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 14:03

누가 우리를 죽이고 있는가?

[편집자가 독자에게]히틀러, 헬렌 켈러, 그리고 강호순
                                                                                                                                     안태호 편집장
히틀러의 작품. 이 그림에서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독재자의 멘탈리티를 찾아볼 수 있을까?
▲ 히틀러의 작품. 이 그림에서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독재자의 멘탈리티를 찾아볼 수 있을까?

히틀러가 화가지망생이었단 사실은 꽤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는 1907년과 1908년 거푸 빈 미술 아카데미 입시에 도전하지만 두 번 다 낙방하고 맙니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순 없지만, 성공한 예술가 히틀러를 생각해 보는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만약 그가 미술대학에 무사히 들어가 화가의 길을 걸었다면 홀로코스트의 악몽이 인류를 덮쳐왔을까요?

흔히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현재를 구성하는 불가결한 요소라는 인정을 넘어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여러 가지 가정들은 단지 픽션의 소재로만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의 숱한 실패나 성공들이 가능했던 이유와 조건들을 분석하고 현재에 그것들을 응용해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정들이 오히려 필수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히틀러는 입시에 실패한 첫해에 아카데미 학장을 찾아가 자신이 합격하지 못한 이유를 따졌다고 합니다. 당시 학장은 그에게 회화보다는 건축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충고를 해주지만 당시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수였다는군요. 16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입시를 위해 집을 뛰쳐나온 히틀러에게는 무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입시 실패 후에도 계속 빈에 남아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가 그렸던 그림들을 봅니다. 하나같이 대량학살의 그림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정경들입니다. 결과론적으로 히틀러가 그린 그림들을 두고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려 했다’거나 ‘독재자의 맹아를 확인할 수 있는 멘탈리티가 숨어있다’고 이야기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서의 가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보면, 어쩌면 우리는 20세기 교과서에서 독재자 히틀러가 아닌 예술가 히틀러를 공부하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네, 맞습니다.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히틀러를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역사의 희생자’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헬렌 켈러는 어떨까요. 헬렌 켈러에 대해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 멀고 귀 먹고 벙어리인 삼중고의 소녀가 설리반 선생이라는 헌신적인 멘토를 만나 자신의 절망을 딛고 일어난 인간승리 드라마’ 정도 아닐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헬렌 켈러는 투철한 신념을 가진 사회주의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녀는 1909년부터 미국 사회당 당원이었고, 당내에서도 혁명적 좌파 노선을 걸었다는군요. 당의 온건노선에 불만을 품고 전투적인 산별노조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반전운동의 가장 인기 있는 연사이기도 했습니다.(헬렌 켈러의 ‘연설’에 대해 어리둥절하게 생각할 이들이 있겠지만, 실제로 그녀는 영어를 안정적으로 구사하는 것을 넘어 외국어를 4개까지 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내용은 <혁명을 꿈꾼 시대>의 헬렌 켈러 편을 참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읽었던 헬렌 켈러의 전기를 기억하지만 그녀가 성장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나라의 반쪽짜리 교육이 반쪽짜리 위인만을 강요해 왔던 셈이죠. 다시 한 번 가정법을 사용해 봅시다. 헬렌 켈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극단적인 현실에서도 교육을 통해 위인전의 단골메뉴가 된 그녀지만, 한국에서라면 평생을 어둠과 절망 속에서 보내지 않았을까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편견, 차별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그 정도의 중증 장애인이라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부터가 어려웠을 공산이 큽니다. 더군다나 사회주의자로 노동현장을 누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강호순이라는 희대의 범죄자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지인은 이번 사태로 인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균열’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세상사가 워낙 흉흉하다 보니 개별 신체에 엄습해오는 공포와 불신,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 인간관계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입니다. 당장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느니, CCTV를 더 많이 설치하고 경찰력을 더 늘려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떠돕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지만, 즉자적인 반응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근본원인에 대해서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1%의 인간은 사이코패스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는 저를 섬뜩하게 만듭니다. 이건 유태인을 가스실에 밀어 넣으며 ‘아리안족의 유전적 우수성’을 강조했던 히틀러의 입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걸까요. 나치는 유대민족에 대한 증오와 전쟁을 통해 당시 사회의 다른 모순들을 덮어버렸지만,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의 희생양으로 사회가 가진 치부가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6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국가권력과 연쇄살인범이라는 괴물을 키워낸 사회시스템이야말로 사이코패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시대는 괴물을 낳기에 충분한 악덕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을 위해 사람을 불태워죽일 수 있는 사회, 권력을 향해 온갖 거짓과 비리가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사회, 어린 시절부터 승자독식의 경쟁시스템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사회, 욕망의 무한질주를 위해서는 어떠한 가치도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

교육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만큼 자신 있게 주장할 만한 근거들을 이론적으로나 데이터 상으로나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교육이 변화의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효과적인 기제인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물론, 근대적 교육이 가지고 있는 인간훈육 과정이라는 맹점에 대한 성찰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스템 유지를 위해 기계 부속을 생산하듯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과정 자체에 대한 고민은 중지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단서조항과 유보사항들을 늘어놓는다 해도 교육이 갖는 중요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강호순의 범죄는 다른 반사회적 성향의 범죄자들과 다르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으며 성실한 젊은이였으므로 오직 쾌락만을 위한 살인이었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분석들은 마치 그가 다른 원인 없이 자생적 살인마가 되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가 만약 가정이나 학교에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더라면,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었더라면, 그래도 그는 연쇄살인범이 됐을까요?

사회가 길러낸 괴물이라는 점에서 강호순의 엽기행각도 다른 범죄자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많은 범죄자들의 경우, 불우한 성장환경에서 기인한 반사회적인 성향이 범죄의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왜, 우리사회가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하는지. 어째서 공교육의 파탄을 막아야 하는지. 이들이 사례로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Trackback 0 Comment 2
  1. Favicon of http://iloveincheon.tistory.com/ BlogIcon 인천갈매기 2009.02.02 17:16 address edit & del reply

    옳소! 옳소!

    • Favicon of http://blog.naver.com/citizenk001 BlogIcon 안태호 2009.02.03 01:06 address edit & de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