 창작물의 축소, 책을 구입하기 위해 총총히 뛰어가던 가쁜 발걸음도 추억이 되어버리고, 그에 대한 가슴 뛰는 열정도 흩어지고, 비평도 글쓰기도 무용지물이라는 비관, 그 속에 있는 냉소, 비웃음, 그것이 정말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이 패배주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필자의 마음에서도 꿈틀댄다. 돈이 최상위가치가 되고 있는 이곳에서, 문화에 대한 가치절하는 우리를 상처 입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잘했지만, 남은 못했기에? 천만의 말씀. 남도 못하지만, 나도 만만치 않게 못했다는 자성이 필요하다. 이런 총체적인 문예와 문화 자체에 대한 가치하락 - 문화산업이라는 기치 하에서만 겨우 살아나는 - 에의 책임은 모두의 어깨위에 나눠 지어야할 무거운 짐이다.

아트 스피겔만의 자화상


어디나 편재하는 냉소적인 비웃음에 맞서, 그곳에 대안만화를 자리 잡게 하는 건 어떨까?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절망할 때 비로소 튀어나오는 희망처럼, 막막하고 기나긴 밤의 끝 무렵에야 서서히 드러나는 희미한 여명처럼, 그렇게 대안만화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앞서 대안만화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그의 일반적 정의는 무엇이며, 언더그라운드 만화(underground comix), 독립만화(independent comics) 등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위에서 이야기했던 맥락과 맞닿아 있는 것인가?


대안만화는 무엇인가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미국에서 1960년대 중반, 즉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많은 유행을 불러일으켰던, 만화가가 스스로 생산, 출간했던 만화들을 지칭했던 용어이다. 196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미국의 히피 반문화운동은 베트남전(1953-1975) 반대운동, 민권운동,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신봉, 여성-동성애자 해방운동과 맞물린 것으로서 언더그라운드 만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류만화라고 볼 수 있는 슈퍼 히어로물과는 전혀 무관한 이 개별 출판된 책들은 히피숍이라는 유통망을 통해 대중들에게 팔려 나갔고, 표지는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컬러 채색했고, 내용물은 흑백 인쇄였다. 주독자층은 성인이고, 1950년대의 만화검열에 대한 복수를 하듯이, 모든 금기된 주제들, 특히 섹스, 폭력, 마약 등의 주제를 거리낌 없이 다루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히피들의 수도라고 불릴만했는데, 이곳으로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이 이사를 오고 <잽(Zap)>이라는 작품을 1968년에 출간하면서 만화가들에게 충격을 준다. 이 작품은 곧이어 만화가들이 연재하는 잡지로 성격이 바뀌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길버트 셀튼(Gilbert Shelton), 클레이 윌슨(S. Clay Wilson), 스페인 로드리게즈(Spain Rodriguez) 등이 이 시기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근 이십여 년을 끌었던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면서 히피운동이 서서히 잦아들자 그에 따라 언더그라운드 만화도 서서히 잦아든다. 하지만 이 흐름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고, 1980년대에 제 2의 도약을 기다리게 된다. 이는 60~7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영향 하에 성장한 대표적인 작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0년 아트 스피겔만(Art Spegelman)이 자신의 부인인 프랑소와즈 몰리(Françoise Mouly)와 더불어 <라우(RAW)>라는 예술적인 만화를 지향하는 잡지를 내놓았고, 여전히 영향력이 살아있었던 이전의 주요 멤버중의 하나인 로버트 크럼이 앞장서서 내놓은 <Weirdo(와이어두, 1981)>도 마찬가지이다. 이 만화들을 사람들은 “포스트-언더그라운드(post-underground)," "독립만화(independent comics)" "작은 프레스(small press)",  "뉴 웨이브(new wave)," 또는 ‘예술 코믹스(art comics)” 등의 다양한 용어로 부른다. 유럽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1990년대부터 아소시아시옹(Association)이라는 작가 연합체이자 출판사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주류 만화와는 다른, 흑백의 만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윌 아이스너의 자화상


이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명칭이 ‘대안만화’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다른 용어들에 비해 이 용어가 훨씬 더 광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더그라운드’라는 표현은, 마치 여기에 속하는 작품의 향유자는 항상 소수로만 머물러야 한다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만화라는 표현으로서의 완성이나 매체에 대한 고민보다는 시선의 독특성과 비판의식, 아마추어리즘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준다. ‘인디펜던트’가 추구하는 독자성과 독립성이라는 의미 역시 나쁘지 않지만, 기존의 시장체계와 완전히 별도라는 의미까지 확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팔리고 읽히기 위해 책을 만드는 이상, 시장의 규칙과 논리로부터 완벽한 독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80년대의 대안만화는 기존의 만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작업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류만화의 완성도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대안만화라는 용어는 상당히 광범위한 대상을 지시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용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세야 말로, 즉 기존에 존재하던 다양한 관습들에 대해 반기를 드는 자세야 말로, 모든 표현매체의 작가들이 시도해보는 일반적인 예술가라는 이미지와 하등 다른 것이 없다. 만화가로서, 시나리오작가로서, 또는 비평가로서 어디에 설 것인가? 라는 선택의 문제이다.
 어느 입장에 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특정 양식과 형태, 내용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포괄적인 입장이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이, 오로지 각 작품, 각 만화마다 대안만화일 수 있고, 또는 아닐 수 있는, 한편으로 넓고, 다른 한편으로 좁기 그지없는, 그런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 ‘돌파구’로서의 대안만화

2008년, 우아하게 말하면 ‘만화의 장(champ)’, 약간 더 시장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만화판’의 현황에 대해 말해보자. 크게 만화문화(생산과 소비양태), 교육(대학과 기타 교육 프로그램), 정책(각급 기관과 단체)과 산업으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오늘날 우리가 주로 만나는 만화는 학습만화, 인터넷만화, 신문만화이다. 학습만화는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에 따라가는 것이고, 다양한 출판사와 어린이 독자를 만화소비의 주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만화 소비양식은 여전히 무료가 우세하다. 문화적 산물의 무료화에서 유료화라는 개념적 전환은 좋은 작품을 만날 가능성을 늘려줄 수 있다. 불법스캔 업로드 규제가 강해지면 불법유통은 약간씩 사라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창작만화 판매량에 있어 높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지는 못하다. 만화대여점을 통해 만화를 빌리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만화를 구입하는 양은 조금 늘었을지도 모른다. 
 

잡지 '라우(RAW)'의 표지그림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교육과 정책 분야는 골격이 먼저 탄생하고 그 속에 피와 살을 돌려야 하는 우리의 구조적 발상상, 여전히 이도 부족하고 저도 부족하다는 아우성에 파묻혀 있다. 대학은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며 대안을 모색하고, 정책을 내어야 할 곳은 인력과 자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총체적인 담론의 부재이다. 잡다한 신변잡기나 부서이동의 문제를 제외하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만화가들의 참가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만화, 그 자체에 대한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가? 어떤 비판의 끝날을 자기 스스로에게 향하며 비판 속에 성숙해지겠다는 당당한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누구도 다른 누구를 전문적으로 폄하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대안’만화는 커녕, 만화 자체에 대한 어떤 논의도 부재하다.       

‘기존 만화에 대한 비판’이라는 그럴듯한 문구는 사실 그다지 커다란 제한점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기존의 만화를 자신의 작품보다 선행하는 작품으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여기서 비판이라는 측면은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즉 이미 완성되고 알려진 것들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내딛어 보는 것, 그것이 ‘좋은’ 만화라고 했을 때, 그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에 대한 논의들과 틀릴 바가 없다. 어찌 본다면, 지금의 현황이 어떠하고, 그러한 현실 인식하에서 어떤 작품들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모든 과정이 대안만화에 대한 논의가 아닐까?

 이는 너무 광범위하며, 너무나 광범위한 범위는 무용지물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제기될 수 있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다양한 문제제기들, 다양한 색채의 논의들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고집부려 본다. 논의와 담론 자체의 부재야 말로, 오늘날 대안만화를 이야기해야 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이기 때문이다. 어떤 담론도 적극적으로 제기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우리는 대안만화를, 달리 말하자면 어떻게 좋은 만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 본 기사는 우리만화연대(www.urimana.co.kr)에서 발간하는 <우리만화>에서 제공했습니다.






* 2008-09-02 오후 5:34:48  한상정 _ 만화평론가, 우리만화연대 회원

Trackback 0 Comment 2
  1. Favicon of https://axslayer.tistory.com BlogIcon Libertas 2008.10.08 09: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한마디로 만화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뜻이군요.

  2. Favicon of https://culturenews.tistory.com BlogIcon 컬처뉴스 2008.10.08 12:1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말 자체가 새롭지 않지만, 좋은 만화들의 운신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앞으로 연재될 글에도 관심가져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