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9 12:20

만화비평의 황금기

[한국 만화비평의 쟁점 ⑨]1990년대: 만화비평의 대중화
                                                                                                  김성훈 _ 만화평론가

1995년에 결성된 한국만화평론가협회는 우리 만화가 보여준 성과를 여러 권의 단행본으로 정리한 바 있다.

▲ 1995년에 결성된 한국만화평론가협회는 우리 만화가 보여준 성과를 여러 권의 단행본으로 정리한 바 있다.

만화전문지에서 만화비평이 자리매김 되고, 대학신문을 통해 민중만화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면서 만화비평의 대중화가 출발하게 됐던 것이 1980년대의 성과였다면, 1990년대는 앞 시대에 나타난 이와 같은 대중화의 흐름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구체화된 현상으로 논의될 수 있겠다.

1) 만화비평 단행본 발행

1990년대 들어와 우리 만화비평이 일구어 놓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 다양한 필자들에 의한 만화비평 서적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만화를 테마로 한 비평서는 그 양에 있어서 거의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1990년 이후 2000년 이전까지 발행된 만화비평 서적들은 20여 권을 헤아리는데, 이는 1945년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 세대(世代)여에 걸쳐 발표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양적인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준 시기였다. 동시에 질적인 측면에서도 <만화 보기와 만화 읽기>(1994, 정준영 지음), <한국만화산업연구>(1995, 한창완 지음), <한국만화의 역사>(1995, 최열 지음), <고바우에서 둘리까지>(1997, 황민호 지음), <한국만화통사>(上권:1996, 下권:1998, 손상익 지음) 등 서평에서부터 만화산업과 만화문화 그리고 만화의 역사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논의를 진행시키며 우리 만화비평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나갔다.

한편, <만화의 이해>(1995, 스콧 매클루드 지음, 고재경 이무열 옮김), <만화의 문화 기호론> (1996, 오시로 요시타케 지음, 김이랑 옮김), <만화의 시간>(1997, 이시카와 쥰 지음, 서현아 옮김), <제9의 예술 만화>(1998, 프랑시스 라까쌩 지음, 심상용 옮김) 등 해외의 다양한 만화이론서들이 번역, 출간되어 만화에 대한 이론적인 폭을 넓혀 나간 것도 1990년대 나타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만화비평 서적과 이론서들의 줄 이은 출간은 개별 만화 작품을 보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 작품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가능케 했다. 또한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만화 자체에 대한 이해를 높여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줄이는데 일조하면서 동시에 만화가 문화로서 인식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 만화비평 전문집단의 등장

1990년대 들어와 우리 만화비평에 생기를 불어넣은 또 다른 흐름은 바로 전문가 집단이 등장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집단의 모습에는 학회, 협회, 동인(同人) 등 성격에 따른 다양성이 더해지면서 ‘비평을 통한 만화읽기의 대중화’를 가속화시키는데 공헌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한국만화평론가협회’로서 1995년 2월에 결성되었다. 여기에는 곽대원, 김이랑, 김창남, 백정숙, 정준영, 최열, 최석태 등 1990년대 초반에 한국만화비평을 이끌었던 평론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한국만화의 역사에 관한 정리와 주요작가의 성과들을 개관하는 저술활동을 보여주었다.(1) 결과물로서 <우리만화 가까이 보기>(1995), <호호에서 아하까지>(1998) 등의 평론집을 내놓은 바 있다.

손상익, 박인하, 박석환 등 현재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만화평론가들이 『스포츠 서울』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사진은 손상익 평론가의 대표저서인 <한국만화통사> 
‘한국만화학회’(2)는 그 이듬해 결성되었다. 1996년 5월에 창립발기인대회를 가진 학회는 그 해 12월 ‘정부의 만화정책, 그 진단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만화에 대한 정부정책을 열린 공간에서 학술적 담론의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학술지 『만화애니메이션 연구』(3)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학술비평의 토대를 마련했다.

협회와 학회가 전문성과 이론을 바탕으로 결집되었다면, 독자 커뮤니티에서 나타난 비평집단은 개인이 단순히 만화를 보고 즐기는 수준을 뛰어넘어 마니아적 취향을 공유하고 새로운 형태의 만화 즐기기를 선도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을 통해 커뮤니티 형성이 일반화되면서 만화를 주요 테마로 삼는 여러 동호회가 등장하였고, 이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독자비평 및 독자운동으로 이어나가게 된다. 여기에 대표적인 모임으로 ‘올쏘’, ‘애니메이트’, ‘순정만화사랑’ 등을 들 수 있다.


3) 신춘문예의 등장

1993년 『스포츠서울』에서 선보인 ‘만화평론’의 신춘문예 도입은 우리 만화문화에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일종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의미를 지닌 일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신춘문예가 지닌 무게감은 개인에게는 등단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활동영역을 얻게 되었음을 뜻하며, 공적으로는 해당 장르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주요한 텍스트가 되었음을 인정해주는 암묵적 동의에 있을 것이다. 즉, 신춘문예 부문에 만화평론이 자리 잡은 것은 ‘만화를 통한 시대읽기’가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며, 동시에 평론가라는 직함도 공인받음으로써 ‘만화’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온전한 장르로 인식됨을 보여주는 일종의 모범적인 사례가 된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들 가운데 특히 손상익(1993년 당선), 박인하(1995년 당선), 박석환(1997년 당선) 등은 우리 만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평론활동을 지속해 오며, 신춘문예가 지니는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대중적인 측면에서 1990년대는 만화비평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은 만화비평의 대중화는 만화산업의 호황과 함께 자리 잡게 된 것일 텐데, 잡지-단행본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산업적인 성장의 시장효과는 주요 일간지에서도 다투어 만화비평을 싣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전체 대중문화 지평에서 만화가 주요한 장르로 자리 잡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우리 사회에서 만화에 대한 담론은‘경제적 부가가치’로 집중되었고, 그 속에서 만화가 진정한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 여전히 비평이 맡아야 할 역할은 숙제로 남겨져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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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만화 그 정체성과 다양성을 뒤집어 보다> (2007, 비전코리아) 조정래, p163
(2) 現 ‘(사)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의 전신이다.
(3) 2006년 12월에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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