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5 12:08

2008년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대학로를 돌아보다

[2008 장르 결산-⑤]공연

연극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연극열전2’의 열풍은 예상보다 폭발적인 것이었고, 그만큼의 파괴력으로 1년 내내 연극계를 찬, 반 양론으로 갈라지게 했다.

▲ 연극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연극열전2’의 열풍은 예상보다 폭발적인 것이었고, 그만큼의 파괴력으로 1년 내내 연극계를 찬, 반 양론으로 갈라지게 했다.


                                            박준용 _ 공연평론가

올 한 해 한국 사회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진일보를 이루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의 결실을 맺고 있는 듯하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희생을 토대로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자유의 가치는 불과 1년여의 시간 동안 십 수 년 전 과거로 되돌아 가버렸다. 정부는 외부적 요인만 탓하지만, 실상 경제는 어리석은 학자연하는 관료들과 무능한 정치권력으로 인해 안에서부터 붕괴되다시피 했다. 그 결과 경제적 양극화는 극에 달하여 가진 자들은 위기를 이용해 더 큰 부를 획득할 기반을 다지고 있는 반면에, 서민들의 삶은 그나마 있는 것조차 다 내어줘야 하는 곤경에 처하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의 문제는 비단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 사회, 정치, 문화, 예술을 망라한 전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연극계 역시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 한 해, 연극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연초부터 대학로 관객을 휩쓸다시피 한 ‘연극열전2’의 열풍은 예상보다 폭발적인 것이었고, 그만큼의 파괴력으로 1년 내내 연극계를 찬, 반 양론으로 갈라지게 했다. 배우 조재현에 의해 상업적 기획의도를 숨기지 않고 시작한 ‘연극열전2’는, 과거 흥행이 검증된 안전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누구보다 먼저 ‘스타 마케팅’을 내세우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TV나 영화 매체의 인기 배우들은 이순재('라이프 인 더 씨어터')나 나문희('잘자요, 엄마')씨와 같은 장년층 연기자들은 물론 황정민('웃음의 대학'), 최화정('리타 길들이기'), 한채영(‘서툰 사람들’), 고수(‘돌아온 엄사장’) 등의 청,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었다. 물론 해외의 유수한 공연들에서도 세계적인 영화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역량 있는 배우가 매체를 오가며 연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이미 작품성이 검증된 공연을 다시 올리는 것도, 공연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레퍼토리 시스템의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체적인 균형과 정도이다. 불황의 골이 깊어가는 대학로 현실에서 가장 역량 있는 기획팀, 극단, 배우들이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어 가는 동시대의 현실을 외면한 채, 지극히 미시적이거나 희극적인 소재의 재탕, 삼탕 된 작품들에 1년 내내 매달려 있는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결과로만 보자면 수십만이 넘는 관객을 대학로로 불러 모으는 등 외연을 확장했다고 자평할 수 있겠으나, 내실을 들여다보자면 꼭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일반 연극 관객층의 대부분이 연간 2, 3편의 작품을 관극하는 현실은, 엄청난 관객 규모로 인해 블록버스터와 예술 영화가 공존하는 영화계의 그것과 궤를 달리한다. 의도나 기획 면에 있어 블록버스터 영화에 준하는 기획을 사용한 ‘연극열전2’는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대학로의 관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 결과 한국연극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시대 소통을 고민하는 창의적인 시도는 그 어느 해보다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연극열전2’가 불을 당긴 ‘스타 마케팅’에 화답한 것은 뮤지컬계였다. 이미 뮤지컬 배우로 입지를 굳힌 <시카고>, <캣츠>의 옥주현이나 <노트르담 드 파리>, <미녀는 괴로워>의 바다 외에도 이른 바 아이돌 스타들이 대거 뮤지컬계에 진출했다. SS501의 박정민, 빅뱅의 대성, 승리 그리고 슈퍼 주니어의 강인, 김희철 등 중, 장년층에는 낯설기 짝이 없는 아이돌 그룹의 가수들은 <캣츠>, <그리스>, <제너두>, <소나기> 등의 굵직굵직한 작품들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외에도 <싱글즈>를 거치거나 출연 중인 손호영, 앤디, 이성진 그리고 락 버전의 뮤지컬 <햄릿>에 출연한 이지훈 등 나름 기성 가수 군에 속하는 이들 역시 주, 조연급의 비중 있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뮤지컬 배우와 가수가 같을 수는 없다. 응축된 정서를 몇 마디 가사에 얹어 전달하는 가요의 맥락과 극적인 삶의 맥락에서 갈등과 충돌을 겪는 긴 호흡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연극이나 뮤지컬은, 겉으로 보이는 유사성 못지않게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뮤지컬 장르의 특성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아이돌 스타나 가수로서 공연 무대에 선 그들은 인기는 있을 런지 몰라도 아마추어 연기자에 불과하다. 비록 이들의 인기에 힘입어 흥행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작품의 수준과 질적인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관극 측면에 있어서도 무분별한 ‘스타 마케팅’은 손해가 더 크다. ‘스타’는 말 그대로 ‘스타’이다. 어디 가나 떠서 빛나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가 조연이든 단역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스타’의 명성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일반 관객들의 시선은 오직 그를 찾고, 그를 바라보는데 집중되기 십상이다. 결국 삶과 맞부딪치는 작품은 사라지고, 볼거리에 불과한 ‘스타’만이 남는다.  

지난 1994년 국내 초연 이래 4000회에 이르는 기록적인 공연 회수와 그에 준하는 관객
흥행으로 유명했던 작품 <지하철 1호선>이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정리해 보자면 2008년 연극계는 인기 TV, 영화배우가, 뮤지컬계는 인기 가수들이 올 한해를 주름잡은 셈이다. 그 결과 외연의 확장과 내실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룬 한 해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승자독식’의 오만과 상업주의의 탐욕이 대학로를 휩쓰는 위기감이,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인 시도들을 자극하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명동 삼일로 극장에서 올해 7년째를 맞이한 ‘오프 대학로 페스티발’은 이강백 씨의 희곡을 주제로 삼아, 상업극의 메카로 전락한 대학로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비록 주목할 만한 흥행이나 이슈화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삶의 치열한 격전지에서 씌어진 동, 서양 근현대 명작들의 연이은 공연은 천편일률적인 로맨틱 코미디류의 대학로 연극과 다른 작품을 찾는 관객들과 한국 연극계에 도전과 자극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단위 작품으로는 신진 극작가 김지훈 씨의 작품을 극단 연희단 거리패가 이윤택 씨의 연출로 올린 <원전유서>가 각종 연극제의 상을 휩쓸다 시피하며 주목을 받았다. 아무리 짓밟아도 잡초처럼 새롭게 돋아나는 가난한 민중들의 치열한 삶의 의지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신인 극작가로서는 이례적인 4시간 반에 이르는 공연시간과 방대한 양의 이야기, 다양한 캐릭터 군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외에도 올해는 1908년 11월15일 원각사에서 공연된 이인직의 신연극 '은세계'를 시작으로 한국에 근현대극이 뿌리 내린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계기로 주류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 손진책 씨가 <남사당의 하늘>과 <은세계>를, 오태석 씨가 <백년가약> 등을 올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관련 신진 희곡모집과 학술 대회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뮤지컬에서는 지난 1994년 국내 초연 이래 4000회에 이르는 기록적인 공연 회수와 그에 준하는 관객 흥행으로 유명했던 작품 <지하철 1호선>이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이제는  한국 뮤지컬의 전설로 자리 잡은 <지하철 1호선>은 ‘로맨틱 섹스 어필 코미디’라는 정형화된 대학로 흥행 뮤지컬들과 달리, 가장 서민적인 교통수단인 지하철 1호선을 배경으로 일반 시민들이 현실에서 겪는 삶의 애환을 공감적으로 그려내 관객과 평단 모두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공연 형식과 내용의 진일보를 위해 잠시 막을 내리고 보수, 점검을 위해 차량기지로 들어가는 <지하철 1호선>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삶에 소외된 가난한 서민들의 일상을 다룬 이야기가 희귀한 현실에서 <지하철 1호선>의 정신을 이어받아, 올 한 해 의외의 성공을 거둔 작품이 바로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 <빨래>이다. 신세대 연출가 추민주 씨가 직접 쓰고 연출한 뮤지컬 <빨래>는 지난 2005년 초연 이래, 젊은 관객층으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이 작품은 일용직 근로자나 이주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늙고 병들어 삶의 변방에 방치된 쪽방, 옥탑 방 사람들과 같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얼핏 대중성이 떨어지는 소재에 그것도 비극적인 정조의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은 작품에 대한 선입견은, 뮤지컬 특유의 경쾌한 멜로디와 맛깔스런 대사,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 인해 여지없이 깨어진다. 결과는 젊은 관객층의 열광적인 반응과 장기 공연 돌입이다. 뮤지컬 <빨래>의 성공은 삶의 진득한 이야기도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적절한 형식과 조우한다면 얼마든지 대중과의 공감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한 해를 돌아보며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얘기가 두서없이 길어졌다. 최근 사회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공연 예술계 역시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그 속을 뚫고 비추는 한 줄기 빛의 강렬함이 더한 법이다. 그렇게 척박한 대학로의 현실에서도 희망의 싹을 틔우려는 치열한 몸부림은 한국 연극계에 분명 존재하였다. 모쪼록 그런 싹들이 2009년에는 좀 더 자라나 뿌리를 내리고, 작지만 알찬 결실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끝으로 지난 12월15일 유명을 달리한 배우이자 연출가 박광정 씨의 명복을 빈다. 대중에게는 개성 있는 연기자로 알려져 있지만 연극 <마술가게>로 시작하여 최근의 <서울 노트>에 이르기까지, 작품성 있는 연극을 올리기 위해 꾸준히 애써온 연극인 박광정 씨를 잃은 것은 한국 연극계의 적잖은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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