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4 11:14

관객은 냉정하다. 재밌어야 산다!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⑥] 정병길 감독

정병길 감독

▲ 정병길 감독

올해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 받은 작품을 꼽으라면 정병길 감독의 <우린 액션배우다>를 선택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 실적으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우린 액션배우다>는 독립영화계에 분명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 속 늘어난 트레이닝복 차림의 정병길 감독을 상상하며 나간 인터뷰 장소에는 생각지도 않게 트렌디한 모습의 감독이 서 있었다. ‘웃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믿는 정 감독과의 유쾌한 인터뷰를 통해 정병길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현재 충무로에서 새 영화 크랭크인을 기다리고 있는 정 감독은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구분 않고 계속 영화 작업을 할 생각. 양쪽을 아우르며 작품 활동을 하는 감독이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정 감독의 말은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게 한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글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한독협을 안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아, 내가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 처음 한독협 사람들을 만나 알게 됐고, 10주년 기념식에도 참가해 같이 술도 마셨다. 그래도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대단한 거 같다.(웃음)

액션배우, 관객을 만나다

그럼 먼저 <우린 액션배우다> 얘기 먼저 하자. 개봉하고 기분이 어땠나.

시원했다. 시간이 없어서 개봉 날짜 맞추려고 마지막까지 고생했다. 개봉하고 모든 GV에 참석하긴 했지만 극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진석이는 매일 극장가서 영화는 안보고 관객 얼마나 왔나 숫자 세고 왔다는데.(웃음) 근데 나는 영화 개봉하고 나서 인터뷰도 많고 일도 많아서 정신없었다.

언제부터 개봉 준비했나.

글쎄, 개봉 못할 확률이 컸었다. 배우들도 ‘그거 개봉할 수 있겠냐?’고 했다. 영화 찍을 때도 그냥 ‘얘가 또 뭐 하나보다’ 뭐 이런 반응이었다. 근데 전주국제영화제 CGV 장편영화 개봉지원작에 선정돼 개봉하니까 정말 신기해했다. 이지연, 이용희 프로듀서가 많이 도와줬다. 그분들 없었으면 개봉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린 액션배우다>(2008)

감독으로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니 어떤 느낌이었나?

음, 광화문 씨네큐브가 CGV보다 관객 반응이 더 좋았다. 아무래도 씨네큐브는 이런 작은 영화를 좀 찾아서 오는 관객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CGV는 일반 관객이 더 많고.

씨네큐브 관객과 CGV 관객에 어떤 차이가 있었나?

씨네큐브 관객들이 더 예뻤다.(웃음) 개봉 첫 날 씨네큐브에서 GV할 때 20년 동안 연극배우 하셨다는 분이 있었는데 ‘영화 속 배우들이 힘들지만 계속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많이 반성했다’며 펑펑 울었다. 연극을 그만 둘까 고민하던 분이었다. 고맙기도 했는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그냥 서 있었는데 맹수진 누나(영화평론가)가 수습해줬다.(웃음)

<우린 액션배우다>가 1만 명 좀 넘게 들지 않았나. 독립영화계에서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아서 아쉬울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십만 명 넘을 걸로 기대했었다.(웃음)

만이천 명 정도 들었다. 나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더 아쉬워하는 것 같다. 첫 주 스타트가 좋았는데 중간에 교차 상영을 하고, 추석에 블록버스터가 쏟아져서 흥행이 주춤했다. 평일 첫 회, 마지막 회 상영을 하는데 누가 보러 올 수 있겠는가. 보려야 볼 수 없는 거지. 차라리 비수기에 좀 더 오래 틀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생각보다 담담한 것 같다.(웃음)

아, 자다 일어난 지 얼마 안돼서 그런 거다.(웃음)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저녁 6신데...(웃음) 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우린 액션배우다>에도 나왔는데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근데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짜증이 나 방황도 하면서 그냥 놀았다. 할 일도 없고 해서 무작정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 보는 동안은 걱정을 잊을 수 있으니까 쉬지 않고 봤다. 영화보다 지쳐서 자고 일어나면 또 보고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했다.(웃음)

그때 지금의 ‘정병길 감독’의 모습을 상상했었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도 감히 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처음에는 스탭으로 일을 하려고 했다. 미술을 했으니까 콘티 작업을 하면서 미술감독의 꿈을 가졌다. 그래서 충무로에 이력서를 냈는데 군대도 안 갔다 오고, 운전도 못한다고 해서 안됐다. 그런데 군대 다녀오니까 나이가 많다고 퇴짜 맞았다. 그 때는 운전면허도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만들자 해서 무작정 만들었다.

그때 만든 작품이 뭔가.

액션스쿨에 있을 때 <칼날 위에 서다>는 극영화를 만들었다. 원래 액션스쿨에는 배우가 되려고 들어갔다. 그때 극단에서 연기도 하고 있었고. <칼날 위에 서다>를 만들고 나서 연출에 마음이 생겼다. 군대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이 보초를 선 후임병에게 ‘나 사회 나가서 뭐하면 좋을까’ 물었더니, ‘배우는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더라. 왜냐고 물었더니, ‘정 병장님이 배우하면 극장에 온 연인들이 나가면서 욕할 거’라는 거다. 여자 관객이 ‘남자 배우가 정이 안 가’라고 할 거라고.(웃음)

용감하면서도 속 깊은 충고다.(웃음) 연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다. 내가 하는 게 ‘무조건 맞다’고 밀고 나갔으니까. 딱히 조언을 구할 곳도 없었다.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가난해서 죄송합니다>는 단편영화다. 이건 충무로 스텝들과 함께 만든 극영화다. 영화제에서 상은 탔지만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충무로 스탭들을 믿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많이 따라가서 충무로 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시간이 워낙에 없었기도 했다. 영화를 연출하는 게 아니라 거의 드라마 찍듯 만들었다. 

그 다음에 찍은 다큐멘터리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이하 <락큰롤>)가 2006년 서독제 관객상을 받았다.

원래 극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찍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왜 나한테 찍으라고 하냐. 난 다큐멘터리 찍는 사람도 아닌데’라고 했더니, ‘넌 돈 안줘도 될 것 같다’고 답하더라.(웃음) 그래서 돈 안 받고 하고 싶은 대로 찍었다. 이 작품으로 서독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한독협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게 됐다. 그 전에 <칼날 위에 서다>도 출품했었는데 떨어졌다.

극영화랑 달랐을 텐데 촬영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우선 시간이 없었다. 일본 유명 록 밴드 기타울프를 4박 5일간 따라 다니며 찍었는데, 그 후에 일본으로 휙 돌아가니까. 철저하게 계산을 해서 재밌게 만들려고 했다.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실제 따라다니면서 보았던 모습들과 픽션을 연결시켜서 만들었다. 편집 기간은 한 1주일 걸렸다.

4박 5일 촬영에, 1주일 편집에 그런 작품이 나온 게 신기하다. 혹시 편집 잘한다는 말 듣지 않나?(웃음)

가끔 듣는다.(웃음) 처음엔 안 될 것 같은 것도 머리 속으로 구상을 하고 여러 번 시도하면 아귀가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집에 가면 벽에 하나의 아이디어 붙여 놓고 계속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붙여서 말도 안 되는 거 같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다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항상 영화 보는 사람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가 지루한 영화를 못 본다. 그리고 관객은 더 냉정하다.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2006)

즐겁다, 고로 영화를 만든다.

평소 어떤 영화를 즐겨보나.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킹콩> 같이 뭔가 쉬지 않고 나오면서도 메시지도 있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도 그런 느낌으로 찍으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하면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있다. 인물을 세워놓고, 고정된 프레임으로 찍으니까 그런 것이다. 난 같은 얘길 해도 컷을 많이 나눠서 편집하면서 재밌게 만들고 싶었다. 

같은 다큐멘터리지만 <락큰롤>과 <우린 액션배우다>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찍을 때 마음가짐이 달랐다. <락큰롤>은 하고 싶은 대로 찍었다. 욕먹어도 괜찮으니까 즉흥적이라도 재밌게만 찍자는 마음이었다. 그에 반해 <우린 액션배우다>는 철저하게 계산하고 만들었다. 제작 기간도 <우린 액션배우다>는 1년 6개월이 걸렸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스턴트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었다. 기존에 스턴트맨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그들을 불쌍하게 그리는데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밝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반 사람들은 다치면서 돈 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몸값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일 하는 프로들이다. 액션배우라는 꿈을 안고 상경한 20대의 성장 드라마를 찍고 싶었다.

근데 그 형식이 왜 다큐멘터리인가. 극영화로 찍을 수도 있었지 않나.

일단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생각한 드라마의 가장 알맞은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꿈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면서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어디가도 돈이 필요하니까 꿈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하게 찍고 싶지 않았다. 웃음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좋아하는 <터미네이터>가 그랬던 거처럼.(웃음)

<우린 액션배우다>에서 자동차 사고 장면에서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고 굉장히 놀랐다. 관객들 사이에서 이 장면이 많이 얘기되기도 했다.

나도 놀랐다(웃음) 알고 있었는데도, 진짜 다쳤나 싶어 깜짝 놀라서 카메라를 껐다. 처음에 스턴트맨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 안 좋았다. 예전에도 스턴트맨 다큐멘터리가 있었고, 뻔하다는 반응이었다. 스턴트맨들 막 다치고, 불쌍하게 그리면서 감동을 끌어 붙이는 휴머니즘, 난 그게 싫었다. 그래서 논픽션에 픽션도 섞어서 그들의 직업을 자연스레 설명하고 싶었다.

어떻게?

자동차 사고가 나고 나서 차에 치인 배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또 운전을 하던 배우도 ‘전에도 이거 했었는데, 안 다쳤어요’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깜짝 놀라고,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스턴트맨들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게 이들의 일이니까. 이들은 차에 부딪혀서 아프고, 괴로운 ‘찌질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과 꿈을 이루는 이들이다.

난 왜 이렇게 영화를 안 본 거야!

감독의 그런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거 같다.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액션배우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화제를 바꿔서, 한독협은 언제 처음 알게 됐나.

군대 가기 전이니까, 2000년도쯤이다. 그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영화인들을 알게 됐고, 가끔 술자리나 이런데 가서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럼 ‘한독협이라는 곳이 있는데, 자기는 거기 회원이고, 미디어 센터에서 장비를 싸게 빌려준다’는 얘기들을 했다. 그렇게 한독협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독협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아, 나도 여기 회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원이 되는 게 어려운 건 줄 알았다. 작품도 몇 개 만들고 상도 받아야 하는 줄 알았다.(웃음) 그러다 2006년 서독제에 <락큰롤>로 상 받았는데 회원 가입하라고 해서 가입했다.

회원이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

달라진 점이라기보다는 좀 신기했다. 가입하고 나서 극영화 분과 사람들과 회의도 하고 영화에 대해 같이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혼자 영화 만들었으니까 그런 게 없었다. 또 인디포럼 상임작가 하면서 독립영화인들과 자주 만나게 되니까 친해지고, 워크숍 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뭘 가르치기도 했다. 근데 초반에 열심히 나가다가 이제는 영화 작업이 바빠서 많이 못 나간다. 아, 근데 다큐멘터리 분과 회의는 한 번도 안 들어갔다.

"잘 만든 오락영화 하고 싶다. 얼마 전 <다크나이트>를 봤는데 소름끼쳤다. 재밌지 않나.
 메시지가 약한 것도 아니고"


한독협 사람들 만나면 주로 어떤 얘기를 하나.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너 뭐하냐” 그러면, “저 시나리오 써요” 이 얘기만.(웃음)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시야가 넓어졌다거나 배운 것이 있다면.

한독협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가 영화에 대해 참 모르는 게 많구나,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데 어떻게 영화를 만들지’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내가 영화를 많이 본 줄 알았는데 말 하다 보면 모르는 영화도 많다. 그런 갈증이 생기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이 넓어지는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하기 좋은 기본 조건을 갖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하면서 미장센에 대한 안목을 갖추고, 편집은 감으로 잘 하고(웃음)

그림을 했던 게 영화 작업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그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안했을 것 같다. 그림을 했기 때문에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한 번 해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런 자신감. 편집은 혼자 책보고 공부했다. 워낙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책보고 프로그램 배우는데 되게 오래 걸렸다.(웃음) 내 친구는 옆에서 책 한 번 보고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아냐’면서 바로 했다. 사실 내가 공부를 정말 못했다. 시험지를 보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생긴 게 중학교 때였으니까.(웃음)

중요한건 기술적인 것보다 오히려 감인 것 같다.

그건 맞는 것 같다. 스타 크래프트도 배우는 건 쉽지만 잘하는 게 어렵지 않나.(웃음) 그런 개념인 것 같다. 프로그램을 익히면 편집은 되게 단순한 거다.

정 감독, 충무로 입성 준비 완료!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있다고 들었다.

<청년폭도맹진가>란 영화다. <우린 액션배우다> 찍다가 제작비가 떨어져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상금 1천 5백만 원이 걸린 시나리오 공모전 공고를 보고 쓴 작품이다. 당시 마감이 15일인가 20일 정도 남았었는데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걸 막 썼다. 될 거라는 생각보다 ‘이걸 핑계로 시나리오 완성하자’는 생각에 쓰게 됐다. 당선이 되면 좋고, 안 돼도 시나리오 하나 완성한 거니까.(웃음)

공모전에 당선된 건가.

아는 영화사 대표님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사업지원 공모에 이 시나리오를 내겠다고 해서 ‘내세요. 근데 안될거에요’라고 했는데 영진위 공모와 공모전 둘 다 됐다. 그래서 영진위가 4억, 공모전 쪽에서는 상금이랑 지원금까지 4억 4천 5백만 원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근데 공모전 쪽에서는 영화화 될지 안 될지는 모르고 일단 시나리오는 팔리는 거라고 해서 그걸 포기하고 영진위를 택했다. 나는 연출을 하고 싶으니까 당연히 돈 몇 천만 원 때문에 시나리오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나리오 작업 하는 분들에게는 분개할 얘기다.(웃음)

이 시나리오는 충무로 영화 입봉할 생각으로 생각해 뒀던 거다. 단숨에 쓰긴 했지만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거다. 시나리오 자체가 상업적 코드가 있고, 많은 예산이 들지 않으면서도 시나리오에 힘이 있다. 그래서 하석진, 이문식, 이정진, 이영훈 등 좋은 배우들이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 게 잘 맞아 떨어진 거다. 

대략적인 영화 내용을 듣고 싶다.

고등학교 때 잘나가던 양아치들이 서른이 되어서는 양아치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할 일 없이 백수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그 사건이 생각지도 못한 일로 연결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웃다가 보고나면 약간 무섭다는 생각도 드는 그런 영화다. 곧 크랭크인 한다.

주변에서 다큐멘터리에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나. <우린 액션배우다>는 올해 가장 주목받은 다큐멘터리 중 하나다. 인정받는 장기를 제쳐두고, 극영화에 뛰어든 이유는 뭔가.

잘 만든 오락영화 하고 싶다. 얼마 전 <다크나이트>를 봤는데 소름끼쳤다. 재밌지 않나. 메시지가 약한 것도 아니고. 그걸 다큐멘터리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에일리언>도 오락영화지만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오락영화를 찍고 싶었다. ‘터미네이터’ 같은 게 실제로 있으면 다큐멘터리로 찍는 게 더 좋겠지만.(웃음)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에 다큐멘터리는 한계가 있다.

충무로 입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영화 작업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침묵) 글쎄.(웃음) 가장 애정이 가는 영화는 <칼날 위에 서다>이다. 가장 못 만들었지만 그냥 좋다. 사실 시간이 지나서 내 영화를 다시 보면 화가 많이 난다. 이런 걸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나 싶다. 얼마 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린 액션배우다>를 상영했는데, 내 영화인데도 지루했다.(웃음) 내 영화를 싫어한다거나 후회한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창피해서 다시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작게 할 영화가 있고, 큰 사이즈로 할 영화가 있다. 상업영화하다가도 독립영화를 해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영화 작업을 계속 할 거다"


영화 만들 때 언제가 제일 좋은가.

현장이 제일 좋다. 현장이 힘들 때는 빨리 편집하고 싶고, 편집하고 있을 때는 다시 현장으로 가고 싶다.(웃음)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있지만, 싸워도 현장에서 싸우는 게 좋다.

독립영화, 생각대로 인디펜던트!

지금 충무로로 간다. 다시 독립영화를 만들 생각인가.

둘 다 할 생각이다. 작게 할 영화가 있고, 큰 사이즈로 할 영화가 있다. 상업영화하다가도 독립영화를 해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영화 작업을 계속 할 거다. 지금도 촬영을 마친 단편영화가 한 편 있다. <청년폭도맹진가> 끝나면 편집해서 완성할 예정이다.

한독협이나 독립영화인들을 어떻게 보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독립영화는 연출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난 독립영화인이란 인식은 없는 거 같다. 한독협과 인연을 맺은 것도 3,4년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기 방식대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엔 공감한다.

한독협에 바라는 점은.

자주 그리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독협 10주년 체육대회랑 야유회가 있었는데 비와 와서 취소됐다. 체육대회 하면 족구도 하고, 계주 선수로 나가려고 했는데.(웃음)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지금처럼 잘 했으면 좋겠다. 나도 한독협이 있어서 영화를 만드는데 많은 힘이 됐던 건 사실이다. 특히 고마웠던 건 <락큰롤>이라는 영화가 한독협이 없었으면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도 없었을 거다. 한독협에서 대안 상영을 많이 해서, 비록 단편영화지만 많은 지역을 돌면서 관객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큰 도움은 안됐지만 나한테는 값진 시간들이었다.(웃음)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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