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6 13:11

문학상 수상자들은 프라다를 입는다 - 《문학과 인식》 2008년 가을 호 특집, 칙릿소설을 읽다

칙릿소설 열풍의 발원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제 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백영옥의 『스타일』.
▲ 칙릿소설 열풍의 발원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제 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백영옥의 『스타일』.

앤 해서웨이의 출연만 아니었다면 악마가 프라다를 입건 독립문을 입건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정이현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으며, 도시 여성들은 소비 패턴으로 자신들의 행동반경과 생각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거나, 처음과 다르게 등장인물들의 선택이 점점 <사랑과 전쟁> 속 인물들과 겹쳐지는 반면 사건은 기괴해지기에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게 칙릿소설이라 불리는 하나의 장르인 줄은 몰랐었다.

2007년부터 이런 유의 소설이 서점 신간 소설 코너에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08년에는 문학상 수상작 코너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칙릿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정도는 알아줘야 하지 않겠나. 칙릿소설은 chick literature novel의 약자로 도시 중산층 여성들의 일과 사랑(완곡하게 표현해서), 취향 등을 가볍게 형상화한 소설이라고 한다.

《문학과 인식》 가을 호 특집에서 문학평론가 최강민은 이홍의 『걸프렌즈』, 우영창의 『하늘다리』, 백영옥의 『스타일』, 서유미의 『쿨하게 한 걸음』 등을 예로 한국의 칙릿 소설들이 어쩌다 문학상을 휩쓰는 지경에 이렀는지 살펴보고 있다.

그는 “출판 자본은 문학상의 이미지가 주는 고품격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칙릿 소설의 품질 논란을 잠식시키려는 상품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중소설로 인식되는 칙릿 소설에 문학상이라는 감투를 달아 본격문학의 새 경향으로 인식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칙릿 소설이 한국 소설 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까?

칙릿소설의 주된 골격은 대도시에 사는 2,30대 직장 여성이 일과 사랑 속에서 갈등하며 내외적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대도시, 사무직, 혼자 사는 아파트나 원룸, 술, 자유로운 연애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최강민의 지적대로 이들은 결혼을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섹스에 거리낌, 부담 따위는 갖지 않으며, 무엇보다 스타벅스, 던킨도너츠, 태국음식점, 루이뷔똥, 프라다, 페레가모 등의 브랜드 속을 자유롭게 유영해 다닐 줄 알아야 한다. 카드 결제를 걱정한다거나 이번 달 지로 용지에 박힌 숫자들을 전 달과 비교해 보는 따위는 스타일의 망조이므로 입도 뻥긋해서는 안 된다.

“작가가 회사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최강민의 지적대로 한국형 칙릿소설들은 칙릿소설의 구성 요소만 갖추었지 그 세부적이고 하부적인 것들은 모두 생략하고 있다. 이러한 생략이 의도하는 것은 이야기로의 집중이 아니라 판타지로 재구성된 대도시 삶이다. 초기의 인터넷 판타지 소설들이 『반지의 제왕』에 사용되었던 용어만 나열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처럼 한국형 칙릿소설 속의 인물들은 도시 중산층 여성의 삶에 관한 오해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프라다를 입은 앤 해서웨이처럼 볼수록 흐뭇해진다거나,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말마따나 책장에서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면 그걸로 족하다 하겠다. 하지만 이 소설들의 결말이 하나같이 “여성의 자아실현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야만 멋진 남성과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수준이라 가면 갈수록 지루해진다. 이 시대의 혁명 정신은 66사이즈 여자가 44사이즈가 된다거나 키가 160인 사람이 170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스타일』의 여주인공의 말은 이 시대의 생각들을 정확히 꼬집어 낸 표현이 아니라 이 시대의 고약한 습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거나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꿈꿔왔던 일에 뛰어든다. 여기서 잠깐, 일하면 성공하고 일 그만두면 꿈을 이루게 된다니, 소설이 환상을 심어준다는 말은 역시 헛말이 아니었다.

최강민은 “칙릿소설이 세간의 비판과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대중적 쿨함을 유지하면서도 쿨하지 않은 칙릿소설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칙릿소설들이 표방하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라도 뼛속까지 쿨하기는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쿨한 행동으로 온갖 인간적인 갈등을 생략하는 것이 현실 도피를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면 좋았겠지만, 이것들은 이야기를 도식적으로 끌고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한국의 장르 문학들이 점차 도식성에서 벗어나 작가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듯 칙릿소설도 “폼생폼사의 프라다”를 벗겨야만 문학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2008-09-19 오후 5:59:26  컬처뉴스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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