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4. 17:01

"용기가 빚어내는 자유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 실비아 미니 인터뷰

실비아의 작품, '자발성과 용기가 빚어내는 자유의 풍경'이 잘 드러난다.
▲ 실비아의 작품, '자발성과 용기가 빚어내는 자유의 풍경'이 잘 드러난다.

실비아 미니의 사진전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가 문래동 철재상가에 위치한 레버러터리 39에서 11월 7일까지 열리고 있다. 프랑스 스쾃과 스콰터들을 대상으로 해 잡아낸 실비아의 이미지들은 얼핏 낭만적이고 쓸쓸한 뉘앙스만을 남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스쾃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그 멜랑꼴리는 작가의 말처럼 낭만적인 감정만으로 소구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마이너리티(소수자)가 필연적으로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질서 바깥의 감정들이 바로 멜랑꼴리다. 특히 스쾃을 개척하고 만들어나가는 스콰터들의 삶에서 이런 감정들은 기존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율적 삶을 구성하려는 자발성과 용기가 빚어내는 자유의 풍경으로 드러난다. 레버러터리39의 공동디렉터 김강의 통역으로 실비아를 만났다. 김강은 통역 뿐 아니라 초대전의 기획자로서 질문을 공유하고 구성하기도 한 인터뷰어의 역할도 함께 했음을 밝힌다.

전시된 작품들이 모두 스쾃과 스콰터들을 찍은 사진이다. 당신 작업의 주된 테마가 스쾃인가?

스쾃 사람들만 찍는 건 아니고 마이너리티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작업을 한다. 주로 인물, 마이너리티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는데 그냥 가서 얼굴을 찍는게 아니라 교감을 통해 감정이 생겼을 때 작업을 하게 된다. 작업은 일종의 멜랑꼴리와 쓸쓸함에 대한 것이다. 마이너리티가 가지고 있는 쓸쓸함과 멜랑꼴리한 감정들을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하게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스쾃이 사회에 대해 빈 공간, 방치된 공간이지만 또 다른 의미를 갖듯이, 마이너리티도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새로운 의미들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말하는 멜랑꼴리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것인가

우연히 인물사진을 찍은 것이 멜랑꼴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감정들이 사진으로 표현된다. 내가 생각하는 멜랑꼴리는 슬프다거나 고독하거나 우수에 젖는 것이라기보다는 언제나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는 것이다. 마이너리티가 가지고 있는 멜랑꼴리는 기존질서의 삶에서 거부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다. 그것은 질서가 요구하는 삶을 살 수 없을 만큼의 센서티브한 감정들을 느끼는 지점이다. 그것은 상투적인 삶에 대한 환멸에 기인하는 감정이다. 낭만적 코드가 아니라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갖는 감정이다. 이 사회에 만족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는 내 내면의 감정들이 내가 만난 사람들, 교감을 느낀 사람들을 통해서 멜랑꼴리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부모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이탈리아에서 사진을 배웠고 지금은 파리에 살고 있다. 이런 나의 삶의 노정들 - 집도 없고 여러 가지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들 - 이 그런 감정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의 삶처럼 스쾃터들은 프랑스 사람이지만 국가주의자는 아니다.(전시된 사진들은 주로 프랑스 스쾃의 모습이다) 국가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스쾃은 6개월이나 1년마다 사라진다. 일시적인 것들, 일시적인 것들이 재구성해내는 무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멜랑꼴리라는 생각을 갖고보면 그저 낭만적일 수 있는 작품들인데, 맥락을 알고 보면 상당히 전복적인 작업이다. 소수자들은 그 존재만으로 체제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 그것은 명확하다. 어쩔 수 없이 스콰터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선택이다. 마이너리티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가 지칭하는 용어들이지 그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콰터들은 저항자이자 전복자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마이너리티라고 하는 사람들을 접하면 불편해 한다. 집시라든지 노숙인이라든지, 우리처럼 옷을 입고있는 사람들을 보면(스콰터들의 입성은 대개 깔끔하지 못하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곧 사회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지점들을 불편해 하는 것이다. 내 작업이 일종의 낭만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 사람들, 사회가 그렇게 규정지워버리는 사람들도 인간이 가지는 모든 감정들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전시장 작품 앞에 선 작가.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 전시제목이 매우 단호하면서도 흥미롭다.

이 문장은 스콰터들의 생각을 잘 표현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스쾃 안에서 이 문장을 곧잘 사용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라면서 교육받은 것 안에서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서구는 특히 신의 질서에 종속된 측면이 많다.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 이 말은 신이나 주인, 즉 사회가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던 것들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그 거부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소유권, 주인, 나라, 국가 없이도 살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것들로 인해 훌륭한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아나키즘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지만, 무슨 이념으로 포장될 것이 아니다. 자연스런 일 아닌가? 사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소비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심지어는 물건뿐 아니라 관계마저 소비를 강요당한다.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스쾃에서 그런 방식들을 연습하고 실천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나가고 있다.

당신 사진작업에 대해 일반적인 정보를 좀 더 달라

로마에서 1997년부터 99년까지 사진학교를 3년 다녔다. 하지만 그 전부터 이미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조금씩 시작했고 91년부터는 독일의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로 일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사진에 관련한 많은 일들을 했다. 그 이후에 마이너리티를 찍는 작업을 선택했다. 2000년에 파리로 가 스쾃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스쾃에 대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스쾃에 살면서 작업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직접 스쾃을 경험하면서 작업의 내용이 깊어진 부분이 있다. 프랑스 스쾃에서 살기 이전에 이탈리아나 독일에서는 사회자율센터라고 부르는 일종의 스쾃과 비슷한 곳을 자주 방문하고 교류가 있었다. 스쾃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훨씬 더 그런 지점들, 했던 이야기들, 스쾃이 표방하고 있는 부분들이 내면적으로 더 많이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삶을 함께 하면서 그 내용으로 작업한다는 것이 마치 인류학적 작업에 맥락이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서 산다는 것은 거기서 함께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인류학자들과 약간 비슷할 순 있겠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내가 스쾃에 들어간 것은 연구나 조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인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 조사하고 관찰하고 연구한 이후에 그 결과를 가지고 무얼 하나. 6개월 1년, 노숙자들과 삶을 산다고 해도 결국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회의하고 토론하고 자료를 만든다. 그 동안에도 노숙자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랩39에 스쾃 사진들을 가져온 이유는 스쾃의 이미지들을 그냥 보여주기 위해 가져온 것은 아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나의 친구들이고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는 나의 삶의 모습이 있다. 그들의 삶은 일반적인 삶과 매우 다른 모습들이고, 그것을 한국의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가져왔다. 스쾃 사진 말고 이탈리아 집시라든지 노숙인들의 사진도 많지만 이번 전시에선는 스쾃의 사진을 가져왔다.

"스콰터들은 용기있는 사람들이고, 그 용기가 자유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쾃의 어떤 것들을 한국의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나

명령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법칙, 내면으로부터의 원칙으로 사는 것이 스콰터들이다. 스콰터들은 용기있는 사람들이고, 그 용기가 자유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의 작업에서 용기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당신도 알겠지만, 스쾃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곳에는 풍족한 음식이나 편안한 잠자리 같은 것은 없다. 사회적인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스쾃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스쾃은 나의 자유, 나의 저항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고, 나의 학교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학교, 사진뿐 아니라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는 학교다.

한국, 특히 문래동 지역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 처음 왔고 한달을 머물렀다. 아시아에도 처음인데, 그게 한국이고 문래동이다. 문래동은 너무 좋다. 여기 있는 예술가들이 이 분위기를 지키면서 작업하고 활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여기는 스쾃과 다르게 임대공간이기는 하지만, 예술가들과 노동자들이 융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지역이 많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여기에 작업실을 가지는 사람들은 저렴하기 때문에 올 수도 있지만, 뭔가 사회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한달 동안 부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를 다녀왔고, 서울 시내를 많이 돌아다녔다. 시내에서 좀 공포를 느꼈다. 서울 사람들이 소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삶이 지속되면 인간이라고 하는 본성을 자꾸 잊지 않을까, 나중에는 로봇과 같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것은 비평이나 평가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한국의 역사나 민주화운동이나 그런 것들을 존중한다. 그런데 경제적 성장이나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다른 것들을 다 감추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모든 현대사회들이 그런 면이 있다. 어떤 사회든 모두를 위해 긍정적인 사회가 아니다. 현대사회의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것들이 마이너리티를 생산했다. 사회구조가 마이너리티를 만든 것이다. 전세계 어디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나 구조, 소비사회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하고 보이는 대로 살아간다. 그런 현상이 한국에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활동가들의 경우에는 다르게 생각하고 활동한다. 활동가들과 함께 을지로 등에 있는 노숙인들을 만나보고 지켜보고 싶다.

어떤 활동가들을 만났나?

이민자 문제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랩39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당신들도 활동가 아닌가?


 


*2008-11-03 오전 10:45:56     컬처뉴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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