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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2 한독협, 공부하자!
  2. 2008.10.31 '여자 김기덕'의 냉혹하고 불편한 시선 - 이한나, 《슬리핑 뷰티》 (1)
2008.12.12 10:22

한독협, 공부하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⑦] 맹수진 영화평론가

맹수진 영화평론가
▲ 맹수진 영화평론가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고 ‘상영’된다고 그것이 그 영화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건강한 피드백이 없다면 감독 개인의 차원에서도 영화산업 전체의 차원에서도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만나본 사람이 독립영화비평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맹수진 영화평론가다. 맹수진 씨는 한독협 운영위원뿐만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 소위원, 영화제 심사위원 등 독립영화의 안팎에서 꾸준하고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어쩌면 독립영화계의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도 비판의 날이 가장 서 있는 인터뷰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정 어린 충고가 담긴 인터뷰 시작해 본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아쉬움이 좀 남는다. 10주년 기념 영화도 만들고 포럼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했는데 행사가 너무 회고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올해의 독립영화’, 독립영화인들을 쭉 살펴보면서 한독협의 출범 의의라든지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에 관해 나름대로 잘 정리하는 시간이긴 했다. 문제는 지금 정세가 많이 변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과거에 한독협이 정부와 대립하는 단체였다면, 지난 10년은 한독협이 제안하는 사업을 정부가 많이 받아 들였던 시기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많은 사업이 이루어졌고, 독립영화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많은 지원을 받다 보니 NGO가 갖고 있는 긴장이 좀 없어진 느낌이다. 옛날에는 허리띠 졸라매는 게 기본이었는데 최근 10년 동안은 어떻게 보면 좀 배부르게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한독협의 역할이 너무 사업에 치우쳤고 정책 연구에는 소홀했다.

그게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가.

정권이 바뀌면서 많은 사업이 축소되고 있다. 다른 방향에 대해서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와 싸워야 하는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이 없는 거 같다.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는 정책 개발이다. 그런 이야기가 10주년 사업에서는 별로 없었다. 굉장히 많은 사업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액기스가 좀 빠진 것 같다.

영화, 사랑하고 끔찍하다

처음부터 숨 가쁘게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웃음)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영화평론가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 위원과 <무비위크> 스탭 평론가로 활동했다. 또 예술영화 전용관 하이퍼텍나다에서 2주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기획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와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에서 활동을 했다. 전주영화제에서 6년 동안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독립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서독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5년부터다.

많은 일을 한다. 영화평론가로서의 삶은 어떤가.

평론가로서의 삶이라, 그건 뭐 다 짐작할 것 같은데 연애하는 느낌이다.(웃음) 연애하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또 너무너무 끔찍할 때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독립영화에 있고 가장 싫어하는 영화도 독립영화에 있다. 충무로 상업영화들에는 안정적인 틀이 있지만 동시에 답답하고 고루한 면이 있다. 독립영화 중 그걸 벗어나는 영화, 예상치 못한 영화를 만나면 진짜 신난다. 남들이 모르는 뭔가를 내가 발견한 느낌, 정말 좋다.

그럼 끔찍할 때는 언제인가.(웃음)

충무로에서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아닌 영화는 냉정하게 시장에서 버려진다. 근데 독립영화의 경우 함량 미달인 영화도 있는데 독립영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어떤 목소리를 내야할지 갈등하게 된다. 특히 ‘힘들게 만들고, 양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으니까 욕하기 보다는 격려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갈등은 심해진다.

그걸 잘 표현하는 타입인가.

난 외교적인 화법을 잘 구사하지 못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맘속에 있는 말을 결국 드러내게 된다. 싫은 영화나 그 감독을 만나면 표정관리도 안된다. 뒤에서는 욕하면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영화 잘 봤다고 할 수도 있는데 난 맘에 안 드는 작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앞에 앉아 있다가 서먹해지는 상황도 많이 있다.(웃음)

민주화를 꿈꾸던 자유주의자

영화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니면서다. 그 때 내가 1주일에 한번씩 들렀던 것이 종로에 있던 코아아트홀이다. 또 라이브러리를 회원제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회사는 다녀야했다. 나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웃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도 빨리 모으려고 했다.

"독립영화 비평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적으로 비평가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년에 한독협에 비평분과가 처음 생긴 거다"

왠지 학창시절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거 같다.

내가 89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정치조직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몇 달 동안 안 들어오고 그러니까 집에서 학교도 못 가게 했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듯 맞은 적도 있었다.(웃음) 근데 그땐 몰랐는데 그 시기에 학생운동을 하다 영화 쪽에 들어온 사람들이 되게 많다.

영화에서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발견한건가.

그때 영화로 방향을 틀면서 남들에게 공식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동안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투쟁했다면 이제는 영화를 통해서 문화운동을 해 보겠다’고 말이다. 그 즈음에 문화담론이 굉장히 활성화 되면서 문화를 통해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시류에 내가 묻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가만히 나를 되돌아보면 뼛속깊이 자유주의자고 개인주의자였던 것 같다.

얘기가 점점 흥미로워진다.

학창시절 끊임없이 사회 운동을 하면서도 조직이 ‘나’라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못 견뎠다. 난 너무나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인간으로 조직이 원하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근데 그때는 조직이 개인을 억누른다는 생각을 차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비조직적이고 쁘띠부르주아적이며 나약한 인간이라는 자기학대를 끊임없이 했다. 조직의 이익이 있고 목표가 있을 때 나의 이익과 관심은 뒤로 빠지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개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겠다.

점점 힘들어졌다. 연애도 깨지고 부모님과도 갈등이 심화됐다. 나는 너무 힘든데 조직의 논리는 개인을 보듬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회의가 들면서 내가 감성적인 인간이고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됐다. 결국 무엇을 택하든지 내가 좋아하는 거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책 읽고, 영화 보고, 글을 쓰는 걸 하게 됐다.

영화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평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딱히 평론을 하려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냥 막연히 영화를 해 보고 싶었다. 사실 논문 마치면 쓰려고 구상해 놓은 시나리오도 있다. 만날 사람들한테 하는 말이 ‘나 논문 끝내고 미디액트 등록할거야’다.(웃음) 내가 상업영화를 만들 건 아니지만 그냥 개인 비디오로 장롱 영화라도 만들고 싶다. 결국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로 세상을 본다는 건 또 하나의 글쓰기인 것 같다.

독립영화?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

언제 본격적으로 평론을 하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전주영화제를 하면서부터다. 처음에 영화 공부를 할 때는 현장 비평보다는 한국영화사를 새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그런 학문적인 관심이 많았다. 근데 전주영화제에서 단편영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책을 한 권씩 쓰는데, 그 때 현장의 영화들, 그때그때 나오는 영화들에 대한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독협과 인연을 맺은 건가.

2005년도에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이 연락을 해 왔다. 전주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쓴 글을 보고 제안해 온 것이다. 영각 씨가 다른 데서 글 쓰는 사람들과 독립영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영각 씨가 바쁜 사람인데도 보면 되게 바쁜데도 독립영화에 대한 글들은 꼬박꼬박 챙겨 읽는다.(웃음) 그때 2005년도 서독제 예심을 봐 달라 해서 인연을 맺게 됐다. 2006년에도 예심, 2007년에는 본심, 올해 다시 예심 심사를 했다. 그러다보니 서독제  집행위원도 하고 한독협 운영위원도 하게 됐다. 옛날에는 영화보고 글 쓰는 거에 만족했는데 한독협과 인연을 맺다 보니 독립영화가 내 울타리가 되었다. 나의 놀이터라고나 할까?

독립영화란 놀이터가 재미있나.

일단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에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전에 주류 영화에 대해 글을 쓰긴 했었는데 그렇게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영화들은 재미있는데, 대학원에서 배운 서구이론들을 영화들에 재밌게 적용시키지 못했다. 미국영화나 스페인영화에 대해서 내가 써봤자 같은 문화적 공감을 갖는 그 나라 사람들만큼 못쓰지 않겠나. 그래서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구라’ 치는 거 같고.(웃음)

독립영화에 대해 글을 쓸 때는 ‘구라’를 안 치나보다.(웃음)

내가 독립영화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관심을 가졌던 이슈들, 사회문제들이 독립영화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넓게 보면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내가 옛날에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겪었던 문제들이 독립영화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더 재밌게 할 수 있다.

한국 독립영화 비평이 활성화됐다고 생각하나.

어느 정도 이뤄졌다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취약하고, 절실한 문제들이다. 사실 그렇다. 독립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게 돈이 안 된다. 주류 평론가 중에 독립영화에 관심이 있으니까 비평하겠다고, 심사하겠다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두 번 단기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하려면 힘든 부분이 있다. 월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일을 해도 돈을 받는 일은 없다. 독립영화계에서 살려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은 리뷰를 써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면 삶에 타격이 있다.(웃음) 어찌 보면 이게 독립영화계가 해결해야할 문제다.
 
독립영화 비평이 활성화 되지 않은 건 평론가의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독립영화는 분명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라는 일반적인 잣대로 봐야할 부분이 있고, 독립영화라는 특수성으로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걸 다 이해하면서 글을 써야만 정말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그러려면 독립영화를 많이 봐야 한다. 영화를 정말 사랑해서 많이 본 사람들의 글에는 깊이가 있고 향기가 있지 않나. 근데 독립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립영화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글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독립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해결책으로 고민한 것은 무엇인가.

독립영화 비평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적으로 비평가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년에 한독협에 비평분과가 처음 생긴 거다. 정책 단위가 필요하고,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비평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에서 가장 깨져야 할 화석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적인 올바름이 있다면 다소 못 만들어도 용인이 되고 상영이 되고,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
가 되는 것이 이제는 깨져야 한다"


독립영화 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

그건 독립영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영화 저널이 없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다. 한독협이 비평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는 없었다.(웃음)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나마 전에는 독립영화 비평은 필요하니까 외부 비평가들한테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는 식이었지 한독협 내부에서 비평가들을 육성하는 건 없었다. 근데 그런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영각 씨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진행하는 독립영화 정기상영회 ‘해피투게더’를 진행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세미나를 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서독제 자원활동가나 데일리 기자로 쓰면서 조금씩 글을 쓸 기회를 준다.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독립영화 비평 자원을 키워가자는 논의가 나온 게 최근 2, 3년 사이다.

한독협 비평분과에는 몇 명의 평론가가 있나.

8명 정도 가입되어 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데 잘 안되고 있다.(웃음) 다 자기 일들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자꾸 일에 치인다. 난 영화 같이 보고 세미나 하고, 비평을 하는 계획이었다. 근데 계획대로 잘 안됐다. 현재 한독협 내에서 비평분과에 요구하는 일들, 예를 들어 인디스페이스 리뷰, 10주년 기념 책자 등 외부에 돈 주고 하기 힘든 일들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서 진행 할 거다.

독립영화 비평의 최전선에 있다. 이번 서독제 출품된 작품들의 경향에 대해 말해 달라.

단편은 지금까지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중심적으로 심사한 건 단편보다는 장편인데, 장편의 경우 올해 굉장히 센 영화들이 많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지금까지 의례적으로 상영되던 성격의 작품들이 많이 빠졌다. 지금까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흔히 얘기되는 영화들은 기본적인 미학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이 상영돼 왔다. 난 그게 가장 불만이었다. 소재 차원에서 독립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만의 미학을 담은 영화들을 선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극영화가 많고, 다큐멘터리 중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을 욕먹을 각오하고 뺐다.

심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

아무래도 6명이서 토론을 하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타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난 반이 절대 찬성하고, 반이 절대 반대하는 논쟁적인 영화가 본선에 올라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반대가 너무 심해서 안 되는 영화들이 있고, 상대적으로 무난한 영화들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근데 ‘그 정도면 괜찮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안틀어도 무방하다는 말 아닌가.

심사 과정이 치열했겠다.

올해 비장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지금까지 서독제가 한 해를 정리하는 독립영화 축제 같은 느낌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포괄했다면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편수를 과감하게 줄이고 고만고만한 영화들은 빼고 우리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들로 가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근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거 같다.

그 과정에서 끝까지 관철시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에서 가장 깨져야 할 화석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올바름이 있다면 다소 못 만들어도 용인이 되고 상영이 되고,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가 되는 것이 이제는 깨져야 한다. 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얼굴의 영화들이 등장 했다. <농민가>를 연출한 윤덕현 감독도 처음 들어보는 감독이고, <워낭 소리>의 이충렬 감독도 방송 쪽에 있던 사람이다. 그런 영화들이 자극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영화도 논란이 예상되는 영화들이 많다. 사람에 따라서는 보기 힘들어할 영화도 있다. 물론 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올해 장편 경쟁 같은 경우 조금 선명하게 가려고 노력했다.

틀을 깨는 새로운 영화, 철학을 찾아서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건가.

마츠모토 토시오가 쓴 <영상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다. 이 사람의 말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어느 시대에나 뛰어난 작품은 있다. 그러나 그 뛰어난 작품을 발굴하는 눈이 없을 뿐이다’이다. 그게 맞는 말 같다. 분명히 새로운 시각을 가진 영화들이 있는데, 그게 어떤 관성에 의해, 지금까지 상영해온 영화의 미학적 틀이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누락될 수 있다. 현재 어디에서 새로운 영화가 등장하고 있는지 눈을 돌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주로 하는 일을 통해서 독립영화를 바라보고 걱정하고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난 평론가이기 때문에 비평의 차원에서 고민이 있다. 주류영화도 마찬가지인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관행이 독립영화에도 있다. 솔직히 감독들과 많이 가까워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창작과 비평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근데 독립영화인이라고 통칭되면 그게 더 어렵다. 사실 사람들이 독립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을 되게 부담스러워 한다. 특히 안 좋게 본 영화는. 근데 이제 써야 할 것 같다.

한독협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달라.

공부하자.(웃음) 한독협이 약간은 비대해졌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몸과 손발이 커진 것에 비해 머리는 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외연이 확대되고 한국영화계에서 한독협이라는 단체의 입지도 과거와 다르게 매우 커졌는데 거기에 걸맞는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창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을 했었는데, 결국 유야무야 됐다. 만약 정책을 갖고 했다면 그게 끊어져서는 안 된다. 또 그 때 예술, 독립영화 의무 상영에 관한 ‘마이너쿼터’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럴 때 한독협이 정책과 철학을 갖고 영화 문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사업보다는 정책 강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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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11:11

'여자 김기덕'의 냉혹하고 불편한 시선 - 이한나, 《슬리핑 뷰티》

이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인물들의 가장 수치스러운 비밀을 훔쳐보는 자의 외설스런 호기심과 함께, 절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도록 강요된 자들의 당혹감이 혼재한다.
▲ 이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인물들의 가장 수치스러운 비밀을 훔쳐보는 자의 외설스런 호기심과 함께, 절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도록 강요된 자들의 당혹감이 혼재한다.

참으로 냉정한 영화다. 감독의 고운 얼굴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 앳된 모습과 도저히 어울리지않는 세상을 향한 그녀의 냉혹한 시선이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폭력은 세상에 가득하고 그것은 세대를 통해 반복될 뿐 아니라 한 공동체 안에서 돌고 돈다는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비범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도처에 편재하는 폭력을 바라보는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다. 영화에는 인물들의 지극히 내밀한 곳까지 파고들어가는 농밀한 직접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폭력을 응시하는 냉정한 객관성이 공존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인물들의 가장 수치스러운 비밀을 훔쳐보는 자의 외설스런 호기심과 함께, 절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도록 강요된 자들의 당혹감이 혼재한다. 이 영화를 절대로 편안하게 볼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 영화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폭력에 경련을 일으키는 이들은 약하고 자기방어력이 없는 존재, 특히 여성들이다. 이들이 다양한 얼굴을 한 폭력을 겪어가는 과정은 일종의 성장 포물선을 그린다. 어린 시절 소녀가 경험한 첫 섹스의 느낌, 의붓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젊은 여성의 섹스 경험, 그리고 불모가 된 자신의 몸으로 치매 걸린 아버지의 자위를 도와야 하는 나이 든 딸의 경험. 각 여성들이 겪는 섹스는 성과 폭력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내면서 성적인 호기심이 폭력에 대한 고통과 절망으로 변질되고 나아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에 둔감해지는 불감증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어린 소녀에서 가임기 여성으로, 그리고 생산력이 제거된 세 여성을 연결하며 드러내는 성과 폭력으로 뒤엉킨 트라우마는 그녀들의 세대적 경험의 전형으로 제시되는 동시에 한 여성의 인생유전을 서로 다른 나이대의 세 여성의 이미지로 나눠놓은 것으로 읽게 한다. 그녀들에게 이성과의 접촉은 곧 폭력의 경험이다.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제시되는 이 ‘성/폭력’의 연관성은 그녀들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구조화된 폭력의 알레고리로 제시된다. 그래서 영화는 다시 한 번 불편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겪는 성과 폭력의 트라우마가 그 가공할 폭력성 속에서도 때로는 기이하리만치 탐미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녀들의 성/폭력 경험은 순백의 옷이나 천 위에 꽃잎처럼 번져가는 선홍색 피의 이미지로 표상된다. 그래서 소녀는 사촌오빠의 흰 옷에 붉게 스며드는 피를 보며 “예쁘다”고 중얼거리고 아버지의 아이를 가진 젊은 여성은 기묘한 가족 관계로 꼬인 남학생의 피묻은 교복에서 묘한 설렘을 경험한다. 백색 위에 번져가는 핏빛은 순수의 상실을 드러내는 일종의 얼룩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탐미적으로 제시됨으로써 폭력의 공포와 성적 흥분을 모호하게 뒤섞는 도착적인 미적 체험으로 나타난다.

영화는 세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사촌> <겨울잠>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소제목이 붙은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소녀, 젊은 여성, 중년여성 세 여성이 등장한다. 세 개의 이야기를 이어붙이면서 영화는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일상화된 성/폭력이라는 테마와, 한 여성의 성장과정에서 통과의례처럼 겪는 성/폭력을 통해 폭력의 연쇄적 경험으로서의 성장이라는 테마를 교묘하게 포개놓는다. <나의 사촌>에서 생기발랄한 소녀의 표정과 삶에 지친 무표정한 소녀 엄마의 얼굴은 뚜렷이 비교된다. 과거를 회상하는 엄마를 통해 우리는 아마도 과거의 그녀는 지금 그녀의 딸만큼이나 생기 넘치고 호기심 많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피로한 얼굴로 바꾸어 놓았을까? <겨울잠>에서 치매 아버지를 돌보며 기르던 오리떼를 살처분하는 중년여성 이례의 망연자실한 얼굴은 보는 이를 얼어붙게 만들고 꼿꼿이 발기한 늙은 아버지의 자위까지 도와주어야하는 그녀의 끔찍한 현실에 이르면 그 참혹함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만삭의 배 아래로 흐르는 붉은 피를 보면서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수진의 모습에서는 아예 할 말을 잃고 만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그녀들이 허공을 향해 던지는 이 무섭도록 텅 빈 표정은 당연히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이쯤에서 영화의 불공정함에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말 여성들은 폭력과 섹스(性)의 분리불가능한 교접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걸까? 침묵하는 육체에 폭력의 상흔을 아로새김으로써만 그녀들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낼 수 있는 걸까? 여러모로 영화는 관객을 힘겹고 고통스럽게 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관객에게 폭력의 죄의식을 전이시킴으로써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폭력에 떨고 있는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외설스럽게 만드는 도처에 존재하는 거북한 시선들. 그리고 그녀들을 비추는 거울들. 이 모든 응시는 우리의 관음증을 책망하며 그녀들의 고통 속에서 시각적 쾌락을 느끼는 관객을 단죄한다. 그녀들의 고통에서 우리는 구조화된 도착적 쾌락에 빠지지만 그녀들이 관객에게 응시를 돌려보내는 순간 우리는 죄의식과 함께 불편, 불쾌함을 느껴야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그녀들의 고통을 들여다보기로 한 이상 감당해야할 도착성이다. 반복하건대 영화는 지독히 불편하고 불쾌하다. 이 영화에서 모종의 죄의식 없이 그저 불쾌감만을 느꼈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절반만 본 것인지도 모른다.


* 이한나 감독의 《슬리핑 뷰티》는 현재 홍익대 인근 시네마 상상마당, 서울 중구 인디스페이스(중앙시네마3관), 파주씨너스 이채에서 상영 중이다.

- 이 원고는 한독협 내 비평분과 창작물로 인디스페이스 소식지와 <컬처뉴스>에 동시 게재 됩니다.


 * 맹수진은 고려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영화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전주국제영화제 비평가 위원회에 참가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본지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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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oolgi.egloos.com BlogIcon 줄기 2008.11.01 09:35 address edit & del reply

    글 잘봤습니다.^^ 슬리핑뷰티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어요.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