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4. 08:32

스트레스는 스텐레스가 된다

[연극리뷰] 극공작소 마방진 <강철왕>, 2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2008년 5월 이미 마방진 ‘스빠링 프로젝트’에서 관객들에게 검증 받은 <강철왕>은 올해 두산아트센터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근사한 몸으로 실전을 펼치고 있다

▲ 2008년 5월 이미 마방진 ‘스빠링 프로젝트’에서 관객들에게 검증 받은 <강철왕>은 올해 두산아트센터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근사한 몸으로 실전을 펼치고 있다



                                                             김나라 기자

모든 위험으로부터 차단되었던 그리고 한없이 안락했던 273일은 차가운 메스 아래 종말을 맞고 그것이 서럽고 또 두려워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과 맞닥뜨린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부터 나를 공격하는 것은 수 만 가지의 바이러스. 곧 스트레스. 바이러스에 대항할 항체를 만들어야 이왕 태어난 이 세상 남들만큼 살아볼 수 있듯이 스트레스 또한 대항할 항체가 있어야 사회로부터 도태, 낙오를 면할 수 있다.

‘왕기’는 춤을 춘다. 춤꾼이다. 자수성가한 왕기의 아버지 ‘성국’은 자신의 열처리 공장을 왕기가 잇기를 바라고 갖은 협박으로 그를 설득한다. 결국 열처리 공장에 취직하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왕기는 또 춤을 춘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런 그를 경계하고 오해한다. 성국이 공장을 자동화 하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자 그들은 왕기를 잡아 열처리로에 가두고 성국을 협박한다. 열처리로에서 사고를 당한 왕기의 몸은 점점 스텐레스로 변해가고 사회에는 ‘강철왕 신드롬’이 번지기 시작한다.

왕기는 ‘혀 깨물고 죽겠다’는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협박에 꿈을 접을 만큼 나약하고 소심하다. 재능보다 더 갖기 어려운 것이 열정이라는 말도 있는데, 뭐가 되고 싶고 뭐가 하고 싶은지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들이 거리에 넘쳐나는데, 꿈도 확실하고 재능도 있고 열정도 넘치는 왕기가 ‘아버지’ 소원이라니까, ‘가계와 재산’을 물려받아야 하므로 그 모든 것을 접고 공장으로 간다. 장자상속. 혈연주의. 가부장적인 가족주의의 그늘을 발견한다. 왕기에겐 이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다.

또한 그는 직장 생활을 거부한 채 반지하 방에서 춤을 추고, 억지로 들어간 직장에서도 춤을 출 만큼 현실부적응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공장의 소음에도 춤출 수 있을 만큼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그에게 있어 모든 스트레스에 대항해 그를 지켜주는 항체는 춤이다. 그런 그가 춤을 출 수 없게 되자 그에게 스트레스는 스텐레스가 된다. 격렬한 스트레스는 격렬한 스텐레스화(化)를 부르고 그럴수록 그는 티타늄처럼 단단하게 외피를 감싸고 그 안으로 더욱더 파고든다.

2008년 서울문화재단 순수예술작품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인 <강철왕>은 연출 고선웅의 ‘말빨’과 극공작소 마방진 배우들의 환상적인 팀워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연출자 고선웅이 <팔인>, <마리화나>때부터 보여준 바 있는 다양하고 화려한 수사법을 두루 갖춘 엄청난 양의 대사는 <강철왕>에서도 역시 빛을 발한다. 이번엔 전라도 말의 향연이다.

워낙에 대사량이 많아 듣는 이들도 따라가기 숨 찰 지경인데 배우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소화해 낸다. 주고 받아치는 대사들은 리드미컬하기마저 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주인공의 독특한 독무와 조연들의 군무다. 특히 주인공 왕기가 춤을 추며 내뱉는 독백은 춤의 해석이며 극의 해석이다.

2008년 5월 이미 마방진 ‘스빠링 프로젝트’에서 관객들에게 검증 받은 <강철왕>은 올해 두산아트센터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근사한 몸으로 실전을 펼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 중이며 2월 15일(목)까지 계속된다. 3만원. 문의: 02-764-7462(바나나문 프로젝트)  

2008년 서울문화재단 순수예술작품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인 <강철왕>은 연출 고선웅의 ‘말빨’과
극공작소 마방진 배우들의 환상적인 팀워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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