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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4 08:32

그 많던 미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편집자가 독자에게]배순훈 현대미술관장 취임, 미술계 왜 침묵하나
                                                                                                                                      안태호 편집장
기무사 미술관을 얻는 대가로 미술계가 관장에 대해 침묵을 지키기로 했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궁금증은 커져만 갑니다. 그 많던 미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국군 기무사터 구 본관 건물.(사진 문화관광부)
▲ 기무사 미술관을 얻는 대가로 미술계가 관장에 대해 침묵을 지키기로 했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궁금증은 커져만 갑니다. 그 많던 미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국군 기무사터 구 본관 건물.(사진 문화관광부)

“한자로 쓰면 못 알아볼 거 아냐?”
“그럴까?”
“에이, 그래도 한자로 써야지”

인사동의 한 전시장 앞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이 방명록을 적으며 나누시던 말씀입니다. 전시는 보는 둥 마는 둥 하셨지만, 잠시 전시장 앞에 있던 저를 전시장 지킴이로 혼동하셨는지 “배정완이는 없나?”라고 묻기도 하시더군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배정완 작가는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취임한 배순훈 씨의 아들입니다. 아, 이제 찾아가시려 해도 늦었습니다. 전시는 3월 2일에 끝났거든요.

생각보다는 전시장이 붐비거나 하지 않아 나름 안심(?)을 했습니만, 흔히 말하는 ‘얼굴도장’이 아닌 ‘방명도장’을 찍으려는 분들의 인생까지 제가 탓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좀 안쓰러울 따름이지요.(행여 개인적 관계에서 오신 분들이라면 사과를 드려야겠지만, 저도 그 정도 판단은 할 줄 압니다.) 자의든 타의든 능력 있는 아버님을 둔 죄로 배정완 씨도 권력의 톱니바퀴 사이에 엮이게 됐네요. 배순훈 신임관장이 미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인과 아들이 동원되는 와중에, 배정완 씨의 이번 전시는 아버님의 ‘알리바이’로 작용한 셈입니다.

배순훈 관장은 현대미술관장직에 응모하게 된 계기를 묻자 "서울대 경영대 교수분들의 모임이 있는데 미술관 발전을 위해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고 밝히셨지요.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요. 언제부터 경영대 교수분들이 한국 미술계를 그렇게 걱정해주시며 사령탑 노릇을 하셨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순훈 관장님, 참 주옥같은 발언을 많이 남겨주셨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어차피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인데 보수나 그런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라고 하셨더군요. 졸지에 미술계는 자선사업의 대상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아, 다음 말씀도 중요합니다. “미술관이 기업들의 상품디자인 경쟁력의 원천기술을 제공하도록 하겠다”고 하셨거든요. 삼성미술관이나 성곡, 아트선재 등 기업미술관 관계자가 한 말이 아닙니다. 제가 잘 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임 관장님이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몇 해 전 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았습니다. 미술관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심각한 내홍을 겪었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재정자립도의 압박을 받으면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 책임운영기관이 민영화로 가기 위한 전초단계가 아니냐는 의혹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미술관 노동조합에서 배순훈 관장 임명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더군요. “국립현대미술관 노동조합은 신임 관장의 미술관 발전을 위한 실천방안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하면서, “신임 관장의 역할과 능력에 많은 기대와 성원”을 보낸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몇 가지 상황을 나열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미술계 내의 모든 분들이 신임관장에 대해 만장일치로 ‘기대와 성원’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그렇지 않은가요? 미술계는 평소에도 말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악의적으로 말하자면 뒷공론이 무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다양한 논의들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집단행동도 잘 일궈내는 편입니다. 미술품에 양도세를 부과한다는 발표에 갤러리들은 동맹휴업을 감행했습니다. 온갖 비리와 추문으로 얼룩진 미술장식품 제도에 문제가 많아 공공미술로 전환한다고 했더니 미술인들이 탄원서를 쓰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청회장에서 집단적으로 실력행사를 해 정책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미술은행과 관련해서도 숱한 논란이 벌어졌던 것은 여러분도 익히 봐오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왜 이리도 조용한 것인지 잘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자리가 가진 상징성이 그렇게 사소한 것이었을까요. 딴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임 김윤수 관장이 얼토당토않은 억지이유로 해임되었을 때도 몇몇 단체를 제외하면 미술계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이 문제가 코드인사 따위를 넘어선 미술계에 대한 분명한 모독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신임관장에게 ‘많은 기대와 성원’을 보내고 있는 현대미술관 노동조합도 그때는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미술계는 오랫동안 기무사부지에 현대미술관 분관을 들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 문제에서도 미술계의 ‘단결력’은 힘을 발휘해 인사동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해 전시를 열리고 하고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한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성사될 듯 성사될 듯 하던 기무사 미술관은 올해 들어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급물살을 탔습니다. 물론, 저간의 노력과 논의가 일궈낸 성과겠지만 미술계가 권력자의 입만 바라보는 ‘권력 바라기’가 되어가는 것만 같아 맘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신임 관장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기무사 미술관입니다. 설마, 기무사 미술관을 얻는 대가로 미술계가 관장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기로 약조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더더욱 궁금증은 커져만 갑니다. 그 많던 미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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