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2. 21:17

불어라, 40년 묵은 어미의 바람이여

[신간소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이주호 기자)

오도엽,『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후마니타스, 2008.

▲ 오도엽,『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후마니타스, 2008.



“그게 1970년 11월 13일 아니냐. 구역예배 보러 갔는데, 나를 부르러 사람들이 왔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집에 가면 안다고 그래. …… 기어이, 기어이 기름을 붓고 말았구나.”

사람 좋아하는 게 병인 아들이었다. 배고파하는 어린 시다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동대문에서 쌍문동까지 걸어 왔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홑작업복만 입고 일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자신의 점퍼를 벗어주었다 했다. 작업하고 남은 헝겊 쪼가리를 모아 만든 속옷을 내밀며 새 옷을 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지금 몸에 기름을 부었다고 한다.

아들 전태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는 거기가 시작이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가난하고 못 배운 한 어미에 관한 이야기다. 가난을 둘러매고 시장 어귀를 걸어 다니며 헌 옷, 떨어진 채소 따위를 쟁여 넣어 연명하던 무지렁이 아낙이 하나의 자식을 잃고 대신 셀 수 없이 많은 자식을 품에 안고 살아온 40해의 기록이다. “엄마, 배고프다.” 끝내 주린 배 한 번 채우지 못하고 떠난 아들의 마지막 말을 잊지 못해 격동과 고난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어미가 늦은 밤 전태일기념사업회 작은 쪽방에서 입을 열었다.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환갑이 됐을 세월이 지났으니, 살아 있는 어미는 이제 팔순을 넘겼다. 40년의 세월, 세 번의 구속, 셀 수도 없는 수배와 조사. 노동자들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 발품을 팔았고, “독재 놈들이 죽인 아들들”의 원혼을 풀어주기 위해 방방곡곡을 누볐다. 내처 5분이면 걸을 길을 서너 번 쉬어야 가는 노구를 이끌고 어미는 지금도 기륭전자, KTX 농성현장을 찾는다. 사람들은 어미를 노동자의 어머니라 부른다.

한 어미의 인생이 수백만 자식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던가. 고맙다는 말마저 무색할 고마운 어미는 “고마웠다고. 모두들 고마웠다고. 정말로 고마웠다고.” 이 말이 하고 싶었다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평생 가르쳐주고 이끌어줘서 고맙다는 말만 하면 된단다. “노동자를 싸그리 죽이겠다는 독재놈들”을 어서 끌어 내리고 일하는 모든 이들이 배불리며 살아갈 날을 기다리는 어미의 바람이 어미의 살아생전 이루어져야 할 텐데, 한숨으로 냉가슴을 끓이며 어미의 바람이 폭풍 되어 휘몰아치길 기대해 본다.

오도엽,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 ,2008),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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