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5 09:34

노년은 아름다워라 - 황혼의 의미와 아름다운 음악의 조화, <로큰롤 인생>

언제 마지막 공연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은 깊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 언제 마지막 공연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은 깊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는 삶을 다룬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그러나 영화는 산업이다. 이것은 영화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에 자본에 맞는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영화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된다. 대중들에게 생소한 이야기를 영화화하면 외면당하게 되고, 결국 이는 차기작을 만들 수 없는 여건에 처하게 한다. 코미디, 멜로드라마, 공포 영화 등등 장르가 등장한 것도 이런 장르를 대중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장르라는 것은 대중들과 제작자들 사이의 일종의 약속이다. 대중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제작자들이 선사하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작자의 입장에서 장르란, 수익이 보장되는, 속칭 ‘안전빵’인 것이다.

영화가 대중문화의 총아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의 대중은 실상 10대 후반과 20대, 더 나가봐야 30대 초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대중은 모든 세대를 대표하지 못한다. 대중에 포함되지 못하는 가장 불운한 세대가 있으니, 이들이 바로 6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어린이만을 겨냥한 영화가 방학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고, 중년층을 위한 영화도 가끔 등장하지만, 노년층을 위한 영화는 거의 없다. 노년층을 위한 영화가 없으니 노년층을 다룬 영화가 흔치 않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영화 가운데서도 노년층의 삶에 카메라를 깊숙이 댄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당장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손자의 시선으로 외할머니를 다룬 <집으로…>,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를 다룬 <마요네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화를 홍보하기 위해 노인을 출연시킨 <팔도강산> 시리즈 정도만 기억날 뿐이다. 이 영화들도 노년층의 문제를 노년층의 시각으로 예리하게 분석하거나 통찰한 것이 아니라 젊은 층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에 그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는 엄청나게 팽창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한국영화는 우리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는, 판타지에만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큰롤 인생>은 너무도 큰 흥분을 안겨 주었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노년층의 삶을 진지하게 다루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극영화가 아니라 실제 노인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점이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영앳하트라는 코러스밴드가 새로운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7주 동안의 풍경을 영화 속에 담아내고 있다. 7주 동안 코러스밴드가 공연을 위해 연습하고 마침내 공연을 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그렇다고 피나는 노력과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줄거리를 다루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이 영화의 감동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영앳하트의 멤버들은 모두 노년층이다. 노인도 보통의 노인이 아니다. 놀라지 마시라. 제일 젊은 사람이 73세이고, 나이가 제일 많은 멤버는 93세이다. 평균 연령이 무려 81세다.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랍다. 그들이 주로 연주하는 곡도 라디오헤드, 롤링스톤즈, 소닉유스 등의 노래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런 곡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켜 공연을 한다. 영화의 재미는 이들이 준비하면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온다.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심지어 가사도 까먹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너무도 유쾌한 웃음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영화에 웃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두 명의 멤버가 갑작스럽게 저 세상으로 떠난다. 나이가 많은 멤버들의 밴드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없을 수 없지만, 멤버들은 그 슬픔을 곧바로 이겨내고 연습에 몰입한다. 마지막 장면, 공연을 하고 있는 사이에 죽은 멤버의 유서가 낭독될 때는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다. 삶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 고인(故人)이 밴드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좋은 추억을 되새길 때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건강에 이상이 있는 멤버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수술을 몇 번 받은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이 공연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언제 마지막 공연이 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은 깊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어쩌면 이 다큐는 소재를 잘 잡았을 뿐, 다큐의 형식은 지나치게 편한 방식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매우 반동적인 방식으로 노년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공연을 준비하는 멤버들의 모습, 각 멤버들의 인터뷰, 단장의 인터뷰가 번갈아 이어지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내레이터는 신의 목소리의 위치에서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면서 편안하게 관객들에게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안내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내내 노년층의 삶에 대해 깊게 반추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단지 화면과 내레이터를 따라가면 된다. 숱한 비판을 받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황혼의 인생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감동을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분명 이 영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게다가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이것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그들을 홀대한다. 언제나 청춘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임에도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노인들에게도 삶이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발견’했다. 너무도 열정적으로 음악에 몰입하는 그들의 삶은 정말로 로큰롤 인생이었다.

영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스타가 등장하는 극영화가 있는가 하면, 저예산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패기 있는 영화도 있고, 영화로 예술의 형식을 실험하는 극단적인 영화도 있다. 영화가 인생의 실상을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영화도 있다. 언젠가 만난 다큐 감독은 자신은 극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아니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극영화를 보면 너무 시시해서 동일시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큐는 모든 것이 현실에서 직접 일어난 사건이다. <로큰롤 인생>에서 공연을 준비하다가 돌아가신 두 분의 노인은 연기로 죽은 것이 아니라 진짜로 돌아가신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없는 무대가 더욱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추운 연말에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강성률 _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