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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1 예술인복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2. 2008.10.06 세상에 꿈꾸는 자들은 모두 하나다 - 구본주 벗의 5주기와 김소연 기륭분회장의 복귀를 맞아 드리는 허튼 詩 (2)
2008.12.01 18:05

예술인복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자의 눈]예술인복지법 논의에 대한 기대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러한 논의가 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확장을 일궈내길 기대해 본다.
▲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러한 논의가 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확장을 일궈내길 기대해 본다.

1.
2005년 구본주 소송사건이 벌어졌다. 한 촉망받던 조각가의 사고사에 보험회사가 이윤을 이유로 무직자 취급을 한데 대해 문화예술계가 한 목소리로 대처했던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은 보험사가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면서 예술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은 한 사례로 남게 됐다. 그러나 당시 구본주 대책위 활동에 관여했던 이들은 이후 유사한 소송에 휘말린 예술가들의 연락을 수 차례 받으며 고민에 빠졌다. 소송의 전말과 대응논리, 관련서류들을 꼼꼼히 챙겨 건네줬지만, 구본주 작가 만큼의 지명도가 없는 예술가들이 별다른 사회적 지원 없이 보험사와 일대일로 마주해서 예술의 가치를 옹호해 내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꼭 소송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예술가들의 복지는 사각에 놓여있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은 몇몇 유명인사를 제외하면 무직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 일쑤다.

2.
2007년과 2008년 초반까지 몇몇 예술단체들이 모여 예술인복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영화산업노조가 일군 성과들에 대한 확인에서부터 프랑스와 독일, 미국을 비롯한 해외사례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례들을 검토하고 지금 현실에서 어떤 정책들을 제안해야 예술인복지를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 논의들은 ▲문화부예산 1% 이상을 문화예술인 복지제도 구축에 투자할 것 ▲문화예술인들이 4대보험이라는 사회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담기구를 설치할 것 ▲문화예술인들의 신분을 보장할 것 ▲문화예술 실업급여제도를 도입할 것 등을 비롯한 7대 요구사항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가칭 ‘문화예술인복지연대’를 전체 문화예술계에 제안하고 논의를 모아 정책에 반영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워크샵과 토론회, 대선정책 제안 등 유의미한 활동을 진행했음에도, 문화예술계 내에 전면적인 논의구조 확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3.
11월 26일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은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개최의 요지는 예술인복지 대한 근거를 법으로 규정해 예술인들도 사회복지제도의 틀 안에 포괄할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토론회에서는 예술인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발표와 함께 구체적인 법안에 대한 제안, 법을 제정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재단측은 문화예술계의 논의의 장을 확산하기 위해 2009년에는 정례회의를 통해 좀더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법은 사회구성원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창구일 것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흔히 이해관계 상충에 대한 조정노력이 실패했을 때 나온다. 예술인들이 저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복지에 진전이 없자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그만큼 예술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협소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숱한 논의와 정책제안과 호소들이 있었지만, 결국 상호부조를 기반으로 하는 반쪽짜리 예술인공제회마저 아직 제자리걸음인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4.
그간 예술인 복지에 대한 내용은 가난과 생활고로만 이슈화됐다. ‘예술가의 한 달 수입이 30만원을 넘네, 못 넘네’라는 소문들은 해마다 언론지상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불쌍한 사람들’로 인식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예술가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 역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복지혜택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예술인 복지에 대한 접근은 시혜성 정책이 아닌 권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간 오래도록 유포되어 왔던 예술가에 대한 왜곡된 인식들을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주망태가 되어 가정을 팽개치고 예술혼에 불타오르는 괴짜 예술가’ 상은 이제 걷어낼 때가 됐다. 예술가들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사회의 일원이자 생활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더 이상 자기세계에 갇혀 자폐적인 예술 활동만을 일삼는 것은 멈춰야 한다.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한 예술가상이 여전히 사실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수록 사회와 소통하는 노력은 더더욱 절실한 것이다.

5.
구체적인 필요가 조직되지 않으면 일의 추진력은 생기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문화예술인복지연대'의 활동이 한계를 보였던 것 역시 구체화되지 못한 예술계 내부인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술인복지법’은 그간 논의되어 왔던 예술인복지에 대한 논의들을 집약적으로 제기할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만드는데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논의과정에서 예술인들이 권리에 대해 구체적인 인식의 확장을 일궈내고 예술계 내의 담론이 풍부해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예술인복지법이 실현된다고 해도, 법 자체가 종착역이 될 순 없다. 법은 예술인복지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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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08:45

세상에 꿈꾸는 자들은 모두 하나다 - 구본주 벗의 5주기와 김소연 기륭분회장의 복귀를 맞아 드리는 허튼 詩

9월 29일 기륭전자 앞에서는 조각가 고 구본주 5주기 작품전이 열렸다. 이 날은 90일이 넘는 단식 끝에 병원에 실려가야 했던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이 현장에 복귀하는 날이기도 했다. 천일이 넘도록 고단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 노조원들과 구본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기륭전자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싸움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이 28일 문화제에서 낭송한 시를 게재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지난 겨울
내설악 어느 외로운 골짜기에 스스로를 유폐하고
3개월을 폐인처럼 보냈다

밤새 내리는 눈
산사의 종소리는 밤마다 서른 세 번씩 울렸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그렇게 긴 여운의 소리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푸른빛으로 꽁꽁 언, 빈 겨울 하늘에 초승달로 걸려
속가슴을 찌르곤 했다

긴 세월을 돌아 작은 한 소년이
이젠 혼자술에 취해 망연히 창가에 선 장년이 되었다
겨울처럼 깨어보면 늘 반짝이는 아침이었다
세상에 늘 새로운 아침이 하루마다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말았을 것이라는 괜한 생각.
나는 죽어도 대낮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아픔에 목이 메어 왔다

오, 나도 아침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오, 나도 행복을 나눠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
오, 나도 희망만을 깎는 조각가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난 욕심쟁이였다
난 타락한 영혼이었다
난 혼자였고 난 비겁이었으며 독선이었고 두려움이었다
사이비 활동가 사이비 주술사였다
진실을 말하자면 적개심과 시기와 질투 얄미움으로만 가득찬
말할 수 없는 상처였다

수십 년, 수백 년 움직이지 않는 자세로
내설악 어느 산모퉁이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보다
내가 더 영예롭고 존엄하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발이 푹푹 빠지는 겨울 설악산 낙엽의 늪 속에서
어떤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도 있으면
그 길로 가고 싶었다

정말이다, 방법만 있다면
나는 이 개같은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고 싶다, 아니
암울한 나를 떠나 희망찬 나로 가고 싶다
문제는 이 세상이 아니라 나다
나의 문제다
이 욕망을 떠나 저 해방으로 갈 수 있다면
이 소유욕과 집착을 떠나 저 너른 연대로 갈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무슨 마음을 더 갖기보다
밤 물소리 따라 남은 마음들마저 작별해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들도
단 한번도 멈추지 못하고 흘러가야 하는 저 밤물결들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달빛도 별빛도
모두 외로워하지 않는데
왜 나는 청승을 떠는가
내 안에 있는 나에게도
이젠 그만 나를 떠나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밤들이었다

갈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돌아설 길도 많지 않았다
나는 내가 걷던 길을 계속 걷기로 햇다
아니, 더 편파적으로 구체적으로
당파적으로 혁명적으로 걷기로 했다

별 길도 아니었다
뼈빠지는 설움으로 내 몸에 새겼던 노동자의 길,
소외된 인간들이 쓸쓸히 등부비며 걷던 변두리 골목길,
모든 것들이 위대해 보이던 세상의 길,
지지말자 약속했던 반제반전반자본의 가시밭길
또 다시 상처받더라도 사랑하며 가는 길,
우리에게 끝까지 남을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그 어떤 터치와 깎임과 떨림과 나눔과 사랑뿐이라는 것을
믿으며 쉬지 않고 내달리는 길
그 길에서 잊혀져도 좋은 길
잊혀져도 기꺼운 길

나는 움직이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너의 아픔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관습을 증오하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창조하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모든 인간들의 모든 생산을 경외하는 인간이었으므로
모든 자연과 함께 묶여 있음을 기뻐하는 인간이었으므로
혼자가 아닌 만인임을 알았던 인간이었으므로
이 세상에 그 무엇도 그냥 사라짐은 없으리
이 세상에 그 어떤 마음도 그냥 사라짐은 없으리




* 2008-10-02 오후 5:42:14  송경동 _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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