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4 01:02

철학과 목표가 부재한 슬로건의 시대가 도래하다

[2008 장르결산-⑦]문화예술정책
염신규 _ 민예총정책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유인촌 문화부의 퇴행적 질주는 거침 없었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유인촌 문화부의 퇴행적 질주는 거침 없었다

정치와 달리 정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치는 그 방향이 어찌되었건 끊임없는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지만 정책은 정치의 저 편에 가려져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정책이 소통되는 방식의 불투명함은 이 땅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는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정책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으나 실상 어떤 정치보다 강력하게 모든 국민들의 일상적 삶의 조건을 규정해 나가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법제도, 공공예산, 행정 등 문화예술정책을 구성하는 제반요소들은 문화예술인들의 예술환경과 나아가서 전 국민의 문화적 삶의 조건을 강제한다. 이처럼 삶의 강력한 조건이자 기반인 정책에 관한 이슈나 정보가 보통 사람들과 유리되어 있거나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와 행정이 여전히 민주주의를 균형있게 체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08년의 문화예술정책은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의 수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던 지난 10년을 뒤로하고 국민들이 2007년 말 선택한 이명박 정부는 ‘경제살리기’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실용정부를 표방했다.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명확했다. 지난 정권들이 90년대 후반 구제금융기를 극복했고 지표상의 경제성장은 이어졌으나 고용불안과 물가상승, 빈부격차의 심화 등 국민의 일상적 삶에 있어서의 불안정성은 오히려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치 세력의 도덕성 유무를 떠나 먹고 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정부를 원했다. 이런 바램 속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고환율 정책과 ‘대운하 사업’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토건 사업으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꾀하려했으나 국제적 금융위기와 대운하정책의 실효성 유무에 대한 논란 등으로 오히려 경제 상황을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기대와 달리 경제가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등 국민여론에 반하는 악수를 두었고 이는 지난 봄 촛불정국으로 대표되는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다. 이에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하는 자숙의 모습을 보여줬으나 촛불정국이 수그러들기 무섭게 이른바 신보수주의적 전환을 가속화했다. 지난 정권들의 국정운영을 상당 부분 뒤집는 이 전환들은 반민주적 퇴행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만 의회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현 정권의 이런 움직임을 제지할 현실적 방법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국가적 격변 속에서 문화 정책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예술계 기관장 인사 파문

정치적 권력 교체는 국가운영의 각 요소를 담당하는 주요 기관의 인사 정책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정권 수립과 더불어 이뤄진 개각부터 시작해서 정부 각 부처의 요직들에 대한 교체가 이뤄졌고 정부 산하 기관들에까지도 이어졌다. 사실 정권 교체에 따른 인사 교체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잔여 임기가 남아있는 기관장들에게까지 억지에 가까운 사유를 근거로 해임을 단행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인사조치는 비정상적이었고 당사자들과 문화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문화계에서 해임된 대표적 인사들로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이었던 원로미술평론가 김윤수 씨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원로화가 김정헌 씨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의 해임 사유는 각각 미술품 구입에 관련한 관세법 위반과 문예진흥기금 투자 손실이었다. 전자의 경우 법적 절차를 어긴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미 이전에 감사원의 기관경고조치를 받은 사항인데다가 업무담당자가 아닌 미술관장에게까지 책임을 돌리기에는 지엽적인 업무상 단순과실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감사원 감사에서 권고를 받은 사항이었으나 국제 금융 위기에서 거의 모든 공공 기금이 투자 손실을 본 상황이었기 때문에 억지스런 이유 붙이기에 다름없었다. 이런 파행적 인사조치는 이미 정권 수립 초창기였던 3월에 있었던 유인촌 장관의 인터뷰에서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꾸준히 문화예술교육정책에 반대했던 이대영 교수를 한국문화예술교육원장에 임명하는 상식 밖의 인사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이대영 교수는 뉴라이트 단체인 자유주의연대의 운영위원이자 문화위원으로 지난 2004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결성한 극단 ‘여의도’의 참여정부 비판 연극 <환생경제>를 연출했던 장본인이었다.
 
정파적 입장에 좌지우지되었던 문화예술계 기관장 인사 파문은 예술계의 분열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며 지난 수년간 어렵게 쌓아올렸던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일거에 파괴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문화예술정책 거버넌스의 총체적 실종

문화예술계 기관장 인사파문에서 드러난 정권의 일방주의적 문화행정은 곧바로 그간 꾸준히 실험되며 성숙되기 시작했던 문화예술정책 거버넌스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등 국가의 문화예술행정과 민간 문화예술계의 정책역량의 협업은 참여정부 동안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수업료를 낸 만큼의 성과를 만들어 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예술위를 꼽을 수 있는데 1기 예술위가 초대 위원장 사퇴라는 우여곡절 속에도 다양한 장르 및 기능 소위원회 활성화를 통해 문화거버넌스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현실화 시켰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기초예술의 위기감 속에서도 예술 현장의 요구에 기초한 예술 정책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살아있는 예술정책의 흐름을 제도권 안에서 수용했던 점은 높이 평가 받을 만 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와 동시에 문화부는 그간의 예술위 1기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기 위원회 구성을 앞둔 상황에서 열린 토론회 등을 통해 지난 예술위행정 경험이 전무한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되어 조직운영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는 식의 여론을 조성했고 문화부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문화부가 예술위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게 될 것인지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던 셈이다. 문화부는 다시 예술위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과거 문예진흥원 시절과 같은 수직적 상하 관계를 설정하기 시작했고 2기 위원회 출범 전후해서는 이런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화부가 9월 발표한 새정부 예술정책에서 예술위 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전까지 11인 위원회가 예술위 운영의 전반사항과 기금운용에 대한 내용들을 심의하고 집행하는 것을 모조리 삭제하고 정책기능만을 위원들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문화예술정책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아직까지도 유인촌 장관 문화부의 문화예술정책은 오리무중 상태다. 산발적으로 몇 개의 정책들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 지난 정부부터 진행되어왔던 것이거나 지엽적 사업에 머물렀을 뿐이다. 과연 이 정권의 문화정책이 지향하는 철학이나 목표가 무엇인지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1년이었다. 지난 정부와 철학을 같이했던 인사들을 배제하겠다는 논리는 억지로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를 대체하는 문화예술정책 패러다임을 구체화시켰는가는 의문스럽다. 항간에는 현 정권의 ‘경제 살리기’ 방법론으로 내세운 대표적 정책이 ‘대운하 사업’이었는데 알고 보니 오직 ‘대운하사업’ 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있다. 며칠 전 문화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보니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주도로 ‘녹색문화르네상스’를 열겠다는 제목이 눈에 띈다. 결론은 문화정책이고 뭐고 무작정 토건으로 대동단결하겠다는 이야기인가. 콘텐츠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새마을 운동식 슬로건이 지배하는 시절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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