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 15:40

욕하기 위해 드라마를 본다 - [박서방의 주절주절]어느 욕 나오는 드라마와 주말을 보내고

욕 나오는 드라마 시청률의 진정한 힘은 욕 그 자체에 있다.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사진 SBS홈페이지)
▲ 욕 나오는 드라마 시청률의 진정한 힘은 욕 그 자체에 있다.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사진 SBS홈페이지)

이제는 새삼스런 일이지만 욕 먹는 드라마일수록 시청률이 좋다. ‘미드’나 ‘일드’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국산 드라마에서 만큼은 이것이 점점 자명한 진리가 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시청률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모두 뛰어난 명품 드라마도 간혹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드라마들이 연간 몇 편이나 되겠는가. 대세는 어처구니 없게도 욕 먹는 드라마다.

아무래도 욕 먹는 드라마 하면 ‘인어아가씨인지 ’붕어아가씨‘인지로 일세를 풍미한 임 모 작가의 작품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박서방의 경우 이런 주옥같은 작품들이 방영될 무렵 거의 드라마와 담쌓고 살았기 때문에 그 명성만 접했지 실체를 확인한 바가 없다. 그런 전설적 드라마들을 못 본 것은 천추의 한으로 남지만 어쩌겠는가. 최근에서야 가정적 남자가 되면서 저녁 시간 TV앞에 앉아 빨래를 개며 드라마 보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말이다. 여하간 최근 주말 저녁 마다 보는, 공전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화제작이며 역시 욕 먹는 드라마의 하나인 ‘조강지처클럽’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이 드라마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나화신(오현경)-한원수(안내상), 한복수(김혜선)-이기적(오대규)라는 두 중견 커플이 겪는 부부생활 파탄담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이혼 전문 드라마인 ‘사랑과 전쟁’의 주말 확대 버전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두 커플을 중심으로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남녀들의 불륜과 이혼, 로맨스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사실 벌어지는 상황들이 대부분 정상적이지 않다. 당초 시작부터 그랬다. ‘한원수’는 자신의 아내 ‘나화신’을 학대하다가 이혼도 안한 상태에서 기혼녀인 ‘모지란’과 자신의 집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의사인 ‘이기적’은 학력이나 직업에서 자기보다 못한 ‘한복수’와의 부부생활에 불만을 느끼다가 첫사랑인 ‘정나미’와 바람을 핀다. 한원수와 한복수의 아버지인 ‘한심한’은 본처 ‘안양순’을 버리고 ‘복분자’와 살고 있다. 당초부터 바람 가득한 설정으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뒤엉킨 관계를 보여주며 당초 50회 방영 계획을 훌쩍 뛰어넘어 100회를 이미 넘긴 상태다. 그나마 그런 충격적 설정들을 상쇄시켜주는 것은 중견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력과 뒤틀렸지만 때때로 통쾌한 유머 감각 덕분이다. 

혹시 이 드라마가 이미 지반부터 흔들리고 있는 결혼 제도의 해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착각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나가지 않는다. 간혹 그런 파격적인 대사나 설정이 나오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결혼 이데올로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일시적 일탈과 회귀는 사실 대부분 성공적인 대중문화상품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보다 이 드라마 앞에 시청자들을 묶어두는 가장 힘 중 하나는 핑퐁게임 덕분이다. 주말 2회 씩 방영되는 이 드라마의 진행은 마치 매회 공수가 교대되는 야구 시합 같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박서방이 처음부터 ‘조강지처 클럽’을 봤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드라마의 앞부분을 전혀 보지 못했음에도 드라마 시청에 전혀 지장이 없다. 야구 시합에서 초반 경기를 못보고 6, 7회부터 보더라도 동점이거나 박빙의 승부일때 흥미가 넘치는 것과 비슷하다. 매주 진행되는 남녀들간의(혹은 남남 간의, 여여 간의) 공방은 봉황대기 결승처럼 시청자들을 묶어놓는다.

그러나 이 욕 나오는 드라마 시청률의 진정한 힘은 욕 그 자체에 있다. 재미난 것은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아질수록 욕하는 이들은 더욱 많아지고 욕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드라마 시청률이 높아만 간다는 점이다. 어쩌면 욕하는 이들일수록 이 드라마를 더 열심히 보는 이들일 것이다. 드라마를 욕하고, 황당하고 엽기적인 설정을 욕하고, 등장하는 캐릭터를 욕하면서 더욱 드라마에 몰입해간다.(특히 이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인 작명법은 대중들의 몰입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재미는 있는데 욕이 나온다. 욕이 나온다는 것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특히 욕 나오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에 박서방은 여자친구와 각자 이 드라마에서 가장 욕나오는 캐릭터 다섯명을 꼽으며 놀기도 했다.(공히 1위는 한원수였다.) 꽤 많은 이들은 욕을 하기 위해 드라마를 본다. 주말에 드라마를 보며 화를 가득 내며 가정생활에 대한 불만을 풀어버리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특히 부정적인 캐릭터들이 남성, 특히 가장인 것은 드라마의 주 소비층이 여성, 특히 기혼여성들인 탓이 크다. 이 드라마는 남편들에게 ‘화난’ 부인들의 좋은 속풀이 장소인 것이다.

박서방은 욕 나오는 드라마를 옹호하고 싶지도 않지만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욕 나오게 만드는 세상인데 욕 나오는 드라마가 득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금융대란은 이 세계가 얼마나 허약한 합리성으로 유지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기 9시 뉴스에 나오는 우리 공화국 위정자들을 보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난 우리 대통령이 경제의 ‘달인’이라고 본다. 아마 16년간 경제활동을 했을 것이다.) 이러 판국이니 황당한 설정 좀 나오면 어떤가.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는 더 황당한데 말이다. 어차피 대중문화 상품에서 심미적 상징성이나 숭고미를 바라는 건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더 뒤틀린 아이러니, 혹은 황당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 그나마 ‘조강지처 클럽’은 안전장치가 너무 많이 붙은 작품이었다. 그보다 반발짝 더 진화된, 진짜 욕 나오는 엽기를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요즘 심정이다.




* 2008-09-30 오후 5:59:48  박서방 _ 인터넷만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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