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 17:59

문학이 무엇인지 묻는 방식에 관하여

계간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2008년 겨울호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통권 57호).
▲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통권 57호).

문학개론서들 안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전개과정이 어떻든 대개 시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질문을 던지거나 이러한 질문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문학 관련 종사자들뿐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안에는, 삶의 다른 분야와의 관계 속에서 문학이란 것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는 그 외부적 모습에 관한 물음도 분명 들어 있다.

『창작과 비평』 겨울호와 『문학동네』 겨울호에서는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창작과 비평』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고 『문학동네』는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과의 대담을 싣고 있다.

백낙청은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관념적인 논의로 흐르지 않으려면 개별 작품에 대한 개별 독자의 반응을 토대로 그 물음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글은 기존 문학평론의 전개 방식대로 질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작품을 토대로 대답해 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달리 김종철은 삶의 근원적 문제를 생각하는 것을 문학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톨스토이가 자신의 작품마저 부정한 사례를 들면서 “풀뿌리 민중의 삶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얻은 부르주아 시대의 예술작품이라면 아무리 그것이 뛰어난 것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민중생활에 관련해서는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 …… 이런 식으로 근원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는” 작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선 이 두 글은 형식에서 차이가 있다.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는 활자화되어 있긴 하지만 좌담을 정리한 것이므로 그 본래적 모습은 ‘말’이다.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은 두말 할 것 없이 ‘글’이다. 형식의 차이가 내용의 차이를 규정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두 글은 내용면에서도 비교가 된다.

백낙청은 소설이 어떻게 씌어야 하는가를 해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해간다. 반면 김종철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해명함으로써 인간의 삶 안에서 문학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힌다. 백낙청이 글-자성을 밀착시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면 김종철은 말-몸이 밀착시켜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 문제에 있어서도 이 두 글은 다른 자세를 취한다. 백낙청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세계체제의 변혁 안에서 “현존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적응과 그 극복의 이중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라며 과제를 제시한다. 반면 김종철은 “근대적응과 극복이라는 이중과제의 동시적 수행 … 그렇게 말할 때 통일운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물으며 녹색평론이 처음 시작한 북한에 쌀 보내기 운동과 녹색평론 독자모임이 각 지역에서 자립적 공동체를 구성하여 공생의 삶을 추구하는 것 역시 중요한 통일운동이라고 말한다.

문학이 무엇인가의 물음은 일차적으로 문학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이 물음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주린 배를 채워야만 하는 인간적 숙명 안에서 문학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방식은 문학보다 생활에 관심을 더 두고 있다. 백낙청의 방식대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세상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갈 것인가, 김종철의 방식대로 삶의 근원적인 물음을 통해 이야기를 재생시킬 것인가. 두 방식이 결국 같은 해답에 도달하리라는 낙관적 전망만 보장된다면, 자명한 것은 치열하게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에 몸을 던지는 게 아닐까.


                                                                                                        이주호 기자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