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2.31 불온한 삶을 꿈꾸다
2008.12.31 12:21

불온한 삶을 꿈꾸다

[컬처뉴스가 뽑은 2008년 10대 뉴스] ⑨ 국방부 불온서적 선정
                                                                                                                                       이주호 기자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
▲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


7월 19일 이상희 국방장관의 지시로 국방부 보안정책과는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등 세 분야 23개 불온서적 목록을 지정하여 각 군에 “불온서적 차단 대책 강구(지시)”를 내려 보냈다. “불온서적 무단 반입 시 장병 정신 전력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공군은 24일 각급 부대에 공군참모 총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 7월 28일부터 8월 8일까지 불온서적 반입 여부를 일제 점검하여 8월 11일 상급부대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국방부가 불온이라는 말을 들고 나오자 매도, 척결의 시린 계절이 다시 오려는가 염려도 잠시, 인터넷은 오히려 국방부에 대한 조소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포문은 진중권 교수가 열었다. 그는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자신의 책들이 국방부 선정 리스트에서 제외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 소개를 보면 노골적으로 적화를 선동하고 있는데도 왜 그 책이 배제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 ‘빨간’이라는 색깔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거기에 ‘바이러스’까지 붙여 강력한 전염성을 경고”한 『빨간 바이러스』 역시 불온서적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3권 선정 과정에서 출판사측과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도서 선정의 기준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조소도 잊지 않았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우석훈 교수도 자신의 블로그에 “사회과학이 금서가 되는 시기가 돌아왔으니, 사회과학이 찬란하게 꽃피던 사회과학 르네상스가 정말로 오기는 올 것 같다. … 국방부의 금서 목록에 내 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고 정말 깊이 반성하였다. 이 시대착오의 세상에 너무 말랑말랑하게 쓴 것이 아닌가, 정말 마음 속 깊이 반성한다.”고 하는 반성 아닌 반성의 글을 올렸다.

물론 한총련과 같이 국방부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는 구태의연한 대응 방식도 여전했다. 하지만 불온서적에 관한 생각지도 못했던 반향의 진원지는 따로 있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불온서적 중 자신이 읽은 책에 200자 평을 달면 적립금을 쌓아주겠다는 이벤트와 함께 대대적인 불온서적 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이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10월 22일에는 현역 군법무관 7명이 “국방부가 23권의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것은 장병들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 사회지식을 얻고자 책을 사 읽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국방부의 엄포가 그들이 의도한 분위기 조성은커녕 희화화되고만 있었으니 내부적인 자성의 제스처 하나쯤은 여론 환기용으로 너그럽게 눈감아 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씨가 불온한 시에 관해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문화의 불온함, 질서 순응적이고 안이한 방식의 예술에서 불온함이란 무엇일까 역설하는 김수영 시인의 글에 시종일관 정치적 불온성만을 물고 늘어지던 이어령 씨의 천진난만함이 더해져 문학에서의 불온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던 계기였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언급했을 때의 불온함은 단지 정치적인 의미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불온함은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대놓고 권위를 비웃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말았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새벽까지 깨어 있는 눈더러 보란 듯이 기침을 해대는 젊은 시인의 불온성, 규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시대의 문고리를 휘어잡는 문화의 본질로서의 불온성의 얼굴이 언뜻 내비친 것도 같았다.

박정희 귀에 불온하기 그지없었던 김민기와 한대수의 음악, 전두환에게 있어 불온하기 그지  없었던 김남주의 시, 어느 샌가 불온성은 7080 추억담 속에 잠자고 있었다. 꽉 짜여 숨 크게 내뱉기도 힘든 완고한 순환의 한 끄트머리를 잘라내고 싶은 소심한 일탈의 꿈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만난 정치적 불온성은 낭만적이기마저 했다. 일률적인 눈요깃거리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차가운 대형 상가 뒤편, 피맛골과 황학동에서 삶의 불온성이 보였다.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과 주식을 파는 세상에서, 뉴타운과 재개발 열풍에 머리털 하나 날리지 않으며, 뉴라이트들이 주 7일 근무를 하든 야간근무를 하든 상관없이 적게 벌고 많이 생각하며 사는 불온성을 무척이나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 동족을 위해 /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 대포도 안 만들고 / 탱크도 안 만들 테고 /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 … /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 더 많은 것을 아끼고 / 사랑하며 살 것이고 // 세상은 아름답고 /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일부,『우리들의 하나님』(녹색평론, 2008) .

오렌지를 오렌지라 부르는 불온한 사람들이 애타게 찾던 불온성의 씨앗이여, 너 거기 철책 안에서 자라고 있었구나!



 

[관련기사]
개발과 보존의 아이러니
그 해 온라인은 흉흉했네
비정규직 권하는 사회, 예술가들의 복지는?
누가 먼저 내민 '혀'인가?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