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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9 09:35

아톰, 건담, 현실이 되다!

일본로봇산업에 미친 로봇만화의 영향
김병수 _ 조선대 초빙교수, 우리만화연대 회원
건담 일러스트레이션. 건담 모빌슈트의 병기화는 만화를 통해 가꾸어진 상상력이 과학을 만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 현장이다.
▲ 건담 일러스트레이션. 건담 모빌슈트의 병기화는 만화를 통해 가꾸어진 상상력이 과학을 만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 현장이다.

1. 상상에서 현실로 : 로봇만화와 과학

지난 2007년 11월초 매우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일본 방위성에서 만화영화 ‘건담’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모빌슈트 로봇 ‘건담’을 현실에서 구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실제 기사를 잠깐 인용해 보겠다.  

[건담, 만화주인공 벗어나 현실에 나타나다]

일본 방위성의 방위성기술연구본부(이하 방위연)가 만화영화 주인공인 '건담'을 현실에서 구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일본 애니메이션 뉴스 사이트인 '아니메뉴스네트워크'가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방위연은 오는 7~8일 열리는 '방위기술 심포지엄'의 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건담의 실현을 위해'라는 제목의 지상 장비를 소개했다. '건담의 실현을 위해'라는 지상장비는 ‘선진화된 개인 장비’ 개발의 차원에서 계획된 것으로 나와 있을 뿐 상세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건담은 1970년대부터 방영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로봇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사람의 조작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 '모빌슈트'로 유명하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젊은이들의 군 입대를 독려하기 위해 유명 만화영화 주인공들을 자주 이용해 왔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계획을 모병 또는 군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실제 미군이 현재 군사용으로 개발중인 로봇슈트(근력강화옷)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건담을 현실화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일본 내 여론이 술렁이자 일본 온라인뉴스사이트 '제이캐스트'는 1일 "방위성의 건담 개발 계획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방위성 간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반인도 참가 가능한 심포지엄에는 실제 크기의 건담이 등장할 예정이며 인간의 신체능력을 뛰어넘는 '선진화된 개인 장비' 또한 공개된다고 제이캐스트는 전했다.

방위연의 아키야마 요시타카(秋山義孝)사업감리부장은 “최종적으로 건담과 같은 선진장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 라며 “그러나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1)

만화에서만 보던 로봇을 실제로 만든다고 하니 로봇만화의 열혈매니아라면 너도 나도 자위대에 입대하려고 줄을 설 것 같다. 건담의 실제 병기화 계획은 만화와 과학이 만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체계적인 지식 논리의 세계인 ‘과학’과 상상력의 세계인 ‘만화’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은 끊임없이 만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어 왔고 궁극에는 ‘공상과학만화’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물론 최초의 공상과학은 문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로봇만화는 과학만화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장르가 아닌가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로봇만화가 미치는 과학적 성과에 관한 부분을 아톰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2. 로봇만화의 창조자 일본 : 로봇산업의 선두주자로

건담 병기화 이야기가 아니어도 일본은 로봇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보다 로봇 개발에서는 뒤졌지만 이를 상업화하는 데는 한발 앞서 성공했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산업용 로봇 보급시대에 일본은 전 세계 산업용 로봇시장을 주도했다. 자동차·전자·반도체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은 이를 토대로 정교한 산업용 로봇을 개발, 국내외 시장에 출시해 큰 수익을 올렸다.

1999년 일본 소니사에서 발표한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감성 지능형 완구 로봇 애완견 아이보.

현재 전 세계에 보급된 산업용 로봇 중 절반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 로봇기술(RT)을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등과 함께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하고 로봇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0년 5000억엔 수준에 불과했던 RT시장이 오는 2007년까지 약 8조엔(80조원)에 이르는 리딩산업(leading industry)으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RT가 반도체 기술과 기계공학·전자공학·인공지능 등이 결합된 최첨단 기술의 총아이기 때문에 전후방산업 연관효과가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70-80년대 자동차 산업이 뛰어난 전후방 연관효과 때문에 일본을 먹여 살렸다면 앞으로는 그 자리를 로봇산업이 대신할 것이란 전망이다.(2)

특히 인간을 닮은 휴먼 로봇 분야에서는 일본은 가히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로봇산업 발전을 위해 2005년부터 `21세기 로봇 챌린지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산학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377억 달러 규모의 `휴먼로이드 로봇 프로젝트'(HRP)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런 일본 정부와 업체, 관련 연구기관들의 노력은 일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는 로봇, 그 중에서도 휴먼 로봇 개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3) 아시모, 큐리오, 파트너, 피모, 이사무 등 기라성 같은 일본의 휴먼로봇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의 휴먼로봇산업이 세계의 휴먼로봇 산업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3. 아톰세대 : 일본의 로봇과학자를 양산하다

왜 하필 일본은 ‘휴먼 로봇’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바로 ‘아톰’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여러분도 친숙하실 이름인 ‘아톰’은 인격화된 최초의 로봇이자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산업의 견인차이기도 했다. 전자신문의 다음과 같은 기사는 아톰이 일본 로봇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일본 만화의 신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 2003판의 한장면

이러한 면에서 아톰을 ‘인간형 로봇의 원조격’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록 아톰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까지밖에 발전하지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선악을 느끼며 판별할 수 있는 ‘사이보그형 로봇’이다. 현재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혼다의 아시모를 포함해 이미 출시된 인간형 로봇들의 직접적인 모델이 된 것이 바로 아톰이라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는 산업현장에서 인간과 함께 일하는 로봇뿐만 아니라 복지, 경비, 도료작업, 용접공 로봇 등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축구시합이나 오케스트라 연주까지도 가능한 로봇도 머지않아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로봇산업은 아톰 덕분에 철저하게 ‘인간과의 협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자키 마사모토 일본로봇공업회 회장은 최근 니혼코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구에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괴물형체이거나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미지의 로봇
인 반면, 일본의 로봇은 인간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며 “아톰이 이러한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4)

아톰은 ‘일본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데스카 오사무가 만든 로봇만화의 주인공이다. 1951년 월간 '소년'지 4월호부터 '아톰대사'란 이름으로 1년에 걸쳐 연재한 것이 시초이다. 아톰이 일본의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63년부터 193회에 걸쳐 4년간 TV에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부터이다(아톰은 최초의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록도 세운다).

아톰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과학자가 대체 아들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녔지만 자라지 않는데 화가 난 박사는 아톰을 서커스단에 팔아버리고 만다. 그런데도 아톰은 인간과 우주인들의 싸움 한가운데서 몸이 부서져라 인간을 위해 싸운다.

아톰은 신장 135㎝에 몸무게가 30㎏으로 만들어져 조그만 꼬마아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아톰은 원자력을 동력으로 로켓추진방식으로 하늘을 날며 자그마치 10만 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

또 인간보다 1000배 이상의 청력을 지녔으며 60개에 달하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조그마한 체구로 거대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아톰의 당찬 모습은 2차 대전의 상처로 무기력해진 전후 일본인들에게는 ‘희망’ 그 자체였다. 데츠카 오사무는 로봇의 의무에 충실하면서도 어린이들의 친구로서 웃음을 잃지 않는 아톰의 모습을 통해 2차대전의 패전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은 다시 일어섰고 아톰의 영향인지 어느 나라보다 먼저 로봇을 받아들여 산업화시켰다.
 
오늘날 일본의 로봇산업을 일구어낸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아톰세대’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아톰’을 보며 로봇과학자의 꿈을 꾸었고 그것이 오늘날 아톰과 같은 휴먼로봇을 만들어야한다는 집착을 가져왔던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일본 로봇산업의 최종 종착지는 ‘아톰’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 인격을 지닌 로봇을 만들라!

최초의 로봇만화가 인격을 지닌 로봇에 관한 것이라면 그 후 일본의 로봇만화는 보다 사실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1963년 처음 방영된 <철인 28호>는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기계'였다. 전투로봇의 상징이 된 1972년의 <마징가 Z> 역시 사람이 탄 비행기가 조종석에 결합되는 것이 다를 뿐 마찬가지였다.

<마징가 Z> 이후에는 로봇이 움직이는 무기로 격하됐다. 1979년 나온 <기동전사 건담>은 '모빌 슈츠', 즉 '움직이는 전투복'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사실성에 중점을 둬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주로 다루다보니 로봇 자체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움직이는 기계로서의 로봇만화는 산업로봇이 활성화되던 시기와 겹친다. 7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은 ‘로봇’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동화 기계로 넘쳐 나게 된다.

인간은 전투로봇의 조종사 즉 관리, 감독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아톰에서 구현했던 인간과 로봇의 결합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다. 인간과 로봇의 결합을 1995년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겔리온>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조종간을 잡지 않고 로봇과 일종의 정신감응으로 로봇을 움직인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개념 설정으로 로봇의 인격화까지 이뤄냈다.(5) 재미있는 사실은 이듬해인 1996년 일본의 혼다사에서 최초의 자율형 2족 보행로봇 P2를 개발해 냈다는 점이다.

로봇만화에서 로봇이 단지 기계에 불과했던 시대를 접고 최초의 로봇만화 ‘아톰’이 구현했던 인격로봇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하던 시기에 인간형 로봇의 개발이 함께 시작됐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실 마징가Z 시절만 하더라도 로봇만화의 세계는 다소 허황되고 과장된 세계였다.

<공상비과학대전>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증거(?)가 나온다. 마징가 제트의 키는 18m, 몸무게는 20t. 정말 거대한 로봇이다. 하지만 마징가Z의 키를 인간처럼 185㎝로 줄여놓으면 몸무게는 고작 22㎏에 불과하다. 마징가 제트는 초경량 로봇인 셈이다. 키는 큰데 몸무게가 적게 나가다보니 외부 충격에 약하다. 초속 15m의 바람에도 마징가Z는 쓰러져 버린다. 마징가 제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리케인은 산(酸)으로 상대 로봇을 녹여버리는 필살기. 그런데 금속을 가장 잘 녹이는 초산으로 철 1㎏을 녹이려면 5㎏이 필요하다. 상대 로봇의 체중이 마징가 제트와 같은 20t이라면 초산 100t이 필요하다. 20t에 불과한 마징가 제트가 100t의 초산을 어떻게 들고 다닐까.

또 다른 마징가 제트의 무기인 브레스트 파이어는 가슴에서 빔을 쏘아 상대 로봇을 녹여버린다. 정확히 어떤 빔인지 알 수 없으나 레이저 광선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마징가Z의 에너지 출력은 4억 8000만w이므로 만약 20t 로봇을 녹이는 데는 45초가 걸린다. 하지만 TV에선 2, 3초도 안되는 시간에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아톰 역시 황당무계하기는 마찬가지다. 35㎝에 몸무게가 30㎏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여 하늘을 날고 10만 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인간보다 1000배 이상의 청력과 60개에 달하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설정은 과학과는 거리가 한참 있다.
 

5. 지식보다는 상상력이 중요하다

마징가 제트나 아톰이 비록 비과학적 설정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단초들을 제공하고 있다. 바로 개념이다.

개념은 전통적 논리학에 따르면, 한 무리의 개개(個個)의 것에서 공통적인 성질을 빼내어 새로 만든 관념(觀念). 일상적인 용어로는 한 인간이 어떤 사항에 관하여 그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는 경우, 그 인간은 그 사항에 대하여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단 개념이 몇 가지 만들어지면 그 몇 가지 개념이 저마다 나타내는 성질을 통일하는 성질에 관한 개념도 만들 수 있다. 가령 개, 고양이, 새, 물고기, 벌레 등의 개념에서 동물의 개념을, 동물⋅식물의 개념에서 생물의 개념을 만들 수 있다.(6)

아톰이 있었기에 병기로서의 로봇에 대한 개념이 생겼고 철인28호, 마징가 제트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철인 28호와 마징가제트는 건담의 아버지가 됐으며, 이는 <신세기 에반겔리온>이라는 인격화된 로봇이 출현하는데 밑바탕이 된다.

이러한 개념의 근저에는 만화적 상상력이 자리 잡고 있다. 만화적 상상력은 로봇만화라는 장르를 만들어 내었고, 만화 속 로봇은 현실에서의 로봇으로 승화되어 실재하는 ‘그 무엇으로’ 마침내 자리한다.

건담 모빌슈트의 병기화는 이런 점에서 로봇만화와 과학의 기념비적 이정표가 되고 있다. 만화를 통해 가꾸어진 상상력이 과학을 만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 현장인 셈이다. 과학을 통해 지식을 수혈 받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입혀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며 과학이 그것을 다시 체계화, 논리화하여 현실화할 때 만화와 과학은 어쩌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 본 기사는 우리만화연대에서 발간하는 <우리만화>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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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조선일보. 2007년 11월 1일
2>IT 다음은 RT-휴먼로봇산업 현주소와 미래성 | 현실경제  2005.1.8. 
3>같은 글
4>[e월드]일본-'돌아온 아톰'이 일본을 구한다! 전자신문|기사입력 2003.4.7.
5>아톰, 일본 로봇산업 이끌어 2000년 12월 28일 이영완 기자. 동아일보
6>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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