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8 18:09

여기, 예술이 있다

[편집자가 독자에게]이윤엽과 송경동의 경우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안태호 편집장

고향 다녀오는 길에 보니, 평소 왕래하던 길가에 어느 새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도로 옆 공터였던 곳에 시멘트를 부어넣은 철골구조물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더군요. 안 그래도 주변이 고층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는 지경인데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건물을 우겨넣고 보는 건설현장의 풍경을 보니 꽉 막힌 도로만큼이나 갑갑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딴은, 개발업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노는 땅이 아깝기도 할테지요. 그곳에 건물을 지으면 단위면적에서 낼 수 있는 수익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빈 땅을 그대로 두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방치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아파트로 대표되는 개발은 욕망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할 만합니다. 개발로 인해 생기는 이익이 몇몇 ‘가진 자’들에게 집중되는 현 상황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입니다. 하여, 사람들은 개발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개발' 자체에  대한 성찰이 먼저겠지만, 개발을 통해 소수가 독점적인 이익을 그러쥘 수 없다면 지금과 같은 막개발에 올인하는 일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용산참사에 대해 민심은 절절 끓고 각계의 움직임도 분주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섯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가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정부여당은 이치에 닿지 않는 흰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설 연휴를 앞둔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각계의 목소리에 입장 하나를 더하는 것을 넘어서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치열함의 일단을 보여줬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와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를 봅니다. 전자는 걸개그림으로 제작된 미술가 이윤엽의 판화작품이고 후자는 시인 송경동의 추모시입니다. 이 두 작품이 함께 실린 현수막이 참사현장 빌딩에 걸렸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싸움에 함께하며 인간다운 삶을 꿈꾸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며 땅을 일굴 권리를 옹호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길 한미FTA에 반대하며 이윤보다 인간을 외치던,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며 억울하게 억압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그림값이 수 천 만원을 호가하거나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예술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불평등과 부조리와 모순과 추문을 고발하는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예술가는 자신들만 특화시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가들이 자신들과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다고 말이지요. 네, 맞는 말입니다. 현장예술의 이름을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곳에만 한정짓는 것 또한 단견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묻고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 _ 송경동

국민의 밥상에 독이 든 고기를 올리겠다고 했을 때
천년 강물의 가슴을 파헤치고 이윤을 위해 자연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교육의 전당을 시장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죽음 같은 경쟁으로 내몰겠다고 했을 때
뉴타운을 지어 가난한 자들을 몰아내겠다고 했을 때

가녀린 촛불 하나하나를 곤봉과 방패로 짓이겨 갈 때
100만 촛불의 간절한 생명의 소리를 콘테이너산성으로 막고 귀막을 때
인터넷에 마저 재갈을 물리겠다고 압수수색해 올 때

96일 굶은 기륭 김소연이 오른 철탑 망루를 뒤흔들고 경찰차로 들이박을 때
죽어보라고 용역 구사대를 앞세워 이죽거릴 때
미포조선 100m 굴뚝농성장에 불기를 끊고 음식물을 끓을 때
용기 있으면 죽어보라고 사주할 때

바른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곧은 교사들의 목을 단칼에 치고
교과서에 새겨진 참민주주의의 목을 조를 때

890만 비정규직 2년짜리 노예목숨도 부족해
4년짜리 노예, 영원한 비정규목숨들을 양산해
자본에겐 횡재를 민중에겐 살아도 죽은 목숨을 선사하겠다고 했을 때
가진 자들만을 위해 모든 법률을 개악하겠다고 했을 때
항복하지 않으면 어떤 인도적 지원도 할 수 없다고 북의 동포들에게 엄포를 놓을 때
팔레스타인 학살 규탄 유엔인권위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질 때

알았다. 너희는 소수라는 것을
만인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만인을 죽음으로 내몰 잔인한 살인 정부라는 것을
폭력으로 밖에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더럽고 추악한 파쇼 정부라는 것을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농민빈민서민의 위기로 돌리려는
극악한 정부라는 것을

너희에겐 그 무엇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린 고통을 당해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너희라는 것을
보라. 미천한 자본과 폭력의 개들아
진실은 다시 모두가 잠든 새벽녘
가난한 삶의 현장에서 성난 불꽃으로 일어나
우리 모두의 나약한 가슴을 태우고
비겁과 나태를 밀어내고
양심과 도덕의 횃불에 다시 불을 당긴다
헐벗은 겨울 벌판을 정화하는 들불처럼
쥐새끼들을 몰아내고 병든 균들을 태워 없애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시대의 봄을 부른다

더 이상 오를 곳도
더 이상 내려 갈 곳도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없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쌓듯 망루를 쌓아갔던 열사들이여
그러니 일어서라
일어서서 이 차디찬 새벽을 그 뜨거운 몸으로 증거하라
우리가 그대들이 되어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더 이상 안주할 곳도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는
이명박 신자유주의 폭력 살인
반민중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에 결연히 나서도록
살아서 비굴한 목숨이 아니라
열사들의 영전에 자랑스런 이름들이 될 수 있도록
열사들이여 그 뜨거운 분노
그 뜨거운 함성, 그 뜨거운 소망을 내려놓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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