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9.01.30 지옥의 묵시록
  2. 2009.01.28 여기, 예술이 있다
  3. 2009.01.24 원치 않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4. 2009.01.23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2009.01.30 09:36

지옥의 묵시록

 [MB악법 바로보기 릴레이 카툰 5화]
                                                                                                                                   김태권 _ 만화가

일명 ‘MB악법’ 드라이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금 개혁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악법들을 상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법안들의 대부분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탓에 시민사회와 야당의 반발이 거세지만, 정부여당은 이번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태도입니다. 이런 가운데 강풀, 최규석, 곽백수, 윤태호, 김태권 등 만화가들이 ‘MB악법 반대 릴레이 카툰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음 아고라와 프레시안 등에 동시 연재되는 작품을 작가들의 뜻에 따라 컬처뉴스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연재 시작시점과 설연휴 등의 문제로 컬처뉴스 연재일정은 조금 뒤늦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양해와 함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관련기사]
마스크 쓴 당신을 체포한다
이쯤 되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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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8 18:09

여기, 예술이 있다

[편집자가 독자에게]이윤엽과 송경동의 경우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안태호 편집장

고향 다녀오는 길에 보니, 평소 왕래하던 길가에 어느 새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도로 옆 공터였던 곳에 시멘트를 부어넣은 철골구조물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더군요. 안 그래도 주변이 고층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는 지경인데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건물을 우겨넣고 보는 건설현장의 풍경을 보니 꽉 막힌 도로만큼이나 갑갑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딴은, 개발업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노는 땅이 아깝기도 할테지요. 그곳에 건물을 지으면 단위면적에서 낼 수 있는 수익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빈 땅을 그대로 두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방치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아파트로 대표되는 개발은 욕망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할 만합니다. 개발로 인해 생기는 이익이 몇몇 ‘가진 자’들에게 집중되는 현 상황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입니다. 하여, 사람들은 개발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개발' 자체에  대한 성찰이 먼저겠지만, 개발을 통해 소수가 독점적인 이익을 그러쥘 수 없다면 지금과 같은 막개발에 올인하는 일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용산참사에 대해 민심은 절절 끓고 각계의 움직임도 분주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섯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가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정부여당은 이치에 닿지 않는 흰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설 연휴를 앞둔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각계의 목소리에 입장 하나를 더하는 것을 넘어서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치열함의 일단을 보여줬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와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를 봅니다. 전자는 걸개그림으로 제작된 미술가 이윤엽의 판화작품이고 후자는 시인 송경동의 추모시입니다. 이 두 작품이 함께 실린 현수막이 참사현장 빌딩에 걸렸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싸움에 함께하며 인간다운 삶을 꿈꾸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며 땅을 일굴 권리를 옹호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길 한미FTA에 반대하며 이윤보다 인간을 외치던,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며 억울하게 억압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그림값이 수 천 만원을 호가하거나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예술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불평등과 부조리와 모순과 추문을 고발하는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예술가는 자신들만 특화시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가들이 자신들과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다고 말이지요. 네, 맞는 말입니다. 현장예술의 이름을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곳에만 한정짓는 것 또한 단견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묻고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 _ 송경동

국민의 밥상에 독이 든 고기를 올리겠다고 했을 때
천년 강물의 가슴을 파헤치고 이윤을 위해 자연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교육의 전당을 시장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죽음 같은 경쟁으로 내몰겠다고 했을 때
뉴타운을 지어 가난한 자들을 몰아내겠다고 했을 때

가녀린 촛불 하나하나를 곤봉과 방패로 짓이겨 갈 때
100만 촛불의 간절한 생명의 소리를 콘테이너산성으로 막고 귀막을 때
인터넷에 마저 재갈을 물리겠다고 압수수색해 올 때

96일 굶은 기륭 김소연이 오른 철탑 망루를 뒤흔들고 경찰차로 들이박을 때
죽어보라고 용역 구사대를 앞세워 이죽거릴 때
미포조선 100m 굴뚝농성장에 불기를 끊고 음식물을 끓을 때
용기 있으면 죽어보라고 사주할 때

바른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곧은 교사들의 목을 단칼에 치고
교과서에 새겨진 참민주주의의 목을 조를 때

890만 비정규직 2년짜리 노예목숨도 부족해
4년짜리 노예, 영원한 비정규목숨들을 양산해
자본에겐 횡재를 민중에겐 살아도 죽은 목숨을 선사하겠다고 했을 때
가진 자들만을 위해 모든 법률을 개악하겠다고 했을 때
항복하지 않으면 어떤 인도적 지원도 할 수 없다고 북의 동포들에게 엄포를 놓을 때
팔레스타인 학살 규탄 유엔인권위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질 때

알았다. 너희는 소수라는 것을
만인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만인을 죽음으로 내몰 잔인한 살인 정부라는 것을
폭력으로 밖에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더럽고 추악한 파쇼 정부라는 것을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농민빈민서민의 위기로 돌리려는
극악한 정부라는 것을

너희에겐 그 무엇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린 고통을 당해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너희라는 것을
보라. 미천한 자본과 폭력의 개들아
진실은 다시 모두가 잠든 새벽녘
가난한 삶의 현장에서 성난 불꽃으로 일어나
우리 모두의 나약한 가슴을 태우고
비겁과 나태를 밀어내고
양심과 도덕의 횃불에 다시 불을 당긴다
헐벗은 겨울 벌판을 정화하는 들불처럼
쥐새끼들을 몰아내고 병든 균들을 태워 없애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시대의 봄을 부른다

더 이상 오를 곳도
더 이상 내려 갈 곳도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없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쌓듯 망루를 쌓아갔던 열사들이여
그러니 일어서라
일어서서 이 차디찬 새벽을 그 뜨거운 몸으로 증거하라
우리가 그대들이 되어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더 이상 안주할 곳도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는
이명박 신자유주의 폭력 살인
반민중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에 결연히 나서도록
살아서 비굴한 목숨이 아니라
열사들의 영전에 자랑스런 이름들이 될 수 있도록
열사들이여 그 뜨거운 분노
그 뜨거운 함성, 그 뜨거운 소망을 내려놓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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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4 13:33

원치 않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기자의 눈]‘기본소득제도’는 사회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박휘진 기자
지난 20일 '용산 참사'현장.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으로 내몰리는 지금, 사회적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 지난 20일 '용산 참사'현장.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으로 내몰리는 지금, 사회적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매주 일요일 직장인들은 내일을 두려워한다. 왜? 출근해야 하니까. 매달 직장인들은 단 하루만을 바라보고 산다. 어떤 날? 월급날. 어째서 그들에게는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일까? 이유는 명백하다. 원치 않는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에 매인 노동은 즐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실현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며,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러한 노동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기본소득제도’가 그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는 아직은 낯선 이야기인 ‘기본소득제도’가 한국사회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제도의 주창자 중 한명인 앙드레 고르의 책 『에콜로지카』가 지난 겨울 국내에 소개되었고, 박홍규 교수가 민주법학에 관련 글을 실은 바 있다. 1월 22일에는 제 3회 사회대안포럼에서 ‘기본소득제도의 사회대안적 가능성’에 대한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사회에서의 적용가능성을 타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본소득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으로 사각지대 제로의 보편복지제도이다. 기본소득제도 프로젝트를 통해 형성된 한국의 기본소득 지급액은 39세 이하 연 400만원, 41세 이상 54세 이하 600만원, 55세 이상 64세 이상 800만원, 65세 이상 900만원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실현가능한 일인가? 

사회대안포럼 심포지엄 발제문에 따르면 “2006년부터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한 나미비아의 오미티라 지역에서는 60세 미만 거주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후로 과거에 만연했던 식량구걸행위를 완전히 소멸시켰으며 지역민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크게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나미비아뿐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일본 등이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에 참여”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으로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지급된다. 이는 “인간을 억압적인 노동으로부터 해방하여 능력에 따라 보다 자유롭게 노동을 선택하게끔 경제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대신에 노동시간을 감축하고 자유시간의 길이와 질을 향상시키는 탈노동중심주의”(연방노동공동체 기본소득 그룹)를 실현시키기 위함이다. 때문에 기본소득제도가 실현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위해서 노동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임금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그것은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는 일이라기보다 컴퓨터 앞에, 기계 앞에 에너지를 내다버리는 일이다.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카프카 소설『변신』의 주인공처럼 ‘벌레’가 되는 일이다.

발제문에서는 이와 더불어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각자 원하는 노동을 하게 되어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소득이 기본소득수령액만큼 증가한다. 더구나 무상의료․무상교육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지출요인이 감소하여 잔업동기가 약해져 일자리를 나누게 되어 비자발적 실업을 축소시킬 여지가 커진다”, “사회성원 대부분의 실질소득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전업주부도 독자적인 소득과 경제권을 향유하게 되어 가정 내 남녀평등에 기인할 수 있다”, “GNP 통계에 계산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노동들이 풍부해 질 것이고,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의 활동이 확실히 증가할 것이다” 등 기본소득제도의 효과를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돈’일 수밖에 없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기본소득제도일지라도 지급되어야 할 총액수가 대체 어느 정도이며, 그것이 어떻게 조달가능한지에 대한 전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심포지엄에서 제안한 재원조달은 주로 ‘세제 개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기본 원칙은 ‘모든 소득에 대해서 과세한다.’,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30%의 세율로 일률적으로 원천과세하고 종합소득에 합산시켜 다시 과세한 다음 기납입분은 공제한다’, ‘불로소득에 대한 세율은 조세제도가 정착되면 점차 늘리고 소득세율은 낮춰 간다’ 등이다. 발표자는 “이와 같이 부과하면 연 과세대상 소득이 1억원에 달하는 사람의 경우조차 가족이 2인 이상일 경우 기본소득으로 인해 실질소득이 늘어난다”며 “국민의 90%정도가 이득을 보기 때문에 조세 저항을 거의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곽노완 교수와 강남훈 교수는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다”면서 “세금을 내라고 하면 무조건 국민들이 반대부터 하고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보는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은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며, 동시에 연말에 멀쩡한 도로를 뜯고 바르는 데 내 돈이 쓰이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야하는 정당성을 합의로 도출해내는 일은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한 고비 넘기면 또다시 찾아오는 경제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라면 우리 선택의 폭은 넓지가 않다.

기본소득제도가 사회적 대안으로 실행되어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다면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적어도 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인들은 없지 않을까. 지난 20일처럼, 쫓겨 올라간 ‘골리앗’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철거민도 없지 않을까. 기본소득제도를 위한 세제 개편이 이뤄진다면 땅값, 집값 등 지대를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광적인 열광도 사그라질 테니 말이다. 노점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철거민들에게 내려진 최종결정이 1600명의 경찰병력과 특공대 투입뿐인 사회는 절망 그 자체다. 원하지 않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사회적 대안이 너무나 절실하다.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논의는 대안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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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21:25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용산 참사 항의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
                                                                                                                                        안태호 기자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문화예술인들도 이명박 정부의 용산 참사에 항의하고 나섰다.

23일 오후 1시 용산 참사 현장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연대, 민족미술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독립영화협의회, 우리만화 연대 등 진보적 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이 모여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재개발 현장에서 자행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철거민 및 진압경찰 사망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용산 참사를 불러온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개발 정책과 공권력의 과잉충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반민주적 살인정권의 퇴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행사는 고영재 한독협 사무총장의 발언을 시작으로 이종회 용산철거민살인진압대책위 집행위원장과 염신규 민예총 정책기획팀장의 규탄발언, 송경동 시인의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또한 문화행사로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동만 시인의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의 낭송이 있었고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너희가 누구인지 그때 알았다’가 담긴 민미협 이윤엽 작가의 걸개그림을 사고건물 3층에 걸어 시민들에게 이번 사건의 본질과 정권의 비민주적 폭력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회성 추모행사가 아닌 사고 현장을 지속적인 추모와 저항의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
...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문동만(시인)


죽을만해서 죽었다는 야차의 말도 나돌았다
화염병이 火因이라고 조사하기도 전에 결정되었을 얄팍한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촛불을 붙여도 혹한의 바람은 거세게 그 불을 끄려 진격할 것이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진실을 얼버무리고 어서 빨리 관을 닫자고 한다
진실은 그럴듯한 언론을 통해 그럴듯하게 조작될 것이다
그러나 오그라든 당신들 입술은 아직도 뜨겁다

양심이란 무겁고 외로운 것
그 위에 덮개를 씌우지 못하는 내가 당신이 우리가 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관위에 박힐 못을 가슴으로 받아 견뎌야 할 시간이 역사다
당신의 정의가 맞다
용산은 팔레스타인 가자다 침략당한 옥탑방이다
그러나 축복하자
대화도 타협도 없이 배척되고 타살되어야 할 주적이 된 우리들을 위하여
더욱 강건하고 담대해지길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옮겨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
진실이란 불꽃에 대하여
그 불꽃이 더욱 선연해지기를

하늘에서 내려줄 어떤 구명줄도 없었다
땅 위엔 매트리스도 홑이불도 깔려있지 않았다
비상구에는 깡패들이 탈출을 막았고
그리고 언제 발화될지 모를 신나가 불길과 물대포를 유혹하고 있었다
오직 진압의 목적과 훈령에 충실했던
일사분란 한 행동만이 그러다 터진 불길만이 그날의 진실이라는 것

그랬을 뿐 이었다
살기위해서 스스로 고립된 옥탑 망루에 갇혔을 뿐 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한번은 결단해야 할 그저 그런 선택일 뿐
그래서 죽었다 공격해서가 아니라 방어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불러주는 대로 도장을 찍지 않아서 깡패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밀려서 하늘과 가까운 옥상에 올라갔기에
죽음을 가까스로 방어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그들은 먼저 공격되었다
자본증식의 욕망만, 바벨탑처럼 세워질 빌딩들의 욕망만 권장되고 보호되고
생존의 권리, 이견의 존중 이 따위,
상식 따윈 당연히 진압당하는 세상의 복판에서
불에 그슬려 죽었다
식도에 숨차게 몰려오는 화염을 내 뱉으며
온 몸을 비틀며
아 그러나 저것은 불새가 아니라 분명 사람이다
석유나 신나가 아니다 새총이 아니다
폭도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하지 마! 하지 마!
우리를 내몰지 마! 입김이 나오던 뜨거운 입들이다 사람이어서
그들은 생명이어서 죽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지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서

당신들처럼 나이론옷이 녹아 마른 살갗위에 눌러 붙는다
지옥에도 없을 그 뜨거운 고통이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도 뜨겁구나
아프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온도를 기억하리라
정확히 말하자 당신들은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은 게 아니라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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