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8. 18:31

내 밥그릇과 네 밥그릇은 다르지 않다 -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농민가> 윤덕현 감독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농민가>의 윤덕현 감독.
▲ 다큐멘터리 영화 <농민가>의 윤덕현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농민가>는 2007년 봄부터 2008년 봄까지 경남 사천시 농민회 회원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2006년 말, 한미FTA 반대집회를 촬영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던 윤덕현 감독은 시위 현장에서 사천시 농민회의 여성 회원 김윤진 씨를 만나게 되고, 이후 사천으로 내려가 빈집을 얻어 생활하면서 농민회 회원들의 활동을 영상에 담았다.

<농민가>는 5일 밤 해운대 메가박스에서 첫 상영회를 가졌다.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와 뒤풀이의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다음 날 정오, 해운대 해변에서 감독과 만나 전날 밤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 년간 사천에서 집을 얻어 혼자 살았다고 들었다. 객지에서 혼자 살면서, 그것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 들이대면서 영화를 찍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 이집 저집 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댈 때는 거부감도 많았다. 그런 식으로는 도저히 그분들의 진실된 일상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도 반 농군이 되어 일했다. 농사짓고, 중참 먹으며 소주 한 잔 하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마음을 여시는 것 같았다.

도중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려 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많이 외로웠고, 몸도 힘이 들었다. 특히 겨울밤에 일을 마치고 혼자 있을 때는 너무 힘이 들어 다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이 영화를 다 마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농민회 분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을 비롯하여 마을의 이런저런 모임에 불러 함께 어울리게 해 주시고 영화 찍는 데 어려운 것 없냐, 일일이 살펴 주셨다. 이 영화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정말 미미하다. 이것은 농민 분들이 찍은 농민의 이야기다.

농촌이 어렵다는 얘기는 늘 있어 왔던 이야기라, 농촌이 정말 이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다.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메시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좋은 영상, 아름다운 화면에 대한 욕심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사이에 갈등은 없었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도입 부분에는 농사짓는 장면을 많이 담았고, 나중에 시위 장면과 교차하게 했다. 물론 영상과 메시지 두 가지를 다 담고 싶은 욕심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상당히 고민한 부분이다. 최대한 나의 관점을 배제하려고 했지만 나 역시 정치적인 사람이고, 이명박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싶었다. 하지만 투쟁 영상이라는 건 뻔하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투쟁을 연결시키는 흐름을 가져가자는 생각이었다. 뭐랄까, 업그레이드된 투쟁 영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게 고민이었다.

어린 소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물론 장면만으로는 아름답지만 이게 어떤 맥락일까, 영상에 대한 욕심이 자칫 영화 전체의 메시지와 어긋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면 장면이 전략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인물들마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하승원 씨는 축산을 하시는 분이라 당연히 미국 쇠고기 문제와 결부가 된다. 그 장면을 유심히 보다 보면 하승원 씨가 소를 먹이면서 소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도살이라는 과정은 피할 수 없겠지만, 키우는 과정에서의 교감이 바로 미국산 쇠고기와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소와 이야기하며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관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농민 분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작물들은 키우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작물과의 교감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우연히 찍게 된 장면이지만, 이런 느낌이 아닐까, 친근감이나 정이란 이런 게 아닐까, 그게 대량 생산된 수입 농작물과 우리 농부들이 지은 농작물의 차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잘 몰고 가면 보는 사람의 감정을 아주 격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담담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었다. 영화적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격앙된 감정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냥 보여줘도 관객이 알 거라 생각했다. 인물들이 우는 장면들이 많았다.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평생 농사를 해 왔고, 농사를 좋아해서 농촌에 남은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에 의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데 어떻게 억울하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카메라 들이대면 영화 아닌 게 없다. 하지만 감정을 몰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몰고 가지 않아도 보는 사람이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적 감정의 정점에 강기갑 의원의 당선 장면이 있었다. 의도된 구성인가?

의원하나 뽑으면 승리한 것인가, 그 승리가 영화의 결말이 될 수 있는가? 정치도 일상이고 참여도 일상이라는 측면에서 담은 장면이다. 보이는 것과 실제의 일상은 다른 것이다. 정치 활동과 농민 활동은 괴리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일상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괴리되어 보이는 것들 간의 연관성이다.

선거 장면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질문하자면, 대통령 선거 장면에서 농민회원이 “농민을 생각하는 후보를 찍자”고 하자 한 아주머니가 “농민만 생각하면 되겠나, 나라 전체를 생각해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제 극장 안에는 외국인 관객들도 많았다. 대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밥그릇 챙기기로만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

우선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FTA도 이익이 있다. 경제 발전, 국익, 그것이 나를 잘 살게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말에는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다 같이 잘 살자, 이런 말은 사실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형이다.

농민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밥그릇 챙기기일 수 있다. 스크린쿼터는 어땠나? 똑같은 비판이 있었다. 그렇다면 밥그릇은 챙기면 안 되는 것인가? 안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이기적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과 나를 분리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개의 삶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나의 밥그릇과 너의 밥그릇은 한 밥상에 놓여 있다. 하나의 싸움은 하나의 싸움이 아니다. 연대의 싸움이고, 너를 위한 싸움이다.

먹을거리가 수입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먹을거리가 내 통제에서 벗어난 곳에서 생산되는 데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농민들이 하는 투쟁은 그들 밥그릇 챙기기이기도 하지만 내 먹을거리를 내 통제 범위에 두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싸움을 나쁘게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내 밥그릇과 너의 밥그릇은 다른 게 아니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여태껏 투쟁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에라도 투쟁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공화국이라는 말의 한자를 풀어보면 한솥밥 식구, 함께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내가 남보다 많이 먹겠다. 이건 한솥밥이 아니다. 공화국은 한 솥밥이다. 누가 많이 먹으면 누군가는 적게 먹어야 한다.

이익은 당연히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식의 공화국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논리는 남의 이익을 나의 이익으로 취하겠다는 것이다. 정당한 경쟁, 룰, 좋은 말이긴 한데, 자기 제어가 안 되고 있지 않나. 이윤을 향한 경쟁은 암세포처럼, 공생해야할 전체 속에서 자신의 몸만 확장하다가 결국 자신도 공동체도 다 죽이고 만다.

영화 내용 중에, 농사지을 여건이 안 되면 농사를 접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싸게 사 먹을 수 있는 것을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지 않은가?

합리라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다면, 농민들이 자기 농사를 짓다가 답이 안 나오면 접어야 한다. 농업이 수행하는 기능은 산업 그 이상이기 때문에 이윤논리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공공논리에 의해 지켜줘야 한다는 합의는 없다. 합리는 싸면 수입하고 소비한다는 합의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궁극적인 합리는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통념상의 합리는 돈 안 되면 농사 접는 것이다. 이게 합리지만 정말 합리적인 것인가? 때리면 맞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합리인가? 합리 안에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누구를 함부로 때리면 안 된다, 이게 합리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회의장에 앉아서 준비된 자료를 검토하며 서류에 도장 찍는 것은 합리이고, 무지렁이 땅꾼들이 시청 앞에 모여 깃발을 흔드는 것은 합리가 아닌가? 농사를 접을 상황이라면 접는 것이 정황상 맞지만, 농사가 개인이 돈 버는 이상의 의미가 있고, 그것이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시대의 중심이 변방으로 밀려나가는 이런 현상이 내 삶에서 똑같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이런 것이 합리라고 생각한다.

 



* 2008-10-07 오후 3:10:12  컬처뉴스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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