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7. 09:17

당신은 추방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인터뷰]『추방과 탈주』저자 고병권
                                                                                                                                        박휘진 기자
'추방과 탈주'의 저자 고병권. 그는 한국사회에서 대규모의 인구가 주변으로 내몰리는 추방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 '추방과 탈주'의 저자 고병권. 그는 한국사회에서 대규모의 인구가 주변으로 내몰리는 추방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목도할 때면 ‘왜 경찰은 그들을 때리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그 답은 이게 아닐까. ‘경찰이 ‘지킨다’고 말하는 국민의 범주에 더 이상 나 혹은 시위대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왜 경찰이 시위대에게 폭력을 가하겠는가. 시위대도 그들이 지켜야할 국민일텐데. 경찰의 시선으로 본다면 시위를 택한 순간(실은 시위를 택하게 된 계기로부터) 시위대는 더 이상 국민이 아니다. 국민의 범주에서 ‘추방’되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추방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두 가지다. 그들을 추방한 국가권력에 더 간곡히 매달리거나 국가의 영역으로부터 탈주하거나. 현 한국사회를 ‘추방’과 ‘탈주’라는 두 키워드로 읽어낸 책이 출간됐다.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의 『추방과 탈주』(그린비)가 그것이다. 저자를 만나 그가 책에 담고 싶었던 생각들을 직접 들어보았다.

책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제목의 첫 단어가 추방인데요. 누가, 누구를, 어디로부터 추방한건가요.(웃음)

꼭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취하고 있는 사회구조 자체가 추방을 야기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좁게 말하면 국가에 의한 추방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쓰던 말로하면 국가와 자본이죠. 더 구체적으로는 이 사회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존재, 주권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 의한 추방이 일어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해져요. ‘어, 국민이 주권잔데 왜 추방되지?’ 위험한 말이지만 낱국민은 주권자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근대에 생긴 ‘국민이 주권이다’는 말은 국민 전체를 의미했을 때, 국민을 하나로 봤을 때 성립되는 말이고요. 낱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일을 저는 본 적이 없어요. 주권자는 사회에 매우 중요한 결정들,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죠. 칼 슈미트 같은 철학자는 주권자를 ‘법을 중단시킬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부르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런 권리를 누가 쥐고 있느냐. 글쎄요. 낱국민들이 쥐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자꾸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고, 그걸 추방이라고 했죠.

책에 쓰진 않았지만 추방이라는 말을 처음 떠올린 것은 중증 장애인 이야기를 듣고 였어요. 중증장애인들을 사회가 방치하잖아요. 완전히 가족들이 다 떠안거든요. 가족 중 한 사람이 사회생활 포기해가면서 거기에 매달려요. 하다하다 지치면 구청에 연락을 해서 시설에 보내요. 주로 종교단체들이 국가보조금 받으면서 그런 시설은 많이 운영하죠. 그런 시설에 가서 살다가 나이가 먹으면, 나이 먹은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또 있어요. 그 후에는 묘지에 묻히겠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들은 한 번도 사회에 들어와 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로부터 추방된거죠.

그런데 이 추방이 참 특이하다. 추방인 동시에 방치라는 느낌을 주잖아요. 영어로 방치하다가 ‘abandon'인데요. abandon 가운데 있는 ban이라는 말이 추방이라는 뜻이랍니다. 해서 방치는 추방의 한 형태다. 전통사회에서는 추방이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추방은 밖이 아니라 변두리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대규모의 인구가 주변으로 방치되는, 추방은 추방인데 주변으로 몰고 주변에 방치한다는 거죠. 그런 추방이 한국사회에 지난 10년 동안 있어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추방으로 인해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서, 혹은 잠정적으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탈주해야한다는 것인가요.

물론 탈주를 하자고 하는 것도 있는데요. 일단 탈주를 강요받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거죠. 밀려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의성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대표하는, 매개하는 사람이 없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조합이 없는 거죠. 어떻게 조합을 결성하겠어요. 매일 매일이 불안정한 사람들이고 사장이 바로 해고할 텐데요. 농민 같은 경우에도 17대에는 비례대표가 없었어요. 인구가 약 300만명이 되는데도 말이죠. 의사수보다 훨씬 많죠. 그런데 의사는 비례대표가 있어요. 이 말은 곧 농민은 정치적으로 대의가 안 된다는 말이죠. 지금 시골의 농민들이 대의되는 방식은 ‘농민 문제’가 아니라 ‘시골 노인’문제나 혹은 ‘가난한 사람들’문제로 여겨지죠. 범주가 빈곤층과 노년층이 되는 거죠. 농민의 문제는 희석되고, 대의가 안 되기 시작합니다.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대의성이 없기 때문에 극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확 돌변하게 됩니다.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서 ‘아, 아니다’라고 느끼게 되면 이 사람들은 태도가 180도 달라지죠. 정말 극렬한 투쟁을 하게 되요. 용산참사도 비슷한 문제죠. 어쩌면 그들 중에는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은 사람도 있을 거에요. 경제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요. 그런 사람들도 이런 사건들로 인해서 돌변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돌변할 때 의사가 대의되지 않기 때문에, 점거나 난입의 형태로 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선 직접 뛰어들 수밖에 없죠.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 난입이라던지, 촛불집회처럼 거리로 뛰어나온다던지, 도시개발정책에 반대해서 점거를 한다던지. 이런 것은 강요받은 탈주에요. 그들은 이게 아니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말해달라고 하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거죠.

국가에서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대중’이라고 합니다. 만약 국가에서 애초에 그들을 함께 할 존재로 여기고 끊임없이 소통하려 했었다면 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대중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주변으로 밀어내고 방치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대중이 된 것이죠. ‘이해할 수 없다’, ‘소통이 안 된다’ ‘괴담이 떠돈다’ ‘난동을 부린다’ 는 말들이 한국사회에 정말 많이 있었잖아요. 이 모든 것의 종합이 ‘이해할 수 없는 대중’입니다. 화염병 던지고, 얼굴 가리고, 평소에 우리가 봐왔던 친숙한 모습이 아닌 흡사 반란군처럼 낯선 모습을 한 채로 그들이 불가피한 탈주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겠죠. 

추방된 사람들이 강요받은 탈주를 할 때 보이는 낯선 모습들을 국가에서는 ‘폭력시위’같은 말로 매도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는 말씀하신 것처럼 점거나 난입 또한 어쩔 수 없는 단 하나의 선택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 ‘폭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2009년 1월에 발간된 고병권의 '추방과 탈주'(그린비).

폭력은 진짜 어려운 주제에요. 폭력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건 합법이냐 불법이냐인데요.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대추리에서 싸우는 모습을 봤다. 한총련 사람들이 죽봉을 휘두르고 경찰과 대치하는 것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봤다면, 순전히 ‘물리적’ 의미에서 경찰의 폭력이 압도적으로 보였을 거에요. 초등학교 하나를 없애버렸으니까요. 그럼에도 대추리 시위 현장을 ‘폭력 시위’라고 하는 것은 그 ‘불법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거예요. 이른바 ‘주권자’ 혹은 ‘공권력’은 불법을 저지를 수가 없어요. 어떤 물리력을 행사해도 그건 공무집행이죠. 그러나 국가 폭력성은 분명히 있어요. 아,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인생 헛 산거에요.(웃음) 따라서 법으로는 폭력의 문제를 정의할 수가 없는 거죠. 법 자체의 폭력성이 있죠. 그렇다면 폭력은 물리력을 의미하는냐. 그것도 아니죠. 정신적 폭력, 언어적 폭력 등도 폭력이니까요. 그래서 폭력이 뭐냐에 대한 논의를 하다보면 끝이 없어요.

다만 좁혀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말한 법의 폭력성이라던지, 국가 폭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잠시 제쳐 두고요. 사안을 아주 좁혀서 내가 시위현장에서 떳떳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만 놓고 이야기를 하자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물리적 폭력을 쓰는 것이 이로운가. 둘째는 폭력은 공격적인 것인가.

첫 문제와 관련해서 보면, 저도 80년대, 90년대 초에 그런 현장에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참 공허한 느낌이 들었어요. 시위가 시작되면 이른바 사수대라고 하는 사람들이 앞에 나가서 쇠파이프로 부수고 하는데, 저기를 뚫어서 뭘 하려고 할까. 10미터 더 전진하고, 또 전진하고. 그렇게 시위하는 동안 오히려 사람들은 다 떨어져나가더라고요. 물리적 폭력의 증대가 전체 시위대 힘을 감소시키는 희한한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그런데 얼마 전 대추리에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봤습니다. 한쪽에서는 사수대가 죽봉으로 대치하면서 수세에 몰리고 있는데, 한 쪽에서 어떤 분이 그 초등학교 교문에 자기 몸을 쇠사슬로 묶었어요. 그 모습을 사람들이 카메라로, 핸드폰으로 마구 찍었고 웹에서 퍼졌죠. 그 모습이 알려지고 나서 사람들이 대추리로 많이 몰려왔어요. 죽봉과 물리적 폭력은 사람들을 시위에서 떨어져 나가게 했지만, 그 깜찍하고 작은 디지털 카메라는 사람들을 현장으로 불러 온 거죠.

그 현상을 보면서 엥겔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엥겔스는 “낡은 혁명이 미래 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폭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저쪽이다.”면서 이제는 시위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어요. 엥겔스가 보기에 그 당시의 혁명들이 낡았다는 거예요.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간을 오래 끌어서 사람들 시각을 바뀌게 하고, 경찰을 ‘동료 시민’으로 느끼게 하는 것들이요.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대포가 와서 ‘빵’ 하면 모든 게 끝나잖아요. 게다가 폭력으로 맞설 때 여론은 더더욱 안 좋아지고요. ‘저 폭력배들’ 이렇게. 더 안 좋은 것은 바리케이트를 치면 대표자가 생기고, 군대화되고, 대표자가 협상가서 배신해버리거나 구속되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지금과 똑같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엥겔스와 맑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줄곧 이야기했었는데 마지막에 가서 뜬금없이 기독교 이야기를 합니다. 로마의 전복당이라고. 어떻게 로마시대에 이들이 혁명에 성공했을까. 그들은 군대와 싸우기 전에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건 뭐냐면 소통과 전염이에요. 대추리에서 카메라로 찍었던 것. 그리고 웹에서 퍼졌던 것. 그것이 더 많은 사람을 불러왔고, 그건 죽봉이나 쇠파이프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겠죠.

두 번째로 폭력은 공격적인가의 문제.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중증 장애인 투쟁 때 특히 많이 느끼는데요. 2001년 ‘버스를 타자’ 이동권 투쟁 때 그 사람들이 철로에 내려와서 몸을 묶었어요. 육교에 몸 매달기도 하고요. 엄청나게 위험한 시위에요. 또 한번은 한강다리 건너는 것도 지켜본 적이 있는데요. 이른바 보통 사람은 15분이면 건너는데  그들은 전동 휠체어에서 내려서 온 몸으로 기어가는데 3시간 넘게 걸려요. 그나마도 보통 절반 쯤에서 다들 혼절해요. 너무 힘들어서. 그 시위는 경찰 한 명도 다치게 한 적이 없지만, 그 사람들은 목숨을 내걸고 해요. 너무 과격하죠. 전에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선생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왜 이렇게 엄청나게 과격하게 하냐. 이건 ‘비폭력 과격시위’라고”. 근데 그게 메시지가 강해요. 공격적이라는 걸 확 느껴요. 그들은 경찰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곤봉에 그냥 몸을 내 던져요.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것. 그들 시위의 진실성. 이런 것들이 매우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거죠. 5월과 6월의 촛불집회 때도 그랬죠. 물대포 쏘면 처연하게 맞고, 구속하겠다고 하면 ‘닭장차 투어’라고 자기가 먼저 올라타고. 매우 공격적인 시위죠. 이게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간디의 이미지가 달라요. 우리는 간디를 평화로운 사람으로 보고, 혼자 단식하는 사람으로 보는데, 사실 간디는 매우 공격적인 사람이고 물러나지 않는 사람이에요. 대추리에서 쇠사슬로 문에 자기 몸을 묶었던 주민, 철로에 몸을 묶은 장애인처럼요.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것은 폭력에 물려나지 않겠다는 거예요. ‘폭력같이 저열한 것에 굴복하지 않겠다. 나는 한발도 못 물러난다’고 그 자리에 딱 서는 거에요. 충돌을 회피하지 않아요. 우리는 비폭력 시위를 충돌하지 않는 시위라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충돌하죠. 신화 같은 이야기지만 두려움 없이. 두려움을 초월해서 맞서는 것이죠.

지금의 사회구조가 계속 주변인들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하면서 밀려나지 않으려 매달리고요. 반면 국가는 나의 범주에서 나가면 더 이상 살펴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협박’하고, 실제로 그 폭력성을 대놓고 보여주기도 하고요. 책에서는 국가의 이런 폭력성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요즘 학자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고 저도 공감하는 건데요. security 담론이란 게 있어요. 치안으로 해석하는데요. 이것은 안팎을 구별하지 않아요. 테러리스트가 아프간에 있는지 미국에 있는지 알 수 없고, 누군지도 알 수 없잖아요.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에 대해서 초법적인 관리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수용하는 거죠. 이건 범인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가를 집에 들이는 거죠. 한국에서도 최근에 전화감청법 통과되려고 하고, 사이버 관련법들도 만들려고 해요. 그런 것을 보면서 저는 ‘뭐가 두렵길래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밤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항상 불을 켜두려고 하고, 네 얼굴 봐야겠다고 가리지 말라고 하고, 댓글까지 다 관리하겠다고 하고요. 이게 테러와의 전쟁에서 드러나는 특징이에요. 적이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는 것. 누가 적인지 모른다는 것이요. 그런데 이것은 한편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0개월 계약서’처럼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혹은 호출 노동자처럼 오늘 문자오면 일하고 없으면 공치는 거고요. 이렇게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거죠.

이건 신자유주의 이후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 전에는 어찌됐든,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국민을 안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배워야 된다. 모두가 잘 살아야 된다’는 식의 국민주의가 있었어요. 그런데 신자유주의 이후에는 ‘이들을 끌고 갈 필요가 없다. 관리나 하는 게 낫다’로 바뀐 거죠. 그리고 그런 관리의 대상이 된 것이 정부 정책에 의해 밀려나고 방치됐던 사람들 인거죠.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방치하니,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되고 관리하려고 할 때 앞서 말했던 이해할 수 없는 대중과 마주하게 되고요. 알 수 없게 되니까 더 관리하려고 들고요. 더 폭력적으로 행동하고요. 더 강화하고요. 신자유주의에서 정부는 모든 게 축소되는데 딱 하나 커지는 부분이 바로 치안입니다. 기동대도 만들고. 왜냐면 빨리 대응해야 하니까요. 정부에 의해서 대중이 불안에 빠졌는데, 그 불안한 대중을 보고 정부도 불안해하는. 서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각각 더 강화하는 것뿐이죠. 이런 알 수 없는 게임.  
  
지식인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식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문제이기도 할 테고요. ‘연구자 대중’이란 말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마치 다른 대중들이 각자의 생활영역에서 살아가듯이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공부를 해서 다른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쭉 살아가는 사람이 연구자 대중이죠. 저는 지식인 이미지를 다르게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간 지식인 이미지가 좋게 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에 있고, 더 멀리 보는 존재’정도 였는데, 그게 아니라 저는 ‘연구자 대중’이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사실 대중 안에 포함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잖아요. 공장사람들 데려다가 농사일시키면 그 사람들은 농작물 다 말려 죽일 거예요. 그들은 삶의 양식이 다르거든요. 근데도 그 사람들을 다 대중이라고 불러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책 읽고 글 쓰고 개념이나 담론 만들고 하는 건데, 따지고 보면 그게 또 그렇게 다른 일들은 아니거든요. 농민이 공장노동자가 만든 공산품들도 쓰면서 살아가듯이, 농민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생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느끼게 하듯이, 예술가의 창조성이 우리 연구자들에게 또 다른 영감을 불러오듯이, 우리가 만든 담론들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공유하는 거죠. 그게 지식인이 하는 일이라고 봐요.

2006년 대추리 시위 현장. 대추리 주민들은 '올해도 농사짓자'는 구호를 외쳤다.
삶과 투쟁의 현장은 다르지 않다.

책에서는 지식인의 죽음을 예견했지만 그건 또 분명히 지식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이랄까요.  

지식인만의 특별한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농부가 책무로부터 면제되지 않고, 노동자도 그렇듯이. 학자들도 대중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죠. 그런 면에서 지식인에게도 노동자에게, 농부에게 묻듯이 ‘너는 지금 뭘하고 있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식과 정보가 상품이 되면서 도리어 삶과 무관한 지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측면에서 지식인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지식인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 봐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들이 모두 있듯이. 지식인이 뭔가 다른 위치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해야죠. 

그런 측면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나의 앎이 곧 실천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에 행진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는 대추리에서 본 “올해도 농사짓자”였습니다. 그리고 중증장애인 투쟁의 형태 ‘비폭력 과격시위’같은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오냐고 박경석 선생한테 물었을 때 그는 “어디서 나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게 삶이다”라고 했습니다. 위험하니까 줄로 묶고 하는 것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지식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을 단절시키고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내 앎을 곧 실천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영역에서든지 싸워서 혁명하겠다가 아니라, 삶이 바뀌었을 때 그게 바로 혁명인거죠. 지식인들에게 투쟁이란 지식투쟁이 되겠죠. 그 지식 투쟁을 통해 우리의 삶도 바뀔 테고요.

지식인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현장’으로 연장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자신의 불안한 삶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현장은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죠. ‘왜 현장에 가지 않느냐’는 곧 ‘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느냐’는 말일 거예요. 그리고 그 사건은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이고요. 그 현장은 언제든지 나타나고, 사건은 도래합니다. 모두가 그 사건 속에 우리를 적극적으로 열어야 됩니다. 사건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맡기고 내던져야 변화가 오는 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은 현장에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삶을 현장화 해야 합니다. 그건 어느 누구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봐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있는 곳이 현장이 되게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현장 안에 있다 보면 우리는 당연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엮여 있다는 걸요. 사건은 나 개인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어나는 거고, 그 사건을 같이 겪으면서 함께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죠. 그리고 거기서 고립이 극복되는 거겠죠. 선언문에서도 썼는데요. “나는 내 자리에서 싸우지만, 내 친구자리가 또한 내 자리라는 것을 안다”고요. 우리는 같은 이유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그 속에서 서로 연대가 될테고요.

고병권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느낌을 받았다’, ‘인상적이었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같은 일을 경험하고도 아무 감응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그 일에 자신을 온전히 열어 온 신경으로 그것과 교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자만이 일을 사건으로 경험하며, 일상을 현장으로 변화시킨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충분히 열려있는가? 우리는 충분히 교감하고 있는가? 고병권은 추방이 적극적인 방치라고 했다. 이는 비단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범주를 좁혀 나와 나의 삶을 대입해보자.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방치하고 있진 않은가. 사회와 개인이 무관하지 않음에 이의가 없다면, 우리는 좀 더 열린 자세로 일상을 대해야 할 것이다. 일상을 현장으로 변환시키는 ‘열림’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