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09:33

5분의 경이와 한 권의 혁명적 지식

[신간소개] 『지식ⓔ season 4』

EBS 지식채널 e, 『지식ⓔ season 4』, 북하우스, 값 12,800원.

▲ EBS 지식채널 e, 『지식ⓔ season 4』, 북하우스, 값 12,800원.



                                                                     이주호 기자

지식과 검색 정보가 같은 값으로 통용되는 시절이다 보니 지식에는 가치 판단을 들이댈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가치와 남모른 척 돌아선 지식이란 것이 과연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검색 지식, 교과 지식이 마치 가치 판단을 유보한 듯 전달되고 그럼으로써 지식은 실용성에 극진히 봉사하거나 실생활과 유리되어 독립적인 자료의 형태로 고착되는 듯하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혜나 깨달음의 아래 단계에서 용도인 한편 몰라도 큰 불편은 없는 정보라는 이중적 위치에서 요즘 세상 지식이란 건 대개 '유산소 운동을 하더라도 근육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근육운동은 건강에 해롭다, 치즈를 곁들여야 포도주의 제맛을 즐길 수 있다/치즈와 포도주는 영양학상 함께 먹으면 안 된다',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런 모양새를 지켜보다 보면 지식과 지혜를 분리하여 지식을 자기 내면과 관련 없는 바깥 정보로 취급하는 자기계발 지침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싶다. 이런 까닭에 상식에 맞서 지식을 혁명적 진실이라 말하기 위해선 의당 긴 설명을 달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EBS에서 방영하는 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지식채널ⓔ>의 강렬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혁명적 지식과의 만남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식ⓔ』는 <지식채널ⓔ>의 지식을 확장시킨 책이다. 말없는 5분의 경이와 책 한권에 담긴 혁명적 진실. 두 지식 매체를 연결시키려면 이 정도의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이 책은 수와 통계, 인용으로만 지식을 전달한다. 몇 가지 인용을 차례대로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지식체계가 만들어지는지 이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국내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할인점
10배 이상 급증

2001년 이후
소규모 슈퍼, 구멍가게
1만1,400여 곳 폐업
……
소주 한두 병 사려고 대형할인점까지 갈 수도 없고 거기서 왕창 살 물건도 돈도 없지, 뭐. 조금 비싸지만 구멍가게는 외상도 되고…

가난한 사람이 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는 세상”
                                                                                  「구멍 없는 구멍가게」 일부

실제 다큐프로그램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없이 음악과 화면 자막만으로 5분이 채워진다. 내용을 살려 줄 수 있는 음악을 배경으로 글자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까닭에 글자 이미지와 이미지로서의 내용은 책보다 강렬하다. 이미지가 이성보다는 감성 전달에 적합한 이유로 사회진화론적 시각을 자본 시장에 들이대며 구멍가게가 대형할인점에 맞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체념인지 반박인지 모를 말들에 어떻게 대꾸할지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위 인용구가 활자화되어 신명조든 궁서든 글자 모양이란 것이 단지 가독성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될 때는 어떤 것이 지식인지 입씨름을 각오해야만 한다.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서, 과연 지식이 검색 정보와 같은 값으로 매겨질 수 있고, 따라서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지식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보고한 2008년 12월 27일부터 23일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시 사망한 팔레스타인 주민 1,366명, 부상자 5,380명. 같은 기간 이스라엘 측의 발표 병사 10명, 민간인 3명 사망. 이명박 정부, 4대강 살리기를 비롯한 녹색 뉴딜을 발표하며 95만 6,420명의 고용창출 효과 기대. 반면 친환경 녹색에너지 분야에 단 8%, 80%는 토목 공사의 예산이라는 발표되지 않은 수치. 더불어 이명박 정부 들어 장애아 무상보육 지원금 50억 삭감,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비 568억 삭감, 학자금 대출 신용보증기금 지원 1천 억 삭감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치.

수는 정직하다? 어느 면에서는 그렇다. 지식으로서의 수, 통계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정직하다. 『지식ⓔ』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직한 수, 통계, 지식을 나열한다. 프로그램의 회가 거듭되고 책이 한 권, 두 권 쌓여 가면서 이 안의 지식들이 누구를 위한 지식인지 점점 분명해져 간다. 물론 책을 만드는 이들은 지식이 누구를 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광우병 소고기 관련 프로그램에 명예훼손 혐의를 붙여 검찰이 MBC PD수첩 제작진을 체포하고 나섰다. 법적 지식이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에 대한 물음도 물음이지만 『지식ⓔ』3권에 실렸던, 광우병을 내용으로 한 「17년 후」를 제작한 PD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던 사건이 떠오른다. 이명박을 비롯해 미제쇠고기를 먹지 못해 안달 난 이들이 가진 지식과 PD수첩이나 「17년 후」를 제작한 이들의 지식을 비교해 볼 때 드디어 지식의 정체가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렇다,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지식은 없다. 지식은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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