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5 12:30

광장으로 나온 만화

[한국만화비평의 쟁점]1980년대: 민중만화론과 만화전문지의 만화비평

<만화광장>은 만화를 ‘어른들의 문화’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와 같은 성인 만화잡지는 만화담론을 위한 주요한 대중적 공간이 되었다.

▲ <만화광장>은 만화를 ‘어른들의 문화’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와 같은 성인 만화잡지는 만화담론을 위한 주요한 대중적 공간이 되었다.



                         김성훈 _ 만화평론가

1980년대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와 함께 시작되었고, 대중문화도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3S정책’ 속에서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의 프로화가 시작되었고, 성인들만을 위한 영화가 줄을 지어 개봉했다. 이에 따라 스포츠, 연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가 속속 등장하였고, 만화 역시 이들 지면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대학가는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민주화를 위한 사회 각계의 요구가 이어지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캠퍼스에 존재하는 미디어들, 일테면 교지, 학보 등은 기성 언론들과는 구별되는 주장을 보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만화에 대한 관점’ 역시 마찬가지여서, 대학신문을 중심으로 대안만화에 대한 목소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만화비평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서 대학신문을 선택했고, 대학신문이 지니는 특유의 진보성을 담보하면서 만화에 대한 새로운 테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1980년대 이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민중만화에 대한 담론의 형성으로 구체화됐다.


대학신문과 만화비평

만화의 기본적인 속성이 ‘풍자(諷刺)’에 있으며, 대표적으로 시사만화가 그 풍자정신을 이어온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이나 북, 남미 등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시사)만화’의 공생관계는 상업적인 논리에 앞서서 ‘언론’이라는 공통분모로써 묶여 있다. 이와 같은 신문과 만화의 특수한 관계는 특히,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신문에서도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하여 대부분의 대학신문들은 시위현장을 담아내고 학내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 노동, 미디어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들이 표출했다. 만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기존 상업만화에서는 접할 수 없는 시각을 보여주는데, 이는 ‘민중만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로 집약된다.

대학신문에 발표된 만화비평 가운데 1986년 『외대학보』에서 실렸던 「민중시대의 해방된 만화를 위하여」는 특히 주목할 기획이었다. 이 기획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매번 단편적으로 끝나는 다른 아티클과는 달리 7회에 걸쳐 ‘연재’되면서 ‘민중만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대학신문의 발행주기가 대체로 주간 혹은 격주간이며 방학과 시험기간 등에는 발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기획은 상당한 이슈가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대학가에서 ‘만화’가 시대를 읽는 주요한 매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1980년대 중후반, 대학신문은 만화비평의 주요한 발표공간이었다.
사진은 『외대학보』 1986년 03월 04일자에 실린 「문화운동 속의 만화의 역할」

당시 『외대학보』는 다른 대학신문들과 마찬가지로 주간 단위로 발행되었고, 「민중시대의 해방된 만화를 위하여」는 3월 4일 개강과 동시에 발행된 신문에 첫 번째 글 “문화운동 속의 만화의 역할”이 실린 이후 5월 6일자 신문에 “만화의 민중적, 민족적 형식은 가능한가”로 마무리될 때까지 두 달 동안 연재되었다. 필자로서는 최열, 최민화, 곽대원 등 1980년대 만화비평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이들이 참여하였다. 발표된 글을 날짜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날짜

필자

제목

1986. 03. 04

최민화

문화운동 속의 만화의 역할

1986. 03. 11

곽대원

만화 매체의 독자성과 보편성

1986. 03. 18

최열

80년대 만화운동의 성과

1986. 03. 25

최열

제 3세계 민족 만화운동

1986. 04. 01

최민화

새로운 만화의 제작문제: 만화작법소론(1)

1986. 04. 08

최민화

새로운 만화의 제작문제: 만화작법소론(2)

1986. 05. 06

대담: 곽대원, 문영태, 장진영, 최열

만화의 민중적, 민족적 형식은 가능한가



만화전문지 속에 자리 잡은 만화비평

우리 만화에 있어서 1980년대가 1970년대와 구별되는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만화전문지’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 만화산업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인데, 그것은 모두 만화 전문잡지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교양잡지 형식을 띠었던 그 이전의 만화관련 잡지와는 달리 전체 지면을 만화로 채운 <보물섬> 이후 <만화광장>과 <주간만화>가 창간했고, 뒤이어 <매주만화> <아이큐 점프> 등 만화전문지가 줄지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독자 연령층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신문이나 대본소를 통해서만 만화를 접하던 성인들이 만화잡지의 주 소비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성인 독자층이 견고해진 것은 만화의 소비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만화를 통한 세상보기’, 요컨대 만화비평이 자리 잡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1985년에 첫 선을 보인 <만화광장>은 만화를 ‘어른들의 문화’로 성큼 다가서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잡지다. 물론 <만화광장> 이전에도 만화를 즐기는 어른들은 존재했다. 스포츠신문을 통해 매일매일 만화와 마주할 수 있었고, 대본소를 통해 만화를 여가생활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만화가 ‘어른들을 위한 문화’가 되기엔 부족했다. 성인들을 위한 광장(廣場)’으로 나서기엔 아직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던 것이 만화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만화광장>의 출현은 이러한 닫힌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만화를 보다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희재, 박흥용 등의 작가들이 성인만화를 발표하면서 ‘소일거리의 웃음이 아닌 은유와 메시지가 담기는 철학’적인 만화, 그야말로 ‘어른을 위한 만화’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작품의 변화는 만화가 어른들을 위한 문화로서 자리 잡게 만드는 동시에 만화비평도 만화전문지의 주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덕분에 <만화광장> 이후의 만화전문지들, 요컨대 <주간만화> <매주만화> <시사만화> <만화시대> 등에서는 영화, 출판 등 문화산업 관련 기사는 물론 만화관련 비평이나 기사를 위한 지면이 필수적으로 마련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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