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1.28 여기, 예술이 있다
  2. 2008.12.01 예술인복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3. 2008.11.07 남장 문근영은 왜 비극적인가 - <바람의 화원>의 유사역사성과 역사성 (2)
  4. 2008.10.27 예술은 예술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채널로써 ‘생태문화예술’ 하기
2009.01.28 18:09

여기, 예술이 있다

[편집자가 독자에게]이윤엽과 송경동의 경우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안태호 편집장

고향 다녀오는 길에 보니, 평소 왕래하던 길가에 어느 새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도로 옆 공터였던 곳에 시멘트를 부어넣은 철골구조물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더군요. 안 그래도 주변이 고층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는 지경인데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건물을 우겨넣고 보는 건설현장의 풍경을 보니 꽉 막힌 도로만큼이나 갑갑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딴은, 개발업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노는 땅이 아깝기도 할테지요. 그곳에 건물을 지으면 단위면적에서 낼 수 있는 수익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빈 땅을 그대로 두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방치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아파트로 대표되는 개발은 욕망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할 만합니다. 개발로 인해 생기는 이익이 몇몇 ‘가진 자’들에게 집중되는 현 상황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입니다. 하여, 사람들은 개발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개발' 자체에  대한 성찰이 먼저겠지만, 개발을 통해 소수가 독점적인 이익을 그러쥘 수 없다면 지금과 같은 막개발에 올인하는 일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용산참사에 대해 민심은 절절 끓고 각계의 움직임도 분주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섯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가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정부여당은 이치에 닿지 않는 흰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설 연휴를 앞둔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각계의 목소리에 입장 하나를 더하는 것을 넘어서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치열함의 일단을 보여줬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와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를 봅니다. 전자는 걸개그림으로 제작된 미술가 이윤엽의 판화작품이고 후자는 시인 송경동의 추모시입니다. 이 두 작품이 함께 실린 현수막이 참사현장 빌딩에 걸렸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싸움에 함께하며 인간다운 삶을 꿈꾸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며 땅을 일굴 권리를 옹호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길 한미FTA에 반대하며 이윤보다 인간을 외치던,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며 억울하게 억압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그림값이 수 천 만원을 호가하거나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예술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불평등과 부조리와 모순과 추문을 고발하는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예술가는 자신들만 특화시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가들이 자신들과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다고 말이지요. 네, 맞는 말입니다. 현장예술의 이름을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곳에만 한정짓는 것 또한 단견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묻고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 _ 송경동

국민의 밥상에 독이 든 고기를 올리겠다고 했을 때
천년 강물의 가슴을 파헤치고 이윤을 위해 자연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교육의 전당을 시장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죽음 같은 경쟁으로 내몰겠다고 했을 때
뉴타운을 지어 가난한 자들을 몰아내겠다고 했을 때

가녀린 촛불 하나하나를 곤봉과 방패로 짓이겨 갈 때
100만 촛불의 간절한 생명의 소리를 콘테이너산성으로 막고 귀막을 때
인터넷에 마저 재갈을 물리겠다고 압수수색해 올 때

96일 굶은 기륭 김소연이 오른 철탑 망루를 뒤흔들고 경찰차로 들이박을 때
죽어보라고 용역 구사대를 앞세워 이죽거릴 때
미포조선 100m 굴뚝농성장에 불기를 끊고 음식물을 끓을 때
용기 있으면 죽어보라고 사주할 때

바른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곧은 교사들의 목을 단칼에 치고
교과서에 새겨진 참민주주의의 목을 조를 때

890만 비정규직 2년짜리 노예목숨도 부족해
4년짜리 노예, 영원한 비정규목숨들을 양산해
자본에겐 횡재를 민중에겐 살아도 죽은 목숨을 선사하겠다고 했을 때
가진 자들만을 위해 모든 법률을 개악하겠다고 했을 때
항복하지 않으면 어떤 인도적 지원도 할 수 없다고 북의 동포들에게 엄포를 놓을 때
팔레스타인 학살 규탄 유엔인권위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질 때

알았다. 너희는 소수라는 것을
만인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만인을 죽음으로 내몰 잔인한 살인 정부라는 것을
폭력으로 밖에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더럽고 추악한 파쇼 정부라는 것을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농민빈민서민의 위기로 돌리려는
극악한 정부라는 것을

너희에겐 그 무엇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린 고통을 당해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너희라는 것을
보라. 미천한 자본과 폭력의 개들아
진실은 다시 모두가 잠든 새벽녘
가난한 삶의 현장에서 성난 불꽃으로 일어나
우리 모두의 나약한 가슴을 태우고
비겁과 나태를 밀어내고
양심과 도덕의 횃불에 다시 불을 당긴다
헐벗은 겨울 벌판을 정화하는 들불처럼
쥐새끼들을 몰아내고 병든 균들을 태워 없애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시대의 봄을 부른다

더 이상 오를 곳도
더 이상 내려 갈 곳도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없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쌓듯 망루를 쌓아갔던 열사들이여
그러니 일어서라
일어서서 이 차디찬 새벽을 그 뜨거운 몸으로 증거하라
우리가 그대들이 되어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더 이상 안주할 곳도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는
이명박 신자유주의 폭력 살인
반민중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에 결연히 나서도록
살아서 비굴한 목숨이 아니라
열사들의 영전에 자랑스런 이름들이 될 수 있도록
열사들이여 그 뜨거운 분노
그 뜨거운 함성, 그 뜨거운 소망을 내려놓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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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18:05

예술인복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자의 눈]예술인복지법 논의에 대한 기대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러한 논의가 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확장을 일궈내길 기대해 본다.
▲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러한 논의가 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확장을 일궈내길 기대해 본다.

1.
2005년 구본주 소송사건이 벌어졌다. 한 촉망받던 조각가의 사고사에 보험회사가 이윤을 이유로 무직자 취급을 한데 대해 문화예술계가 한 목소리로 대처했던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은 보험사가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면서 예술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은 한 사례로 남게 됐다. 그러나 당시 구본주 대책위 활동에 관여했던 이들은 이후 유사한 소송에 휘말린 예술가들의 연락을 수 차례 받으며 고민에 빠졌다. 소송의 전말과 대응논리, 관련서류들을 꼼꼼히 챙겨 건네줬지만, 구본주 작가 만큼의 지명도가 없는 예술가들이 별다른 사회적 지원 없이 보험사와 일대일로 마주해서 예술의 가치를 옹호해 내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꼭 소송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예술가들의 복지는 사각에 놓여있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은 몇몇 유명인사를 제외하면 무직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 일쑤다.

2.
2007년과 2008년 초반까지 몇몇 예술단체들이 모여 예술인복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영화산업노조가 일군 성과들에 대한 확인에서부터 프랑스와 독일, 미국을 비롯한 해외사례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례들을 검토하고 지금 현실에서 어떤 정책들을 제안해야 예술인복지를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 논의들은 ▲문화부예산 1% 이상을 문화예술인 복지제도 구축에 투자할 것 ▲문화예술인들이 4대보험이라는 사회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담기구를 설치할 것 ▲문화예술인들의 신분을 보장할 것 ▲문화예술 실업급여제도를 도입할 것 등을 비롯한 7대 요구사항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가칭 ‘문화예술인복지연대’를 전체 문화예술계에 제안하고 논의를 모아 정책에 반영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워크샵과 토론회, 대선정책 제안 등 유의미한 활동을 진행했음에도, 문화예술계 내에 전면적인 논의구조 확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3.
11월 26일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은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개최의 요지는 예술인복지 대한 근거를 법으로 규정해 예술인들도 사회복지제도의 틀 안에 포괄할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토론회에서는 예술인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발표와 함께 구체적인 법안에 대한 제안, 법을 제정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재단측은 문화예술계의 논의의 장을 확산하기 위해 2009년에는 정례회의를 통해 좀더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법은 사회구성원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창구일 것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흔히 이해관계 상충에 대한 조정노력이 실패했을 때 나온다. 예술인들이 저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복지에 진전이 없자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그만큼 예술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협소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숱한 논의와 정책제안과 호소들이 있었지만, 결국 상호부조를 기반으로 하는 반쪽짜리 예술인공제회마저 아직 제자리걸음인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4.
그간 예술인 복지에 대한 내용은 가난과 생활고로만 이슈화됐다. ‘예술가의 한 달 수입이 30만원을 넘네, 못 넘네’라는 소문들은 해마다 언론지상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불쌍한 사람들’로 인식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예술가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 역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복지혜택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예술인 복지에 대한 접근은 시혜성 정책이 아닌 권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간 오래도록 유포되어 왔던 예술가에 대한 왜곡된 인식들을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주망태가 되어 가정을 팽개치고 예술혼에 불타오르는 괴짜 예술가’ 상은 이제 걷어낼 때가 됐다. 예술가들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사회의 일원이자 생활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더 이상 자기세계에 갇혀 자폐적인 예술 활동만을 일삼는 것은 멈춰야 한다.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한 예술가상이 여전히 사실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수록 사회와 소통하는 노력은 더더욱 절실한 것이다.

5.
구체적인 필요가 조직되지 않으면 일의 추진력은 생기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문화예술인복지연대'의 활동이 한계를 보였던 것 역시 구체화되지 못한 예술계 내부인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술인복지법’은 그간 논의되어 왔던 예술인복지에 대한 논의들을 집약적으로 제기할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만드는데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논의과정에서 예술인들이 권리에 대해 구체적인 인식의 확장을 일궈내고 예술계 내의 담론이 풍부해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예술인복지법이 실현된다고 해도, 법 자체가 종착역이 될 순 없다. 법은 예술인복지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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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7 10:44

남장 문근영은 왜 비극적인가 - <바람의 화원>의 유사역사성과 역사성

<바람의 화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사역사성에 근거한 드라마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역사주의적인 이야기이다.
▲ <바람의 화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사역사성에 근거한 드라마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역사주의적인 이야기이다.

<바람의 화원>의 인기는 많은 부분 ‘유사역사성’에서 온다. 역사적 사실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의미에서 ‘팩션’(faction)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으로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사건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이런 종류의 작품은 역사성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람의 화원>을 두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역사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윤복이 남장 여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난센스에 불과하겠지만, 창작자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이 설정이야말로 <바람의 화원>이라는 이야기 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적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도대체 역사성의 재창조는 왜 이루어지는 걸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이야기는 인간과 여타 동물을 구분해주는 중요한 속성이다.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를 통해 반추하는 행위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성을 다시 구성하는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필연성에 포박당한 ‘자연적 존재’인 인간을 ‘문화적 존재’로 거듭나게 만드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최근 대중문화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유사역사성은 현실의 욕망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지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바람의 화원>을 보면서 조선시대에 대해 질문하는 건 절반만 옳은 태도처럼 보인다. 좀 더 정확하게 질문하려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오늘날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물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의 화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를 유발하는데,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가 신윤복의 그림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신윤복의 작품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시청자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원작 소설에 비해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더 많은 핍진성을 확보한다. 이 때문에 원작이 풍기고 있는 추리 소설 같은 긴장감을 드라마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드라마는 <취화선>이나 <스캔들> 같은 한국영화가 보여줬던 ‘인류학적 영화’의 전례를 따른다. 인류학적 영화는 바로 ‘우리 역사’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것’을 타자의 시선을 통해 관찰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게 이런 영화의 특징이다. 이를 통해 전통은 현재의 요구에 맞춰 재배열되고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분명 <바람의 화원>은 인류학적 시선을 통해 ‘우리 것’을 새롭게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오락성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이 보다도 제작자가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효과 때문에 이 드라마가 더욱 흥미진진해진 것 같다. 그건 바로 이 드라마가 소재의 특성상 ‘젠더’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듀나도 지적했듯이, 드라마로 제작된 <바람의 화원>은 원작소설과 같은 이야기구조를 가질 수가 없다. 그 까닭은 신윤복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숨겨놓았다가 이야기구조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활용하는 원작소설의 경우와 달리, ‘문근영’이라는 ‘여성’이 신윤복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는 처음부터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확실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젠더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이 젠더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드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말 그대로 이 드라마들이 젠더 문제와 관련을 맺는 건 그냥 소재가 그렇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드라마들은 젠더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바람의 화원> 방영분에서 신윤복의 형인 영복은 환각상태에서 ‘여동생’ 신윤복을 그린다. ‘여성’ 신윤복은 이처럼 현실에서 재현할 수 없고 판타지 속에서만 이미지화할 수 있는 대상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여성은 없다’는 정신분석학적 명제를 슬쩍 비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여기에서 신윤복에 대한 영복의 감정은 남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신윤복의 사연 때문에 발생한다. 말하자면 아주 굳건하게 ‘여성은 여성답게 살아야한다’는 발화가 이 지점에서 주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혐의는 정향과 윤복의 ‘연애’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성애를 환기시켰던 이 장면은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지극히 이성애적인 메시지를 전달했을 뿐이다. 결국 정향과 윤복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동성애는 이성애에 비해 ‘형이상학적인 사랑’처럼 그려지지만, 이는 바꾸어서 말하면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른 것’, 다시 말해서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제작진은 동성애를 표현했다기보다 ‘뮤즈와 예술가의 관계’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말했지만, 예술사적으로 본다면, 뮤즈와 예술가의 관계보다 더 확실하게 이성애적 욕망을 전제하는 경우는 없다.

<바람의 화원>은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젠더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 차원에서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말 그대로 그림자처럼 잠깐 나타날 뿐이다. 드라마는 시종일관 문근영의 남장을 ‘일탈’로 보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향에 대한 사랑은 나중에 ‘완성할’ 김홍도와 신윤복의 사랑이라는 ‘이성애적 관계’를 위한 미숙한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바람의 화원>이 보여주는 세계관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뛰어난 개인’을 방해하는 ‘나쁜 제도’에 대한 비판은 복지제도에 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공격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신윤복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젠더의 일탈’은 탁월한 개인의 재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비극성’의 요소로 그려질 뿐이다. 도대체 이 비극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는 여동생을 여동생이라고 부를 없는 영복의 슬픔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정향과 신윤복의 사랑이고, 마침내 여성으로 완결해야할 신윤복의 인생역정이다. 이처럼 <바람의 화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사역사성에 근거한 드라마이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역사주의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이렇게 현실은 질기게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1968년 생으로 문화이론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2002), 『들뢰즈의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2002),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2007) 등이 있으며 현재 경희대 영미어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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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7 10:07

예술은 예술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채널로써 ‘생태문화예술’ 하기

생태문화예술은 인간이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자연을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연의 구성원임을 깨닫는 것이다. 최병수 작가의 새만금 솟대.
▲ 생태문화예술은 인간이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자연을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연의 구성원임을 깨닫는 것이다. 최병수 작가의 새만금 솟대.

‘이것은 내 작품이요’라고 말하듯 작품에 찍혀있는 낙관은 본래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의 집을 찾은 한 화가가 기와 위로 휘영청 떠오른 하얀 달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림을 한 점 남겨놓았다. 몇 달 후 같은 풍경을 목격한 다른 손님이 그 그림을 보고 “아, 당신도 그렇게 보았습니까? 저도 당신과 같이 느꼈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여백에 글을 써넣고 자신의 낙관을 찍어 넣었다. 낙관은 당신과 내가 통하였다는 기록이었다. 이처럼 예술은 애초에 예술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예술은 소통의 수단이었다.

10월 23일 문화연대에서 ‘생태문화예술의 전망과 교육문화(임정희)’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은 생태문화예술의 개요를 짚어보는 시간과 생태예술의 거장 앤디 골드워시의 다큐멘터리 <Rivers & Tides - working with the time>를 보는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그 후 워크숍에 참여한 작가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예술이 종교와 진리의 영역에서 벗어나 독자적 발언권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기존 사회에 대한 반발로 가득했던 발언(예술작품들)으로 인해 예술가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 임정희 교수는 영화<타이타닉>의 잭 도슨(디카프리오 역)을 예로 들었다. “그들은 사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들춰냈죠. 창부를 그리고 노숙자를 그렸습니다. 이성보다는 반이성을 이야기했고, 인간 중심적 사고가 그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로써는 너무 앞서갔던 그들의 발언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베트남전을 목격한 세계는 예술가들이 쏟아냈던 인간에 대한 냉소와 비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 시기에 들어서 예술가들은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60년대 중후반 생물학(지금의 생태학)의 등장은 구축주의에 많은 영향을 줬다. 해체주의와 달리 대안적이고 긍정적 가치를 말하고자 했던 구축주의의 한 축을 생태론이 차지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은 그 존립 근거를 가지며 그들 역시 자연 안에서 소통하고 있다’는 생태론의 주장은 인간을 모든 만물의 중심이 아니라 ‘생태계’ 안의 내적 존재로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자연이 가진 긍정적 가치-개발보다는 보전, 집중보다는 분산, 차별 아닌 평등, 소유보다는 공유, 폭력이 아닌 평화-를 바탕으로 인간은 겸손과 절제, 타자에 대한 배려의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축주의는 본원적 가치를 지향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았기에 인간 내 계층, 집단, 민족, 성, 나아가 인간과 생태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보편성과 지속가능성을 가진다.

한편 20세기 중반에는 근대에 성립된 ‘부르주아적 공공영역’에 대한 재정의도 요구됐다. 임정희 교수는 부르주아적 공공영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부르주아적 공공영역은 현실적으로 신분, 계층, 성 등에 따라 분열되어 있는 개별영역들을 통일적으로 묶어내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였습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질서를 확립하는데 저항하거나 장애가 되는 것을 ‘사적인 것’으로 배제하고, 구성된 공공영역을 지속시키기 위해 법을 형식화했습니다. 나치가 집시의 문화를 악으로 규정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영역이 생겨나면서 공간에 대한 비판과 재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사적인 형태를 띠지만 비제도적인 형태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이 새로운 사회영역은 공간을 상호 연관적으로 사고하게 했다. 더불어 공공영역을 ‘다양한 주체들의 자율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가능성의 사회적 공공 공간’으로 재 정의하도록 했다. 

이 두 흐름의 교착 지점에 생태문화예술이 있다. 생태문화예술은 생태론 사고를 바탕으로 하며, 공공예술의 형태를 띠고 있다. 모두가 주체가 되고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있다는 연결망적 사고에 입각하여 예술가들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작품으로 끌어안는다. 노숙자-빈곤, 열대림-환경, 가정폭력-폭력의 일상화, 에이즈-동성애도 그들의 작업 주제가 된다. 요셉 보이스의 <7000그루의 오크나무>프로젝트, 허문 페기 딕스의 <가정폭력 밀크 초콜렛 포장지>프로젝트, 앤 필빈이 기획하고 키스 헤링, 신디 셔먼 등 5명의 작가가 참여한 <거리에서: 에이즈에 맞서는 예술> 등이 모두 이 영역에 포함된다. 국내의 <노숙자 프로젝트>, <변산반도 솟대 심기>, <움직이는 횡단보도 퍼포먼스>, <마석 프로젝트> 등도 공공예술이자 생태문화예술이다.

<예술가 이주 실험 프로젝트: #진안>에 참여할 작가들은 자신들의 근거지가 아닌 공간에서 행해질 진안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아무래도 저희들이 서로 다른 장르를 다뤘던 사람들이고 관심분야도 다들 다를 것 같은데 현장에서 이런 점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요. 또 서로가 잘 융합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상상기획연구소 이공경창씨가 물었다. 서로 다른 작업을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예술가와 현지인의 협업이 동상이몽이 되면 어쩌나하는 고민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임정희씨는 작가들의 이 같은 고민에 마석프로젝트를 하나의 성공적인 사례로 언급해주었다.

 “한센 병을 앓던 이들이 모여 살던 서울의 한 외곽 지역에 임대 중소가구공장들이 자리를 잡았고, 3D업종 중 하나인 가구공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터가 되었습니다. 가구공장 단지 한 가운데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요, 공장뿐인 그 지역에 학교 운동장은 유일한 휴식공간이었죠. 그런데 학교에서는 외국인노동자들이 학교로 들어오는 걸 싫어했어요. 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그곳에도 존재했던 거죠. 소수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곳에 계층을 형성한 겁니다. 그곳이 마석이었습니다. <마석 프로젝트>는 지역에 예술가들이 들어가서 작업을 하기 전에 먼저 친선 축구경기를 지속적으로 열면서 관계 쌓기를 했어요. 만나는 기회를 늘려가면서 각자의 입장을 듣고, 이해한 후에 공동 작업으로 운동장 꾸미기를 했죠. 예술가들이 고안을 해오면 지역 사람들이 함께 운동장에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채로운 이해관계를 보지 못하고 군사 개입하듯이 일을 벌려놓는 경우도 아주 많아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찾아가고 그래야겠죠”

생태문화예술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채널이었던 예술의 본질에 한 발 다가가는 시도이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자연을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연의 구성원임을 깨닫는 것이 생태문화예술이다. 예술가가 격리된 존재로써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생태문화예술이다.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만드는 사람과 잠재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것이 생태문화예술이다.

이번 워크숍은 상상공간기획소(구 소수자문화교육기획단)에서 <예술가 이주 실험 프로젝트: #진안> 프로젝트 진행에 앞서 10월 21일부터 나흘간 진행한 것의 일부였다. <예술가 이주 실험 프로젝트: # 진안>은 지난 3년 동안 상상공간기획소에서 진행했던 공공 예술 프로젝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골교육문화 프레임을 만들어보고자 기획되었으며, 음악, 미술, 영상 등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워크숍에는 이광준(진안상상센터 기획자), 송성희(귀농통문 편집위원), 임정희(문화연대시민자치센터 소장,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김달수(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소장) 등 생태 철학, 공공예술, 문화교육 분야 전문가들이 강연자로 참여했다. 워크숍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확정한 후 작가들은 11월 경 함께 진안에 내려가 현장 답사를 할 예정이다. 

 


* 2008-10-24 오후 6:27:37 컬처뉴스 박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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