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4 13:33

원치 않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기자의 눈]‘기본소득제도’는 사회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박휘진 기자
지난 20일 '용산 참사'현장.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으로 내몰리는 지금, 사회적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 지난 20일 '용산 참사'현장.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으로 내몰리는 지금, 사회적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매주 일요일 직장인들은 내일을 두려워한다. 왜? 출근해야 하니까. 매달 직장인들은 단 하루만을 바라보고 산다. 어떤 날? 월급날. 어째서 그들에게는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일까? 이유는 명백하다. 원치 않는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에 매인 노동은 즐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실현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며,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러한 노동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기본소득제도’가 그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는 아직은 낯선 이야기인 ‘기본소득제도’가 한국사회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제도의 주창자 중 한명인 앙드레 고르의 책 『에콜로지카』가 지난 겨울 국내에 소개되었고, 박홍규 교수가 민주법학에 관련 글을 실은 바 있다. 1월 22일에는 제 3회 사회대안포럼에서 ‘기본소득제도의 사회대안적 가능성’에 대한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사회에서의 적용가능성을 타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본소득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으로 사각지대 제로의 보편복지제도이다. 기본소득제도 프로젝트를 통해 형성된 한국의 기본소득 지급액은 39세 이하 연 400만원, 41세 이상 54세 이하 600만원, 55세 이상 64세 이상 800만원, 65세 이상 900만원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실현가능한 일인가? 

사회대안포럼 심포지엄 발제문에 따르면 “2006년부터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한 나미비아의 오미티라 지역에서는 60세 미만 거주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후로 과거에 만연했던 식량구걸행위를 완전히 소멸시켰으며 지역민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크게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나미비아뿐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일본 등이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에 참여”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으로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지급된다. 이는 “인간을 억압적인 노동으로부터 해방하여 능력에 따라 보다 자유롭게 노동을 선택하게끔 경제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대신에 노동시간을 감축하고 자유시간의 길이와 질을 향상시키는 탈노동중심주의”(연방노동공동체 기본소득 그룹)를 실현시키기 위함이다. 때문에 기본소득제도가 실현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위해서 노동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임금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그것은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는 일이라기보다 컴퓨터 앞에, 기계 앞에 에너지를 내다버리는 일이다.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카프카 소설『변신』의 주인공처럼 ‘벌레’가 되는 일이다.

발제문에서는 이와 더불어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각자 원하는 노동을 하게 되어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소득이 기본소득수령액만큼 증가한다. 더구나 무상의료․무상교육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지출요인이 감소하여 잔업동기가 약해져 일자리를 나누게 되어 비자발적 실업을 축소시킬 여지가 커진다”, “사회성원 대부분의 실질소득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전업주부도 독자적인 소득과 경제권을 향유하게 되어 가정 내 남녀평등에 기인할 수 있다”, “GNP 통계에 계산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노동들이 풍부해 질 것이고,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의 활동이 확실히 증가할 것이다” 등 기본소득제도의 효과를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돈’일 수밖에 없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기본소득제도일지라도 지급되어야 할 총액수가 대체 어느 정도이며, 그것이 어떻게 조달가능한지에 대한 전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심포지엄에서 제안한 재원조달은 주로 ‘세제 개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기본 원칙은 ‘모든 소득에 대해서 과세한다.’,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30%의 세율로 일률적으로 원천과세하고 종합소득에 합산시켜 다시 과세한 다음 기납입분은 공제한다’, ‘불로소득에 대한 세율은 조세제도가 정착되면 점차 늘리고 소득세율은 낮춰 간다’ 등이다. 발표자는 “이와 같이 부과하면 연 과세대상 소득이 1억원에 달하는 사람의 경우조차 가족이 2인 이상일 경우 기본소득으로 인해 실질소득이 늘어난다”며 “국민의 90%정도가 이득을 보기 때문에 조세 저항을 거의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곽노완 교수와 강남훈 교수는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다”면서 “세금을 내라고 하면 무조건 국민들이 반대부터 하고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보는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은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며, 동시에 연말에 멀쩡한 도로를 뜯고 바르는 데 내 돈이 쓰이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야하는 정당성을 합의로 도출해내는 일은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한 고비 넘기면 또다시 찾아오는 경제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라면 우리 선택의 폭은 넓지가 않다.

기본소득제도가 사회적 대안으로 실행되어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다면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적어도 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인들은 없지 않을까. 지난 20일처럼, 쫓겨 올라간 ‘골리앗’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철거민도 없지 않을까. 기본소득제도를 위한 세제 개편이 이뤄진다면 땅값, 집값 등 지대를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광적인 열광도 사그라질 테니 말이다. 노점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철거민들에게 내려진 최종결정이 1600명의 경찰병력과 특공대 투입뿐인 사회는 절망 그 자체다. 원하지 않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사회적 대안이 너무나 절실하다.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논의는 대안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우리를 죽이고 있는가?  (2) 2009.02.02
여기, 예술이 있다  (0) 2009.01.28
원치 않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0) 2009.01.24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0) 2009.01.20
우리모두가 미네르바다!  (2) 2009.01.13
도둑과 히말라야 야크의 사랑  (0) 2008.12.18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