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2.04 반칙왕에게 드롭킥을 날린다!
  2. 2009.01.19 박찬욱과 하정우의 친구들
  3. 2009.01.15 "한국영화 10년 흥망성쇠 담았다"
  4. 2008.11.05 상상 이상의 '센 영화'들을 기다린다 -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②]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2009. 2. 4. 17:00

반칙왕에게 드롭킥을 날린다!

[영화소개]류승완 감독의 선택, <캘리포니아 돌스>
<캘리포니아 돌스>는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4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의 선택 섹션으로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영화다
▲ <캘리포니아 돌스>는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4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의 선택 섹션으로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영화다

                                                        김나라 기자

액션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살기와 광기와 분노가 범벅이 되어 내는 살과 살, 혹은 살과 물체(?)의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져 몸서리쳐지고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이건 영화일 뿐이야, 음향 효과일 뿐이야’ 하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영화를 보곤 했다. 내가 너무 소심한 아이였을까. 지는 것이 싫었다. 어쩌다 축구 경기에서 한일전이 열리면, 올림픽 시즌이 되면, 하다못해 학교 운동회에서 우리 팀이 질라 치면 손발에 힘이 꽉 들어가고 전신이 긴장 되었다. 탄식과 환호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고 나면 내가 경기에 뛴 것처럼 지치곤 했다. 어른이 된 것인지, 무감각해 진 것인지 이제는 배우가 맞아도 아프지 않고 축구에 져도 눈물이 날 만큼 분하지가 않다. 액션과 스포츠의 세계를 이해 못하는 여자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캘리포니아 돌스(...All the Marbles)>(로버트 알드리치, 1981)는 오랜만에 이것이 영화임을 잊고 바짝 긴장해 좁은 영화관 의자에 앉아 몸을 움찔움찔하게 한 작품이다. 레슬링 경기를 접해 본 경험이라곤 친구 집에서 게임기로 한두 번 해본 것 밖에 없고, 링 위의 쇼는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가증스럽다고 생각하며, 과격한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가슴 한 켠 후련함을 느꼈다면 많은 다른 이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몰리(로렌 랜든)와 아이리스(비키 프레드릭)는 ‘캘리포니아 돌스’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시시한 게임을 하는 레슬러다. 그리고 그녀들 곁에는 언제나 “사치는 돈이 든다”는 말로 햄버거 따위로 끼니를 때우게 하는 매니저 해리(피터 포크)가 있다. 그들은 프로 무대로의 진출을 꿈꾸지만 ‘여성’과 ‘무명’이라는 타이틀은 반나체로 진흙탕에 뒹굴게 하는 굴욕을 주기도 하며, 악덕 프로모터 에디(버트 영)로부터 대전료의 일부를 떼이게도 하는 등 경제적 착취를 당하게 한다. 해리는 대전료를 떼인 분풀이로 에디의 벤츠를 부수고 도망치지만 그 덕에 경기 따내기는 더욱 힘들어 진다. 경기를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해리에게 프로모터들은 말한다. “관객들은 재미를 찾아오는 것이지 돌스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1류든 2류든 실력은 상관없다”

그러던 어느 날 돌스는 챔피언인 ‘톨레도 타이거스’와의 비공식 경기를 갖게 되고 심지어 경기에 이기고 만다. 경기에 진 것에 크게 불만을 품은 타이거스는 돌스와 다시 붙게 되길 기다리고 마침내 두 번째 시합을 갖게 된다. 결과는 돌스의 무참한 패배. 돌스와 해리는 알고 있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꼭 빼다 박은 레슬링의 세계에선 실력의 우위보다 링 위의 권력자 심판, 그리고 링 밖의 또 다른 권력자 관중들이 어느 편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현재 스코어는 1 대 1. 영화는 승부를 가리기 위해 막바지로 치닫는다.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기 위해 에디는 심판을 매수하고 해리는 관중들을 사로잡기 위한 기지를 발휘하며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돌스와 타이거스의 경기도 절정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레슬링 기술도 압권이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냥 멋지다!)

<캘리포니아 돌스>는 <키스미 데들리>로 프랑스 평단을 발칵 뒤집어놓았고,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준 로버트 알드리치의 마지막 작품으로, 사실 미국에서 개봉했을 당시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다. 하지만 레슬링 경기와 선수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탁월한 연출과 빼어난 촬영, 수준 높은 연기 등 여러 모로 매력적인 작품이다. 냉혹한 스포츠 비즈니스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알드리치 특유의 비판적인 시선이 들어있으면서도 재미와 감동을 놓치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 돌스>는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4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배우, 평론가, 감독 등 영화인들의 선택으로 꾸며지는 '친구들의 선택' 섹션에서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영화로 2월 12일(목) 저녁 7시 영화가 끝난 후에는 류승완 감독과 함께 하는 ‘시네토크’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지난달 29일 시작해 3월 1일 폐막하는 친구들 영화제는 '친구들의 선택'섹션 외에도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 '박찬욱, 오승욱의 최선의 악인들' 등 다양한 섹션과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다. 권선징악의 뻔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악인에게 드롭킥을 날리는 속 시원한 해피엔딩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류승완 감독의 선택을 믿는 사람이라면, 레슬링 팬이라면 적극 추천. 자세한 상영 일정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 참조.

그들은 프로 무대로의 진출을 꿈꾸지만 ‘여성’과 ‘무명’이라는 타이틀은 반나체로 진흙탕
에 뒹굴게 하는 굴욕을 주기도 하며, 악덕 프로모터로부터 대전료의 일부를 떼이게도
하는 등 착취를 당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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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19. 14:45

박찬욱과 하정우의 친구들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월 29일부터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오는 1월 29일(목)부터 3월 1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오는 1월 29일(목)부터 3월 1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김나라 기자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오는 1월 29일(목)부터 3월 1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올해 네 번째로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국내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고, 영화 다양성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의 모임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을 주축으로 열리는 영화제다.

올해는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란 슬로건으로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대표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전계수, 홍상수 등 영화감독과 안성기, 권해효, 하정우 등 배우, 그리고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시네마테크 친구들’이 직접 고르고 프로그래밍한 국내외 영화 총 26편이 소개된다. 

영화인들이 고른 작품을 소개하는 '친구들의 선택' 섹션에서 <선셋대로>(1950),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캘리포니아 돌스>(1981),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히스 걸 프라이데이>(1940) 등이 상영되며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 섹션에서는 <선라이즈>(1927), <분노의 포도>(1940) 등 1920~1960년대 할리우드 거장들의 작품 4편을 소개한다.

또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직접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최선의 악인들’ 섹션에서는 <밤 그리고 도시>(1950), <그랜드 뷔페>(1973), <구멍>(1960), <들판을 달리는 토끼>(1972) 등 6편이 상영될 계획이다.

배우들이 구매하여 기증한 영화를 상영하는 ‘천사들의 선택’ 섹션에서는 <무셰트>(1967)가 상영된다. 올해는 이나영, 김강우, 김주혁, 박해일, 신하균, 정재영, 하정우 씨가 참여했다.

더불어 관객들의 참여로 꾸며진 ‘관객들의 선택-우리 시대의 영화’ 섹션도 마련되어 있다. 이 섹션에서는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2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와 온라인 카페, 상영관 내 게시판 투표를 통해 1위로 선정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상영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총 30여 명의 영화감독, 배우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하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사진전’이 상영관 로비에서 열리며, 시네마테크의 현안들에 대해 토론하는 두 번의 포럼도 마련되어있다.

한편 영화제측은 지난 1월 14일(수) 오후 3시 인사동에서 박찬욱 감독, 전계수 감독,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홍록 서울아트시네마 사무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는 영화제의 취지와 시네마테크에 대한 후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프로그램 소개 및 2009년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문의: 02-741-9782(서울아트시네마)

영화제측은 지난 1월 14일(수) 오후 3시 인사동에서 박찬욱 감독, 전계수 감독,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홍록 서울아트시네마 사무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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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15. 11:24

"한국영화 10년 흥망성쇠 담았다"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낸 강성률 영화평론가 
                                                                                                                                         김나라 기자
강성률 영화평론가를 만나기 위해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광운대를 찾았다.
▲ 강성률 영화평론가를 만나기 위해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광운대를 찾았다.

한국영화는 위기다. 그 중에서도 영화비평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낮아져 있다.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는 영화에 대한 나름의 비평과 평론이 넘쳐나고 그 중에는 심도 있는 시각을 갖고 영화를 해석한 글도 꽤 찾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주간지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의 평론가의 짧은 글도 읽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비평 책을 낸 강성률 영화평론가를 만나보았다.

영화 관련 서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기에《한국영화, 중독과 해독》이라는 책을 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책에도 썼지만 비평가로 활동을 시작한 게 1999년부터니까 2008년까지 10년 됐다. 지난 10년 동안을 뒤돌아보면 99년 <쉬리>가 크게 흥행한 것을 시작으로 조폭코미디 붐이 일고 제작 편수도 늘고 시장 점유율도 올라가고 더 나아가 해외수출도 하게 됐다. 또 국제 유수 영화제 수상 소식도 많았다. 이러면서 한국영화가 유래 없던 엄청난 활황을 누리다 위기를 겪고 2008년에는 거의 몰락에 다가가고 있다. 이런 하나의 큰 10년의 순환이 보여서 그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비평가의 역할과 한국영화 경향, 영화 산업 이런 것들을 정리하는 글이 필요할 듯해서, 그간 발표했던 글 중 주제에 맞는 것들만 골라서 책을 엮게 됐다.

책에 언급된 영화들을 보면 가족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마초’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가장 보수적이라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장남으로서 주입되어 온 게 있어 그런 요소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은 장남의 특권도 있지만 막대한 책임감도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장남이라는 콤플렉스나 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한국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가진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 그것을 깨는 대안적인 가족을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 출판을 목표로 그런 내용의 책을 준비 중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코드가 맞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초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내가 마초적인 성향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 그 영화 안에 있는 여러 요소가 맞물려서이다. 조폭코미디의 경우 마초적인 면이 강한데, 그 안에서 왜 가부장적인 면을 다루나, 가부장적인 것들을 희화화하나 하는 것들을 주목하다 보니 옹호하게 되었다. 한국의 가족이나 학교, 종교 등은 가부장적인 구도가 핵심이고 그 틀을 깬다는 면에서 조폭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이다. <실미도>나 강우석 영화 같은 마초 영화는 노골적으로 비판도 했다. 아내한테 물어보면 정확히 얘기하는데 ‘노력하는 마초’라고 말한다.(웃음)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양육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하니까. 우리 윗세대의 마초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한다.

대안적 가족주의에 관한 새 책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짧게 소개해 달라.

올 해 안으로 나올 거다. 가칭이긴 한데 <가족으로 영화 읽기, 영화로 사회 읽기>라고 지었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반란은 어떻게 일어났나, 로드무비의 동성애 구조, 가부장제의 폭력, 자본주의 병폐, 유교적 시각, 한국적 남녀의 문제 이런 것들이 맞물려 있는데 그것이 왜 깨지고, 어떻게 깨지는가, 영화가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에 관한 책이다. 영화를 통해서 가족주의의 문제점을 밝히고 대안을 찾으려 했다. 

책을 보면 김기덕 감독에 대한 애정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외에 좋아하는 감독이나 작품에 대해 더 이야기 해 달라.

좋아하는 감독은 많다. 허진호나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아주 좋아하는 임순례, 이준익, 젊은 감독 중에서는 김태용, 나홍진을 좋아한다. 이창동 감독은 반반. 작품적으로 그 영화 세계관에 동조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일단 강우석 감독, 여성을 다루는 시각에서의 김기덕 감독, 강제규 감독의 영화도 옹호하기에는 문제가 있고. 지금 활동하는 감독 중에서는 그렇다. 홍상수 감독은 너무 반복해서 신선함을 잃은 듯한 느낌이 있다. 류승완 감독도 너무 과대평가된 면이 있는 것 같고.

김기덕 감독은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감독인 건가.

좋아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100% 좋아할 수는 없다. 장점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여성에 관한 시각에는 좀 문제가 있다. <시간>, <빈집> 등에서는 바뀐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전의 초기 작품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사회 저층민 시각에서 한국사회의 착취와 폭력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것, 상징적 코드로 풍부한 해석거리를 주는 것, 저예산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 여러 면에서 김기덕 영화는 높이 평가한다. 지금 같은 시기에서도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고, 해외에서도 꾸준히 반향이 있고.

<집으로>, <나쁜 남자>를 비교해서 페미니즘 비평의 불공정성에 대해 썼다. <집으로>의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 <나쁜 남자>에서의 남녀 관계를 비교하는 것은 비약인 것도 같다.

약간의 비약은 있다. 그건 인정한다. 초기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남성이 강제로 여성의 공간에 들어와서 결국 여성을 자기 뜻대로 만들어서 비주체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주로 페미니즘 비평가들이 했던 이야기다. 즉 여성을 비주체적으로 그렸다고 해서 영화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기존 페미니즘의 시각인 것이다. 그러나 이정향 감독의 이야기도 같은 구조인데도 이정향 감독의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모두 크게 보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같은 틀이다.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도 단지 김기덕 감독이 만들어서 다르다고 말하는 비평은 문제가 있다.
물론 다른 요소도 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는 폭력이 등장하고 이정향 감독의 작품에는 폭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정향 감독의 작품에는 폭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성률, 리토피아, 2008

<집으로>에 대해서 유교적 외할머니 상이라 비판한 면은 없었나.
거의 없었다. 비평도 좋았고 평점도 높았다. 찾아 봐도 한두 줄 정도의 조건이 있었지 그 외에 전면적인 비판은 거의 없었다. 영화를 만들 당시 감독의 진심을 호도하는 것은 아니나 감독의 손을 떠났을 때 잘못 읽힐 위험이 많은데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영화 비평의 위기는 세계적 추세인 것 같다. 영화가 산업이기 때문에 경기침체와 맞물려 더욱 큰 위기에 맞닥뜨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비평은 좀 더 학문적 영역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나?

영화뿐 아니라 비평 전반의 위기다. 지금은 누구나 비평가이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비평가의 글을 잘 안 읽게 되고. 가장 큰 이유는 비평가 내부에 있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영화 전공자가 많아지기도 하면서, 단기간에 너무 많은 영화 비평가가 양산 됐다. 영화평론가, 영화 칼럼니스트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실제로 영화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분야다.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급하게 글을 많이 쓰면서 기본적으로 비평에 풍부한 지식과 시각이 얕아졌다.

반대 측면은 영화학과 출신들이 영화 자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써먹으려는 글을 쓰려다 보니 대중과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한편으로는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종이 매체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 클래식, 미술의 경우 보고 말하기가 힘들지만 영화라는 매체 특성 자체가 보기 쉽고 말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자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글을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상태에서 이 영화가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반적인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은 명확하고. 특히 학생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관심이 학점, 취업에만 있다. 상당히 불쌍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의 전문성을 위해서 오히려 학문을 강조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긴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이 없다. 일간지 같은 경우 7-8매 정도의 청탁이 온다. 계간지만 어느 정도의 지면을 주는데, 영화 계간지는 없다. 문학 계간지에 끼어 들어가야 한다. 문학은 출판사의 홍보 효과가 있어서 그나마 계간지가 활발한데, 영화는 영화사가 계간지를 내지 않을뿐더러 낸다고 해도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판매 수익을 생각했을 때도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다. 짧은 글로 흐름을 잡고 그 후 긴 글을 통해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야 하는데, 누가 읽을 수 있을까. 긴 글을 읽을 독자가 과연 있을까. 그러다 보니 지면이 줄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으로선 가장 확실한 방법론이 페미니즘 비평인데, 영화 전공이 전문화되어 있자 않은 것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 비평이 진영도 폭넓고 확실한 이론 틀과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비평가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 하고 있다. 여성평론가 중 페미니즘을 기반에 두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평론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게 깊이 있게 한 방면으로 들어가서 전문적인 시각을 확보해야 한다는 면에서 공감한다.

영화 전공은 왜 전문화되지 않았나.

이전에는 영화학과가 중앙대, 동국대, 한양대 정도에 밖에 없었다. 그것도 제작 중심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유학한 사람들이 와서 영화 담론을 이끄는 역할을 했는데, 그들 역시 전문화된 분야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전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관여하게 되다 보니 지식이 얕아졌다. 또 얕아진 것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안주하게 된 측면이 있다. 그 밑의 세대가 흩어져서 전문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여전히 얕은 것 같다.

전문화 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나.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문화 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잘 하는 면을 보여줘서 살아남는 것인데, 현재는 한국 영화사에 치중되어 있다. 한국 영화사에서 장르나 근대화나 식민주의 등을 연구하는 사람은 많다. 오히려 비평을 덜 하게 되는 것 같다. 밑에 세대를 보면 비평을 하면 돈도 안 되고 힘만 들기 때문에 비평 하려는 사람이 적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비평분과에 대한 지원은 어떤가?

책 출판, 신진연구인력지원 정도가 전부인데, 막대한 돈을 제작이나 배급에만 지원하고 있다. 문학의 경우에는 막대한 지원이 비평분과에 이루어지고 있다. 영진위가 있기 때문에 문예진흥기금 신청은 아예 할 수가 없고. 영진위는 다 제작에 치우쳐 있고, 학술, 비평에 관해서는 지원이 없다. 비평, 학술 부분이 시장에서 얼마나 외면당하는지 뻔히 아는 사람이 영진위 위원장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엔 문제가 있지 않나. 우수논문지원 같은 경우도 어리석은 짓이다. 이미 학위를 따기 위해 낸 석사논문을 지원하는 일보다 새로이 논문을 내려는 사람을 위해 지원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다시 언급할 것도 없이 한국영화계는 위기에 처해있다. 극복 방안이 있다면.

제일 큰 위기는 부가 시장이 함몰되면서 왔다. 전에는 비디오, 케이블, 공중파 시장이 극장시장보다 배로 컸지만 이제 그 시장이 다 죽었다. 케이블 시장도 거의 끝났고 비디오 빌릴 곳도 없다. 대여점에 가도 수량도 그렇고 종류도 그렇고 빌릴 게 없다. 그 돈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 죄의식 없이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다운로드를 빨리 합법화시켜 거기서 나온 돈이 영화 제작비로 돌게 해야 한다.

최근 희망적인 게 IPTV 시장이다. 깜짝 놀란 게, 2년 전인가 모 IPTV회사의 기획위원이었는데 <미녀는 괴로워>의 경우 2천원, 3천원이었는데도 몇 만 단위로 봤다. 사실 나 역시 별로 안 볼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집에 홈씨어터를 갖춰 놓은 사람들도 많아 졌고, 특히 바쁜 직장인들이 퇴근 후 편하게 보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운로드 시장도 합법화 시켜서 대형 배급사가 판권을 사서 5:5로 수익을 나눠 그 돈을 다시 영화 제작으로 돌아오게 하는 구조를 만들면 위기에서 좀 벗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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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5. 18:29

상상 이상의 '센 영화'들을 기다린다 -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②]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한독협 10주년 인터뷰의 두 번째 주자는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그 역시 한독협의 역사와 자신의 인생이 구분가지 않는 10년을 살아왔다. 특히, 서울독립영화제와 인디포럼에 깊숙이 관여해 오면서 독립영화의 지형을 세세히 관찰한 그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독립영화 무한도전’을 연상케 하는 한독협 초기의 좌충우돌 시기부터 어엿한 정책의 주체로 목소리를 내게 된 시기를 지나 독립영화전용관을 가지게 된 지금까지. 때로는 활동가로, 때로는 제작자로 종횡무진 독립영화계를 누벼온 그를 통해 한독협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봤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 마디 해달라.

좀 짠한 마음이 들었다. 10주년 기념식 때 풍물놀이도 하고, 처음 사무실 오픈 할 때 동영상도 봤다. 감회가 새로웠다. 옛날에 고생했던 생각도 들고. 이렇게 커졌구나... 아무도 이렇게 커질 거라고 생각 안했던 것 같은데. 의지도 있고 열심히 한 것 같다. 예전에는 독립영화를 인정하지 않았고, 운동권 영화라고 치부했는데 이제 정부에서 지원도 한다. 한독협이 이제 정책 파트너가 됐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뿐만 아니라 문화관광체육부(이하 문화부)도 그렇다.

한독협 창단멤버다. 어떻게 한독협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문화학교서울이라는 단체에 있었다. 외국에서 비디오를 공수해 자막을 넣어 상영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또 영화공부, 제작, 강좌를 했다. 외국영화만 틀다보니까 한국영화를 발견해야하지 않나 하는 목적의식이 생겨 1996년에 ‘인디포럼’이라는 영화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때 인디포럼을 같이하던 김동원 감독이 잡혀갔다. 당시 푸른영상을 중심으로 영화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때 무슨 얘기를 나누었나.

제일 중요한 것이 표현의 자유였다. 당시 김동원 감독이 불법비디오유포죄로 들어갔다. 그때 독립영화인들을 아우르는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원래는 곽용수 씨가 가야하는 자리였는데 대신 갔다가 한독협 준비팀이 되었다. 당시 오정우, 이한숙, 이주영 등이 모여 정강, 회비 등에 대한 논의를 했다. 그때 워낙 쟁쟁한 감독들과 제작단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무국장이 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사무국장이 되었다. 결국 문화학교서울은 그만두고 한독협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원래 시네마 키드였나.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근데 그때는 영화학과 경쟁률이 높아서 영화과 가기가 힘들었다. 배우들만 가는 줄 알았으니까. 그냥 영화보기 좋아하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를 좋아했다. 그때 집이 용인이었는데 혼자 영화를 찾아 서울로 자주 왔다. 그러다 문화학교서울을 알게 되었다. 회원 가입하러 갔다가 운영위원회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위원회로 활동하게 되었다.

문화학교서울을 할 당시에 ‘독립영화’라는 인식을 명확히 갖고 있었나.

그건 나중 일이다. 1993년에 문화학교서울에 들어가, 1994, 5년에 가장 열심히 활동했다. 갓 대학졸업한 사람들이 모여 비전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에는 외국영화만 틀고 외국의 예술영화만 보다 왜 한국영화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이들이 할리우드키드라고 하지만 나는 충무로키드였다. 김기영 감독 영화를 찾아보는 등 한국영화를 많이 봤다. 자연스레 충무로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영화를 보면서 토론하고 대안적인 방향에 대해서 고민했다.

고민에 대한 답이 나오던가.

당시 선댄스영화제가 생긴지 5, 6년 지나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때였다. 스티븐 소더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등 새로운 감독이 주목받았다. 근데 한국에는 왜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도 독립영화의 역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푸른영상,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 등이 그 예다. 그래서 1995년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류승완, 송영숙 감독 등의 작품을 상영하고,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문화학교서울에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20대 중후반이었다. 추상적인 비전을 갖고 있었지만 영화평론, 제작 등 자기 관심 분야로 자기 일을 찾아 갔다.


한독협 초창기? 무한도전이 따로 없다.

새로운 단체가 생기면서 어려움도 많았겠다. 한독협 초기의 난제는 무엇이었나.

기본적으로 돈이 없었다. 문화학교서울에서 40만원 받았는데, 그때는 그게 작은 돈은 아니었다, 한독협은 그 절반이었다. 새 직장으로 옮겼는데 돈이 반으로 준 거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했다.(웃음) 한독협 인건비로 쓸 수 있는 돈이 한달에 50만원정도였는데 사무차장에게 “니가 25만원 받고 나는 20만원 받겠다”했다. 근데 사무차장이 “사무국장이 20만원 받는데 내가 어떻게 25만원 받냐”면서 자기 월급 5만원을 줄였다. 바보같이 한 사람 월급을 올렸으면 됐을 텐데.(웃음)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했다. 근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워낙 없어서 여기저기 손 벌리기도 편했다.(웃음)

손을 벌리는 건 벌리는 건데,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지 않았나.

그때는 지금처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도 없었고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지원받는 시스템이 없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기획안 들고 찾아가서 만나보고 사업을 확장하는데 노력했다. 근데 그게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계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럼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거 아닌가. 완전 무한도전이다.

나는 한독협을 만드는 입장에서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었지만 회원들은 그런 상이 없었다. 회원들이 가입은 했지만 협회가 뭔지 잘 몰랐던 거다. 협회가 무엇을 위해 있고, 왜 회비를 내야 하는지 설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기에는 한독협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독립영화인들을 직접 만나 하나하나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런데도 회원이니까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단체의 목적과 방향을 인식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협회 설립 초기 1, 2년 동안 그게 가장 어려웠다.

그렇다면 한독협이 처음 그리고 있던 상이 무엇인가.

그게 한마디로 얘기하기 어렵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있다”고 해도 자기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고, “제작 지원 정책을 만들고자 한다”고 해도 그건 남의 일이었다. 이런 건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근데 독립영화 감독들이 자기 영화 만들기에도 바쁘고. 먹고 살기도 바쁜데 자신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았다. 쉽게 말해 자기 일이 아니었던 거다. 그때 내가 주로 했던 말이 “혼자서 잘되는 것은 없다. 너 영화 잘 만들어봐라. 몇 년 가나.”(웃음)라고 했다.

어허, 그건 일종의 저주 같은데.(웃음)

아니다. 서울단편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 받는 사람들에게 “상 받았다고 혼자 잘 되는 거 절대 없다. 잘 나갈 때 회원가입하고 회비도 내고 해야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무리 영화 만들면 뭐 하냐 틀면 잡혀가는데”라고 얘기했다. 절대 “도와주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이게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었으니까. 근데 논리적으로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일하고, 제작 지원 정책이나 이런 독립영화발전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자기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없으니까. 이걸 설득하는 게 한독협 사무국의 일이다. 지금 한독협은 어떻게 하면 감독들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2001년까지 한독협 사무국장과 서독제 사무국장을 같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유령단체? 한국영화계의 비타민!

한독협 활동이 본 궤도에 올라간 시기는 언제인가.

2000년 이후인 것 같다. 의외로 빨리 자리를 잡았다. 영진위가 1999년에 생기고 더 투명해졌다. 예전에는 알음알음 대종상에 몇 억 주고, 그들 세미나에 2천만원씩 지원해주고 했는데 위원회로 바뀌면서 단체지원사업이 생기고, 독립영화제작지원제도(1998)도 생겼다. 처음에는 ‘소형단편영화제작지원’이었다. 처음엔 정액으로 300만원씩 줬는데 우리가 “100만원짜리 영화도 있고 1000만원짜리 영화도 있는데 똑같이 주면 어떡하나 차등지원해라”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명칭도 독립영화제작지원으로 바꾸고 다큐멘터리도 지원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파트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화인회의가 1999년도에 생기고. 문화연대도 생겼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영진위가 구성되면서 우리끼리 성명서만 내는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이야기하게 된 거다. 정책적인 관점에서 파트너로 인정받았다. 당시 사단법인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1999년). 협회가 생기면서 독립영화인들이 김동원, 변영주 등 개별 창작자들이 아니라, 영화, 진보적인 문화 안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것 같다. 영화제, 책 출간, 토론회 외에도 스크린쿼터 운동에 대해 제일 앞장서게 됐다. 독립영화계가 영화판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 거다. 물론 힘 있고 협상하고 했던 사람은 충무로에 있던 사람들이지만 동을 트는 역할은 우리 독립영화계가 했다.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유효적절한 시기에 한독협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독협의 발자취가 순조롭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유령단체로 취급받고 명예훼손 소송에 걸릴 뻔한 사건이 있었다. 영진위 위원을 구성할 때 한독협에서 ‘영진위 위원이 되면 안 되는 인물 5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건 한국 영화 문화 전반에 대한 차원에서였다. 그런데 김지미 영화인협회 이사장이 “문성근, 명계남이 한독협이라는 유령단체를 시켜서 괴문서를 뿌렸다”고 해 신문에 나오고 그랬다. 우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니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립영화인들이 위원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위원회 구성이 잘 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런 사건으로 사람들이 한독협의 존재에 대해 알기도 했다.

한독협이 많은 사건을 겪었다.(웃음) 이제 한독협과 서울독립영화제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내가 한독협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영진위가 꾸려지면서 ‘영화제를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그때 이효인 선생님이 집행위원장을 하고, 내가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사무국장으로 갔는데 둘 밖에 없었다.(웃음) 보도자료는 영진위에서 돌리고, 후원도 영진위에서 따고 했다. 그러다가 2001년부터는 한독협이 서독제를 위탁받아서 진행했다. 2001년까지 한독협 사무국장과 서독제 사무국장을 같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상반기 인디포럼, 한독협 사무국장하면서 하반기 영화제 사무국장을 했다. 미친 듯이 일만 한 거지. 너무 지쳐서 2001년쯤 한독협을 정리했다. 인디포럼도 그만두고. 한독협 사무국장만 4년, 인디포럼 진행을 6년 했다.

몸이 닳고 닳아 다른 일을 생각했을 법도 한데.

쉬면서 개인적인 일도 찾아보고 돈도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근데 갑자기 이효인 집행위원장이 그만두고 내가 서독제 집행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결국 한독협 그만두자마자 영화제로 잡혀 와서 다시 일하게 됐다. 영화제 중심으로 일이 집중됐다. 2002년 서독제로 이름 바꾸면서 체제정비하고 스탭도 뽑고 하면서 지금은 영화제 중심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독립영화계의 가장 큰 영화제의 집행위원장, 멋지지 않은가.

영화제가 일년 내내 인건비를 주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이효인 선생님이 계실 때는 3달 인건비 받고 6개월 일했다. 나도 4, 5달 밖에 인건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릿고개를 많이 넘었다.(웃음) 1월부터 4월, 5월까지는 정말 추웠다. 후원받으러 다니고, 영진위에 ‘이게 말이 되나. 좀 올려야 하는 거 아니냐’ 얘기하기도 했다. 뭐, 별로 오르진 않았다.(웃음) 그러면서 사업들을 구상했다. 순회상영, DVD 제작, 온라인 상영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면서 스탭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근데 웃긴 게 영화제 끝나고 나면 나만 남았다. 사무국장도 새로 구해야 했다. 누구한테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지금은 상근 시스템을 어느 정도 마련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는 어떻게 넘겼나.(웃음)

글을 많이 썼다. EBS시네마천국 작가를 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써도 작가 인건비가 한독협 사무국장 인건비보다 많았다.  대학 학보부터 교지까지 청탁 오는 건 다 썼다. 매일 통장 들고 다니면서 입금됐는지 확인 하는 게 취미였다.(웃음) 


독립영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서독제 집행위원장 하면서 한국의 독립영화는 지겹게 봤겠다.(웃음) 그러면서 한국 독립영화의 흐름과 경향을 봤을 거 같다. 

인디포럼을 할 때만 해도 침잠하는 영화들이 많았다. 당시 대부분이 사회, 문화운동, 학생운동 하던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우울하고 암울한 루저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재밌는 영화는 찾아보기 어려웠으니까. 이때는 사회적인 인식과 그것을 높은 영화적인 완성도를 성취한 영화가 좋은 영화였다. 이런 경향이 1990년대 후반까지 갔다.

뉴 밀레니엄이 오면서 독립영화의 경향도 바뀌었나.

2000년대가 오면서 디지털로 찍은 재기발랄한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대가 다른 젊은 친구들이 어설프게 SF를 한다거나 류승완 감독처럼 액션을 찍는다거나 하는 경향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주류도 아니었고, 좋은 평가를 받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이래야지’하는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가.

음, 그러한 경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반면에 지금은 너무 장르영화나 드라마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근래 영화들은 사회이면을 다루거나 인물을 다룰 때 드라마는 강해졌지만 인물의 개성이나, 영화적인 표현들이 많이 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장편영화들이 많이 등장했다.

2004년 이후로 장편영화가 많이 나오고, 개봉도 할 수 있었다. 단편중심에서 장편으로 옮겨갔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봉 할 수 있는 영화들은 제한적이었다. 이제는 4, 5억들인 저예산 영화보다 독립영화가 완성도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최근 장편 독립영화들의 경향은 어떤가.

기복이 있다. 예전에는 사회적 문제의식은 있었는데 영화적인 퀄리티가 떨어졌고, 요즘에는 영화적인 퀄리티는 높지만 사회 이면을 바라보는 안목들이 옅어져 아쉬운 영화들이 많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 잔혹한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영화적 성찰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선이 필요한데 10년이 지나면서 바뀐 것 같다. 영화 편수도 많아졌고, 어떻게 보면 영화가 쉬운 매체가 됐다.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지금 시대에 다룰 수 있는 얘기들이 어떻게 영화적 깊이와 사회적 안목과 결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세다, 그래서 흥미롭다.

이번 서독제에는 사회적인 안목과 영화적인 완성도가 결합된 작품들이 보이나.

매년 눈에 띄는 작품들이 보이지만 성이 안 찬다. 이런 얘기하면 감독들이 섭섭해 하겠지만, 나는 제작자고 좋은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분명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부리고 싶다.

2008년 서독제 슬로건 '상상의 휘모리'는 최근 독립영화들이 너무 자기 일상의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 함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거기서 벗어나
'센 영화'
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은 것이다.


2008년 서독제 <상상의 휘모리>에 대해서 말해 달라.

결국 문제는 상상력이 아닌가. 사회를 비판하든 연애 이야기를 하든, 창작자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다. 휘모리는 좀 더 세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좀 센 영화들이 없는 것 같다. 사회의 치부를 까발린다거나, 배우 몸이라도 벗긴다거나 하는(웃음). 너무 자기 일상의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 함몰된 것이 아닌가 싶다. 거기서 벗어나 ‘센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지은 것이다. 실제로 올해 예심을 하면서 기대보다 그런 영화가 많았다. 세고, 끝까지 가는 영화들.

센 영화? 이번 서독제가 기대가 된다.(웃음)

우리가 슬로건을 이렇게 지어서 그런가, 우연히 맞아 떨어졌다.(웃음) 장편부문에서 ‘아니 이런 영화가 있었단 말야’하는 영화들이 있다. 문제는 관객들이 이걸 어떻게 볼까 하는 것이다. 걱정 반 기대 반이다. 특히 장편영화들이 볼만한 영화들이 많다. 기대가 된다.

주목할만한 작품은?

그건 내가 얘기하면 안 된다.(웃음) 보도자료 보고, 영화 보고 기사 써 달라.

전체적 영화제 출품작들의 경향?

장편부문에서는 어떤 상황의 끝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고갈>, <사랑을 찾습니다>, <낙타는 말했다> 등은 어떤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을 그냥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끝까지 쭉 가는 영화다. 상상 이상의 힘이 있다. 파워풀한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영화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편수가 조금 줄었는데, 올해 볼 수 있는 최고의 작품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단편영화는 어떤가.

단편영화 같은 경우도 새로운 경향들이 발견되고 있다. 일상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서 인물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는 영화들이 많다. 이전 영화들이랑 조금 다른, 드라마 구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그런 영화들이 많다. 우리 영화제에서 다 수용은 못했지만 최근 영화들을 보면 한국 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외국에서 찍은 영화도 있고, 외국 사람이 실제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있다. 이전의 영화들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그들의 문제를 보여주는 선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글로벌한 문제들이 독립영화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런 현상이 다큐멘터리, 극영화, 단편 등에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거다.

주요 섹션이 궁금하다.

항상 그랬듯 본선 경쟁이 있는데 작년과 편수가 똑같이 51편이다. 단편 40, 장편 11편. 올해는 촛불 영상을 별도로 공모했다.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것들부터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 까지 촛불집회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다양한 논쟁들을 다룬 영화들이 출품됐다. 6ㆍ10항쟁 이후 20년이 됐는데, 6ㆍ10항쟁과 2008 촛불정국을 연결시키는 영화들이 많았다. 실험적인 작품, 학생 작품들도 있고, 칼라TV 같은 미디어 운동 단체도 있다. 최근 미디어 활동, 독립영화진영이 촛불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포럼도 기획하고 있다.

매년 해외 섹션이 흥미롭다. 올해의 해외 섹션은?
 
올해는 ‘상상의 휘모리’인만큼, 평범하게 않게 ‘성인영화 특별전’을 준비했다. 이른바 ‘섹스와 영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센 영화들을 골랐다. 프로그래머들이 추천하고 감독들이 직접 소개할 거다. 이들이 영화소개하고 토크도 진행한다. 과연 ‘한국에 포르노그라피가 가능한지’, ‘섹스와 영화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포럼이 있을 예정이다. 성적인 부분을 건드리는데 있어서 관음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를 통해서 인간 관계의 문제, 권력의 문제 등을 도발할 수 있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그런 영화들이 너무 없어서 이런 영화들이 왜 중요한지 짚어보는 포럼도 필요할 것 같다.


하던 일이나 잘해! 이 친구야!

오호, 관객의 한 명으로 완전 기대된다.(웃음) 정신 차리고, 중요한 질문하겠다. 현재 독립영화인으로서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언제 그만둘까?’(웃음) ‘어떻게 더 재밌게 살까’가 고민이다. 집행위원장만 7년째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고민이 크다. 흐흐, 농담이다. 독립영화계에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는 있는데 시장에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관객 1, 2만 명이 아니라 2, 30만 명 들어서 ‘이런 영화들도 되는구나’하는 것을 관객들, 영화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영화제 하나가 잘 되고, 영화 한 편이 잘 되서 판이 좋아질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 영화들이 많아져서 지원받지 않아도 다음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되면 좋겠다. 그런 영화들이 나올만한데 왜 안나오나. 이런 고민들이 있다.

한독협 10년에 관한 제언 한 마디 해 달라.

어려운 얘기다. 현재 같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고. 그동안 사업이 많았다. 인디스페이스도 있고, 내부 사업도 있고. 그런 사업들이 아직 안착되지 못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한독협 조직도 그렇고. 월급 줄 때마다 돈 없는 문제도 있고. 십년 됐으면 이제 이런 문제들은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기존 사업은 어떻게 안정화 시킬지, 한 편의 영화가 나왔을 때 어떻게 대우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정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음, 하던 일이나 잘해라(웃음)


 

*2008-11-04 오후 3:28:57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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