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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09:58

프랜차이즈에 저항하라

[편집자가 독자에게]삶을 왜곡하는 획일화에 반대하는 것이 진보다
안태호 편집장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어린이대공원에 종종 산책을 갑니다. 집이 근처인 탓도 있지만 서울시내에서 그만한 녹지를 누릴만한 곳이 넉넉치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자주 가려고 부러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어린이대공원은 전면 보수공사로 뒤숭숭합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과 각종 이름모를 장비들이 빈번하게 드나들며 누런 먼지를 풀풀 날리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 매우 아쉽게 생각하던 차에 지난 주 큰 맘 먹고 공원 산책을 갔습니다. 그런데 공원 복판 새로 지은 건물에 패밀리마트가 들어섰더군요.

제게 공원 매점에 관한 각별한 추억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공원 내 상권이 뻔한 상황에서 구멍가게들과 패밀리마트가 경쟁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지요. 제겐 그 장면이 공공기관이 자본에게 자기의 자존심마저 내어 준 것처럼 굴욕적으로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겐 물을 사먹는다는 행위가 편의점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외국에선 물을 돈주고 먹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에 ‘설마 그럴리가’하던 반응을 보이던 이들이 스스럼없이 생수병을 들고 계산대로 가는 이미지는 24시간 환하게 불을 밝힌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느낌입니다. 이제 어린이대공원을 찾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비좁고 어둡고 어딘가 신뢰가 덜 가는 구질구질한 구멍가게 대신 쾌적하고 친절한데다가 없는 게 없을 그곳으로 몰리겠지요.

사실, 편의점 하나가 공원에 들어선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기에는 우리 삶은 너무 프랜차이즈에 익숙해 있습니다. 프랜차이즈는 사람들의 삶을 평균화된 그 무엇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지요. 우리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가서 와이드릴리즈로 개봉된 영화를 보고, 주말이면 이마트와 홈플러스에서 카트를 밀며 쇼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삶의 패턴에 진입해 있습니다. 동네 빵집들은 하나같이 파리바게뜨나 크라운 베이커리 등으로 간판을 바꿔달기 시작했고 작은 슈퍼들도 점점 편의점의 화사한 ‘편의’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술집도, 커피숍도, 전자제품 가게도 서점도 모두 마찬가집니다. 작은 것들의 고군분투는 ‘규모의 경제’에 눈깜짝할 사이에 휩쓸리고 마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인터넷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작지만 참신한 기술력으로 자신을 어필했던 회사들이 어느 새 거대기업에 팔려 이름마저 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의 영업방식을 보면 왜 이리 재개발 방식과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산참사 이후로 각종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뉴타운 개발방식이 결국 원주민들이 다시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여러 매체와 통계를 통해 확인되고 있지요. 원주민들을 내쫓고, 다시 재개발 지역을 넓혀 그 지역의 주민들을 또 내쫓고 하는 이 악순환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순 없습니다. 프랜차이즈 영업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기업형 프랜차이즈는 소형점포 업주들에게 수많은 희생을 강요합니다. 결국 그 희생 위에서 프랜차이즈 업체는 더욱 몸집을 불리고 가입자를 늘려나가게 되지만, 이게 지속가능한 형태일 리 없지요.

지속가능하지 않은 프랜차이즈의 범람 속에서 우리 생활이 어느 새 뉴타운 재개발과 한 치도 다름없는 방식으로 몰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원주민들이 점점 외곽으로 몰리고 다시 쫓겨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프랜차이즈의 대세화는 주민들의 경제와 생활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프랜차이즈의 물결은 삶의 방식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에서는 고객과 아르바이트생의 관계만 있습니다. 주인과 단골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이전처럼 서로 삶의 결을 파악하고 나눌 수 있는 종류의 관계는 아니겠지요. 삶은 더욱 건조해지고 관계는 더욱 팍팍해집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더 비슷비슷해지겠지요.

백무산 시인은 언젠가 명절날 한 자리에 둘러앉은 친척들이 밥상머리에서 정치를 주제로 쌈박질을 해대는 소란스러움을 견디는 것이 이 시대의 진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사장님도, 비정규직도, 농민도, 가정부도, 우파도, 친미파도, 붉은 머리띠를 매어본 이도 등장해 저마다 소란함을 보탭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치적 입장에서는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소란을 증폭시키지만, 똑같은 물건들과 똑같은 서비스들을 소비하는 획일화된 삶의 방식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요.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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