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3 00:06

시, 구분 짓기 없던 세상의 말 - 김근 시집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김근,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창비, 2008.
▲ 김근,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창비, 2008.

영화 <일포스티노>의 원작이기도 한 스카르메타의 소설『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는 시인 네루다가 시에는 관심이 없지만 시인을 혐오하는 한 여인과 은유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이 꼬박꼬박 주고받는 메타포 소동을 보다 보면 인물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빠져 웃음과 감탄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해석되지 않는 비유들이 있다. 시가 읽기 어려운 이유다. 읽어도, 읽어도 도대체 읽은 게 없는 것 같다. 시는 정서를 전달한다지만 읽은 게 없으니 전달 받은 정서도 없다.

“구름 극장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올해로 등단 10년, 김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구름극장에서 만나요』가 출간됐다. 표제작인 「구름극장에서 만나요」는 “구름극장이 아니어도 … 그처럼 가볍게 증발해버릴 운명들”인 우리들이 구분 짓고 이해하는 행위가 사실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이 시구는 사물과 사물, 말과 말, 너와 나, 무수한 구분들이 의미 없어지는 공간이 바로 시의 세계라고 말하고 있다. “제 얼굴 지우고 싶은 사람들 하나 둘 숨어드는 곳”이 바로 시의 세계라는 것이다. 시는 이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은 아마도 내가 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몸소 시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해석되지 못할 은유를 해석하지 않은 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물 안의 여자 물 안의 마을 물 안의 우물에서 물 안의 물을 길어올리네”
「물 안의 여자」 중

이 시구를 읽고 책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평처럼 “내심에 충실하고 무의식에 자기를 개방함으로써 시민공동체의 공통감각으로 인지되거나 흡수될 수 없는 다른 것과 조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시도 어렵지만 평은 더 어렵다.

목숨이 다하면 구름극장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들이 얼굴을 지우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 시가 그려내는 세계이자 시인의 정체성이 아닐까. “나를 버리고 오직 그대에게 속해 있기만” 바랐지만 결국 “안으로도 밖으로도 가지 못했다”는 시인의 말은 정확히 시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 장소에서는 농담처럼 은유를 맘껏 주고받으면 그만이지 그것이 실제 세계와 어떻게 연관된다거나 어떤 식의 풍자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단지 구름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우연히 등장게 된 인물들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시집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기괴한 시구를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기괴함은 선명하게 어떤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잡힐 듯 말듯 한 세계를 흐릿하게 묘사하고 있다. 은유는 어렵다. 그가 만들어낸 기괴한 은유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분별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그 흐릿한 은유야 말로 시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 2008-09-30 오후 6:14:36  컬처뉴스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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