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7 18:47

“변화 수용하는 젊은집단으로 계속 가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⑤] 김종관 감독

‘독립영화계의 꽃미남'이라는 말에 수줍게 웃던 김종관 감독과의 소탈한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 ‘독립영화계의 꽃미남'이라는 말에 수줍게 웃던 김종관 감독과의 소탈한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한국독립영화협회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다섯 번째 인터뷰는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감성지기’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젊은 감독과 함께 했다. 바로 김종관 감독이다. ‘독립영화계의 꽃미남이라는 별명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수줍게 웃던 김종관 감독과의 소탈한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오는 12월 4일부터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하는 김종관 감독 단편콜렉션 <연인들>을 보기 전에, 인터뷰를 보고 극장을 찾는다면 감독과 좀 더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10년 전에 내가 뭐했더라. 1998년이니까 그때 제대했다.(웃음) 동숭아트센터에서 단편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걸 보던 기억이 난다. 영화제에 가면 앞에서 젊은 영각이 아저씨가 사회 보는 걸 관객으로 보고는 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독립영화 작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인연을 맺어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이 되게 신기하다. 처음에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한독협이 뭘 하는 단체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독립영화를 꾸준히 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단체니까 지금은 도움도 받고, 그 사람들과 친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 산만한가?(웃음)

한독협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특별히 인연이라기보다는 내가 단편영화 작업을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자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화제에 영화를 내도 잘 안 되고, 틀어주지도 않아서 그래서 이 이상한 단체가 좀 싫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 영화 틀어주니까 다시 좋은 단체로 보였다.(웃음) 난 사람들과 섞여서 작업을 하거나 집단의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한테도 한독협이 의지가 될 때가 있었다. 정회원으로 계속 안 들어가다가 최근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활동은 전혀 안하지만. 나 같이 집단의식이 없는 사람도 미워하지 않는 좋은 단체다.

회원 가입은 언제 했나.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 <낙원>으로 상을 받았다. 그때 회비가 생겨서 한 번에 몰아내고 가입했다.(웃음) 내가 단편작업을 주로 하기 시작한 게 2002년도인데 한 4년 정도 더 있다가 가입한 거다.

상 받았을 때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가입 협박을 한 거 아닌가.(웃음)

기억이 안 난다.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한 번 어딘가에 소속되면 집단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니까 그런 게 좀 두려웠는데 알다 보니 괴롭힐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더라. 그래서 가입했다.(웃음) 그래도 한독협이 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 항상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고 내가 독립영화인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그런데 같이 모여서 하는 활동을 잘 못하니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너무 길었던 ‘토요명화’ 광고

독립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딱히 독립영화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다. 막연하게 영화 보는 걸 즐기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는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없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화 만드는 것에 관심 갖기 시작하면서 단편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영화제에 출품하고 만들어가면서 독립영화, 내가 하는 작업들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직접 해보니까 어떻던가.

이게 작은 작업이라 처음에는 큰 작업을 하기 위해 내가 연습하는 과정의 영화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들다 보니 장점을 알게 되었다. 항상 내가 고민하는 걸 바로바로 풀 수 있고 한국영화계가 불황이라고 해도 단편은 내 돈으로 찍으면 되기 때문에 그런 게 없었다. 예산이나 이런 부분에서도 맘만 먹으면 자유롭기도 하고 항상 솔직하게 바로 얘기할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그런 게 독립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영화학교를 다녔나.

1995년도에 필름인이라는 단체에서 한 달 동안 영화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게 너무 재밌어서 기억이 난다. 다른 일들을 하다가 제대를 하고 청춘의 방황기를 지내면서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예대에 들어갔다. 과정이 짧으니까 졸업하고 현장을 들어가든가 보통은 그러는데 나는 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한 번 했던 게 너무 재밌었다.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토요명화’ 기다리다가 시작하기 전 긴
광고 때문에 잠 들어버리면 아침에 분해하고 그랬다."

관객으로는 어떤 영화를 좋아했나.

취향은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보고 즐기던 영화들은 많으니까. 아무리 어려운 영화를 만드시는 분들도 처음에 쉽고 재밌는 영화를 보고 영화에 빠질 수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우뢰매>를 보고 영화를 만드는 꿈을 꾸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나도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토요명화’ 기다리다가 시작하기 전 긴 광고 때문에 잠 들어버리면 아침에 분해하고 그랬다.(웃음)

그렇다. 그 세대엔 그런 기억 하나씩 있다.(웃음)

그렇게 보고 즐기는 영화 중에, 나를 좀 벗어나게 해 주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했다. <천장지구>보면 유덕화가 멋있고, 유덕화의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열혈남아>를 봤는데 또 너무 멋있고, 그전에 보지 못했던 비장한 감정들을 느끼면 그 감독의 다른 영화 <아비정전>을 보고. 그런 이상한 힘들이 너무 좋았고, 영화들을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 보는 취향이 점점 넓어졌다는 말인가.

어느 순간 내 자신의 히스토리와 영화에 대한 것들이 만나면서 영화에 대해 고민하는 것들, 보는 입장도 서서히 바뀐 것 같다. <수퍼맨>이나 <백 투 더 퓨쳐> 등 최초에 내가 좋아했던 취향은 계속 갖고 있으면서 보는 취향이 점점 넓어진 거다. 극을 만드는 성향은 나만의 히스토리가 있으니까 또 달라지는 것 같다.


불안하다, 하지만 즐거워서 끊을 수 없다!

처음에 연출한 작품은 무엇인가.

학교 다니면서는 실습작품은 많이 만들었다. 졸업한 후에 나에게 의미 있었던 작품은 <운디드>란 3분짜리 영화다. 대학로 건널목을 건너려는 남녀의 이야기다. 무엇이든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환경은 안 되고 그러니까 가장 미니멀하고 간단하게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한 공간 안에서 배우 둘과 카메라만 있으면 찍을 수 있게.

그게 언젠가.

2002년 여름에 찍었다. 학교 다니면서 찍었던 작품들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운디드>가 첫 번째 작업이었던 것 같다. 찍는 건 몇 시간 안 걸렸는데 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콘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몇 컷 안 되는 영화인데도 계속 바꿔서 그리고, 영화 찍기 전 한 달을 영화에 대한 것만 생각했다. 그건 열정인 것 같다.

콘티를 수정하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것은 무엇인가.

정적인 무드를 여러 개의 작은 컷으로 나누어 느낌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그들이 어떻게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되나 생각을 계속 했다.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이들의 옆모습, 뒷모습, 앞모습, 배치와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했다. 계속 시뮬레이션 한 것이 초반에 영화 작업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됐다.

꾸준히 작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힘들었던 일들이 있나.

작업을 하는 것은 항상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또 작업을 하기 위해, 꿈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가는 건 또 제일 힘들었던 일인 것 같다. 감정적으로는 큰 등고선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하는 것 같다. 워낙에 불안한 직업이니까. 즐거워서 끊지 못하는 거지만.

독립영화인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초반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화를 했던 게 힘들었다. 그렇게 영화 작업을 하려다 보니 계속 소규모로 했는데 그만큼 자주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소규모라도 예산은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벌면 거기에 돈이 계속 나갔다.

돈이 들어오지는 않던가.(웃음)

계속 하다 보니까 영화 비슷한 일로 돈도 좀 되는 것 같다.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밥 먹고, 술 먹고 그렇게 오늘은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거다. 그런 면에서는 당장에 경제적으로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좀 두려움이 있다. 수중에 돈이 없고 돈이 내일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모르니까.(웃음)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나.

다양한 걸 많이 했다. 웨딩 비디오 찍는 일도 했는데 웨딩 촬영 하려고 산 카메라로 처음 영화를 찍었다. 영화 관련된 것은 홍보 영상, 인터뷰 하러 다니고, 교회 촬영도 많이 했다. 그 밖에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알바도 많이 했다.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하는 즐거움에 작업을 계속 하는 건가.

요즘 같은 시대는 돈을 벌려고 노력해도 기본적으로 못 버는 시대다.(웃음) 신기한 게 이렇게 진짜 돈 안 되는 영화이긴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이 들어오는 때도 있고, 단편도 배급을 잘 하면 풍족하진 않지만 당장에 살 수는 있다. 내 주위에도 현실적으로 뭘 한다고 하더라도 요새 내일이 보장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힘든 거나 안하고서 힘든 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거 같다.(웃음)

놀라운 발상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인데.(웃음)

요즘엔 영화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가 발끝만 보고 사는 것 같다. 멀리 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안 넘어지려면 그것도 중요하긴 하다. 길이 험한데 먼데만 보고 갈 수는 없는 거니까.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감성지기

작품들을 보면 이미지가 강렬하다. 감독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질문이 막연한가?(웃음)

막연하니까 막연하게 답을 하겠다.(웃음) 나한테 이미지가 매력적인 것은 감정,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의 작용이라는 것은 멋지다. 어떻게든 카메라 안에 담기면 의도를 지닌다. 감정적으로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2004)

많은 대사, 다양한 인간관계, 화려한 영화적 장치 등을 통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나는 실험영화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러티브적인 것에 집중하는 편이다. 근데 여태까지 만든 것들이 러닝타임이 워낙 짧으니까 그런 식으로 내러티브를 만든 거다. 나는 이미지 위에 내러티브가 있고 내러티브 위에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선순위에서 감정적인 것이 표현되면 제일 좋은 거다.

구체적으로 <폴라로이드 작동법> 같은 경우 어떤 고민을 많이 했나.

사람이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좋아하면 할 수 있는 어떤 나사 빠진 행동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나중에 보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지 않나.  사람을 좋아하면 간절하게 원하게 되고 너무 간절히 원하면 얻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왜냐면 너무 바보 같아서 감정이나 행동이 제어가 잘 안되고 제대로 마음을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나사 풀린 풋풋함이라.(웃음)

나중에 생각하면 ‘아, 쪽팔려’ 하는 그런 감정들 말이다. 그런데 먼 궤적에서 보면 그것들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그렇게 창피했고 되돌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을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다. 또 그것들이 예쁜 거라는 걸 사람들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했던 게 부끄럽지 않고 순수하고 예뻤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감독으로서 변화하는 지점이 있나.

그렇다. 변하지 않는 관심사도 있는 반면 계속 변하는 것도 있다. 단편 작업 같은 경우 액션을 찍다가 바로 멜로를 찍는 게 아니라 한 작업을 끝내면 거기서 피드백을 받게 된다. 나는 영화 작업 하는 것이 답을 내리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질문을 하면 그 다음 질문이 생긴다.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가기 때문에 같은 주제를 가지면서도 내적으로 뭔가 다른 지점들이 생긴다.

관객들과 교감을 통해 감독이 성장한다는 말인 거 같다. 또 다른 변화는.

난 살고 있다. 때문에 신문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버스,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닌다. 또 친구들과 싸우고, 연애하고 이별한다. 그런 삶 속에서 생기는 고민이나 변화가 영화에 적용되기도 한다. 또 영화보고 소설 보면서 생기는 새로운 문화적인 취향들이 덧대지기도 하고. 다들 그렇지 않은가. 단편 작업이 좋은 게 어떤 부분 사람을 크게 해 주는 것 같다. 그 사람의 솔직한 현재의 이야기들을 계속 담아낼 수 있으니까.


충돌과 변화의 포용은 성장의 밑거름

한독협과 함께 일을 진행한 경험이 있나.

일단 한독협의 많은 도움을 받고 산다.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가지는. 나 같은 사람을 포용해 줄 수 있는 게 한독협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웃음) 제일 중요한 건 내 작업이 한독협의 많은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장비나 이런 부분들도 그렇고 한독협 안의 네트워크에서 생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일단 상영공간도 확보해야 하고 거기에 내가 작가로서 참여하게 되니까-한독협과 작가로서 만나 일을 하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더 이상 긴밀한 관계일 수 없는 것 같다.

같이 작업하면서 한독협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나.

그렇다. 영화 작업하기 전에는 ‘이런 작은 영화를 틀어주는 공간이 있구나’ 하면서 이질적이고 잘은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단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을 때는 두렵고 미운 것도 있었다. 내 작품을 안받아주니까 배타적인 곳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의미심장한 말이다.(웃음)

뭐든 집단화 되면 배타성이 생긴다. 나중에 알고 나서는 좋은 취지를 갖고 일 하는 좋은 사람들이고 배타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생기고 거기서 약간의 배타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또 그것들을 허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해하면서 좀 더 믿게 되었다. 스스로가 내부에서 변화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는 집단이라는 게 의미 있는 거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독협이 변화하는 양상이 있었나.

그런 걸 물으면 내가 미안해진다. 최근에는 만난 적이 별로 없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만나면 근황을 묻고는 하지만 회의에 깊숙이 참가한 적은 없다. 정회원 회의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부적인 변화는 모르겠고, 서독제 가면 항상 새로운 경향, 새로운 영화들이 나오는데 그게 뭔가 내부적으로 바뀌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한독협이 갖고 있는 고민과 같은 고민을 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지점에서 고민을 하고 그것들이 내부적으로 소화가 되면 내부적으로 고민하는 것 이상이 되지 않을까.

기존에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는 것 같다. 그들이 계속 서로 부딪히고 새로운 영화들을 받아줄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지키려는 고집도 있겠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들 중 바꾸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충돌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집단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근데 이런 말을 내가 하는 게 너무 우습다.(웃음)

"지금까지 해 온 것도 굉장히 좋았다. 앞으로도 변화를 수용할 줄 아는 젊은 집단으로 계
속 갔으면 좋겠다."


이번에 인디스페이스에서 특별전을 한다고 알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이 나왔나.

얼마 안 남았는데 마침 잘됐다.(웃음) 12월 4일에 개봉해, 3주정도 상영할 예정이다. 내가 찍었던 작품 중에 11작품이 상영된다. 특별전 제목은 <연인들>이다. 대부분 남녀의 이야기이다. 연인이 아닌 관계도 있지만 내가 작업했던 것들이 그런 영화들이 많다. 그것들을 한데 모아서 보면 그 안에 좀 다양한 감정들이 있을 거다. 한 사람의 단편 영화들을 모아서 개봉하는 것이 이례적인 것이라고 들었다. 많은 욕심을 낼 수는 없지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작품들이 상영되나, 짧은 소개 부탁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운디드>, <낙원> 같이 공개된 것들도 있고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도 있다. 올해 새로 찍은 세 작품이 있고. 또 그전에 만들었는데 한 해에 너무 많이 만들어서 영화제에 내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 새로운 영화들도 같이 넣어서 흥행 전략을 짜고 있다.(웃음)

새로운 영화들은 어떤 것들인가.

<올 가을의 트렌드>는 간단하고 가벼운 내용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에 대한 애착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재밌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메모리즈>, <헤이 톰> 등 세 작품이 신작이다. 

차기작 계획은 있나.

인천시에서 지원받아 하는 단편 작업이 있다. 옴니버스로 3명의 감독과 같이 하는 HD 단편 영화를 올 겨울에 찍을 계획이다. 아직 제목은 없고 인천을 소재로 찍을 예정이다. 또 현재 시나리오 작업하는 장편 영화가 있다.

장편영화 연출에 대한 소식이 있어 기다리는 관객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스케줄이 밀려 관객도 아쉬움이 남고, 본인도 많이 섭섭했겠다.

그렇기도 한데 아직은 젊고, 시작한지 몇 년 안됐기 때문에 괜찮다. 초반에는 준비가 안됐을 때도 있었고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이 있을 때도 있었다. 당시에 빨리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많이 준비해서 좋은 영화를 찍으려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편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바로 할 수 있다면 장편은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많다. 그리고 큰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고 그렇다 보니 원하는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하려면 누구나 힘든 것 같다.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너무 많다. 매일 고민하면서 산다. 당장은 내가 쓴 시나리오에 대한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또 아까 말한 내일에 대한 불안함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말하려면 끝도 없다.(웃음)

솔직한 대답 감사하다. 독립영화계에 대한 고민도 덧붙이자면.(웃음)

일단 다양한 상영공간이 확보되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볼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나라가 지원이 없는 나라는 아니지만 영화작업을 하려는 사람에 비해서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또 기본적인 인건비를 마련할 수 있는 여건도 잘 마련되지 못했다. 그런 지원제도도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한독협에 바라는 점은.

일단 회원으로서 참여를 잘 못해서 미안하고, 앞으로 한독협에 회비를 잘 내고, 잘해볼 용의가 있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웃음) 지금까지 해 온 것도 굉장히 좋았다. 앞으로도 변화를 수용할 줄 아는 젊은 집단으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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