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2 20:25

한독협, '독립영화 한류'의 중심이 되라 -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 ③] 곽용수 독립영화제작배급사 인디스토리 대표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
▲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

한독협이 독립영화 정책을 만들고 환경을 개선하는 등 공적인 영역의 중심에 있다면 독립영화를 만들고, 알리고, 관객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배급의 중심에는 독립영화제작배급사 인디스토리가 있다. 인디스토리는 올해 시네마 달, 키노-아이가 생기기 이전까지 10년 동안 홀로 독립영화 배급의 길을 뚫고 닦아 왔다. 독립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다리를 이어주는 인디스토리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만큼 한국독립영화의 역사는 지체되었을 것이다.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세 번째 주인공은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다. “배우 신하균을 닮았다”는 말에 “미모의 기자와의 인터뷰라 즐거웠다”로 화답 하는 센스 만점의 곽용수 대표를 통해 한국독립영화, 한독협, 그리고 한독협의 동갑내기 친구 인디스토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10살 된 한독협,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어떻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해왔다. 여러 사업과 정책들을 만들어 왔고, 독립영화인들이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만들었다. 이제 놓친 부분이 없나 되돌아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인디스토리도 10주년인데 동갑내기로서 든든하다. 친구이자 동지로 앞으로의 10년도 잘 버텼으면 좋겠다.

어떻게 독립영화 일을 하게 됐나

문화학교서울에서 인디포럼을 진행하면서 독립영화인들을 만났다. 그게 1995, 6년 정도. 그러다가 배급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인디스토리를 구상했다. 독립영화의 경우 감독들은 많은데 기획, 배급 부분이 약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문화학교서울이 일정부분 소화한 측면이 있다. 단편영화, 청년영화도 상영했다.

그 때 한독협과 인연을 맺은 건가

1996년 김동원 감독 사건이 터졌을 때 각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문화학교서울도 대책위에 참가했다. 자연스럽게 독립영화인들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고, 협회가 꾸려졌다. 그 때 조영각 씨가 초대 사무국장이 됐고, 그렇게 문화학교서울과 한독협이 연결됐다.

독립영화인들은 초창기 한독협을 어떻게 인식했나.

욕심과 실망 두 가지다. 한독협이 응당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욕심과 조직의 위상이 생각과 다를 때 오는 실망감이다. 한독협은 회원들의 권익보호를 떠나 독립영화 환경에 대한 정책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독립영화 환경을 풍요롭게 하는데 주력했다. 그런 면에서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한독협을 지지할 수밖에 없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을 거다.

독립영화 배급을 언제부터 구상했나

인디포럼을 진행하면서 배급에 대한 고민도 했었기 때문에 협회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논의가 이뤄졌다. 협회는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서 모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독립영화 관련 사업들을 해야 한다. 독립영화 배급, 유통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고민했다. 또 한독협 안에서 할 지, 다른 단체나 회사에서 할지 고민을 했다.

그런 고민이 인디스토리를 만들었나

당시 기획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단체든 회사든 만들고자 한 달 정도 시장조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되지 않겠냐”라고 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독립영화 배급, 그거 되겠냐”라고 했다. 그러다 한 달 후에 내가 “이거 안 되겠다”하니 다른 사람들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다.(웃음) 반 비전, 반 책임을 갖고 시작했다.

젊었을 때 꿈이 뭐였나. 너무 멀리 온 거 아닌가.(웃음)

학교 다닐 때도 문화 쪽에 관심이 많았다. 일반 회사보다 문화 관련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노래를 했었는데 가수로는 돈 못 벌 것 같아 고민 하던 중 선배가 단편영화 찍는 모임을 갖자는 제안을 해서 문화학교서울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1993년부터 시네마테크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인디스토리는 문화학교서울에 있다가 따로 독립한 것인가?

그렇다. 인디스토리는 자체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문화학교서울에 같이 있다가 법인화 시키면서 나온 것이다. 초창기 인디스토리를 꾸렸던 인력들은 문화학교서울 회원 안에서 다 뽑았다. 세 명 정도. 활동비도 얼마 안 되지만 문화학교서울에서 지원을 받았다. 인디스토리 같은 경우 회사 성격을 가지려고 노력 했었는데 아무래도 문화학교서울 안에서 인력을 뽑다보니 여전히 단체 성격 같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회사에 가까운 구조를 만들려고 몇 년 후 자본금 협조를 받아 법인화 시키면서 문화학교서울에서 분리한 것이다.

인디스토리와 한독협은 어떤 관계를 유지했나

한독협 초창기 당면 과제가 조직의 틀을 잡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시기 배급, 유통에 관한 고민들은 우리가 담당했다. 이후 단체가 안정되고, 배급에 대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서로 보충, 보완 하는 관계가 됐다. 인디스토리가 좀 더 상업적인 마인드로 일을 했다면 한독협은 공동체 상영운동이나 공공적 배급유통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같이 했던 사업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안녕 사요나라>, <다섯은 너무 많아>를 공동배급 형태로 진행했다. 인디스토리는 극장을 맡고, 한독협은 공동체 상영을 맡았다. 그 외에도 라이브러리 사업, 인디스페이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한독협,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친구이자 동지로 앞으로의 10년도 잘 버텼으면 좋겠다."


인디스토리의 히스토리

인디스토리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해보자. 당시 독립영화 배급 상황, 시장은 어땠나?

거의 없었다. 전주MBC나 <시네마천국>에서 한 달에 한 번 단편영화를 방영하는 게 다였다. 초창기에는 VOD를 통해서 단편,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곳이 좀 있었다. 짧으니까 콘텐츠로써 매력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윈도우는 계속 생겼다. 근데 결국 이게 안 되니까 초기에 의욕을 가진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됐다.
 
인디스토리와 이런 환경의 변화도 긴밀한 관계가 있겠다

초기에는 VOD 시장이 재정적으로 도움을 줬다. VOD 산업이 무너지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할 때 방송쪽으로 채널이 생겼다. 특히 KBS <독립영화관>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독립영화관>이 없어질 때까지 인디스토리 수익의 60~70%를 담당했으니까. 안정적인 수익창출이 운신의 폭을 넓히는데도 도움을 줬다. 

60~70%의 수입이 날아갔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운영했나.(웃음)

글쎄, 나도 궁금하다.(웃음) 2006년 말 <독립영화관>이 없어지고 나서 겨울에 좀 힘들었다. 그때는 어느 정도 규모도 커졌기 때문에 안 쓰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랬는데 작년에 <살결> 등 장편영화를 배급하며 숨통이 트였다. 부가판권 시장이 워낙 무너져 힘들었는데 <살결>은 조건이 괜찮았다. 고마운 작품 중 하나다. 흥행은 안됐지만.(웃음)

처음엔 단편, 차차 장편을 배급하게 된 건가

처음 ‘독립영화전문배급사’라고 한 건 단편은 물론 장편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0년에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를 배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장편을 하게 됐고, 2002년도에 4편을 배급했다. 근데 2003년에는 한 편도 배급을 못했다. 배급할 장편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수입 쪽에 눈을 돌리게 됐다.

2002년에 4편을 배급했는데 잘 됐나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의 문제였던 것 같다. <둘 하나 섹스>는 에로 코드가 있어 좀 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는 장르영화라 DVD나 VHS판매가 가능했다. 큰 액수는 아니더라도 단편영화 시장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받았다. 장편 배급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해에는 작품이 없었다.

인디스토리는 언제 틀이 잡혔나

내 기억으로는 KBS <독립영화관> 생기고 1년 정도 지났을 즈음 같다. 2002년부터 좀 안정적인 구조가 됐다. 그러니까 영화 수입, 제작을 생각하게 된 거다.

독립영화 제작환경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아는데

영화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제작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제작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외부의 프로젝트, 프로듀서, 감독을 통해 제작을 하기 시작했다. <팔월의 일요일들>은 도움을 주는 형식이었고, 옴니버스 <눈부신 하루>는 자체 기획해 프로듀서 없이 감독들과 진행한 케이스다.

배급과 제작을 동시에 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게 되나

안정적인 독립영화 제작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배우 매니지먼트, 감독 매니지먼트 등의 사업들도 고민했다. 배우들이 훈련하고, 소위 뜬다고 하더라도 독립영화에 계속 출연할 수 있게. 그게 한국영화간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또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는 고민을 많이 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눈부신 하루>를 제작했는데 제작비가 너무 부족했다. 그러니 당연히 감독도 힘들게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제작 시스템이나 노하우가 회사에 전혀 쌓이지가 않았다. 내부에 시스템은 물론 담당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부에 제작 기획하고, 프로젝트 검토, 자체 기획 아이템 개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영화는 많다, 하지만 아직 배고프다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독립영화가 많아졌다. 독립영화계에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독립영화에 관한 관객들의 선입관이 있다.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면서 오히려 관객들이 ‘독립영화는 이렇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품이 많아진 만큼 일 년에 한두 편, <송환> <우리학교> 같은 영화들이 터져주면 독립영화에 대한 선입관들이 없어지고 관객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거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좀 아쉽다. <우리는 액션배우다>가 계기가 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안 터졌다. 현재 경기 침체와 더불어 영화 관람 자체의 침체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작품 수에 비해 상영공간은 부족하지 않나

인디스페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들이 많이 생겨서 많은 작품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인디스페이스가 소화해내는 영화가 그 중에 반 정도 될 거라 생각한다. 한 개관이 갖고 있는 한계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지역 예술영화 네트워크 중심으로 일정 정도 소화해 낼 수 있는 공간들이 생겨야한다.

인디스페이스가 다양한 취향의 영화들을 다 소화해 낼 수는 없다는 말인가

그렇진 않다. 다만 그걸 여유 있게 소화해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거다. 우리 영화 중에도 인디스페이스가 없었으면 개봉하기 힘든 영화가 있다. 작품성과 상관없이 대중성이 떨어지는 영화들이다.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지만 계속 상영을 함으로써 다른 영화들도 가능성이 생기는 거라 본다. 그런 역할은 CGV, 무비꼴라쥬, 시네큐브 등 다른 극장에서는 사실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시네마 달, 키노-아이 등 독립영화배급사들이 등장했다.

좋은 일이다. 우리가 10년 버틴 것처럼 잘 버텼으면 좋겠다. 두 배급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굳이 경쟁이라고 한다면 선의의 경쟁이 될 것 같다. 또 두 배급사는 우리와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 시네마 달 같은 경우는 공동체 상영, 다큐멘터리를 집중적으로 관리 할 거고, 키노-아이는 인디스토리가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을 소화할 거다.

인디스토리가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사실 인디스토리 배급라인은 거의 다 차 있는 상태라 우리가 소화할 수 없는 작품들이 많다. 인디스토리만 있었을 때 사장됐을 수 있는 영화들이 개봉될 수 있다는 거다. 고마운 일이다. 배급에 대해 같이 고민 하면서 배급 시장을 넓혀 가면 좋겠다.

올해 몇 편의 영화를 배급했나. 또 향후 배급 일정은.

9, 10편정도 개봉했다. 거의 한 달에 한편 정도 개봉했으니까. 내년 7, 8월까지는 배급 라인업이 다 찼다. 1, 2, 3월에는 다큐멘터리 세 편 <워낭소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할매꽃>이 연달아 개봉할 예정이다. 극영화는 <처음 만난 사람들>, <반두비> 그리고 MBC와 함께 만드는 작품이 개봉할 거다. 또 가족의 달에 개봉할 외화도 하나 있다.

많은 작품을 배급하지만 여전히 ‘관객과의 만남’이 최대 과제인 것 같다. 복안이 있나.

복안은 없다.(웃음) 쉽지 않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건 상업영화도 마찬가지다. 가령 마케팅 예산을 많이 써도 소용없는 경우도 있고, 더 적게 썼는데 반응이 좋은 경우도 있다. 또 이 영화가 저 영화보다 나은 것 같은데 극장의 차이로 인해 흥행의 차이가 나면 안타깝기도 하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지원을 받고 포스터 비용 정도만 든 영화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영화도 있다. 포스터 비용조차도 못 건진 거다.

좀 슬프다. 그럼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목표와 문제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계속 노력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충성도 높은, 적극적인 관객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홍보마케팅이나 배급의 전략에 관한 문제들은 실타래 풀듯 풀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공동체 상영운동 등 네트워크를 활용한 배급 상황은 이전보다 좀 나아질 것으로 본다.

곽용수 대표가 꿈꾸는 인디스토리는.

‘인디스토리 가면 모든 독립영화, 단편영화를 다 볼 수 있어’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또 큰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기획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 그런 욕심만 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면 부가판권시장이 좋았을 때처럼 제대로 된 윈도우들이 생겨 방송에서도 안정적으로 독립영화를 틀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웃음)

"인디스토리가 배급했던 영화들의 면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었다"


인디스토리의 쌩얼을 공개한다!

얼마 전 ‘오! 인디풀영화제’가 시작됐다.

인디스토리 10주년을 어떻게 할까 작년부터 많은 고민을 했다. 욕심 같아서는 인디스토리가 배급했던 모든 영화를 다 틀어주고 싶었다.(웃음) 그게 힘들다면 어떻게 객관적으로 작품들을 보여줄까 고민했다. 어차피 인디스토리는 배급회사니까 우리가 배급했던 영화들의 면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었다.

주요 섹션을 소개해 달라.

먼저 ‘오! 인디풀영화제’ 안에 ‘존 카사베츠 영화제’가 들어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기획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따로 홍보하고 있지만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존 카사베츠는 독립영화의 정신이다. 또 이 감독의 작품이 최근 한국영화, 독립영화든 충무로영화든, 제작시스템과 연관해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톡 건드려주고 싶었다.

인디스토리가 배급했던 영화들이 참가하는 섹션은.

일단 장편, 단편으로 나뉜다. ‘보다 깊이’라는 섹션에서는 전문가들이 추천한 3편의 장편과 10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보다 멀리’ 섹션은 해외에서 상영되고, 호응이 좋았던 장편, 단편영화를 상영한다. ‘보다 자유롭게’ 섹션은 네티즌들과 함께하는 섹션이다. 네티즌이 선정한 작품들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리고 인디스토리가 제작한 장편 3편과, 수입한 작품 3편을 상영한다. 총 상영 횟수가 100회 정도 된다. 사고 없이 잘 끝냈으면 좋겠다.(웃음)

그 외 인디스토리 10주년을 기념하는 게 있나.

영화제 외에 인디스토리를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10년의 성과를 책으로 만들어 보고자, 배급현황과 지난 십년의 그래프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정식으로 발매는 안됐지만 당대별로 의미 있는 독립영화, 단편영화들을 뽑아서 기념 DVD로 제작하고 있다.


독립영화의 한류, 한독협과 인디스토리가!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인디스토리의 고민이기도 한데, 결국은 운영이익이다. 독립영화 같은 경우는 정책들과 연관된 부분이 많다. 정책들은 아무래도 정권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기존과는 달라질 것이고, 그게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재정적인 부분에도 부담되는 측면이 있을 것 같아서 좀 걱정이다.

4기 영진위에 대한 언급인 거 같다.

가령 독립영화전용관을 옮기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근데 기존의 복합상영관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추진되면 어려움에 봉착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기존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영화제작배급을 했다면 이제는 정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계속 부딪혀야 하고 싸워야 할 것 같다. 경제가 어렵기도 하고, 여러 정황 상 독립영화인들이 자신들의 본질, 원칙들을 다시 다지는 힘든 5년이나 10년이 될 것 같다. 그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도 같다. 

한독협에 대한 제언을 해달라.

한독협이 워낙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조직 관리나 사업에 대해 놓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한독협은 재정적으로 안정된 곳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또 이건 인디스토리의 과제이기도 한데, 네트워크를 구성해 해외 독립영화계와 많은 교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아시아 쪽 독립영화인들과 교류가 활발해져 다양한 연대를 만드는데 한독협이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



                              * 2008-11-11 오후 2:47:22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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