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 16:46

보이지 않는 위협

스타워즈 에피소드 II 전(2.12--3.12, UNC 갤러리)
Lee Jae-Hoon_Unmonument-이것은 무엇입니까_190x102cm_fresco 기법_2008
▲ Lee Jae-Hoon_Unmonument-이것은 무엇입니까_190x102cm_fresco 기법_2008


                                                      이선영 _ 미술평론가

‘스타워즈 에피소드’전은 향후 활동이 기대되는 신진작가들을 소개하는 UNC 갤러리의 연례 기획전으로, 올해에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는 부제로 열렸다. ‘보이지 않는 위협’은 현대 사회에 팽배한 폭력과 위협이 확연한 것인 동시에 미지의 것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하다는 것에 주목한다. 백화점에 분류된 물건들처럼 모든 것이 잘 정렬되어 있는 듯한 현대사회에서 작가들은 왜 불편을 느끼는 것일까. 폭력과 위험은 ‘후진국’ 같은, 저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닌가. 그러나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첨단 모델이 되어왔던 거대 제국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생산력의 발달로 모든 편리성이 갖추어진 현대사회는 동시에 위험도 높인다. 제국의 위기가 우리에게도 미치는 파장에서 감지되듯, 위험을 확대 재생산하는 매개 고리는 안팎을 촘촘히 연결 짓는 조직망들이다. 빈곤과 부의 명암을 극명하게 엇갈리게 하는 자본주의적 성장은 이 촘촘한 연결망을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 위협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또한 산업자본주의 시대처럼 선악의 역할구분이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비가시적이다. 국민 경제에 한정지어지던 고전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세계화 과정은 각자 다른 상징적 우주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왔던 존재들을 평평한 곳으로 몰아넣고 경쟁시킨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거대한 판은 인류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자본의 회전주기를 가속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떨어져 있던 모든 것이 연결되는 지구화 시대에 위험과 위협은 의도되지 않은 우연성과 연관된다. 조직화라는 필연성이 높아질수록 우연(사건)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은 커진다. 조직화는 우연의 발생빈도를 줄이지만, 한 번 터지면 크게 터지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시공간 압축의 강도는 사회적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적 개인적 영역에서도 과도한 순간성과 분절화라는 시공간 압축의 특성과 더불어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형성했다고 지적한다.

후기 현대의 단계에서 주체와 객체의 위상은 변화한다.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는 [기호와 공간의 경제]에서 국제적 공간 속을 순환하는 세 가지 자본형태--화폐, 생산자본, 상품--는 객체이며, 네 번째인 가변자본 또는 노동력을 주체라고 간주한다. 회로 속에서 객체와 주체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다양한 주체와 객체들은 점점 더 먼 거리를 순환할 뿐만 아니라, 특히 전자 네트워크가 증가하고 용량이 커지면서 훨씬 빠른 속도로 순환한다. 시공간 압축의 한 결과는 주체와 객체의 가속화를 낳고, 이러한 경향은 객체와 주체 모두의 의미를 비워버린다. 아찔한 순환의 속도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위상 자체가 불분명하고 유동적이 된다. 보이지 않는 위협 전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의 작품에는 현대사회의 위험에 대한 각자의 진단 결과물이 나타나 있다.

Kim Jin_Untitled0824_165X165cm_oil on canvas_2008

먼저 김진의 작품은 정사각형 캔버스 안에 그려진 고풍스러운 서가의 모습이다. 그 위에 얹힌 수수께끼 같은 검은 선들은 작지만 단단하게 조직화되어 있는 상징적 우주에 균열을 만든다. 색깔별로 배열된 서가는 분류와 질서의 흔적들이다. 한편 책상에서 빼내어진 의자 위에도 어김없이 드리워진 선들은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활용해 왔던 이들의 보이지 않는 궤적을 암시하는 듯하다. 서가라는 상징적 우주 사이를 연결 짓는 것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인간들이다. 그것은 구조와 인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서가에 분류된 책으로 암시되는 상징적 구조에 어떤 활력을 부여하는 인기척들은 인간이 구조의 산물이지만, 구조를 재구조화하는 것도 인간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상징적 질서는 언어를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 속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잠재력을 한계 짓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되는 까닭이다.

Lee Rim_The Mess of Emotion No,3_oil on canvas_160x160cm_2008

이림의 작품은 사랑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욕망에 깔려있는 의미를 예시한다. 그림에는 온몸에 크림으로 범벅이 된 두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달콤한 초콜릿 케잌을 먹듯이 서로를 탐식한다. 인간 사이를 채우는 질척거리는 점액질의 양상은 인간 사이에 흐르는 욕망, 그것도 과도한 욕망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아와 구별되는 타자를 향한 욕망이기 보다는 자아의 연장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사랑은 궁극적으로 나르시시즘적이다. 자아의 연장이든 타자로의 함몰이든 이러한 범주의 용해는 근대의 신념인 개체의 자율적 속성을 부정한다. 탐식으로 표현되는 과도한 욕망은 궁극적으로 상대를 자기화하는 식인적인 환상을 연상시킨다. 이승민의 그림에서도 인간은 자율적이지 못하다. 여기에서 인간은 기계와 접속되어 있다. 아니, 접속되어 있다기보다는 기계가 인간의 가면을 둘러 쓴듯하다. 옆모습으로 표현된 사람은 기계가 가지는 분절화 된 구조들이 도면처럼 드러나 있다. 그들은 오로지 전면만을 주시한다.

Lee Seung-Min_적극가담자-방관자conspirator-bystander_112x194cm_oil on canvas_2008

그것은 앞을 향해 전속도로 주파해야 하는 기계-인간의 모습이다. 현대문명이 인간에게 부여한 새로운 임무는 그들을 기계로 만든다. 그들은 스스로 기계가 되지 않으면 도태될 운명이 각인되어 있다. 이재훈은 프레스코라는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이시대의 기념비를 그린다. 그러나 그림 안에는 반(反)기념비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온 사회의 구성원의 소망이 담겨진 그것은 기념비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그림 안에 새겨진 또 다른 단어처럼 기원비(祈願碑)에 더욱 가깝다. 이 알레고리적인 구조물들은 최근에 세워졌으나 종교조차도 아닌 주술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어린 학생을 늑대들이 받치고 있는 이 기념비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개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교육이,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폭로한다. 타자를 지배하기 위해 그들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 새겨진 이재훈의 반 기념비는 강자와 약자 사이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힘의 역학관계가 드러나 있다.

폭력적 사회에 이에 대항하는 권력에의 의지를 주장한 니이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정의의 기원을 논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의무감이나 책임감, 죄의 기원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원시적인 개인관계 속에, 즉 파는 자와 사는 자, 채권자와 채무자라는 관계 속에 두고 있다. 값을 정하고 가치를 정하며 등가물을 생각해내며 교환하는 일들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사고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상에서의 모든 공정과 선의, 객관성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각자 다른 이해관계를 지향하는 이들 사이의 타협과 조정은 쉽지가 않다. 니이체적 세계관은 사회 계약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이념에는 민주주의가 아닌 피로 물든 폭력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예시한다. 그는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지적하며, 사회는 가학적 쾌락을 교환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전환시켰다고 말한다. 고통은 자본화되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새로운 단계의 야만적 세계에서 각자는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를 고양시키며 활동할 것이 요구된다. 

D.Hwang_U2_92x118cm_oil glass steel on canvas_2009

디황의 그림에는 어둡고 유폐된 공간 속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인간이 등장한다. 하염없이 늘어나 공간에 엿가락처럼 붙어 있는 사지는 빠져나가지 못한 비명의 메아리를 보여준다. 고통에 겨워 내지른 비명이 피드백 되어 어두운 공간 속 인간에게 다시금 타격을 가한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뭉크의 유명한 그림에서, 비명이 인물이 서있는 다리 위로 펼쳐진 하늘로 빠져 나가고 있다면, 미소한 크기의 타인의 그림자조차 없는 21세기의 비명은 더욱 절망적이다. 여기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마치 ‘실존’처럼 항시적인 조건처럼 보인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인은 고립된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맡아하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되어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여파가 자기에게도 돌아온다. 사회는 분업화, 도구화 되었지만, 사회적 규범의 취약성은 체제 자체가 내포한 폭력성을 결코 감소시키지 못한다.  (전시문의 733-2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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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esplanade12 BlogIcon Angella 2009.03.03 19:55 address edit & del reply

    싱그러운 3월입니다.
    행복한 일이 더 많읂 화사한 봄날되세요!
    추천 버튼 꾸욱 누르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