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08.12.11 강요된 디자인 붐을 다시 본다
  2. 2008.12.10 “약속 지키셨네요, 장관님” (2)
  3. 2008.12.04 체코 리를 내려올 때 보았네, 그 꽃
  4. 2008.12.01 예술인복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5. 2008.11.30 무한반복의 지옥에서, 비극적으로
  6. 2008.11.11 [공간수다]도로위에 눕다 - 왕십리뉴타운 세입자의 절규 (1)
  7. 2008.11.07 남장 문근영은 왜 비극적인가 - <바람의 화원>의 유사역사성과 역사성 (2)
  8. 2008.11.06 디자인올림픽에 유쾌하게 딴지 걸기 - 서울디자인올림픽 평가토론회, ‘삶을 파괴하는 디자인은 폭력이다’
  9. 2008.10.28 지구촌에 띄우는 문화사회 비전 - 충북문화헌장의 정신과 의의
  10. 2008.10.27 [공간수다]현실세계에 뜬 팝업창
2008.12.11 17:39

강요된 디자인 붐을 다시 본다

‘서울디자인올림픽2008’을 통해 본 서울시 디자인문화정책(임정희 _ 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소장)

2008 서울디자인올림픽 행사장 전경. 서울시는 188만명의 시민이 행사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 2008 서울디자인올림픽 행사장 전경. 서울시는 188만명의 시민이 행사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1. 기획되는 디자인 붐,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빠르게 마무리되고, 다시 ‘한강 르네상스’사업이 진행되면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서울을 기점으로 삼아 전국적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분야전문가로부터 비전문시민들을 향해, 관이 주도하여 시민들을 조직하는-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된 서울시 뿐만 아니라 여러 광역도시, 지자체에 ‘디자인(총괄)본부’가 조직되고, 도시디자인의 비전과 실행계획을 쏟아내면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공공의 무대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이 비전과 실행계획들은 허술하기 짝이 없던 이전의 전달방식과 달리 인터넷상에 다양한 비주얼 수사학으로 포장되어 홍보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디자인, 상품디자인 정도로 디자인을 이윤창출을 위한 기술이나 제품과 연결시켜 온 일반 시민들은 비전과 계획에 등장한 ‘공공디자인’, ‘사회디자인’, ‘그린디자인’, ‘도시디자인’ 등의 용어가 낯설기만 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디자인이나 디자이너를 특정 전문영역, 특정 전문가를 일컬어 온 사회적 용례에 비추어 볼 때, 시민들의 참여와 접근을 허용하는 듯한 ‘참여형 또는 체험형 디자인’을 ‘비전문적 디자인’이나 ‘아마추어디자인’으로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공식적으로 추진되는 디자인과 실제 생활현장에서 소통되는 디자인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디자인의 원리를 기반으로 삼아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겠다는 시와 지자체의 의지는 이들의 공식 홈페이지에 폐쇄된 합의 속에서 정리되어 공개되고 있는 정보처럼, 일방적으로 유효성을 획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 원리가 머지않아 낡은 관습들을 돌파하고 즉각적이며 현실적인 활용에 도달할 것임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강력하여, 도시디자인의 비전이나 계획들이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다원적인 탐구와 실험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놓는 대신, 특정 원리를 미리 요구하거나 가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실행사업들의 관료적 처리 절차를 접하고 보면 ‘공공디자인’이나 ‘사회디자인’의 실재가 계획과는 동떨어져 있거나, 개념적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근자에 서울시 주도로 형성되고 있는 디자인 붐은 한편으로는 디자인을 하나의 강력한 사회적 언어로 정착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에 적합한 평균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려는 뚜렷한 흐름을 보여준다. 디자인이 사회적으로 강력하고 지속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관념의 표현이 되는 동시에, 개개인의 정체성과 행동양식에 구체적인 형태로 관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디자인을 극단적으로 일반화하고, 특정한 시대와 특정 지역의 개인과 집단들에게 작용하는 다양한 욕망들과 사고들은 무시한 채 디자인을 시대정신에 근거한 광범위한 문화적 개념으로 환원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단기간에 준비하여 10월 한달간 치루어졌지만 경이로운 관람자수를 기록한 ‘서울디자인올림픽2008’을 살펴보면 이런 우려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디자인은 공기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축제를 표방했던 ‘서울디자인올림픽2008’은 풍요와 욕망에 기초하여 즐거움과 유용성을 제공하는 디자인과 절제와 배려에 기초하여 윤리적 각성을 요구하는 디자인을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결합시키는가 하면, 디자인 자체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신화로 부풀렸다. 그러나 디자인의 다양한 원리들이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은 극히 미미하여 사회적 공공공간으로서의 디자인올림픽의 역할은 매우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었다. 사회문화적 갈등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무관심하게 방기하였기 때문인지 많은 서울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이슈들- 특히 도시개발계획에 영합하거나 저항하는 다양한 논쟁들-이 올림픽에서 제외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심미적 체험은 지나치게 격려되었다.

디자인올림픽 조직위는 명품도시를 향한 즉각적이고 강력한 수사로 제공되는 디자인, 경제난을 구원해 줄 해결안으로 등장한 디자인을 인기종목으로 배치한 반면, 사회적 요구나 공공서비스와 다각도로 관계맺는 디자인은 비인기종목으로 배치함으로써 디자인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시키지 못하였다. 디자인에 대한 다원적인 탐구와 실험이 도외시되는 지점에서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디자인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면

‘문화적 상징들의 다양한 해석과 새로운 창조’를 뜻하는 디자인(designare에서 유래된 design)은 단순히 산업적 수단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디자인된 사물과 이미지, 디자인된 서비스와 활동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을 담아내고 규정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중심적 형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문화를 형성하고 역사적으로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즉 모든 이들의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정치경제적이고 사회문화적이며 생태환경적인 나아가 철학적인 관심사와 이슈들과 더불어서야 디자인은 우리 바깥에 놓여있는 한갓된 대상에서 벗어나 문화현상으로서 우리에게 속하게 되고 역사를 따라 증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결코 전문분야이거나 그 분야의 실무적 내용만으로 이루어지는 한정된 범위를 지칭할 수 없다. 또한 동시대 문화의 디자인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실무 디자이너나 전문가 집단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외부로서의 특정영역, 그리고 교육이나 다른 우연적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특수성과 결부되곤 하는 디자인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디자인은 기술적이고 상징적인 체계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체계는 하나의 단순 사물이나 주어진 순간에서의 사물의 단순한 사용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사물과 다른 사물, 한 사용자와 다른 사용자, 이 순간과 다른 순간을 기술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결합시키는 방식을 디자인이라 일컫는다. 따라서 기술적 측면만을 떼어 디자인을 기능적으로 정의하거나, 상징적인 측면만을 떼어 공허한 수식으로 정의하는 것은 디자인의 본질을 왜곡, 폄하하는 것이다. 정책적 차원에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광범위한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실무적이고 상업적인 목적에 조급해하며 진행되는 관 주도의 ‘디자인 붐업’이 디자인의 본질을 호도하고 기만하면서 디자인을 개별화하고 디자인의 사회적 단절을 야기시킬 수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3. 디자인의 공공성이란

디자인의 공공성 문제는 문화환경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다양한 각도에서 일깨워 준다. 소비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디자인은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와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소비자들이 사물을 소유하려는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이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것이 자유로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함으로써, 상품문화를 통해 삶의 관계를 가시화하고 신뢰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 이런 사회에서는 디자인이 사람들이 물건을 원하게끔 충동하는 매커니즘쯤으로 이해되고, 도덕적 판단은 오히려 소비자의 무한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주의의 도구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하는 시장 주도의 디자인이나 소비자 주도의 디자인에서는 도덕적 판단,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디자인을 분리, 격리시키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회구성원들도 소비만으로 삶을 영속할 수 없고, 시장을 통해서만 삶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디자인은 비판없는 자유시장체제를 추구하면서 끝없는 성장과 지속적인 소유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대신, 삶을 불만족과 갈망의 연속적인 상태로 상정하는 대신, 인간의 한계능력에 대한 겸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공동의 세계(나와 너, 과거와 미래)에 대한 책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배려하고 절제함으로써 생활의 균형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디자인의 지닌 공공적이고 사회적이며 생태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비공식적인 디자인에 우선하는 공식적인 디자인, 비주류의 소수 디자인들을 제압해 버리는 주류적 다수 디자인, 집합적 디자인으로부터 돌출하는 개별적인 디자인에 시선을 집중하는 사회에서는 디자인의 공공성이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를 생산하기는 어렵다.


4. 다시 ‘서울디자인올림픽’을 떠올리며

서울시가 세계적인 디자인, 문화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 마련한 ‘서울디자인올림픽2008’. 디자인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은 이 올림픽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었다. 품질과 디자인에서 월등히 앞선 선진국 상품에 의해 잠식된 국내 시장을 탈환하고, 나아가 디자인이라는 비가격 경쟁요인을 통해 후진국형 가격 경쟁력(‘싸구려’)을 벗어나서 소비수요의 고급화를 통해 국제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올림픽 행사장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우선, 디자인을 산업적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는 협소한 디자인의 개념적 인식과 정책에 관한 것이고, 두번째로는 디자인 전략이 디자인의 기술적 측면과 디자인 산물 자체의 특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결국 많은 공허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서울디자인올림픽’이 디자인의 본질을 실현하면서 긍정적인 문화를 전달하기 보다는 개별 사물에 집중하여 시장을 확대하고 상품의 고급화를 이루어 이윤을 창출해내고, 이러한 경제적 이윤을 통해 ‘강한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서울디자인올림픽2008’은 디자인의 세계시장에 대한 피상적 정보와 예측은 제공하였을지 몰라도,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를 구체적이고, 과정적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디자인이 문화적 삶의 생성에 관여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보다는 특정 전문영역 내에 갇혀 자족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성공이라는 단기적인 디자인 전략으로는 규모나 힘에 의해 가려지고, 접혀져 보이지 않은 일상의 영역들과,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모습들이 디자인 영역에서 제외되거나 축출되기 쉽상이고, 개별적 신체를 지닌 디자인과 사회적 신체로서의 디자인이 분리되어 다루어질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상품보다 더 지속가능한 문화라는 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 이 기사는 문화연대 문화정책 뉴스레터 '또다른'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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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0 12:19

“약속 지키셨네요, 장관님”

 - [기자의 눈]문화부의 어설픈 '좌파 적출'을 바라보며

유인촌 문화부 장관.(사진 문화체육관광부)
▲ 유인촌 문화부 장관.(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약속 지키셨네요, 장관님. 그렇게 ‘이전 정부의 색깔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몰아내실 거라 호언장담을 하시더니 아홉 달이 지났어도 잊지 않고 결행하셨네요. 맞아요, 원래 그런 분이신 걸 제가 잠시 잊고 있던 것 같아요. 원래 ‘의리파’셨잖아요. '한다면 하는 거'고, ‘인연’을 허투루 보지 않으셨지요. 드라마에서 맺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인데, 더군다나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자리에 계시면서 뱉은 말을 함부로 주워 담을 순 없는 거겠죠. 그때 당시에야 여론이 워낙에 따가웠으니 잠시 물러나는 포즈를 취해봤을 뿐이고. 하긴, 두 걸음 뛰기 위해 반걸음쯤 물러나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요. 원래 멀리 보는 사람들은 그런 거 두려워하지 않잖아요. 그때 김윤수 관장이나 김정헌 위원장과 만나 사진도 찍고 그러셨던데. 사과했다고, 화해했다고 이런 저런 훈훈한 장면들을 많이도 연출하셨던데 혹시, 그것도 '직업적 특성'에서 나오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당시에는 역시 인정할 건 인정할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뭐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약속을 지킬 땐 지키더라도 구실은 좀 제대로 꾸리셨으면 좋을 법 했어요. 작품구입 과정을 물고 늘어지는 거나, 기금운영을 문제 삼는 게 좀 ‘쪼잔’해 보였어요. 김윤수 관장이 해임사유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한 후에 저는 행여라도 문화부에서 재반박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너무 명백한 증거들을 가지고 반박을 하셨거든요. 이를테면 ‘작품구입위원회가 작품구입을 결정하기 전에 작품구입 의사를 밝힌 메일을 판매자에게 보냈다’는 게 해임 사유의 하나가 됐는데, 김윤수 관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구입을 위한 전제조건들을 나열한 메일이었다’고 하더라구요. 문화부가 의도적으로 사실왜곡을 한 셈이지요. 예술위는 더해요. C등급 기관에 투자한 게 문제가 된다고 했는데, 그거 법령이나 규정에 나온 게 아니라 감사 지적사항이었대요. 이후에 조치사항도 아직 내려오지 않은 걸 무슨 범법을 저질러서 기관에 큰 손해를 입힌 것처럼 꾸미셨더라구요. 한 50억쯤 된다고 하던가요. 물론, 큰돈이지요. 근데,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관광기금은 70억 날리셨다면서요. 거기 책임질 준비 되셨어요? 전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주식투자 손실 어쩌구 하는 얘기는 길게 하지 않을래요. 덩치 큰 연기금들이 수 조원씩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죠.

근데 이거, 예술계를 무시하는 처사거든요. 이런 정도로도 너희들 따윈 날려버릴 수 있다, 라고 으름장 놓는 꼴이예요. ‘정권이, 권력이 무섭긴 무섭구나’라고 생각한 사람, 저 뿐만은 아닐걸요? 현대미술관이라고 하면 한국미술계 최고의 기관이잖아요. 관장은 그만큼 상징적인 자리구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안 그런가요? 툭하면 몇몇 보수언론에서 ‘천 억 원이나 되는 자금을 주무르는 문화예술계 노른자 자리’라고 하잖아요. 물론, 돈으로만 예술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천박한 논리인가요. 예술위가 단지 기금만 기계적으로 나눠주는 곳 아니라는 거야 저보다 장관님이 더 잘 아실 테니 생략할게요. 다만 그만큼 중요한 기관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잖아요. 현대미술관 관장도 예술위 위원장도 그리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자리가 아니고, 예술계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진 자리라는 거 아시면서 왜 그러셨어요? 그런 걸 아셨기에 3월달에 이야기하실 때도 두 분 실명 거론하신 거잖아요. 가장 상징적인 자리에 ‘철학을 달리하는 분’들이 앉아계셔서 말이죠.

근데 이거, 예술계에 대한 모독이거든요. 이렇게 모양새 안 나게 기관장들 언제든 내쫒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관치행정이거든요. 예술계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 알만한 거 다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셨는지 퍽 궁금해요.

문화부의 해임사유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윤수 관장과 김정헌 위원장.

어떻게든 자리를 비우긴 해야겠는데, 적당한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구요? 아무리 찾아도 그 정도밖엔 해임사유를 발견하기 힘들었다구요? 결국 그분들을 이렇게 해임한 건 그분들이 해임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증명하신 꼴밖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해임불가를 증명하기 위한 어설픈 해임사유 발굴이랄까요. 참, 그걸 기사라고 써야하는 제 처지는 생각해 보셨어요? 너무 무안해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다른 매체들은 두 분 인터뷰도 하고 그러는데, 저는 정말 무안해서 할 수가 없더라구요. 뭐, 할 말이 있어야죠.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따져 묻고 확인하고 그럴 게 있어야지요.

말씀드리는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부작용’도 좀 생각해 보셨어야죠. 지금 ‘인사청탁 논란’ 일고 있는 거 아시죠? 예술정책과 박모 과장이 김정헌 위원장한테 이력서 두 장 들고 가서 골프장에 취직시켜달라고 떼썼다면서요? 거 참 재밌데요. 출력한 곳이 ‘대통령실’이라고 찍혀있는 이력서도 있었다던데. 그분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서 열심히 뛰었던 분들이라고 하더군요. 박모 과장은 한사코 자신이 ‘인사협의’를 하러 간 거라고 우기던데. 인사권자(뉴서울골프장 인사권자가 예술위 위원장인 건 아시죠?)에게 주무과장이 압력 넣는 걸 요즘엔 그렇게 부르나보죠? 혹시 좀 더 자세한 정황을 아시는 게 있으실까 모르겠네요. 그러게 좀 치밀하게 준비하시지 그러셨어요.

이거 하나만 더 이야기해야 쓰겠네요. 김윤수 관장 해임일이 11월 7일, 김정헌 위원장 해임일이 12월 5일이었어요. 모두 첫째 주 금요일이었더라구요. 우연이라면 기막힌 우연일테지만, 세간에서 ‘금요일의 대학살’이라고 부르는 거 아시나요? 언론은 생생한 고기를 좋아하죠. 금요일에 터진 사건이 일단 한 두 차례 보도되고 나면, 새 주가 시작될 때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싱싱한 먹잇감들로 지면이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뭐, 모르실리 없겠지요. 근데, 그것도 아시나요? 그거 참 구차한 짓이라는 거 말이죠. 그렇게 잘못이 많은 사람들이라면서요. 법에도 상관없이, 남겨진 임기도 아랑곳 않고 해임을 밀어붙일 만한 이들이면 좀 더 떳떳하게 발표할 순 없었을까요. 당당하면 당당하게 발표할 것이지 왜 그리 쥐구멍에 숨듯이 치졸한 방식으로 발표하세요? 원래 뒤가 켕기는 사람들이나 그러는 거 아닌가요?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듯이 사시는 분들께서 왜 그리 소심하게 사시는지 저로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드리는 말씀이예요.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려요.

아무튼, 이렇게나 약속을 잘 지켜주시는 장관님이 계시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만드신다고도 약속하셨죠?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요. 장관님 재직하시는 동안에 대한민국은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 거듭나는 거잖아요. 저 같은 사람들은 괜히 문화정책이니 문화현장이니 살펴보겠다고 설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따로 고생할 필요 없이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잠이나 자면서 장관님 하시는 일이나 지켜볼라구요.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이 좀 맘에 안차셨더라도 너무 맘에 두지 마시고, ‘품격 있는 문화국가’ 꼭 만들어주세요. 꼭이요.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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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iog.daum.net/gangseo BlogIcon 어린왕자 2008.12.10 16:40 address edit & del reply

    다녀갑니다. 당연한 지적입니다. 동감하는 바입니다.

  2. Favicon of https://windlov2.tistory.com BlogIcon 돌이아빠 2008.12.10 18: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진짜 ㅡ.ㅡ 리만촌 정말 에이

    웃기는 세상입니다. 그냥 허허 웃어야 겠습니다. 허허허

2008.12.04 11:06

체코 리를 내려올 때 보았네, 그 꽃

[길 위에서]랑탕 히말라야 가는 길 8

▲ "정상이 어디 있느냐? 네 발 딛고 있는 곳이 백척간두다."

친구 L이 히말라야 트렉킹을 하겠다며 회사를 그만 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렉킹이 아니라 파미르 고원의 콩구르(해발 7,719미터)원정대에 지원했다는 말을 전했을 때, 나는 걱정스러웠어요. L이 사표를 내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말렸고, 나는 오히려 등을 떠밀었더랬죠. 물론 L이 스물부터 간직해 온 꿈을 "나중,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행하라고 말했던 것인데, 퇴사를 하고 나와 느닷없이 생사(生死)가 걸린 원정대에 자원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여하튼 대학시절 산악부원이었던 L이 등반 테스트를 받아 합격을 하자 등반 훈련, 등반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어느새 김포공항에서 중국행 비행기를 탈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지요. 그러던 차 나는 B스님을 모시고 고향 부산에 내려가 바닷가에서 L을 만났어요. 내가 L 걱정을 털어버리지 못하자 곁에 계시던 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정상이 어디 있느냐? 네 발 딛고 있는 곳이 백척간두다. 아무튼 L이 먼 길을 떠난다니 시 한 수를 읊어주마. 네가 이 시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외우게 된 고은의 짤막한 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의 <그 꽃> 전문

랑탕 히말라야의 체코리. 해발 4,500미터. 꽃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요. 빙하로 둘러싸인 설산에 무슨 꽃이란 말인가? 올라가든 내려가든 쳐다봐줄 만한 꽃이 그 곳엔 존재하지 않았어요. 온 산을 뒤덮은 눈과 온 산을 뒤덮은 바위 덩어리 밖에 없는 극지. 그나마 가을까지는 희미하게나마 흔적이 남아있었을 길도 눈에 뒤덮여 전혀 보이지 않았고, 가도 가도 눈밭과 바위덩어리 밖에 없었어요. 편편해 보이는 땅도 눈이 감춰놓은 함정으로 가득한 곳이었지요. 바위와 바위 사이에 눈이 잔뜩 쌓여 그 틈을 분간할 수 없었으니까요. 행여라도 발을 잘못 딛으면 그 틈새로 허리가 빠지거나 다리가 빠지거나 몸의 어느 한군데 뼈가 부러지기 십상인, 길 없는 길.

길 안내를 맡은 겔젠 셀파가 셀파족 특유의 감각과 경험으로 먼저 발을 내딪어 안전한 지점을 확보하며 앞서 가면 그가 지나간 발자국에 도장을 찍듯이 따라가야 하는 위험천만한 산행 길이었어요. 전문 등산가도 아닌 내가, 산이래 봐야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계룡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등 해발 2,000미터 아래, 그것도 대부분 1,000미터 남짓한 산들만 오르내린 내가 변변한 산악장비 하나 없이 스틱 한 쌍만 달랑 의지한 채 이 뭐한 짓이람! 낡은 등산화는 이미 젖어 양말까지 축축해진지 오래고, 장갑 속에서 손가락 끝이 차갑게 얼어가고 있었어요. 오늘 안에 과연 정상을 보고 숙소까지 되돌아 갈 수 있을까? 
 

가도 가도 눈밭과 바위덩어리 밖에 없었어요. 오늘 안에 과연 정상을 보고 숙소까지 되돌아 갈 수 있을까?  

해발 4,800미터를 넘어설 무렵부터 위험 지대를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제 위험을 벗어났지만 체력이 문제구나. 10미터를 올라서고 나면 헉헉 가쁜 숨을 고르고 다시 10미터를 올라서서 헉헉 숨을 고르고, 올라서면 설수록 생체엔진을 돌릴 연료, 산소가 점점 희박해 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왜 그런 걸까요? 헉, 헉, 헉, 헉, 헉, 헉, 헉, 한 걸음을 내딛고 숨을 들이키느라고 안간힘을 쓰는 사이 어떤 희열이 차 올랐어요. 그것은 높은 곳으로 오를 수록 더욱 강해지는 듯 했지요. 나는 그 희열에 휩싸여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어요. 나는 어느 새 트렉커들 중 가장 앞서서 산을 오르게 되었고, 이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설원이 내 앞에 있었어요.
 
그래 숨이 멎을 때 멎더라도 이 희열의 끝까지 가보자. 정상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희박한 산소를 들이키며 근근이 작동하던 생체 엔진이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해발 4,900미터를 넘어선 고지에서 마치 산소탱크라고 불리는 맨체스트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마냥 뛰어갔어요. 감격에 겨울 때면 사람마다 제각각 취하는 행동이 있을 테지요. 혹자는 눈물을 펑펑 쏟을 테고, 혹자는 벅찬 가슴 안고 안으로, 안으로 감격을 끌어안을 테지요. 나는 체코리 정상(해발 4,984미터)을 향해 달려가며 비명을 질렀어요.     
 
- 으아아아아아아아 

아,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지던 극지(極地)의 풍경. 얄라 피크(해발 5,500미터), 킴성(해발 6,745미터) 랑탕 리룽(해발 7,225미터), 모리모토 피크(해발 6,750), 랑시사 리(해발 6,427미터), 우르킨망(해발 6,151미터, 강첸포(해발 6,387미터). 햇살을 은빛으로 튕겨내며 강철처럼 솟아 있는 설산들이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감격에 겨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어군요. 생체엔진이 뚝 멈추고, 달려가던 발 걸음도 멈추고, 비명도 멎어버렸어요. 정지와 적막의 시공간.

정신을 차린 것은 P가 도착한 후였어요. 이야, 정말! P는 벅찬 가슴을 안고 안으로 안으로 감격을 삼키며 서 있었어요. 한심스럽게도 나는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어요. 고산을 오르는데 폐활량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한동안 끊었던 담배. 겔젠 담배 있니? 응. 나는 겔젠 셀파로부터 담배 한 개피를 건네 받아 입에 물었어요.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킬 때마다 히말라야의 환각적인 풍광이 폐 속 깊이 스며드는 느낌이더군요. 뒤 어어 세계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이 도착했어요. 근데 녀석들은 내가 마리화나라도 피우고 있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예요.

- 와우, 마리화나?
- 노, 시가렛!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뒤돌아 보며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어요.
‘내려갈 때 / 보았네 / 올라갈 때 / 보지 못한 / 그 꽃’처럼.

그들도, 우리도 체코리를 둘러싼 랑탕 히말라야의 환각적인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나는 체코리 정상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 보았어요. 땅을 등에 대고 하늘을 바라보면 언제나 행복해지죠. 더구나 그 하늘이 건드리면 쨍 하고 깨질 것처럼 새파랗고, 구름이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면! 해발 5000미터 위로 흰 구름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유유히 정상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죠. 해가 지기 전에 캉진 곰파까지 해발 1,200미터를 다시 내려가야 하니까요.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대던 트렉커들이 작별인사를 건넨 후 산을 내려갔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저무니 우리도 그만 내려가야 한다고 겔젠이 재촉했어요. 태양이 이미 정점을 지나 서쪽으로 내려서고 있었죠. 우리는 빙판을 눈썰매장 삼아 미끄러지고, 깔깔거리며 위험지대까지 순식간에 내려왔어요. 다시 겔젠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아슬아슬한 길이 시작되었어요. 위험지대가 끝나고 나자 민둥산을 따라 내려가는 오솔길이 이어졌지요. 랑탕 히말라야 서편으로 해가 저물며 설산들이 황금빛으로, 분홍빛으로 다른 색감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산을 올라오며 본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에 자꾸만 발걸음이 멎었어요. 아름다운 것에 매료되면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나의 탐미적 기질. 그날 가장 먼저 정상에 올랐던 것도 나였지만 가장 뒤늦게 산을 내려가는 것도 나였어요. 저 풍경! 저 모습! 나는 자꾸만 뒤로 처졌어요. 그렇게 하산을 하던 중 P가 길 위에 스틱으로 써놓고 간 글씨를 발견했어요. 사랑해, R.

고개를 들어 내려다 보니 그녀는 한 굽이 지나 구부러지는 길 모퉁이에 선 채 뒤돌아 보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다가가자 수줍은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지요. 저기……봤니? 나는 짐짓 모른 채 했어요. 뭐 말이니? 그러자 그녀는 되물었죠. 정말 못 봤니?.......뭘 말이니? 그녀는 희미한 글씨 탓에 자신이 내려놓고 간 글을 보지 못했던 것이라 여겼어요. 소리 내어 하지 못했던 말을 기껏 써두었는데 보지도 못하고…그녀는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며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되돌아서서 내려가기 시작했지요.

P는 어릴 때 무척 가난했대요. 그날그날 번 돈으로 쌀을 사러 가기도 했대요. 학창시절엔 수업을 마치고 포장마차를 하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호떡을 굽고, 떡뽁기를 만들며 공부를 했어요. 그런 와중에 명문대학에 들어갔다고 이웃 사람들이 칭찬을 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남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친척들이 칭찬을 했지요. (여기까진 세상에 흔한 성공스토리같죠?)그런데 회사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이렇게 사는 건 바른 삶이 아닌 것 같았대요. P는 회사를 나와 퇴직금으로 다시 공부했대요. <사회복지학>을요. 그 후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가출한 아이들을 돌보았어요. 지금은 자원봉사단체의 일원으로 네팔에 왔지요. 소도시의 시청에서 지역의 사회복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맡았어요. P는 자기가 맡은 일 외에도 네팔에서 바빴어요. 짬짬이 미싱을 돌려 가난한 아이들의 교복을 만들고, 자원봉사단체가 단원들에게 나눠준 개인상비약을 돌 깨는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한국정부로부터 받은 자신의 생활비를 아끼고 꼬박꼬박 모아 비가 새는 산골학교의 지붕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요. 나는 그런 P가 길 위에 남겨둔 고백에 대한 답을 노래로 대신하기로 했어요. 랑탕 히말라야를 내려오며 말이죠.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 주겠네
이리 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부르는 노래가 험하고 먼 길을 내려오는 동안 퍼져나갔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뒤돌아 보며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어요. ‘내려갈 때 / 보았네 / 올라갈 때 / 보지 못한 / 그 꽃’처럼.

 

 


    
*노동효는 1970년대 산 길 위의 사내. 보조석엔 L, K, J, S, P, H, R……. 뒷좌석엔 존레넌, 링고스타, 조지해리슨, 폴매카트니를 태우고 여행 중. 목적지는 가르강튀아 은하계, 팡타그뤼엘 행성, 바벨타워 36th 지점 무위당(無爲堂). [길 위에서]는 현재 마가라테아 행성의 건축가 슬라티바패스트에게 3차원으로 시공해달라고 발주를 해 둔 상태이니 완공이 될 때까지는 일단 텍스트 버전으로 산책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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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18:05

예술인복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자의 눈]예술인복지법 논의에 대한 기대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러한 논의가 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확장을 일궈내길 기대해 본다.
▲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러한 논의가 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확장을 일궈내길 기대해 본다.

1.
2005년 구본주 소송사건이 벌어졌다. 한 촉망받던 조각가의 사고사에 보험회사가 이윤을 이유로 무직자 취급을 한데 대해 문화예술계가 한 목소리로 대처했던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은 보험사가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면서 예술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은 한 사례로 남게 됐다. 그러나 당시 구본주 대책위 활동에 관여했던 이들은 이후 유사한 소송에 휘말린 예술가들의 연락을 수 차례 받으며 고민에 빠졌다. 소송의 전말과 대응논리, 관련서류들을 꼼꼼히 챙겨 건네줬지만, 구본주 작가 만큼의 지명도가 없는 예술가들이 별다른 사회적 지원 없이 보험사와 일대일로 마주해서 예술의 가치를 옹호해 내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꼭 소송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예술가들의 복지는 사각에 놓여있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은 몇몇 유명인사를 제외하면 무직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 일쑤다.

2.
2007년과 2008년 초반까지 몇몇 예술단체들이 모여 예술인복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영화산업노조가 일군 성과들에 대한 확인에서부터 프랑스와 독일, 미국을 비롯한 해외사례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례들을 검토하고 지금 현실에서 어떤 정책들을 제안해야 예술인복지를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 논의들은 ▲문화부예산 1% 이상을 문화예술인 복지제도 구축에 투자할 것 ▲문화예술인들이 4대보험이라는 사회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담기구를 설치할 것 ▲문화예술인들의 신분을 보장할 것 ▲문화예술 실업급여제도를 도입할 것 등을 비롯한 7대 요구사항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가칭 ‘문화예술인복지연대’를 전체 문화예술계에 제안하고 논의를 모아 정책에 반영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워크샵과 토론회, 대선정책 제안 등 유의미한 활동을 진행했음에도, 문화예술계 내에 전면적인 논의구조 확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3.
11월 26일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은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개최의 요지는 예술인복지 대한 근거를 법으로 규정해 예술인들도 사회복지제도의 틀 안에 포괄할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토론회에서는 예술인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발표와 함께 구체적인 법안에 대한 제안, 법을 제정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재단측은 문화예술계의 논의의 장을 확산하기 위해 2009년에는 정례회의를 통해 좀더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법은 사회구성원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창구일 것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흔히 이해관계 상충에 대한 조정노력이 실패했을 때 나온다. 예술인들이 저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복지에 진전이 없자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그만큼 예술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협소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숱한 논의와 정책제안과 호소들이 있었지만, 결국 상호부조를 기반으로 하는 반쪽짜리 예술인공제회마저 아직 제자리걸음인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4.
그간 예술인 복지에 대한 내용은 가난과 생활고로만 이슈화됐다. ‘예술가의 한 달 수입이 30만원을 넘네, 못 넘네’라는 소문들은 해마다 언론지상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불쌍한 사람들’로 인식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예술가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 역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복지혜택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예술인 복지에 대한 접근은 시혜성 정책이 아닌 권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간 오래도록 유포되어 왔던 예술가에 대한 왜곡된 인식들을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주망태가 되어 가정을 팽개치고 예술혼에 불타오르는 괴짜 예술가’ 상은 이제 걷어낼 때가 됐다. 예술가들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사회의 일원이자 생활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더 이상 자기세계에 갇혀 자폐적인 예술 활동만을 일삼는 것은 멈춰야 한다.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한 예술가상이 여전히 사실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수록 사회와 소통하는 노력은 더더욱 절실한 것이다.

5.
구체적인 필요가 조직되지 않으면 일의 추진력은 생기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문화예술인복지연대'의 활동이 한계를 보였던 것 역시 구체화되지 못한 예술계 내부인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술인복지법’은 그간 논의되어 왔던 예술인복지에 대한 논의들을 집약적으로 제기할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만드는데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논의과정에서 예술인들이 권리에 대해 구체적인 인식의 확장을 일궈내고 예술계 내의 담론이 풍부해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예술인복지법이 실현된다고 해도, 법 자체가 종착역이 될 순 없다. 법은 예술인복지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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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30 11:42

무한반복의 지옥에서, 비극적으로

[박서방의 주절주절] ‘다른 대화’가 필요해

감금이란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카드명세서도 감금이고 대출이자도 감금이다. 의무교육도, 병역의무도, 결혼제도도 모두가 감금이다.

▲ 감금이란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카드명세서도 감금이고 대출이자도 감금이다. 의무교육도, 병역의무도, 결혼제도도 모두가 감금이다.

날이 추워지니 몇 년 동안 안 보던 사람들을 보는 일이 조금씩 늘어난다. 대개 학교 동창들이거나 어릴 적 친구들, 혹은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들이다. 우리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러 간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차를 마시는 경우도 있다. 마주 앉으면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한다. 상대방의 건강과 가족의 안녕을 묻고 답하는 것에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때부터가 문제다. 어디서 얘기가 풀려 들어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틈엔가 우리는 부동산과 주식, 펀드 이야기를 하고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진다. 얘기해봐야 서로 가슴만 답답할 따름이지만 이 수순은 피할 길이 없다.

박서방은 여기서 지옥의 징그러운 한 단면을 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다시 돌아오고 마는 반복. 소설가 장정일이 자신의 작품 『보트하우스』에서 “반복은 지옥이다”라는 전언을 던졌을 때만 해도 그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 그것이 정확하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철들고 나서 깨달은 일상의 가장 끔직한 현상은 지독한 고통이나 절망감이 아니라 그것이 피할 도리 없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즐겨 읽어온 만화 중에 후쿠모토 노부유키라는 독한 분이 그린 『도박묵시록 카이지』라는 독한 작품이 있다.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회낙오자 주인공이 불법 도박 세계에 빠져 겪게 되는 모험담(?)을 그린 이 만화는 작자의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지독하리만치 차가운 냉소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도 가장 섬뜩한 것은 주인공 카이지를 둘러싼 환경의 폐쇄성과 무한반복이다. 카이지가 도박과 부채의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김없이 새로운 지옥이 열린다.

솔직히 철없던 때는 이 만화에서 그려진 세상이 나와는 상관없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여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믿음과 사랑, 우정 같은 인간적 감정들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신뢰를 뒷받침할 근거들도 주변에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느 순간 박서방의 주변이 카이지의 세계와 비슷하게 변해 있었다. 카이지 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탈출하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바다 건너 박서방의 일상에 침윤해 들어오는 지난 1년간을 돌아보면 이 세계는 정녕 ‘노웨이아웃’이다.

그러니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각종 송년모임도 전혀 기다려지지 않는다. 어떤 시추에이션으로 전개될지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초반 30분 정도의 즐거운 회합 이후 얼마 안 있어 누군가의 시작으로 답 없는 ‘경제 얘기’가 시작될 것이 뻔하다. 누군가는 지금은 뭘 사야 될 시기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언제 무엇을 사야한다는 그 보다는 조금 근거 있어 보임직한 예측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는 재테크고 나발이고 당장의 힘듦을 토로할 것이며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헤어질 것이다. 정치 얘기도 어떻게 진행 될 것인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1년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생각해보니 수년전 크게 인기를 모았던 영화 <매트릭스>가 대중들에게 주었던 카타르시스 역시 무한 반복되는 세계에서의 탈출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감금이란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카드명세서도 감금이고 대출이자도 감금이다. 넓게 보자면 의무교육도 감금이고 병역의무도, 결혼제도도 감금이다. 모든 공화국에는 기본적으로 감금의 질서가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가 유지된다. 다만 최근 박서방이 살고 있는 공화국에서 감금이 개인에게 보다 폭력적인 것은 잠시 심호흡을 할 작은 돌파구마저 막고 있다는 것에 있다. 개인들의 사적 관계마저도 철창 안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비극적인 것이다.

2008년을 보내며 친구들과 다른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박서방은 한번 해볼까 한다. 맛이나 냄새나 향기 같은 원천적 감각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혹은 인생이나 사랑의 의미 같은 사춘기 시절의 소재를 가지고도 얘기해보고 싶다.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다. 이제 빈정거리지 않으면서도 좀 웃기는 얘기를 해보고 싶은 겨울이다.

 


박서방 _ 인터넷 만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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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19:27

[공간수다]도로위에 눕다 - 왕십리뉴타운 세입자의 절규

재개발/재건축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전부터 서울시는 각종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재개발 이후 원주민 정착율은 17%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주민들의 삶을 벼랑끝으로 몰아가는 뉴타운의 환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빈곤사회연대의 조승화 활동가가 왕십리 뉴타운 개발지역 세입자들의 절규를 카메라에 담았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 / 편집자.

 

10월 9일, 도로위에 사람들이 누웠다. 이들은 무엇인가 억울해 하듯, 분노에 찬 듯 도로위에 누웠다. 이들 모두 수 십 년 동안 왕십리에서 살아 온 주민들이다. 왕십리가 뉴타운 개발이 진행 되면서 이곳 주민들은 자신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이에 뉴타운 개발에 반대하며 살 집, 살 터전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그런데 10월 9일, 왕십리에서는 백주대낮에 기막힌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오후 2시 30분경 왕십리뉴타운 1,2구역 세입자대책위 사무실에 용역깡패 30명이 침입해 세대위사무실 유리창을 깨고 기물을 파손하는 폭력을 자행한 것이다. 이를 제지하려던 주민 3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 이송되었고 이 중 1명은 의식을 잃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늑장 출동한 경찰은 증거가 없다며 용역깡패 단 한 명만을 연행해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오후 4시경부터 황학교 인근 도로를 점거하고 용역깡패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세입자주민의 정당한 주거권을 주장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경찰은 도로점거를 구실로 일방적으로 왕십리 주민 39명을 대거 연행하였다.

 


왕십리 뉴타운지역은 세입자 비율이 80%(전체 4,572세대 중 세입자 3,620세대)에 이를 정도로 집 없는 세입자들의 저렴 주택지로, 급격한 주거불안 없이 10~20년을 살아오던 곳이다. 그러던 왕십리 뉴타운은 2002년 10월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의해 ‘뉴타운’이라는 새로운 개발의 시범지구로 발표되고, 이후 지주조합에 의한 본격적인 개발계획들이 진행되면서 주민의 80%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은 수 십 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대책 없이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재 왕십리뉴타운 1,2구역은 세입자들에게 법적으로 이미 보장된 이주대책 및 보상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조합이 고용한 용역들의 세입자들에 대한 협박과 폭력으로 하루하루를 불안해하며, 강제로 이주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때문에 세입자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대책이 필요함에도, 3,620세대인 세입자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는 단 903세대만이 공급될 예정이며, 이마저도 세입자들의 형편이 고려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공급하려 하고 있다.


 - 조승화 _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이 기사는 문화연대 문화정책 뉴스레터 '또다른'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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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mi 2008.11.11 23:15 address edit & del reply

    안타까운 모습들이네요..

2008.11.07 10:44

남장 문근영은 왜 비극적인가 - <바람의 화원>의 유사역사성과 역사성

<바람의 화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사역사성에 근거한 드라마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역사주의적인 이야기이다.
▲ <바람의 화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사역사성에 근거한 드라마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역사주의적인 이야기이다.

<바람의 화원>의 인기는 많은 부분 ‘유사역사성’에서 온다. 역사적 사실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의미에서 ‘팩션’(faction)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으로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사건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이런 종류의 작품은 역사성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람의 화원>을 두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역사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윤복이 남장 여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난센스에 불과하겠지만, 창작자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이 설정이야말로 <바람의 화원>이라는 이야기 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적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도대체 역사성의 재창조는 왜 이루어지는 걸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이야기는 인간과 여타 동물을 구분해주는 중요한 속성이다.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를 통해 반추하는 행위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성을 다시 구성하는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필연성에 포박당한 ‘자연적 존재’인 인간을 ‘문화적 존재’로 거듭나게 만드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최근 대중문화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유사역사성은 현실의 욕망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지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바람의 화원>을 보면서 조선시대에 대해 질문하는 건 절반만 옳은 태도처럼 보인다. 좀 더 정확하게 질문하려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오늘날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물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의 화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를 유발하는데,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가 신윤복의 그림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신윤복의 작품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시청자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원작 소설에 비해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더 많은 핍진성을 확보한다. 이 때문에 원작이 풍기고 있는 추리 소설 같은 긴장감을 드라마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드라마는 <취화선>이나 <스캔들> 같은 한국영화가 보여줬던 ‘인류학적 영화’의 전례를 따른다. 인류학적 영화는 바로 ‘우리 역사’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것’을 타자의 시선을 통해 관찰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게 이런 영화의 특징이다. 이를 통해 전통은 현재의 요구에 맞춰 재배열되고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분명 <바람의 화원>은 인류학적 시선을 통해 ‘우리 것’을 새롭게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오락성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이 보다도 제작자가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효과 때문에 이 드라마가 더욱 흥미진진해진 것 같다. 그건 바로 이 드라마가 소재의 특성상 ‘젠더’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듀나도 지적했듯이, 드라마로 제작된 <바람의 화원>은 원작소설과 같은 이야기구조를 가질 수가 없다. 그 까닭은 신윤복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숨겨놓았다가 이야기구조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활용하는 원작소설의 경우와 달리, ‘문근영’이라는 ‘여성’이 신윤복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는 처음부터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확실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젠더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이 젠더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드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말 그대로 이 드라마들이 젠더 문제와 관련을 맺는 건 그냥 소재가 그렇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드라마들은 젠더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바람의 화원> 방영분에서 신윤복의 형인 영복은 환각상태에서 ‘여동생’ 신윤복을 그린다. ‘여성’ 신윤복은 이처럼 현실에서 재현할 수 없고 판타지 속에서만 이미지화할 수 있는 대상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여성은 없다’는 정신분석학적 명제를 슬쩍 비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여기에서 신윤복에 대한 영복의 감정은 남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신윤복의 사연 때문에 발생한다. 말하자면 아주 굳건하게 ‘여성은 여성답게 살아야한다’는 발화가 이 지점에서 주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혐의는 정향과 윤복의 ‘연애’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성애를 환기시켰던 이 장면은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지극히 이성애적인 메시지를 전달했을 뿐이다. 결국 정향과 윤복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동성애는 이성애에 비해 ‘형이상학적인 사랑’처럼 그려지지만, 이는 바꾸어서 말하면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른 것’, 다시 말해서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제작진은 동성애를 표현했다기보다 ‘뮤즈와 예술가의 관계’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말했지만, 예술사적으로 본다면, 뮤즈와 예술가의 관계보다 더 확실하게 이성애적 욕망을 전제하는 경우는 없다.

<바람의 화원>은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젠더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 차원에서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말 그대로 그림자처럼 잠깐 나타날 뿐이다. 드라마는 시종일관 문근영의 남장을 ‘일탈’로 보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향에 대한 사랑은 나중에 ‘완성할’ 김홍도와 신윤복의 사랑이라는 ‘이성애적 관계’를 위한 미숙한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바람의 화원>이 보여주는 세계관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뛰어난 개인’을 방해하는 ‘나쁜 제도’에 대한 비판은 복지제도에 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공격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신윤복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젠더의 일탈’은 탁월한 개인의 재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비극성’의 요소로 그려질 뿐이다. 도대체 이 비극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는 여동생을 여동생이라고 부를 없는 영복의 슬픔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정향과 신윤복의 사랑이고, 마침내 여성으로 완결해야할 신윤복의 인생역정이다. 이처럼 <바람의 화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사역사성에 근거한 드라마이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역사주의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이렇게 현실은 질기게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1968년 생으로 문화이론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2002), 『들뢰즈의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2002),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2007) 등이 있으며 현재 경희대 영미어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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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h7777.net/tt BlogIcon 날개 2008.11.07 13:38 address edit & del reply

    와우~ 다 읽고 나니 감탄사가 나오네요.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라는 점과 역사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가벼운 소재로 시작하여 결코 가볍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논문처럼 뻑뻑하지도 않으면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끝까지 읽게 되었네요. ^^;

  2. 용왕버터 2008.11.07 22:30 address edit & del reply

    처음엔 그냥 팩션이고 젠더 문제만을 생각하고 작품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니 인류학적이라는 시선, 신자유주의의 시선을 적용시킴으로서 사안을 보다 확대하고 구체적으로 해석하는데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로서 팩션 드라마이기 때문에 희극으로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08.11.06 09:00

디자인올림픽에 유쾌하게 딴지 걸기 - 서울디자인올림픽 평가토론회, ‘삶을 파괴하는 디자인은 폭력이다’

10월 30일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진행된 디자인올림픽 평가토론회.
▲ 10월 30일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진행된 디자인올림픽 평가토론회.

이른바 몸부림, 혹은 꿈틀거림이었다. 차가워진 늦가을 저녁의 서울거리는 그만큼 걸음걸이를 재촉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걸음이 우리 때문에 지체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자 했다. 문화연대와 진보신당 서울시당이 30일 서울의 거리에 깔아 놓았던 거리공연과 토론회는 '차이'와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10일부터 30일까지 서울잠실주경기장에서 '서울디자인올림픽'을 진행했다. 수많은 언론들은 이 행사가 성공적이었다고 입 모아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동안 서울시가 보여주었던 포크레인 대신 다양한 '사인sign'이 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개발주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문화연대와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이번 서울디자인올림픽을 통해, 서울시 디자인정책의 이면에 존재하는 개발의 폭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런 저런 사업들을 진행하였는데, '아름다운 노점' 사진전도 이런 흐름에 놓여있다. 우리가 말하는 거리는 보행자들의 통행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토론회 장소가 되기고 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인 노점상들이 생계의 밑천을 만들어가는 일터이기도 하다. 이렇듯 거리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시는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노점상 대신 화단을 선택했다. 서울시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노점의 맨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노점은 그렇게 쉽게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연장선에 놓인 또 하나의 행사가 10월 30일 청계광장 옆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작은 토론회다. '서울디자인올림픽 평가토론회'가 그것인데, '삶을 파괴하는 디자인은 폭력이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저녁 6시 30분쯤 보사노바 가수인 소히와 뉴포크 가수인 무중력소년이 토론회 사전행사로 노래를 불렀다. 가수 소히가 말한 것처럼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부유해' 보였다. 도심에서 진행되는 이 낯선 행사가 낯섬 이상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히 있었다. 저녁 7시부터 진행된 평가토론회는 진보신당 정책위원 김현우,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인 조승화, 문화연대 임정희 선생이 토론자로 나섰다. 그리고 이미 제시된 공통질문 5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서울디자인올림픽'을 위한 5가지 질문

우선 5개의 공통질문을 살펴보면 첫번째 '도대체 디자인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중요한가(혹은 사소한가)', 두번째 '디자인에 있어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세번째 '디자인올림픽에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이었나', 네번째 '디자인올림픽은 과연 할 만한 사업이었나', 다섯번째 '계속되는 디자인올림픽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였다.

워낙 형식 자체가 없었던 탓에 각각의 질문들과 답들이 서로 넘나들었다. 우선 김현우 정책위원은 디자인올림픽에서 불러온 '디자인'의 모습에 주목했다. 실제로 '서울디자인올림픽'에 참가하여 볼 수 있었던 디자인이란 것이 결국은 '포장지'에 다름아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돈벌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런 디자인이란 결국 서울시가 아니라 기업에서 해도 그만인 디자인이었을 뿐이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디자인정책이 조금이라도 공공성을 가지려면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쾌적성, 보편성, 시민참여가 그것인데, 이런 기준은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을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빈곤사회연대 조승화 활동가는 디자인을 그간의 서울시 정책이 보여준 흐름에 놓고자 했다. 서울시가 디자인거리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준 노점상 철거과정에서의 폭력성, 뉴타운 난개발에서 볼 수 있는 획일성 등을 지적하면서, 서울시가 말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알맹이가 없는 정치적인 수사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실상 디자인의 공공성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의심을 보였다. 한마디로 디자인만의 자율적인 공간이 없다는 의혹이었다.

반면 임정희 선생의 진단은 달랐다. 임정희 선생은 우선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이중성을 강조했다. 애초 16세기부터 등장한 디자인 개념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의미가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상당히 공학적인 개념, 혹은 정돈잡힌(질서있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개념은 서울시에서 활용하는 '디자인'의 용례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임정희 선생이 강조한 것은 디자인의 최근 흐름이었다. 그것은 '사인sign'을 붙였다 뗐다(de-) 하는 행위처럼 사회적 의미화의 과정으로서 디자인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디자인이란 애초부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등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난 개념이 아닌 셈이다. 연장선상에서 임정희 선생에게 디자인의 공공성이란, 원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그대로 놔주는 것일 수 있겠다.

디자인올림픽 행사장 전경. 서울시는 188만명의 시민이 행사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서울디자인올림픽'! 오세훈 서울시장만 있더라

질문은 그대로 잠실 주경기장에서 진행된 실제 '서울디자인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선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묻는 질문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개발주의와 상업디자인, 껍데기뿐인 환경디자인은 있었지만 참여하는 서울시민과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의미하는 '진짜' 디자인은 없었다고 진단했다.

그도 그걸 것이, 이번 서울디자인올림픽이 진행된 잠실주경기장은 'SH공사', '토지공사' 등 핀트가 잘 맞지 않는 공공기관의 부스들과 각종 기업에서 마련한 상품 안내부스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도시갤러리 사업에 따라 지원되던 일부 예술활동들이 일부 소환되어 펼쳐졌다. 그리고 시민들이 좋아했던 수많은 설치물들은 일반적인 놀이동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냉정한 평가도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 29일 발표했던 서울디자인올림픽 입장객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44%의 입장객들이 이번 행사를 '나들이'삼아 찾았다고 답했다. 물론 나들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서울시민의 디자인감수성을 높이고자 8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벌인 행사치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결과임에는 틀림없었다. 특히 같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떤 경로를 통해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에 최대응답은 23% 가까이가 답한 '학교내 홍보'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188만명의 서울시민이 행사에 참여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번 행사의 목적이 '서울시민의 동원'이었다면 80억에 달하는 예산으로 다른 행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평가토론회에 참여한 토론자들이 이번 디자인올림픽을 평가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전부 아니다'는 식은 아니었다고 본다. 대부분의 토론자들이 공통질문 네번째인 '디자인올림픽이 과연 할 만한 사업이었나'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하면서도 '만약~'이라는 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은 디자인올림픽이 서울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상업화될 수 없는 서울시의 공적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방안을 서로 모색하는 자리라면 디자인올림픽과 같은 자리는 있어도 좋지만, 사실상 이번 디자인올림픽에선 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 나았다는 평가다. 조승화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의 지적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명확하고 지금까지 배제되어 있던 사회적 약자들을 다시 서울시민의 이름으로 불러올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입장에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은 디자인을 관계의 망으로 본 문화연대 임정희 선생이다. 임정희 선생은 디자인이라는 것이 일정기간에 특정한 장소에 모여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미 올림픽이라는 말이나 디자인 공모전 등이 진행된 데서 볼 수 있듯이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제한된 행사로 한정짓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원래의 뜻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결국 '우리'의 자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서울디자인올림픽은 올해 시범사업을 기점으로 2010년까지 매년 열릴 행사다. 애당초 2010년에 서울이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데에 따른 부대행사로 기획된 터였다. 문제는 여전히 '왜 이 사업이 필요한가'라는 합의 없이 내년도 사업이 확정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자화자찬식의 성과보고서가 또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토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바와 같이 '서울을 서울이게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 없이 불꽃놀이와 '무한도전'만으로 서울시민의 동원을 넘어선 참여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서 내년에도 서울디자인올림픽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합의를 보았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 올해보다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자는 반성이 있었다. 임정희 선생의 지적대로 서울시가 '자기만의 리그'를 하듯이 우리 역시 '우리만의 리그'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반성을 바탕으로 이런 저런 고민들이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은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 안에서, 밖에서 다양한 흐름들을 조직해내면서 즐거운 일들을 만들 것이다.

내년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주제는 'I Design'으로 확정되었다. 우리는 그 대문자 'I'에서 촘촘한 'i'들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팍팍하면서도 즐거운 숙제다.




* 2008-11-04 오후 4:03:08   김상철 _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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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8 19:17

지구촌에 띄우는 문화사회 비전 - 충북문화헌장의 정신과 의의

충북문화헌장의 핵심은 문화사회, 문화국가, 문화세계로 요약될 수 있다. 충북문화헌장 발표 모습.
▲ 충북문화헌장의 핵심은 문화사회, 문화국가, 문화세계로 요약될 수 있다. 충북문화헌장 발표 모습.

지난 10월 18일 충청북도 문화헌장이 발표됐다. 2년 전 국가단위의 문화헌장이 발표됐으나 상징적인 의미 이상을 갖지 못한 채 사장된 경험이 있어 이번 헌장의 발표는 더욱 주목된다. 더구나 정책단위의 실행을 염두에 두고 조례까지 제정해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런 기대가 섣부를지라도 지자체 단위에서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갖는 것은 분명 반길만한 일이다. 충청북도 문화헌장 제정작업에 참여한 충북문화예술연구소의 김승환 소장이 글을 보내왔다. 지자체에서 세계로 발신하는 문화헌장에 공명이 있기를 기대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충북에서 전국 최초로 명문화된 지역 문화헌장이 제정, 공표되었다. 일찍이 광주가 민간 주도로 광주문화헌장(시민문화헌장)을 제정했으며 2006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헌장이 제정되었다. 광주문화헌장과 국가문화헌장은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2008년 11월 18일, 청주 문화의 달 행사에서 공표된 충북문화헌장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충북문화헌장은 시민사회민중단체와 충북도청이 시작부터 협의를 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정신과 사상을 담는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한마디로 충북문화헌장은 충북 지역문화를 토대로 미래의 문화사적 전망을 제시하는 공공의 문서다.

충북문화헌장은 사람들 모두가 중심이고 주체라는 정신을 살리고자 했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추기 위하여 의회심의를 거쳐서 조례로 제정했으며, 다중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각종 문화적 장치로 뒷받침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충북 역시 모든 것을 경제가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과 모든 것은 경제로 귀결된다는 경제환원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경제우선주의는 상대적으로 문화, 예술, 여성, 환경, 생태, 인권 등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인식한 문화예술인들은 문화를 통하여 지역사회를 새롭게 일신하고 창의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문화적 담론을 제출했다. 이것을 행정기관인 충청북도가 행정적으로 검토하고 입안한 담론이 충북 문화선진도라는 개념이다. 이 문화선진도의 정신과 사상, 방법과 전망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충북문화헌장이다.

인간사회는 경제나 산업이 중요하다. 삶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생산과 분배를 통하여 개인이나 집단이 존재하고 국가와 사회가 유지된다. 그런데 경제산업으로 대표되는 물질에만 집착하게 되면 정신이나 가치 등이 흔들리게 되므로 경제산업과 문화 등의 상호관계가 필요하다. 자본과 문화의 관계라고 해야 할 이 문제는 오랜 인류사의 주제였거니와 문화를 통하여 경제산업과 정치행정 등 삶의 토대를 새롭게 일신할 수 있다. ‘충청북도 문화헌장 제정은 문화와 함께 행복한 충청북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발전 전망을 모색하는 출발점’이라는 취지에서 잘 나타나듯이 인간과 행복을 연결하는 고리로써 문화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하다.

문화헌장은 바로 그런 정신에 입각하여 기획되었고 또 제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몇 사람이 문장을 만들어서 선포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문화적 운명공동체이고 경제공동체인 충북인들의 합의와 동의가 소중했던 것이다. 제정의 과정에서 예총, 민예총, 문화원 등의 문화예술단체와 기초자치단체 대표들이 참석하였으며 각계 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함께 했다. 무엇보다도 행정기관인 충북도청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문화적 협치(cultural governance)를 실현했다. 이런 점에서 충북문화헌장은 사회적 협약이며 문화적 권리장전이고 또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인 동시에 한국인의 문화적 책무에 대한 다짐이다. 또한 개인을 문화적으로 호명(interpellation)한 것이 바로 문화헌장이다. 그런 점에서 위로부터의 제정이 아니라 다중이 주체가 되는 문화헌장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세계적인 문서가 될 수 있도록 유네스코 등의 문화담론을 연구하는 한편, 문화적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설정한 유엔의 정신을 보편적으로 수렴했다. 

지역의 문화헌장은 국가문화헌장과 달라야 하기 때문에 충북의 역사를 통하여 문화사를 일별하면서, 자긍심과 함께 합리성을 가지도록 구성되었다. 중세까지의 문화사를 일별하다보니, 문화헌장이 가부장제의 남성지배구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충북문화헌장에는 모든 사람은 문화의 주체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지역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과 함께 배타적이 되지 않도록 다문화주의와 문화다양성의 정신을 담았다. 특히 충북문화헌장은 ‘문화는 인류가 축적한 긍정적 경험과 삶의 총체’라는 전제와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문화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4절의 전문과 11항의 항목으로 구성된 충북문화헌장의 정신은 다음 대목에 잘 녹아 있다. “목련과 모란이 어울려 아름다운 것과 같이 모든 국가와 민족의 다양한 문화는 소중하다. 충북인들은 나눔과 배려를 바탕으로 번영과 평화를 이루고 차별과 소외를 없애며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평등한 세상을 희망한다. 이제 충북인들은 서로를 존경하는 상생과 화합의 지혜를 살리면서 한국문화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것이다. 선진 문화를 소망하는 충북인들은 문화헌장을 하늘북 삼아 성숙한 문화사회로 나아가며 통일한국이 문화국가가 되고 지구촌이 문화세계를 이루는 여정을 시작한다.”

충북문화헌장의 핵심은 문화사회, 문화국가, 문화세계로 요약될 수 있다. 문화사회는 문화적인 사회이며 문화가 사회 전체의 기준이고 기본이 되는 사회이자 가장 인간적이면서 생태환경적인 사회다. 이 문화사회는 지역에서는 문화도시, 문화지역, 문화마을 등으로 변용되고 국가에서는 문화국가로, 세계에서는 문화세계로 변용된다. 문화사회가 미래지향적이라면 한국문명은 과거지향적이다. 한국문명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충북의 지역문화가 한국문화와 한국문명의 하위영역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는데, 공식 문서로서는 처음으로 한국문명을 명기했다. 11개 항목에서는 문화민주주의를 천명하면서 문화소외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와 새로운 미디어 그리고 창의정신을 부각시켰다. 경제와의 관계는 문화산업과 문화정책으로 표현했고 문화의 하위 영역이 예술이지만 문화의 꽃이 예술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했다. 또한 여성, 환경, 노동, 인권, 생태, 생명의 사상도 드러나 있다. 문화를 창조하고 영위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평등이 문화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문화적 만물평등사상도 충북문화헌장의 또 다른 특징이다.

충북문화헌장의 또 다른 핵심은 충북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거나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는 똑같은 가치를 지니며 소중하다는 문화적 평등사상이다. 따라서 지역문화에 자긍심을 가지되 배타적이지 않도록 구성되었다. 한편 국제적으로 보아도 보편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예술성이 있어야만 좋은 문장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은유 상징 운율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최대한 예술적 문장이 되도록 했다. 간결하면서 평이한 내용과 함께 음수와 운율과 고저장단을 고려한 낭송 또한 문화헌장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문화헌장의 보편성을 검증하고 또 세계시민 모두가 인정하고 동의하도록 외국문으로도 작성되었다. 여러 언어로 작성하기에는 무리함이 있어서 대표적인 세계어 중의 하나인 영문으로 작성을 하고, 여건이 허락하면 중국어나 아랍어 등으로도 작성하도록 기획하여 세계시민이 동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것은 지역문화가 보편성, 객관성, 포용성, 관용, 사랑, 다원성, 다양성, 이질성, 혼종성을 가지지 못하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제도가 된다는 것을 인지한 결과다. 그것은 또한 문화가 언제나 진선(眞善)하다는 오류를 해체하고, 문화가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고 전쟁의 선전도구가 되며, 경제의 부속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인류문화사에서는 문화가 침략과 지배, 억압의 도구로 사용된 적이 많다. 이처럼 정치경제와 문화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그것을 충북이라는 지역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곧 충북문화헌장이다.


 충청북도문화헌장 전문보기




* 2008-10-27 오후 4:51:26  김승환 _ 충북문화예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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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7 19:06

[공간수다]현실세계에 뜬 팝업창

 

광고는 텔레비전이나 웹사이트 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상점가에 있는 간판, 거리 게시판과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포스터, 플랜카드도 모두 광고다. 그것들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틈새에 파고들어 모든 균열들을 봉합한다. 도시속의 삶은 그렇게 여유를 잃어간다. 이 광고들이 지하로 스며들고 있다.

사진1.노량진 전철역

지하 공간은 순도 100% 인공물이다. 이 공간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순수한 자본주의적 욕망의 표상인 광고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넘쳐나는 광고에 길들여져 자극적인 것에 점점 둔감해진다. 둔감함이란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 증세이다. 반면 광고는 자신을 다른 것과 더욱 차이나는 것으로 전시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관심 받고 싶어한다.

사진2.서울역 4호선 입구

몇 년 전부터 도시를 휩쓸고 다니는 ‘랩핑(Wrapping)'광고는 그러한 광고의 욕망을 잘 보여준다. 건물이든, 교통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그것들을 포장해 버린다. 광고는 자신을 자극적인 것으로 제공하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때로, 혹은 자주 시각적․촉각적 불쾌를 유발함으로써 도시형 공해가 되어 버린다.

사진3.지하철 역사내의 랩핑 광고들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과 같은 화면 속 세상이 인위적으로 구성된 가상의 공간임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이제 가상은 화면 밖으로 나가 현실 세계마저 덮어 버린다. 현실 세계는 가상에 의해 덮여 버리고, 또 하나의 하이퍼리얼리티의 세계가 된다. 하이퍼리얼리티의 세계는 현실세계를 포장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증식해나간다. 인터넷에서 팝업 창을 띄워 광고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듯, 스크린 밖의 공간에서도 광고는 창을 띄우듯 자신의 서식지를 만들어간다.

사진4. 스크린 도어 광고

몇 해 전부터 서울의 몇몇 지하철역에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고 있다. 스크린 도어는 자살이나 사고 방지 등 안전상의 이유로 설치되고 있는 시설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스크린 도어는 사고다발지역을 중심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스크린 도어가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은 삼성역, 강남역, 교대역, 신도림역, 광화문역 등 광고를 보고 소비할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 즉 광고가 직접 소비로 연결될 수 있는 지역이다. 스크린 도어가 한 창 설치되고 있을 즈음 한 신문에서는 “1~4호선 구간 중 최근 6년간 인명사고가 5건 이상 발생한 9개 역중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역은 한 곳도 없다”고 밝힌바 있다. 스크린도어는 광고 접근성이 뛰어나고, 호소력도 강하다. 역사 내․외부는 사람들이 이동하며 광고를 스쳐가는 공간인 반면 스크린 도어가 설치된 곳은 이동이 중지하는 멈춤의 공간이며, 시선이 머물 곳을 찾아 방황하는 - 사방이 막혀있어 외부의 풍경이 없는 - 공간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도어는 현실 공간에 띄어진 광고의 팝업창이다. ‘팝업차단’ 기능조차 없는 현실 세계에서 이 창들의 범람은 꽤나 당황스럽다.


* 이 기사는 문화연대 문화정책 뉴스레터 '또다른'에서 제공했습니다.


 * 2008-10-27 오전 10:22:26    허민호 _ 문화사회연구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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