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12.11 만화, 詩를 찾아가다
  2. 2008.12.09 김현이 본 만화, 오규원이 본 만화
  3. 2008.11.11 만화란 장난인가 - 1950년대: 漫畵史(만화사) 연구의 출발
  4. 2008.10.08 오늘, ‘대안만화(alternative comics)'를 말한다 - [대안만화를 말한다 - ⓛ]왜 대안만화인가 (2)
2008.12.11 11:23

만화, 詩를 찾아가다

 2008 노동만화전 들꽃 13, 14일 성미산 마을학교서(안태호 기자)

노동만화전 들꽃이 12월 13일과 14일 성미산마을학교에서 열린다.
▲ 노동만화전 들꽃이 12월 13일과 14일 성미산마을학교에서 열린다.

노동만화네트워크 들꽃의 2008년 정기전이 ‘만화 詩를 두드리다’라는 주제로 12월 13일(토)과 14일(일) 양일간에 걸쳐 열린다.

올해 8번째를 맞은 노동만화전 들꽃은 마포 성미산마을의 대안학교를 전시장소로 잡았다.. 학교의 다목적실을 전시공간으로 바꿔 사람들 속으로 조용히 찾아들어갈 계획이다. 전시에는 강우근, 문동호, 배영미, 황우, 정재훈, 최정규, 전선봉, 김현숙, 신성식, 김규정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할 예정. 주제전에서는 시를 통해 상상한 만화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어떤 작가는 일러스트 컷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는 시를 읽고 떠오는 상상을 스토리로 엮어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1년 동안 작가들이 활동하며 창작한 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들꽃의 젤소미나는 “작년에는 상자를 활용해 주제, 소재로 사용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실험적인 시도들을 했다. 올해에는 작가들이 시를 통해 상상한 이미지와 스토리를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주제로 잡아봤다.”고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자세한 정보는 2008 노동만화전 들꽃 홈페이지 참조. 문의 032-611-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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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 12:17

김현이 본 만화, 오규원이 본 만화

[한국 만화비평의 쟁점 ⑦]1970년대: 김현과 오규원의 만화비평들(김성훈_만화평론가)

김현이 1977년 1월 『뿌리 깊은 나무』에 발표한 「만화는 문학이다」는 만화가 지니는 대중성과 예술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 김현이 1977년 1월 『뿌리 깊은 나무』에 발표한 「만화는 문학이다」는 만화가 지니는 대중성과 예술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만화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은 1960년대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대본소 체제는 굳어졌고, 심의제도는 공고해졌다. ‘검열’은 필수가 되었고, ‘불량만화’에 대한 기사도 끊임없이 나왔다. 이 같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1970년에 만화관련 논문이 최초로 발표(1)된 것은 만화연구에 있어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후 1970년대를 거치며 만화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주로 ‘아동과 만화’의 관계를 좆아 교육적 측면만 다루었던 반면 미적 탐구나 장르적 특징 혹은 사회적 영향력 등에 대한 접근은 보이지 않아서 시대적 한계를 드러내었다. 요컨대, 1970년대 만화에 관한 학문적 접근도 1960년대 주요 교육관련 잡지에서 발표된 만화관련 글들의 시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셈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만화를 비평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는 현실이 되었다. 비평을 실을 매체도 희박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기, 만화에 대한 공평무사한 시선은 정작 만화계가 아닌 문학 분야에서 발원되었는데, 그에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는 김현과 오규원을 들 수 있다.


김현과 오규원, 그들이 ‘만화를 본다’는 의미는

김현과 오규원은 모두 문학 현장에 있던 문인들로서, 이들에게 만화는 어쩌면 생경스러운 장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문학평론가와 시인이 만화를 본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 화젯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문학계에 있어서 두 사람이 지니는 무게감이나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그 파장은 더욱 커지게 된다. 당시 문학계 주변에서 만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규원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전략) 지금은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김현 등과 어울려 무협영화도 보러 다니고 만화 이야기도 자주 했었는데, 대개 엄숙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싫어해요. (후략)”(2)

사실, ‘시인’과 ‘평론가’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들은 우리 시대 엄숙함을 대표하는 단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헌데, 김현과 오규원은 만화를 즐긴다는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이와 같은 세상의 통념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즉, 두 사람이 만화를 보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그 자체로써 남다른 영향력이 생기는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그들도 만화를 본다.’는 사실에서 만화에 대해 세상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특별한 의미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주류 예술이 주는 권위와 안락함에 아랑곳없이 하위문화의 대표격인 만화를 당당히 즐길 수 있는 이들의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김현이 1977년 1월에 발표한 「만화는 문학이다」에서 나타난 다음의 이야기로부터 찾을 수 있다. 

“만화를 즐기면서도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문화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려는 생각은 건강한 생각이 못 된다. 나는 만화를 분명한 문화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화를 문화적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여 그것을 멀리하는 것은 실제의 문화 현상의 중요한 한 부분을 떼어내 버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만화도 역시 중요한 문화적인 장르이며, 그것은 그것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만화를 문화적인 것으로 대하지 않는 당대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반대하는 그의 주장은 지금에 와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19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견해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를 ‘문화’로서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점은 시대적 상황의 이해 속에서 새롭게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만화비평의 지평 확대

김현과 오규원의 만화에 대한 남다른 시각은 모두 만화를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장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김현의 경우 이러한 생각은 발표하는 글마다 드러내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만화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다. 그가 발표한 대표적인 만화비평들은 대체로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글 제목

발표매체

발표시기

만화도 예술인가

서울평론

1975년 5월

만화는 문학이다

뿌리깊은 나무

1977년 1월

시사 만화에 대한 단상

관훈클럽

1977년 5월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에로티시즘

박수동 만화집 <고인돌>

1978년


프랑스 유학시절에 겪은 경험을 소개하며 만화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예술의 한 형태임을 파악하고 있는 「만화도 예술인가」에서 김현은 만화가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의 구조를 갖고 있는 상징체계로서의 대상”임을 인식한다. 이러한 ‘프랑스의 경험’은 「시사만화에 대한 단상」에서도 이어지는데, “학문적인 면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소르본에서 만화 연구로 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또, 오락만화에 대해서는 저항감을 느끼면서도 신문에 나오는 한 칸짜리 시사만화를 보는 데는 저항감이 생기지 않는 현상에 대해 “한 칸 만화를 즐기는 것은 세련된 비판 능력과 고도의 상징 이해능력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대중예술로서 만화를 즐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처럼 만화에 대한 신선한 관점은 박수동의 ‘고인돌’에 대해 다루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에로티시즘」으로 연결되어  박수동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노골적’인 측면으로부터 오히려 “남성 위주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미와 성의 해방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찾아냄으로써 만화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시킨다.

오규원이 발표했던 만화비평들은 1981년에 한권의 단행본으로 엮어져 <韓國漫畵의 現實>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었다.

오규원의 경우는 비평활동의 ‘지속성’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1979년 4월부터 12월까지 『뿌리 깊은 나무』에 만화비평을 연재했는데, 이것이 우리 만화비평사에서 월간잡지 지면에서 최초로 시도된 ‘만화비평 연재’였다. 또한 그 지면이 대중문화 비평지의 선구자격인 『뿌리 깊은 나무』였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그의 비평은 전체 대중문화의 거시적인 지형에서 만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도가 되었던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연재 당시 그가 비중 있게 다룬 ‘표절(剽竊)’에 대한 문제는 만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부분이었다.

1979년 9월에 발표한 「잘 베낀 사람과 잘 만든 사람」에서 그는 당시 만화계에 만연해 있던 일본만화의 표절에 대해 “만화도 원작자가 있는 예술양식의 하나”임을 강조하며 “원작자를 밝힐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화가일 수가 있으며, 원작이 어떤 것인가를 알면서도 ‘글․그림 아무개’, 또는 ‘아무개 각본․아무개 그림’이라는 투로 이름을 버젓이 달도록 용납하는 편집자가 어떻게 좋은 아동 잡지를 만들 수가 있겠는가.”라며 작가의식이 사라진 현실을 비판했다. 요컨대, 만화 역시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표현장르이며 그러한 사실을 작가 자신이 먼저 인식하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 이전시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측면으로서 문화적인 관점에서 예술로서 만화를 승화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창작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1970년대 김현과 오규원이 발표한 비평들은 세상의 편협한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만화를 비평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에 무엇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표현장르로서 만화를 하나의 예술로 인식하게 되는 기반이 되며, 이러한 가치관은 동시대 대중들에게 새로운 사고를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한편으로 본업이 문학이었던 이들 두 사람의 시선에서 시작된 만화비평은 관습에 얽매여 있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으며, 짧게는 1960~70년대, 길게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만화를 옭아매었던 ‘불량’이라는 시대적 코드에 맞서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될 만화비평의 대중화에 대한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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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70년도에 서울대 교육대학원의 김윤주가 석사논문으로 발표한 「아동만화가 아동화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나라 대학에서 만화를 다룬 최초의 논문이다.

 (2)「말, 삶, 글」, 『문학정신』 1993. 3, p33


 

[관련기사]
'오노레 도미에' 알아봤던 시대의 선각자
'불량만화' 담론의 역사적 기원
만화란 장난인가
대본소와 검열, '불량'의 낙인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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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11:28

만화란 장난인가 - 1950년대: 漫畵史(만화사) 연구의 출발


1955년 『아리랑』 10월호에 발표한 「우리나라 漫畵의 發達史」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화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 1955년 『아리랑』 10월호에 발표한 「우리나라 漫畵의 發達史」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화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김성환은 ‘고바우’ 캐릭터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만화가다. 그는 1949년,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작품을 통해 만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에도 『만화신보』, 『육군화보』 등의 잡지에 작품을 연재하는 한편, 단행본으로 「도토리 용사」 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직후 『학원』에 발표한 『꺼꾸리군 장다리군』은 상당한 인기를 모았고 후에 영화(1)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55년에는 자신의 대표적인 캐릭터 ‘고바우’를 『동아일보』에 선보이기 시작했다.(2) 이후 1950년대를 지나며 만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김성환이 비평가로서의 면목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에는 『아리랑』, 『여원』, 『청춘』, 『만화춘추』등이 대표적인 대중잡지라 할 수 있었는데, 김성환은 이들 잡지에 자주 만화와 관련된 글을 발표했다. 그 중에 특히 1955년 『아리랑』 10월호에 발표한 「우리나라 漫畵(만화)의 發達史(발달사)」와 1957년 7월 『동아일보』에 발표한 「만화란 장난인가」라는 글이 주목을 끈다.


1) 우리나라 漫畵(만화)의 發達史(발달사)

이 글이 실렸던 『아리랑』은 1953년에 창간된 본격 대중잡지다. 특히, ‘만화신인공모전’을 개최하여 만화와 상당한 인연을 맺은 잡지인데, 김천정, 오룡 등이 이곳을 통해 등장하게 된다. 또한, 이정문, 윤승운 등 소위 ‘명랑만화 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들도 활발히 활동했던 공간이기도 하다.(3) 그렇기 때문에 만화평론이 실린다 할지라도 별스러워 보일 것이 없는 지면이었고, 오히려 만화평론을 통해 당시 대중잡지의 폭넓은 기획력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성환이 정리한 우리나라의 만화발전 양상은 시기별로 크게 일제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 시기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로 정리되어 있다. 그는 일제시대에는 “언론계에 대한 탄압이 심했으므로 출판물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만화가가 활발히 활동할 공간이 제한적이었음을 지적하면서 특별히 『신동아』 『별건곤』 『야담』 등 당대 대표적인 매체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던 김규택, 노심선, 김규선 등의 작가를 소개한다. 해방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5년 동안 부침을 계속한 매체와 이를 통해 데뷔한 작가들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얼마 후 김소운 씨가 만화행진이란 타이틀로 월간만화잡지 형식의 타블로이드 OO판을 발행케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순만화지가 되었으나 불행히도 2호를 발행하고 나서 폐간을 당하고 말았다. 서울신문사에선 주간서울이 발간되어 여기에 시사만화와 연재만화 서 참판을 그린 임동은 씨도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소학생지엔 김의환 씨가 또한 활약을 하였고 이때에 창간된 연합신문엔 필자가 연재만화를 실었다. 만화행진의 뒤를 이어 김용환 씨가 발간케 된 만화뉴스엔 신동헌 씨가 새로운 화풍을 보여주어 인기가 있었고 비판신문에 이병주 씨가 시사만화를 연재한 것도 잊혀지지 않는다.(중략) 소년, 진달래, 어린이나라 같은 어린이 잡지에도 만화가 많이 게재되었다. 김용환 씨가 발행하고 김의환, 신동헌 제씨와 필자가 관계한 만화뉴스는 그 후 3만 5천부란 주간지 최고의 발매부수를 유지하게끔 발전하였으나 사건이 있어 분열이 되고 김용환 씨가 만화신문을 새로이 창간하고 만화뉴스에 임동은 씨가 주동이 되어 나왔으나 얼마 되지 아니하여 6.25 사변이 일어나 일시 암흑기에 들어가게 되었었다.”


마치 근대문학의 출발을 주도했던 1920,30년대 동인지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과 같이 만화계에도 매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가들이 동맹을 맺어왔음 보여준다. 연도에 대한 구분이 없이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서 주로 기억에 의존해 정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제시기부터 당대까지 우리 만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만화뉴스의 발행부수가 3만 5천부였다는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는 점인데, 최근 잡지 및 출판시장과 대비해보더라도 일반 단행본이 아닌 정기간행물의 발행부수로서 결코 만만치 않은 부수임을 알게 되고, 이는 곧바로 당시 만화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한편, 한국전쟁은 다른 분야의 경우에서처럼 만화계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김성환은 이 시기에 “임동은 씨는 작고하였고 신동헌 씨는 시골에 내려가 버렸고 이병주 씨는 일선으로 나가버렸다.”고 지적하면서 전쟁 시기 작가들의 신변에 일어난 변화를 전한다. 전쟁 후에는 신진작가들이 합류하면서 바야흐로 만화전성기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차후에는 외국으로도 진출하는 작가가 등장하고 내용적으로도 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발표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 있다.

1978년에 열화당에서 발간한 『고바우와 함께 산 半生: 漫畵家의 自傳的 人生論』에는 당시까지 김성환이 발표한 주요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제시대부터 1956년 당시까지 우리나라 만화역사를 정리한 이 글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우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화사의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매 시기 작가, 매체, 작품 등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한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연대는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작가라는 신분을 통해서 경험한 사실들을 기초로 하여 기억에 의존해 정리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구체적인 연도가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일제시대부터 진행되어 온 우리 만화의 역사를 최초로 정리한 글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를 ‘20여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이도영의 작품이 『대한민보』에 실렸던 1909년대를 우리 만화의 출발로 삼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간지에 만화가 발표되면서 대중적으로 확산된 1930년대를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2) 漫畵(만화)란 장난인가

김성환은 시사만화가로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직설적인 언어보다 풍자와 해학을 통한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웃음과 감동 그리고 통쾌함을 선사해왔다. 이와 더불어
비평가로서는 만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부분도 있어서 그의 남다른 식견을 엿볼 수 있다. 1957년 『동아일보』 7월 5일자에 발표한 「漫畵(만화)란 장난인가」는 만화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글은 의문문을 통해 글쓴이의 의지가 더욱 강력히 전달되도록 제목이 붙여졌다. 그만큼 짧은 분량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우리말 사전에 실렸던 만화의 ‘의미’에 대한 부분이다. 당시 사전에는 ‘漫畵(만화)란 名詞(명사)로서 그 뜻은 아무 생각 없이 붓이 돌아가는 대로 그린 그림, 장난으로 그린 그림, 漫筆畵(만필화)’라고 실려 있다고 전하면서 이에 대해 “실로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탄식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表現樣式(표현양식)을 갖춘 給畵(급화)’로 기술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아무 생각 없이 붓이 돌아가는 대로 그린 그림’이라는 무책임한 해설에 대해 그는 “유독 우리말 사전에만 ‘아무 생각 없이 막 그린 그림’으로 씌어져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강하게 반문하고 있다.


한편, 글의 말미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표적인 해외만화의 사례를 들어 ‘만화’에 대한 적절한 사전적 정의를 촉구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막 落書(낙서)를 하듯이 장난삼아 그린 그림으로서 英國 漫畵家(영국 만화가) ‘데임’은 六千萬 名(육천만 명)의 讀者(독자)를 가졌고, 美國(미국)의 ‘디즈니’는 그것으로 映畵(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賞(상)을 十八(십팔) 회나 받았고 佛蘭西 漫畵家(불란서 만화가) ‘에고․앨’은 장난삼아 그린 그림으로 一九五二年度 國際平和賞(1952년도 국제평화상)을 받았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선 漫畵(만화)의 歷史(역사)도 짧고 認識(인식)도 不足(부족)한 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모호하고 無責任(무책임)한 說明文(설명문)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묻고 싶다. 이후의 사전 刊行(간행)에 있어선 이런 專門分野(전문분야)에 걸친 用語(용어)에 對(대)해서도 좀 더 誠意(성의)를 베풀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역사적 측면에 관한 연구의 출발이 그 기원(起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인식해본다면 어원을 따져 만화의 의미를 재고시키는 김성환의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만화사 연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가로서 ‘김성환’이라는 이름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아니 앞으로도 우리나라 만화계를 대표할 만큼 큰 무게감을 지닌다.(4) 그것은 지난 45년 동안 연재된 ‘고바우’의 시간들이 부여하는 부피만으로도 충분할 뿐만 아니라 창작자로서 보여준 다양한 활동(5)들이 그 밀도를 더한다. 하지만, 만화가로서의 무게감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인해 비평가로서의 활동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김성환은 1950년대를 지나 1960,7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만화와 관련된 글을 발표한다. 1968년에 발표한 「만화예술론」이나 1970년에 발표한 「空間派 漫畵家(공간파 만화가) 스타인버그」, 1977년에 발표한 「만화주인공 이야기」 등이 지속적인 비평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6)


1930년대 최영수가 유럽만화의 역사와 개별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통해 만화비평의 출발을 보였다면, 그로부터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1950년대에 김성환은 비로소 우리나라 만화사를 정리하는 단계를 밟게 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순한 사건의 정리 차원을 넘어 우리 만화의 역사가 연대(年代)를 이루게 되었음을 인식케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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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래명 감독에 의해 1977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2)‘고바우’가 등장하는 4단만화는 이후 1980년에 『조선일보』, 다시 1992년에는 『문화일보』로 지면을 옮겨서 2000년도까지 45년간 연재되었다.

(3)『한국의 잡지 출판』(2003, 늘푸른소나무) p263 재정리.

(4)『르네상스 김승옥』에서 한영주는 소설가 김승옥이 만화가로 활동한 면면들을 정리한 바 있는데, 여기서 김승옥과 김성환의 절친한 관계를 설명하며 1950,60년대 당시 김성환의 위치에 대해 “김성환은 당시 서른이 채 안 되는 젊은 나이에 이미 시사만화계의 일인자로 군림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5) 김성환은 만화가단체(현대만화가협회)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시사만화 특유의 반골정신이 빛나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발언도 지속적으로 해왔다.

(6) 김성환의 발표한 비평들은 『고바우와 함께 산 半生(반생): 漫畵家(만화가)의 自傳的 人生論(자전적 인생론)』(열화당, 1978)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단행본으로 발행된  바 있다.

 

 
                                                        2008-11-07 오후 7:09:08   김성훈 _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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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8 09:15

오늘, ‘대안만화(alternative comics)'를 말한다 - [대안만화를 말한다 - ⓛ]왜 대안만화인가

대안만화는 언더그라운드만화, 독립만화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로버트 크럼의 자화상.
▲ 대안만화는 언더그라운드만화, 독립만화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로버트 크럼의 자화상.

'대안만화'는 만화에 꽤나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만화문화의 발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원소스멀티유즈’가 대세로 이야기되는 시대, 상품에 포섭되지 않는 만화문화를 만들기 위한 논의의 첫머리에 대안만화가 있다. 컬처뉴스는 우리만화연대의 도움으로 대안만화의 개념과 국내외 현황, 향후 방향과 과제에 대해 총 6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왜 대안만화인가
② 대안만화란 무엇인가
③ 외국의 대안만화
④ 한국의 대안만화
⑤ 한국 대안만화의 방향과 과제
⑥ 마무리 대담


‘대안만화’라고 하면 반응은 대부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왠지 칙칙하다는 느낌 때문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더 가까이 들이대는 반짝이는 눈빛이다. 두 가지 반응 모두 나쁘지 않으며 그 어느 쪽의 반응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서 생각한 결과이건, 또는 막연한 선입관과 느낌의 결과이건 간에 이러한 반응은 약 세 가지 종류의 자문에 대한 답변이다.

첫 번째로, 왜 지금인가? 즉, 지금 이러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럴만한가 아닌가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대안만화란 것이 이러한 상황판단에 비추어보건대 필요한 어떤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제기된 문제의식의 밑바탕에 흐르는 것으로, 여타의 다른 논의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를 선택할만한 필요성과 중요성이 무엇일까라는 의심이다. 이 선택 속에 어떤 다른 정치적인, 또는 개인적인 목적은 없는가라는 것이 그런 류의 의심이 될 수 있겠다.


왜 대안만화인가

의심만으로 팽배한 의심을 적극 환영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의심의 기조가 냉소와 비웃음일 경우이다. 저자의 이름만 가리면 결코 누가 썼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 구분점이 없는, 읽을 땐 그럭저럭 넘어가지만 덮으면 그대로 잊혀지는 모래성 같은 만화들의 홍수 속에서 글이나 작품이 지녀야 할 진지성, 그 힘에 대한 자성은 사라지고 있다. 논평과 비평이 문학처럼 다루어졌던 시기는 희미한 자취만 남기고 있으며, 거창한 환경주의는 아니더라도 있으나마나 하다면 차라리 펜을 들지 않겠다는 결심마저도 조롱되는 시대가 아닌가. 무얼 끄적거리건 ‘산업’이라는 논리 앞에 탈색되어 버린다는, 작품과 비평이 사라진 자리에 장사꾼의 깃발만이 날린다는, 아니 오히려 그 깃발이 문예를 광장에서 쫓아냈다는 이런 비아냥과 냉소, 패배주의는 그닥 생소한 것이 아니다.

읽을 만한 국산 창작물의 축소, 책을 구입하기 위해 총총히 뛰어가던 가쁜 발걸음도 추억이 되어버리고, 그에 대한 가슴 뛰는 열정도 흩어지고, 비평도 글쓰기도 무용지물이라는 비관, 그 속에 있는 냉소, 비웃음, 그것이 정말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이 패배주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필자의 마음에서도 꿈틀댄다. 돈이 최상위가치가 되고 있는 이곳에서, 문화에 대한 가치절하는 우리를 상처 입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잘했지만, 남은 못했기에? 천만의 말씀. 남도 못하지만, 나도 만만치 않게 못했다는 자성이 필요하다. 이런 총체적인 문예와 문화 자체에 대한 가치하락 - 문화산업이라는 기치 하에서만 겨우 살아나는 - 에의 책임은 모두의 어깨위에 나눠 지어야할 무거운 짐이다.

아트 스피겔만의 자화상


어디나 편재하는 냉소적인 비웃음에 맞서, 그곳에 대안만화를 자리 잡게 하는 건 어떨까?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절망할 때 비로소 튀어나오는 희망처럼, 막막하고 기나긴 밤의 끝 무렵에야 서서히 드러나는 희미한 여명처럼, 그렇게 대안만화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앞서 대안만화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그의 일반적 정의는 무엇이며, 언더그라운드 만화(underground comix), 독립만화(independent comics) 등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위에서 이야기했던 맥락과 맞닿아 있는 것인가?


대안만화는 무엇인가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미국에서 1960년대 중반, 즉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많은 유행을 불러일으켰던, 만화가가 스스로 생산, 출간했던 만화들을 지칭했던 용어이다. 196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미국의 히피 반문화운동은 베트남전(1953-1975) 반대운동, 민권운동,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신봉, 여성-동성애자 해방운동과 맞물린 것으로서 언더그라운드 만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류만화라고 볼 수 있는 슈퍼 히어로물과는 전혀 무관한 이 개별 출판된 책들은 히피숍이라는 유통망을 통해 대중들에게 팔려 나갔고, 표지는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컬러 채색했고, 내용물은 흑백 인쇄였다. 주독자층은 성인이고, 1950년대의 만화검열에 대한 복수를 하듯이, 모든 금기된 주제들, 특히 섹스, 폭력, 마약 등의 주제를 거리낌 없이 다루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히피들의 수도라고 불릴만했는데, 이곳으로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이 이사를 오고 <잽(Zap)>이라는 작품을 1968년에 출간하면서 만화가들에게 충격을 준다. 이 작품은 곧이어 만화가들이 연재하는 잡지로 성격이 바뀌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길버트 셀튼(Gilbert Shelton), 클레이 윌슨(S. Clay Wilson), 스페인 로드리게즈(Spain Rodriguez) 등이 이 시기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근 이십여 년을 끌었던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면서 히피운동이 서서히 잦아들자 그에 따라 언더그라운드 만화도 서서히 잦아든다. 하지만 이 흐름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고, 1980년대에 제 2의 도약을 기다리게 된다. 이는 60~7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영향 하에 성장한 대표적인 작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0년 아트 스피겔만(Art Spegelman)이 자신의 부인인 프랑소와즈 몰리(Françoise Mouly)와 더불어 <라우(RAW)>라는 예술적인 만화를 지향하는 잡지를 내놓았고, 여전히 영향력이 살아있었던 이전의 주요 멤버중의 하나인 로버트 크럼이 앞장서서 내놓은 <Weirdo(와이어두, 1981)>도 마찬가지이다. 이 만화들을 사람들은 “포스트-언더그라운드(post-underground)," "독립만화(independent comics)" "작은 프레스(small press)",  "뉴 웨이브(new wave)," 또는 ‘예술 코믹스(art comics)” 등의 다양한 용어로 부른다. 유럽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1990년대부터 아소시아시옹(Association)이라는 작가 연합체이자 출판사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주류 만화와는 다른, 흑백의 만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윌 아이스너의 자화상


이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명칭이 ‘대안만화’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다른 용어들에 비해 이 용어가 훨씬 더 광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더그라운드’라는 표현은, 마치 여기에 속하는 작품의 향유자는 항상 소수로만 머물러야 한다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만화라는 표현으로서의 완성이나 매체에 대한 고민보다는 시선의 독특성과 비판의식, 아마추어리즘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준다. ‘인디펜던트’가 추구하는 독자성과 독립성이라는 의미 역시 나쁘지 않지만, 기존의 시장체계와 완전히 별도라는 의미까지 확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팔리고 읽히기 위해 책을 만드는 이상, 시장의 규칙과 논리로부터 완벽한 독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80년대의 대안만화는 기존의 만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작업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류만화의 완성도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대안만화라는 용어는 상당히 광범위한 대상을 지시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용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세야 말로, 즉 기존에 존재하던 다양한 관습들에 대해 반기를 드는 자세야 말로, 모든 표현매체의 작가들이 시도해보는 일반적인 예술가라는 이미지와 하등 다른 것이 없다. 만화가로서, 시나리오작가로서, 또는 비평가로서 어디에 설 것인가? 라는 선택의 문제이다.
 어느 입장에 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특정 양식과 형태, 내용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포괄적인 입장이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이, 오로지 각 작품, 각 만화마다 대안만화일 수 있고, 또는 아닐 수 있는, 한편으로 넓고, 다른 한편으로 좁기 그지없는, 그런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 ‘돌파구’로서의 대안만화

2008년, 우아하게 말하면 ‘만화의 장(champ)’, 약간 더 시장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만화판’의 현황에 대해 말해보자. 크게 만화문화(생산과 소비양태), 교육(대학과 기타 교육 프로그램), 정책(각급 기관과 단체)과 산업으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오늘날 우리가 주로 만나는 만화는 학습만화, 인터넷만화, 신문만화이다. 학습만화는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에 따라가는 것이고, 다양한 출판사와 어린이 독자를 만화소비의 주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만화 소비양식은 여전히 무료가 우세하다. 문화적 산물의 무료화에서 유료화라는 개념적 전환은 좋은 작품을 만날 가능성을 늘려줄 수 있다. 불법스캔 업로드 규제가 강해지면 불법유통은 약간씩 사라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창작만화 판매량에 있어 높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지는 못하다. 만화대여점을 통해 만화를 빌리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만화를 구입하는 양은 조금 늘었을지도 모른다. 
 

잡지 '라우(RAW)'의 표지그림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교육과 정책 분야는 골격이 먼저 탄생하고 그 속에 피와 살을 돌려야 하는 우리의 구조적 발상상, 여전히 이도 부족하고 저도 부족하다는 아우성에 파묻혀 있다. 대학은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며 대안을 모색하고, 정책을 내어야 할 곳은 인력과 자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총체적인 담론의 부재이다. 잡다한 신변잡기나 부서이동의 문제를 제외하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만화가들의 참가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만화, 그 자체에 대한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가? 어떤 비판의 끝날을 자기 스스로에게 향하며 비판 속에 성숙해지겠다는 당당한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누구도 다른 누구를 전문적으로 폄하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대안’만화는 커녕, 만화 자체에 대한 어떤 논의도 부재하다.       

‘기존 만화에 대한 비판’이라는 그럴듯한 문구는 사실 그다지 커다란 제한점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기존의 만화를 자신의 작품보다 선행하는 작품으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여기서 비판이라는 측면은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즉 이미 완성되고 알려진 것들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내딛어 보는 것, 그것이 ‘좋은’ 만화라고 했을 때, 그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에 대한 논의들과 틀릴 바가 없다. 어찌 본다면, 지금의 현황이 어떠하고, 그러한 현실 인식하에서 어떤 작품들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모든 과정이 대안만화에 대한 논의가 아닐까?

 이는 너무 광범위하며, 너무나 광범위한 범위는 무용지물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제기될 수 있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다양한 문제제기들, 다양한 색채의 논의들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고집부려 본다. 논의와 담론 자체의 부재야 말로, 오늘날 대안만화를 이야기해야 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이기 때문이다. 어떤 담론도 적극적으로 제기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우리는 대안만화를, 달리 말하자면 어떻게 좋은 만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 본 기사는 우리만화연대(www.urimana.co.kr)에서 발간하는 <우리만화>에서 제공했습니다.






* 2008-09-02 오후 5:34:48  한상정 _ 만화평론가, 우리만화연대 회원

Trackback 0 Comment 2
  1. Favicon of https://axslayer.tistory.com BlogIcon Libertas 2008.10.08 09: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한마디로 만화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뜻이군요.

  2. Favicon of https://culturenews.tistory.com BlogIcon 컬처뉴스 2008.10.08 12:1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말 자체가 새롭지 않지만, 좋은 만화들의 운신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앞으로 연재될 글에도 관심가져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