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7 08:24

빅뱅을 지켜라!

[편집자가 독자에게]누구를 위한 나라사랑 캠페인인가
                                                                                                                                     안태호 편집장
나라사랑 캠페인이 먼저일까요,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 먼저일까요. 저는 빅뱅 팬은 아니지만, 빅뱅이 나라사랑 찬가를 부르면 좀 우울할 것 같습니다.
▲ 나라사랑 캠페인이 먼저일까요,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 먼저일까요. 저는 빅뱅 팬은 아니지만, 빅뱅이 나라사랑 찬가를 부르면 좀 우울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아산 현충사를 두고 “충무공 기념관이 아니라 박정희 기념관 같은 곳이다”라는 발언을 해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 말에 대해 민족의 성웅을 모독했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순신 영웅 만들기'에 유독 열을 올렸던 것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충무공이 ‘박정희 대통령 만들기’의 도구로 쓰였던 것이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면, 현충사에 대해서 박정희 기념관이라고 표현한 것이 공직자로서 조금 도에 지나친 면이 있다손 쳐도 근본에서부터 엇나간 말은 아닌 셈이지요.

이순신 장군이 뜻하지 않게 독재자의 정당성을 위해 활용됐다지만, 그런 활용은 우리 시대에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빅뱅이 ‘MB 찬가’를 부르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청와대는 올해 3·1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4월13일)을 맞아 ‘나라사랑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언론에 의하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미래의 주역인 10∼20대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켜 나라에 대한 의미를 자연스레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나라사랑을 주제로 한 랩송을 만들어 전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는군요. 청와대는 전문가에 의뢰해 일명 ‘힘내라! 대한민국’ 등의 랩송 등을 제작한 뒤 인기그룹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처럼 대통령제가 강력한 나라에서 국가의 이미지는 대통령과 뗄레야 뗄 수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애국심 고취’ 노래는 ‘MB 예찬’과 그리 멀지 않을 듯합니다. 랩으로 만든다고 하니, 왠지 제가 군 시절 들었던 박진영의 ‘군진수칙’이 보여준 ‘아햏햏’함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요즘에는 주로 유머게시판에서 떠돌아다니는 것 같긴 하지만.(그러고 보면 대선기간에 대운하예찬을 불렀던 이은하 씨도 생각이 납니다.)

백번 양보해 애국심마케팅이 국가운영 차원에서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실제보다 부풀려진 마케팅을 해대면 ‘소비자’들이 배신감을 느낍니다. 제가 마케팅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상품의 핵심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기술이지 없는 사실을 지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왜곡과 과장을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건 마케팅이 아니라 사기에 가깝겠죠.

젊은 세대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행정력과 예산을 쏟아 붓기 전에, 당신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먼저 숙고해 봤으면 합니다. 그 나라는 최소한 당신들이 그렇게 맘을 얻고자 안달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나라입니까. 누구에게나 양질의 교육이 허락되고, 먹을 것을, 잠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까. 일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무한경쟁의 스트레스에 피를 말리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까. 쫓겨나지 않기 위해 골리앗에 올라가 악다구니를 쓰며 버둥거리지 않아도 되는 나라입니까.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나라사랑 캠페인이 먼저입니까, 좋은 나라 만들기가 먼저입니까. 애국심마케팅, 좋습니다. 그러나 애국심의 본령을 채울 내용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의 나라가 1%만을 위한 파라다이스라면 애국심은 딱 그 1%에게만 기대하시는 게 좋습니다. 99%는 그에 적당한 방법으로 응해야 마땅합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명백한 사기가 될 겁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고 울음을 토하는 시절입니다. 썩은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절망들을 힘없이 지켜보면서 나라를 사랑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저는 빅뱅 팬은 아니지만, 빅뱅이 나라사랑 찬가를 부르면 좀 우울할 것 같습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아, 대한민국’의 가사가 새삼 가슴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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