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8 07:41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작가와 작품들

[대안만화를 말하다-③]세계의 대안만화(유럽) 
                                                                                                                       한상정 _ 만화연구가
다비드 베의 <간질의 승천>
▲ 다비드 베의 <간질의 승천>
유럽만화의 중심지는 벨기에-프랑스를 잇는 불어권 만화이다. 물론 그 이외의 국가에서 자국의 만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불어권 만화처럼 전체 출판의 7%정도를 차지하는 국가는 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불어권 만화나 미국권의 코믹스, 극동 아시아의 망가등을 프랑스 출판시장을 통해 소개받고 있다. 대안만화 역시 그 사정이 틀리지 않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968년의 사회적 격변기는 1959년에 창간되어 초유의 인기를 누렸던 잡지인 필로트 Pilote 독자들의 성장과도 궤를 같이 한다. 바로 이 독자들이 존재했기에 하라-키리Hara-Kiri(1968),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1968), 샤를리 망슈엘Charlie Mensuel(1969)같은 신랄한 풍자잡지들이 창간될 수 있었다. 특히 이 샤를리 망슈엘은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해서 자유로운 표현과 다양한 실험을 행한 지면이기도 하다.

이들에 힘입어 1973년에서 1978년 사이, 수많은 만화전문지가 창간되었다. 70년대의 만화들이 프랑스 만화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수준 높은 잡지들의 융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에코 데 사반느L'Echo des Savannes (1974)라는 관습성을 배척하는 잡지, 메탈 위를랑Métal Hurlant(1975)이라는 공상과학, 락의 세계를 주로 다룬 잡지, 그리고 플루이드 글라시알Fluide Glacial (1975)과 같은 풍자적 성격을 지닌 잡지가 그 대표작들이다. 이 시기의 만화는 성인층을 독자군으로 정착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70년대 말에 오면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많이 소개되면서 프랑스의 만화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바로 이 무렵부터 우리가 오늘날 앨범album이라고 부르는, 46~48페이지에 올 컬러, 하드커버라는 프랑스 만화책의 형식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마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1980년대 초반기 만화시장은 상당히 커져 있었지만, 하반기에 이르면서 전반적인 침체에 들어간다. 대부분의 잡지들은 폐간되었고, 만화는 잡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앨범으로 독자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출판사들은 흡수와 통합을 계속했고, 다르고Dargaud, 뒤피Dupuis, 글레나Glénat, 위마노사이드 아소시에Humanoïdes Associés, 롱바르드Lombard 출판사에 이어 델쿠르Delcourt, 솔레이으Soleil 등의 출판사가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상업적인 성공이었고, 만화는 그 자리에서 고착되고 있었다.

1990년 루이스 트롱다임Lewis Trondheim, 장-크리스토프 므뉘Jean- Christophe Menu, 스타니스라스Stanislas, 마트 콩튀르Matt Konture, 킬로퍼Killoffer, 다비드 베 David B, 그리고 모카이트Mokeït는 기존의 모든 출판사에서 자신들의 작품출판이 거절당하자 함께 ‘아소시아시옹’이라는 출판사를 차린다. 이 출판사는 상업적인 구조라기보다는 일종의 조합association인데, 전자와의 차이는 조합의 경우 수익이 나면 그 부분을 다시 만화책을 만드는 데 재투자하게끔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 멤버가 구성되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70년대로 건너뛰어야 한다. 1974년 에티엔느 로비알Etienne Robial은 플로랑스 세스탁Florence Cestac과 더불어 ‘퓌트로폴리스Futropolis’라는 출판사를 차린다. 이 출판사는 세가Segar의 「뽀빠이」나 조르쥬 헤리만George Herriman의 「크레이지 캣 Krazy Kat」의 출간을 시작으로 미국의 30~40년대 작품들의 재판, 그리고 재능 있는 신진 작가들(므뉘, 장-클로드 괴팅Jean-Claude Götting, 스타니스라스, 필립 프티-룰레Philippe Petit-Roulet, 에드몽 보도앙Edmond Baudoin 등)의 작품을 출간했다. 이 출판사가 출간한 서적들은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특히, 로비얄은 표지의 편집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고 한다), ‘예술로서의 만화’라는 개념을 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87년부터 재정적 어려움으로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의 경제적 도움을 받았고, 동일한 이유로 1989년부터 준비해서 1990년에 출간된 라보Labo라는 잡지는 창간호로 막을 내려야 했다. 결국 이 출판사는 1994년 최종적으로 갈리마르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전의 보석 같은 재고들을 헐값으로 팔아 치우지 않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이 조건은 꽤 오랫동안 지켜지다가, 2004년부터 갈리마르가 솔레이으 출판사와 함께 이 ’퓌트로폴리스‘라는 이름을 ‘공동 컬렉션’의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파기되었다. 새로운 작품들을 출판해야 하므로 더 이상 과거의 재고를 쌓아두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비록 이 새로운 컬렉션에서 상당히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고는 해도, 예술로서의 만화라는 이미지를 도용하면서 막상 그러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보관하지 않고 팔아넘겼다는 비난은 상당히 강경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엠마뉴엘 지베르 <알랑의 전쟁>



여하간, 바로 이 라보 창간호가 아소시아시옹 창립자들의 대부분이 만나는 기회를 제공했다. 원고를 실으면서 마음이 맞은 작가들은, 라보가 중단되고 더 이상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구할 수 없자 이러한 대안을 마련하고 행동에 옮겼던 것이다. 이들은 출발부터 자신의 색채를 명확히 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기존의 ‘앨범’과는 다른 형태의 만화책을 제작했다. 제작비용의 문제도 있겠지만 일단 이들은 컬러를 자제하고 흑백의 그래피즘을 선택했다. 텍스트는 대소문자를 함께 사용하여 쓰고, 하드커버를 사용하지 않으며, 페이지의 양 역시 제한하지 않았다. 또한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은 새로운 테마를 만화책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서전이다.

물론 이 출판사는 다른 상업 출판사보다 훨씬 소규모이다. 하지만 이 출판사에선 작가들의 원고료가 동일하다. 즉, 유명하다고 인세를 더 받지도 않고, 처녀작을 낸다고 해서 덜 받지도 않는다. 이들은 또한 ‘만화’라는 표현양식의 유일무이함을 주장하며, ‘작가’로서의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출판사는 결코 자신의 책들을 무료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도 유명하다. 새 책이 출간되고 나면 주로 언론의 담당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은 프랑스에서도 정착이 되어 있는데, 아소시아시옹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작가로, 만화책을 작품으로 생각하는 한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단지 알아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직접적으로 요구받아도 ‘사서 보라’고 조언한다.

1992년, 출판사는 드디어, 라보의 정신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라팡Lapin이라는 만화 잡지를 출간했다. 이 잡지의 이름은 트롱다임의 대표적인 주인공, 라피노Lapinot를 본따서 므뉘가 만든 인물인 라포Lapot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2002년까지, 92페이지에서 140페이지 분량으로 한 해에 2~3권씩 정기적으로 출간되다가, 이 해 겨울부터 폐간은 아니지만 부정기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이 잡지에서 독자들에게 선보인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만화는 이후 동일한 출판사에서 만화책으로 만들어졌다. 라팡은 아소시아시옹이 다루는 만화들이 어떤 것인지 일거에 파악하게끔 했고, 젊은 작가들을 주변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책과 잡지를 출간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어떻게 서점으로 유통시킬 것인가? 프랑스의 경우, 만화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군데로 나눠진다. 하나는 만화책 전문 서점, 둘째는 일반 거대 서점, 세 번째는 대형 슈퍼마켓이다. 상업 출판사들은 유통사를 통해 이 세 군데 모두에 자신의 책들을 유통시킨다. 2006년엔 총 225개의 만화 출판사가 활동을 했는데, 이 중 상위 17개의 출판사가 전체 출판물의 70%를 출간했다. 즉 나머지 30%의 출간은 108개의 소규모 출판사에서 행해진다는 것이다. 출판에서의 과대한 집중 현상이 존재한다면 유통은 에디티스Editis와 아세트Hachette 두 회사가 거의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내거는 조건을 아소시아시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소시아시옹이 선택한 방식은 이후 프랑스 만화계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들은 다른 두 가지 성격의 판매 장소는 과감히 포기하고, 만화 전문서점에만 서적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만화 전문 서점에로의 유통이라는 역할을 맡은 것은 팬클럽이다. 아소시아시옹은 2년 만에 200명의 회원을 모았으며, 2000년이 이르렀을 때는 회원 수는 거의 1,000명에 이르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서점에 책임지고 배달하는 대신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또는 이 출판사의 서적을 할인가에 구입할 수 있는 혜택을 받는다. 또한 독자들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자치적 만화회(1994~1997)’라는 이름의 매달 정기모임을 파리시내의 한 카페에서 열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 판매, 또는 강연이나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탓에 아소시아시옹의 이런 행사는 폐지되었다.

루이스 트롱다임 <근접하게> 



결국, 1999년에 이르면 아소시아시옹과 락캄Rackham 출판사의 사장인 라티노 임파라트Latino Imparat는 함께 기존의 유통시스템과는 무관한 ‘독립출판사들의 계산대Le Comptoir des Indépendant’라는 유통사를 세웠다. 오늘날 대부분의 소규모 대안만화 출판사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서적들을 만화 전문 서점만이 아니라 거대서점에까지 유통시킨다. 결국, 아소시아시옹의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생산’과 ‘유통’이라는 양 대 구조를 탄생시킨 것이다.

아소시아시옹이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들과 활발한 활동은 무언가 새로운 만화를 갈구하던 젊은이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1994년 앙굴렘의 순수미술학교 출신의 몇 작가들은 ‘이고 껌 익스Ego comme X’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동일명의 잡지를 내기 시작했다. 작가들 중 로익 네후Loïc Néhou가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자비에 뮈사Xavier Mussat, 파브리스 노Fabrice Neaud, 프레데릭 포앙슬레Frédéric Poincelet, 프레데렉 보알레Frédéric Boilet등의 작가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현재까지 60권 가량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이 출판사의 작품 중 가장 커다란 이슈를 불러일으킨 작품은 파브리스 노의 「저널Journal」이다.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작가의 만화와 예술에 대한 사색, 성적 기호와 그에 의한 자신의 경험과 감정들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드러냄으로써 많은 독자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2002년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감동상’을 받은 4권 이후 아직까지 독자들을 기다리게 하고 있다. 동명의 잡지인 이고 껌 익스는 2003년까지 9호까지 나온 이후 일단 중단된 상태이다.

비록 잡지는 내고 있지 않고, 또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출판사도 아니지만, 대안만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다른 출판사가 있다. 바로 1991년 장-루이 고티 Jean-Louis Gauthey가 세운 ‘코르넬리우스Cornélius‘이다. 빌렘Willem과 크럼Crumb 같은 중요한 작가의 작품들을 출판하는 것에서 시작, 이어서 트롱다임, 다비드 베, 블러치Blutch와 같은 만화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했다. 이 책들은 높은 수준의 표지 디자인과 편집상태, 그리고 높은 안목의 작품 선정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크럼 이후 미국과 일본의 다른 대안만화를 출간하기도 했다. 특히, 이 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한 시게루 미즈키Shigeru Mizuki의 「농농바NonNonBâ」는 2007년 앙굴렘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아소시아시옹을 필두로 한 이 출판사들의 활동은 다양한 대안만화 출판사들을 이끌어 내었고, 이로써 불어권 만화는 튼튼한 재생산구조를 갖춘 셈이다. 아킬오스Akileos, 아트라빌Atrabile, 라 보와트 아 뷜La Boîte à Bulles, 라 카페티에르La Cafetière, 샤레트Charrette, 클레어 드 륀Clair de lune, 라 코메디 일뤼스트레La Comédie illustrée, 르 시클리스트Le Cycliste, 드로조필Drozophile, 에르코Erko, FLBLB, FRMK, 그라푸니아지Grafouniages, 그로앙지Groinge, 이페엠IPM , 조커Joker, 집 아방튀르JYB Aventures, 루Loup, 메갈리트Mégalithes, 모스키토Mosquito, 프티 타 프티Petit à petit, PLG, 락캄Rakam, 레 르캥 막토Les Requins Marteaux, 시 피에 수 테르Six pieds sous terre, 타르타뮈도Tartamudo, 테르 느와르 Terre Noire, 텔로마Theloma 등이 그 대표적인 이름이다.

<아소시아시옹> 창간 멤버의 캐릭터 

이 계승자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레 르캥 막토’이다. 왜냐하면 이 출판사는 1996년부터 페라이Feraille라는 잡지를 내고 있으며, 게다가 기존의 소규모 출판사와는 틀리게, 컬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0호까지는 3개월마다 한 권씩 48페이지로 출간되다가 2003년 21호부터는 훨씬 더 늘어난 분량으로 페라이 일뤼스트레 Feraille Illustré로 이름을 바꾸고 부정기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출판과 잡지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전시기획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총체적인 문화기획팀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제 이러한 대안만화출판사와 작가들의 활동이 20여년에 달해가면서, 이들은 내외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2007년 한 해에 발간된 만화책의 종수는 총 4,313권이다. 한 달에 약 360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들은 각 서점마다 배치불가능의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간된 만화책들은 독자들에게 소개되기 쉽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재정력이 약간 대안만화출판사의 서적들을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내적으로는, 이제 어제의 대안만화의 작가들이 오늘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소시아시옹의 설립과 발전에 기여하던 대부분의 작가들은 탈퇴를 선언하거나 더 이상 이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내외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 대안만화 진영의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갈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 본 기사는 우리만화연대에서 발간하는 <우리만화>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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