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6 16:52

남성들의, 남성들에 의한, 남성들을 위한 남성 로망 -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우리는 왜 무협소설을 읽는가

소설이 영화로, 영화가 아케이드 게임으로, 다시 소설이 만화로 변신하는 무협의 다양성과 변화는 눈부실 정도다
▲ 소설이 영화로, 영화가 아케이드 게임으로, 다시 소설이 만화로 변신하는 무협의 다양성과 변화는 눈부실 정도다

아주 같지도 않으면서도 전혀 다르지도 않은 스토리, 박진감 넘치는 무공 대결, 절세 미녀와의 환상적 로맨스, 의리와 정의를 위해서 간난신고를 마다하지 않는 드높은 기개와 의협…. 사실 무협소설에 대한 설명으로 이 이상의 추가적인 묘사는 불필요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이 뻔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는 것인가?

답변 역시 무협 이야기 구조가 그렇듯 뻔하고 궁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번잡스런 설명 다 집어치우고 페일언(蔽一言) 왈(曰), 그저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것! 다른 장르문학들처럼 무협소설 또한 이야기의 중독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지루했던 고교시절 수업 시간에 몰래 보던 묘미와 별빛 영롱한 삭풍의 긴 겨울밤에 무협지를 읽는 재미는 마치 한일전 역전승만큼 통쾌하다. 물론 이 비유는 역사적으로 얄팍하고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일본에 이겼다는 순수한 통쾌함을 이야기하는 것임으로 국가주의적 열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협소설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지독한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이 즐겨 읽는 우리 시대의 생활문화라는 점, 그리고 무협소설이 자리하고 있는 특수한 역사적․문화사회적 맥락 때문이다. 소설이 영화로, 영화가 아케이드 게임으로, 다시 소설이 만화로 변신하는 무협의 다양성과 변화는 눈부실 정도다.

올 여름 반영웅적인 코믹 영웅―평범한 뚱보 팬더를 등장시켜 ‘권태’라는 근대 사회의 저주로부터 잠시나마 우리를 구원(?)해준 착한 애니메이션《쿵푸 팬더》(2008)라든지, 평범한 일상에서 뜻하지 않게 소명을 받고 모험의 세계에 진입하여  조력자와 동지를 얻은 다음 시련을 극복하고 부활한 적마저 물리쳐 영웅으로 귀환한다는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의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에《서유기》를 버무린 할리우드 무협《포비든 킹덤》(2008)의 등장은 오늘날 무협의 생산 및 소비 양상의 폭과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장르의 이야기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섞이고, 미디어와 미디어 간의 통폐합이 이루어지는 무협의 저 복잡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은 참으로 현란하다. 대중성과 시장성이 최종적 목표인 무협 같은 대중문화에서 이제 국경과 국적은 무의미하거나 부차적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기민하고 발 빠른 스토리의 선점 능력과 몸 바꾸기를 통한 이윤의 창출만이 오직 핵심적 관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무협은 행운이 따르는 장르였다. 세계 전역에 퍼져 있는 화교 디아스포라들이라는 튼튼한 기반과 만인에게 친숙한 영웅 이야기의 패턴으로 말미암아 삽시간에 세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에도 무협이 국내에 소개되자마자 즉각 공전의 히트를 치며 단숨에 대중화․토착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무협소설의 기원과 한국무협소설의 출발 시점의 문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무림인을 자처하는 광팬이라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7언시 두 귀와 세 편의 작품이 있다. 신필(神筆) 진융(金庸)의 작품 14편의 첫 음절을 딴 비설연천사백록(飛雪連天射) 소서신협의벽원(笑書神俠倚碧鴛)이라는 구절, 처음으로 무협소설이란 표제를 내걸고 발표된 린수(林紓, 생몰년 미확인)의 단편소설《부미사》(1915),《홍잡지》에 무려 6년 동안이나 연재되며 무협의 장르공식을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 샹카이란(向愷然, 1890~1957)의《강호기협전》(1922), 끝으로 웨이츠원(尉遲文)의《검해고홍》을 토대로 김광주(1910~1973)가 경향신문에 총 810회에 걸쳐 연재한《정협지》가 그것들이다.

사실 연재 당시《정협지》가 보여준 폭발적 인기는 이야기 구조와 이념이 우리에게 거부감 없이 잘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극도의 정치적 억압과 혼란 속에서 고통 받던 대중들에게 제공된 작은 쉼터의 구실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협은《사기》의《자객열전》이나 온갖 화본소설 등 중국 전통소설의 맥락 속에 놓여 있으며 중화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장르이긴 하지만, 혹독한 역사 속에 놓여 있던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나의 위안이었으면서 동시에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의 의적소설이나 군담소설 등의 이야기들과 성격이 유사하여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리얼리티 문제나 상품성에 대한 시장의 저항이 완화되고 번역을 통해 창작 역량이 축적되자 번역과 번안과 창작적 번역의 모호한 공존이 잠시 이어지더니, 손창섭(1922~)의《봉술랑》(1978)의 뒤를 이어 을재상인 김대식(1952~)의《팔만사천검법》(1979)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마침내 이 귀화 문학은 창작무협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무협의 대표 작가들이라 할 검궁인(생년 미확인), 사마달(생년 미확인), 야설록(1960~), 금강(1956~), 용대운(1961~), 서효원(1959~1992), 좌백(1965~), 진산(1969~) 등의 작가들이 등장했고, 1990년대 중반 이른바 신무협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끝으로 장르문학으로서 무협의 양가성과 사회성 문제를 짚어보자. 무협은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인, 도피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이중적 장르이다. 요컨대 무협은 비현실성과 허구성―강호(江湖)라고 하는 허구적 공간을 설정하고 있으며, 때로는 황당무계한 기환성(奇幻性)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등―에도 불구하고 생득적으로 그 내부에 날카로운 사회성을 전제하고 있다. 장르의 논리상 협의 정신으로 온갖 불의와 부조리에 대항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들의 행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의나 부조리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길항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의협 정신은 사회적 갈등의 대중소설적 해결 내지 드라마투르기로서의 권선징악에 지나지 않는 것일 터이지만 무협소설의 독자와 비판적인 사회학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그것은 바로 우리 시대 독자들―특히 남성들의 삶이 대단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비근한 예로 학교와 직장에서 펼쳐지는 경쟁에 지친 남성들은 이제 가정에서조차 여권신장과 가부장제의 해체에 따른 재조정의 고통과 혼란―즉 젠더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무협만화《열혈강호》나《용비불패》에 등장하는 파워풀한 여성들―다른 한편에서 이들은 남성 독자의 관음증적 소비 대상인 팜므파탈들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의 등장은 저명한 예이며, 이 같은 남근주의의 위기와 함께 치열한 현실의 경쟁 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남성들의 도피 욕망이야말로 무협소설을 읽게 하는 새로운 동력이요 시장인 셈이다. 스토리상으로 보나 장르의 성격으로 보나 무협소설의 젠더적 정체성을 남성들의, 남성들에 의한, 남성들을 위한 성인 동화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런 불만족스런 삶이 지속되는 한 남성 독자들의 대중소설적 탈주는 지속될 것이고 이 현대의 로망은 계속해서 쓰이고 또 읽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008-08-27 오후 3:52:17  조성면 _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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