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7 17:39

우리 시대 인문학은 왜 방황하는가

11월 13일 연세대 인문학특성화사업단이 주최한 <명사초청 인문학 강좌>에서 김수용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 11월 13일 연세대 인문학특성화사업단이 주최한 <명사초청 인문학 강좌>에서 김수용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를 넘어서 있다. 그것은 곧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수유너머의 고병권씨가 평화인문학 워크숍에서 “다른 삶에 대한 절실함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다.”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인문학이 무엇이기에 인문학을 하는 것이 곧 삶과 연관된다 하는 것인가? 11월 13일 연세대에서 열린 <명사초청 인문학 강좌>에서 김수용 교수(연세대 독어독문과)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나로 내릴 수는 없지만, 인문학의 대상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인문학은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에 대해 희망적인 그리고 절망적인 시선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리고 그 방황에 의해 성숙해가는 과정에 놓여있는 학문’이다.  

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임을 자처한 인본주의 시대에 비로소 생겨나고 발전한 것이 인문학이었기 때문에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가 그랬다. 김수용 교수는 “그들은 이성의 교육을 통해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만들 수 있었다 믿었고 이러한 완전한 인간, 완전한 사회는 더 이상 신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어야 했다.”고 언급하면서 “완전한 사회-유토피아로 이르는 길이 곧 인간의 역사이며, 이와 같은 역사의식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무한한 희망에 바탕을 둔 극한의 인본주의의 산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계몽주의자들에게 프랑스 혁명은 꿈과 같은 사건이었다. 기존의 혁명들과는 달리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고결한 휴머니즘 이념을 바탕으로 한 혁명이아닌가. 그러나 김수용 교수는 바로 이 프랑스 혁명이 인간에 대한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하층 계급의 광란적 폭동, 급진적 혁명지도자들에 의한 테러, 그리고 공포 정치로 변질되어가는 하는 혁명을 보면서 그들은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주의자들을 현실로 되돌려 놓는 인간학(Anthropology) 즉 ‘철학적 인간학’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적 물음이었고, 완성에 이르는 진보적 역사관 위에 놓은 역사철학에 대한 부정이었다.

김수용 교수는 ‘역사철학적 이상주의와 인간학적 현실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것이 현대 인문학의 숙명’이라고 했다. “실현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상이 있어야 열정을 얻어낼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숭고한 이념을 실현하려는 행동만이 우리를 허무와 나태로부터 지켜줄 것이고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희망과 믿음이 현실로부터 괴리된 신화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확신과 열정이 맹신과 광기로 변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인문학의 방황은 인간의 성숙을 위한 방황이다. 질의응답시간, 인문학의 미래에 대해 묻자,  강연자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앞으로도 계속 방황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방황이 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더욱 성숙하도록 하는,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그런 방황이라고 생각합니다.” 

 

                                                         * 2008-11-14 오후 1:54:38 컬처뉴스 박휘진 기자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