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8. 21:02

세계와 맞설 준비가 되었는가?

[신간소개]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브루스 토마스, 류현 역,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김영사, 2008.
▲ 브루스 토마스, 류현 역,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김영사, 2008.

시애틀의 레이크 뷰 공동묘지, 붉은색 화강암으로 만든 작은 묘지의 묘석에는 한 동양 남자의 흑백 사진이 끼워져 있다. 공동묘지 입구에 버스 한 대가 들어선다. 열 명 남짓한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무덤가로 향한다. 그들은 묘지 둘레에 잔디 보호를 위해 쳐 놓은 경계선을 넘더니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을 밟는지도 모르는 채 사진 찍기에만 여념이 없다. 그리고 몇 분 뒤, 그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여행지로 떠난다.

사진 속 남자는 한때 실전 격투의 제왕이라고 불렸다. 절권도의 창시자,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사망유희> 불과 다섯 편의 영화를 남기고 서른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전설의 액션배우, 다혈질의 성격과 과시욕 때문에 항상 싸움을 몰고 다니면서도 자신을 깎아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무술 철학자.

장사꾼으로 구성된 원로원의 다스림을 받는 이 나라에서 그는 무술도, 철학도, 연기도 아닌 보험을 팔고 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내지르던 괴성과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동작은 이제 고객을 불러 모으기 위한 재롱으로 전락했다.

극도로 나약하고 불완전했던 몸으로 인간의 극점에 다다랐던 한 인간이 더 이상 돈과 웃음의 소재로 전락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기막힌 보험 하나를 들었다. 이 보험 상품의 이름은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설계사인 브루스 토마스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밴드에서 베이스를 쳤다는 만만치 않은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개의 인물사와 같이 이 보험 역시 연대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형식은 이소룡의 무술 철학을 담아내는 데 썩 안성맞춤이다. 뛰어난 무술인이 되기 위해 이소룡은 기술을 배우고 반복 수련하고 마지막엔 기술을 넘어선다. 이소룡은 처음 미국에 도착해 레스토랑 웨이터로 일하던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바탕인 영춘권 수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고정된 싸움 방식을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무술을 익힌다. 그것은 흠 많은 자기 내면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절권도 수련생이기도 한 이 설계사는 자신이 연주자가가 되기 노력했던 과정을 이소룡의 가르침에 투영해 봄으로써 이소룡의 가르침이 단순히 무술이라는 영역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이 보험 상품은 이소룡을 우스운 광고 모델에서 해방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 광고에 속아 결제 일자에 애태울 애꿎은 이들의 통장 잔고를 확실하게 지켜준다.

이 보험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이 상품이 만들어질 당시 함께 지켜봤던 주변 분들의 증언이다. 또한 비슷한 이름으로 출시되었던 이전 상품들이 편협한 시각으로 이소룡을 만화 속 영웅으로 묘사하거나 여자관계 복잡한 약물 중독자로 매도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수많은 자료 조사와 인터뷰로 인간 이소룡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어떤 고객은 액션 영화를 싫어해서 이소룡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혹자는 이미 이소룡과 관련된 보험쯤 몇 개는 들어 놔서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하다. 폭력이 싫어서, 무술을 배울 용의가 없어서, 성룡과 이연걸이라는 신상품에 만족하고 있어서 이 상품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싫다는 사람에게 굳이 권할 마음은 없지만 안쓰러운 마음마저 거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은 포스트 이소룡을 말하며 거기에 만족하며 산다지만, 포스트 이소룡은 어디까지나 이소룡에서 파생되어 나온 상품이다. 또한 이소룡은 폭력 전도사가 아니라, 반폭력 전도사다.  비폭력과 반폭력은 다른 것이다. 비폭력을 지고한 가치로 착각하는 사람에게 영화 <노맨스랜드>는 말한다. 전쟁의 현장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전쟁을 방조하는 것이라고. 폭력을 대항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넘어서는 힘과 지혜가 필요하다. 순진한 무장해제 따위는 절대로 아니다.

이소룡에 관한 상품들이 넘쳐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접근했느냐다. 인간 이소룡인가, 영화배우 이소룡인가, 행복한 판매고를 예상하고 출시한 인구 속 회자되는 이소룡인가. 이 상품은 몸소 무술가가 돼보라 권하지 않는다. 철학자도 영화배우도 될 필요가 없다. 다만 인간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소룡마저 희극인으로 전락하는 이 시대에 누구의 인간성인들 보장될 수 있을까. 수해나 화마, 책 도둑에 유의한다면 한 번의 등록으로 평생 보장이 가능한 이 보험, 원로원식 화법을 빌리자면, 꼭 들라고 하는 건 아니다.

브루스 토마스, 류현 역, 김영사, 값 26,000원.

                                                                                                                                이주호 기자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