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13 김현희의 귀환, 추억은 방울방울
  2. 2009.02.02 누가 우리를 죽이고 있는가? (2)
2009.03.13 09:02

김현희의 귀환, 추억은 방울방울

[편집자가 독자에게]반공교육과 공작정치의 기억
                                                                                                                                     안태호 편집장
김현희가 돌아왔습니다. 115명을 죽게 만든 테러범이 ‘왜 자신을 간첩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칩니다. 매우 도착적이면서도 오싹한 장면입니다.
▲ 김현희가 돌아왔습니다. 115명을 죽게 만든 테러범이 ‘왜 자신을 간첩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칩니다. 매우 도착적이면서도 오싹한 장면입니다.

“오직 자유민주주의만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칩니다!!”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어린 시절 웅변대회에 출전해 세뇌교육에 가까운 반공교육의 성과 한 자락을 우렁차게 늘어놓던 그 때. 저를 포함해 학교 대표로 나가기로 했던 친구들 몇몇은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선생님의 특별지도를 받곤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그기를 몰고 남쪽으로 넘어온 이웅평 씨를 소재로 했던 기억만은 또렷합니다. 사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민방위본부에서는 공습경보를 발령하며 인천이 폭격당하고 있다고 “지금은 실제 상황입니다”를 연발하는 해프닝을 벌였다는군요.

아무튼, 그 시절 반공교육의 끝자락도 어지간했습니다. 폭력성에 대해 꾸준히 ‘청소년 보호'를 명목으로 영상물, 게임, 도서, 가요 등에 대해 지치지도 않는 검열을 해대는 나라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신체절단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하드고어한 영화를 무삭제판으로 보여주는 만행을 감행하기도 했지요. 네, 이승복 말입니다. 우리는 먼지 풀풀 나는 학교 강당에 줄지어 앉아 짐승같은 공산당이 어린아이의 연약한 입을 사정없이 잡아 찢는 끔찍한 장면을 도리 없이 지켜봐야했습니다. 마음약한 몇몇 여자아이들은 그 소름끼치는 폭력성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요. 심지어 몇 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게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거겠구나 싶은 생각으로 저 역시 두려움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에 대해 조작 논란이 있지만, 사실 여부를 제쳐두고라도 교육을 빙자해 아이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영화를 강요한 건 국가차원의 범죄에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김현희가 돌아왔습니다. 115명을 죽게 만든 테러범이 ‘왜 자신을 간첩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칩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매우 도착적인 상황입니다. 그녀가 이제와 다시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주장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고 싶다”며 KAL기 폭파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에 한 번도 응하지 않은 그녀가 이제 와 ‘좌파정권’의 핍박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나서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번 기자회견은 납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들여 성사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진행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짝짜꿍을 맞추었습니다. 김현희를 주연삼아 양국의 국민들에게 한바탕 쇼를 보여줄 요량인 듯합니다. 한류스타 못지 않은 김현희씨, 온갖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한일 우파동맹의 결성이라고 규정하더군요.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가 매우 중요한 외교적 이슈임에도 이번 김현희의 기자회견에 대해 ‘닳고 닳은 수법’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국에서도 냉소적인 시선들이 많습니다. 반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펄떡이는 분들도 물론 계시지요. 참 재밌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좌파정권’으로 인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라지만, 그토록 혐오하며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던 북한이 길러낸 테러리스트를 옹호해야 하는 상황이 스스로도 아이러니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분들께는 ‘적의 적은 동지’라는 이항대립쌍만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마저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는 까닭은 더더욱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지난 정부의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KAL기 폭파 사건이 '간첩' 김현희의 범행인 것을 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습니다.

다만, 당시 조사의 결론에는 "당시 정부가 이를 노태우 후보가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에 급급해 국가로서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위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에 노력하기 보다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당시 정부 문건에는 안기부 주관 하에 내무, 국방, 문교, 문공, 상공, 교통, 서울시, 치안본부, 반공연맹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 설치 운영 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부처가 총동원되어 사건을 적극 활용한 셈이지요.

KAL기 폭파사건이나 아웅산 폭파사건을 두고 끊임없이 조작설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어디 이 두 사건 뿐일까요. 선거 때면 제갈공명이라도 초빙한 듯 불어오던 북풍도 그렇지요. 정부에 불리한 사건만 터지면 또 다른 대형 사건이 어느새 매스컴을 가득 채우던 일이 비일비재했더랬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해 정부가 마치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이라도 했던 것처럼 철저하게 이용하는 자세를 보였던 탓에 음모론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보를 쥐고 있는 이들이 진상규명은 제쳐두고 기다렸다는 듯이 공작정치를 펼치는 행태를 보고 있으면 없는 음모론도 솟아나지 않을까요. 언젠가 지인들과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아웅산 폭파사건 때 나라의 중요하고 유능한 분들이 한꺼번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을 나누었던 기억도 납니다.

반공교육과 공작정치가 지난 시절의 추억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웅산 폭파 사건이나 칼기 폭파 사건, 이승복 사건 등을 두고두고 우려먹었던 이전 정권들의 행태가 여전히 이 정부에서도 그대로 겹칩니다. 김현희의 귀환이 상기하는 어린시절의 씁쓸한 추억을 곱씹다가, 연쇄살인범을 활용해 용산참사의 진실을 덮으려 했던 청와대를 생각하고 다시 오싹한 기분이 드는 건 저 뿐인가요?


Trackback 0 Comment 0
2009.02.02 14:03

누가 우리를 죽이고 있는가?

[편집자가 독자에게]히틀러, 헬렌 켈러, 그리고 강호순
                                                                                                                                     안태호 편집장
히틀러의 작품. 이 그림에서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독재자의 멘탈리티를 찾아볼 수 있을까?
▲ 히틀러의 작품. 이 그림에서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독재자의 멘탈리티를 찾아볼 수 있을까?

히틀러가 화가지망생이었단 사실은 꽤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는 1907년과 1908년 거푸 빈 미술 아카데미 입시에 도전하지만 두 번 다 낙방하고 맙니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순 없지만, 성공한 예술가 히틀러를 생각해 보는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만약 그가 미술대학에 무사히 들어가 화가의 길을 걸었다면 홀로코스트의 악몽이 인류를 덮쳐왔을까요?

흔히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현재를 구성하는 불가결한 요소라는 인정을 넘어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여러 가지 가정들은 단지 픽션의 소재로만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의 숱한 실패나 성공들이 가능했던 이유와 조건들을 분석하고 현재에 그것들을 응용해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정들이 오히려 필수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히틀러는 입시에 실패한 첫해에 아카데미 학장을 찾아가 자신이 합격하지 못한 이유를 따졌다고 합니다. 당시 학장은 그에게 회화보다는 건축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충고를 해주지만 당시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수였다는군요. 16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입시를 위해 집을 뛰쳐나온 히틀러에게는 무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입시 실패 후에도 계속 빈에 남아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가 그렸던 그림들을 봅니다. 하나같이 대량학살의 그림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정경들입니다. 결과론적으로 히틀러가 그린 그림들을 두고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려 했다’거나 ‘독재자의 맹아를 확인할 수 있는 멘탈리티가 숨어있다’고 이야기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서의 가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보면, 어쩌면 우리는 20세기 교과서에서 독재자 히틀러가 아닌 예술가 히틀러를 공부하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네, 맞습니다.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히틀러를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역사의 희생자’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헬렌 켈러는 어떨까요. 헬렌 켈러에 대해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 멀고 귀 먹고 벙어리인 삼중고의 소녀가 설리반 선생이라는 헌신적인 멘토를 만나 자신의 절망을 딛고 일어난 인간승리 드라마’ 정도 아닐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헬렌 켈러는 투철한 신념을 가진 사회주의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녀는 1909년부터 미국 사회당 당원이었고, 당내에서도 혁명적 좌파 노선을 걸었다는군요. 당의 온건노선에 불만을 품고 전투적인 산별노조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반전운동의 가장 인기 있는 연사이기도 했습니다.(헬렌 켈러의 ‘연설’에 대해 어리둥절하게 생각할 이들이 있겠지만, 실제로 그녀는 영어를 안정적으로 구사하는 것을 넘어 외국어를 4개까지 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내용은 <혁명을 꿈꾼 시대>의 헬렌 켈러 편을 참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읽었던 헬렌 켈러의 전기를 기억하지만 그녀가 성장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나라의 반쪽짜리 교육이 반쪽짜리 위인만을 강요해 왔던 셈이죠. 다시 한 번 가정법을 사용해 봅시다. 헬렌 켈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극단적인 현실에서도 교육을 통해 위인전의 단골메뉴가 된 그녀지만, 한국에서라면 평생을 어둠과 절망 속에서 보내지 않았을까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편견, 차별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그 정도의 중증 장애인이라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부터가 어려웠을 공산이 큽니다. 더군다나 사회주의자로 노동현장을 누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강호순이라는 희대의 범죄자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지인은 이번 사태로 인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균열’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세상사가 워낙 흉흉하다 보니 개별 신체에 엄습해오는 공포와 불신,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 인간관계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입니다. 당장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느니, CCTV를 더 많이 설치하고 경찰력을 더 늘려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떠돕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지만, 즉자적인 반응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근본원인에 대해서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1%의 인간은 사이코패스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는 저를 섬뜩하게 만듭니다. 이건 유태인을 가스실에 밀어 넣으며 ‘아리안족의 유전적 우수성’을 강조했던 히틀러의 입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걸까요. 나치는 유대민족에 대한 증오와 전쟁을 통해 당시 사회의 다른 모순들을 덮어버렸지만,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의 희생양으로 사회가 가진 치부가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6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국가권력과 연쇄살인범이라는 괴물을 키워낸 사회시스템이야말로 사이코패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시대는 괴물을 낳기에 충분한 악덕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을 위해 사람을 불태워죽일 수 있는 사회, 권력을 향해 온갖 거짓과 비리가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사회, 어린 시절부터 승자독식의 경쟁시스템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사회, 욕망의 무한질주를 위해서는 어떠한 가치도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

교육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만큼 자신 있게 주장할 만한 근거들을 이론적으로나 데이터 상으로나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교육이 변화의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효과적인 기제인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물론, 근대적 교육이 가지고 있는 인간훈육 과정이라는 맹점에 대한 성찰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스템 유지를 위해 기계 부속을 생산하듯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과정 자체에 대한 고민은 중지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단서조항과 유보사항들을 늘어놓는다 해도 교육이 갖는 중요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강호순의 범죄는 다른 반사회적 성향의 범죄자들과 다르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으며 성실한 젊은이였으므로 오직 쾌락만을 위한 살인이었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분석들은 마치 그가 다른 원인 없이 자생적 살인마가 되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가 만약 가정이나 학교에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더라면,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었더라면, 그래도 그는 연쇄살인범이 됐을까요?

사회가 길러낸 괴물이라는 점에서 강호순의 엽기행각도 다른 범죄자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많은 범죄자들의 경우, 불우한 성장환경에서 기인한 반사회적인 성향이 범죄의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왜, 우리사회가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하는지. 어째서 공교육의 파탄을 막아야 하는지. 이들이 사례로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Trackback 0 Comment 2
  1. Favicon of http://iloveincheon.tistory.com/ BlogIcon 인천갈매기 2009.02.02 17:16 address edit & del reply

    옳소! 옳소!

    • Favicon of http://blog.naver.com/citizenk001 BlogIcon 안태호 2009.02.03 01:06 address edit & de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